소설리스트

공작님, 회개해주세요!-735화 (735/925)

735회

78. 공작님과 아스페르 연방 (7)

"공격을 받은 건 언제입니까?"

"열흘 전과 어제입니다."

"마인 러스티가 두 번이나 이곳에 다녀갔다는 말씀입니까?"

"예···."

휴마누스가 확인차 다시 묻자 주교가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건물이 죄다 무너지긴 했지만, 살아남은 사람의 수가 꽤 되었다. 사람만 있다면 도시 재건은 가능하다.

그런 것치고 앞으로의 삶을 이어나가고자 발버둥 치는 이보다, 손 놓고 절망하는 사람의 수가 유독 많더라니.

어떻게든 마음을 추스르고 살아가고자 마음을 먹었을 때 다시금 짓밟힌 모양이다.

기껏 새로 세운 기둥이 꺾여 버렸으니, 의욕 또한 꺾이는 건 당연한 일이다.

언제 또 무너져내릴지 모르는 건물을 다시 짓는 것에 회의감이 생길 만도 하다.

눈치 없는 휴마누스도 그 사실을 알아챘는지 표정을 딱딱하게 굳혔다.

이를 꽉 다물어버린 그를 대신하여, 세르펜스가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으음···. 혹시 마인이 나타난 장소와 날짜가 정리된 문서 같은 건 없습니까?"

"일단 기록해둔 걸 가져오긴 했는데···. 그다지 도움은 안 될 겁니다."

주교가 품속에서 고이 접은 종이 두 장을 꺼내어 테이블에 펼쳤다.

그중 한 장은 지역 이름과 날짜와 시간이 적힌 목록이었다.

맨 윗줄에 적힌 건 약 2주 전이었고, 제일 밑에는 어제 날짜와 함께 '새벽 2시, 파노페 왕국'이란 글자가 쓰여있었다.

그 이후 내용은 아직 갱신되지 않은 듯하다.

'하나, 둘, 셋, 넷···, ···마흔셋?'

약 2주 전에 공격이 시작된 것치고는 목록이 묘하게 길어서 개수를 세어 보니, 공왕의 공습이 무려 43번에 걸쳐 일어났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당황하며 날짜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이제 보니 하루에 한 군데만 공격을 받은 게 아니었다.

"하루에 다섯 군데나 공격받은 날이 이틀이나 있네요?!"

나는 방금 주교가 펼쳐 놓았던 다른 종이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것은 아스페르 연방국만 크게 확대한 지도였는데, 연방에 속한 모든 나라의 이름이 빠짐없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약 서른여 개의 점들이 연방 전역에 걸쳐 제멋대로 찍혀 있었다.

일단 점들은 무시하고, 같은 날 공격 당한 다섯 지역의 위치를 확인했다.

따닥따닥 붙어있는 수준은 아니어도 그런대로 멀지 않은 거리였다.

"이 정도면 비행형 마물을 타고 하루 만에 오가는 게 불가능한 수준은 아닌데···. 전투 시간을 고려하면 이게 가능한 일인가?"

"본격적인 전투는 피하고 기습에만 초점을 둔 게 아닐까 합니다."

세르펜스가 내 혼잣말을 받아서 대답했다.

그러자 주교가 그 말대로라며 동의를 표했다.

공왕은 연방 사람들이 대비할 틈도 주지 않고, 갑자기 나타나 화력을 쏟아붓고 튀길 반복했다는 뜻이다.

'어쩐지. 건물이나 거리의 상태에 비해 생존자는 묘하게 많은 것 같더라···.'

이제야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공왕의 습격이 시작되자마자,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도망쳐 신전으로 몸을 피했을 거다.

죽거나 다친 건 발이 느리거나 신전과 너무 먼 곳에 있던 사람들일 테고.

아무튼 빨리 공격을 퍼붓고 도망쳐야 하는데, 신전에는 신성 결계가 펼쳐져 있으니 애먼 건물만 파괴하다 간 거겠지.

직접 목숨을 취할 수는 없으니, 희망이라도 짓밟기 위해.

그러고 보니 조금 전.

주교는 무력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지역의 피해를 슬쩍 언급하며, 참담함을 숨기지 못했다.

그 표정의 의미를 떠올리니 분노가 더욱 차올랐다.

'대응할 수 없는 약자들은 철저히 죽이고, 어느 정도 힘을 갖춘 이들이 맞대응하려고 하면 도망가 버린다니···. 자신이 부리는 마물과 병사들의 목숨은 소중하지만, 그 이외의 사람들 목숨은 가볍게 건드려보는 장난감 같은 거로 생각하는 건가?'

공왕은 [성검의 주인]에서 아군이었다.

사정이 있어서 타락하고 말았지만, 그래도 다른 악숭이들과는 조금쯤 다를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내 착각에 불과했다. 어떤 점에서는 질이 더 나빴다.

이건 비겁하다는 말로도 부족하다.

'···신경 쓰지 말자. 어차피 공왕은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저질렀으니까.'

공왕이 죽음으로 몰아간 사람들과 그들의 유가족이 이 세상에 남아있고, 그녀의 죄를 기억하는 이들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상.

사람들은 절대 공왕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며, 결코 아군으로 받아들이지 못할 거다.

나는 이제 공왕을 '2회차에서는 동료였지만, 상황이 틀어져서 악숭 세력의 꼬임에 넘어가 적이 되어버린 사람'이 아닌.

그냥 악마와 계약한 악숭이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이제서야 말이지···.'

이미 실망할 대로 실망했다고 생각했었는데 아직이었나 보다.

나는 뒤늦게 마인 러스티를 악숭이로 정의 내리고, 아까 대충 넘겼던 지도의 점을 자세히 살폈다.

지도에 찍힌 점의 색은 빨강, 파랑, 보라. 이렇게 세 가지였다.

지명이 적힌 목록과 대조해 본 결과.

빨간색은 한 번만 공격받은 곳, 파란색은 두 번 공격받은 곳. 그리고 보라색은 세 번이나 공격받은 지역을 의미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우리는 지도와 목록을 번갈아 확인하며, 마인 러스티의 이동 경로에서 규칙을 찾아내려 애썼다.

한참을 그러고 있자니 보다 못한 주교가 깊은 한숨과 함께 한탄하듯 말했다.

"교단에서도 마인의 다음 출몰지를 예측해 보고자 이래저래 분석해 봤지만,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이미 공격을 받았던 곳이라 하여 안심할 수 없고, 이제껏 공격을 받지 않았다고 한들 내일도 안전하리라 보장할 수 없습니다."

룩스메아 교단에 속한 모든 성직자들의 머리가 동원되었음에도 찾아내지 못했다면, 규칙 같은 건 없다고 봐야 했다.

'그래도 마법사라면 뭔가 알 수 있지 않을까? 마인이 사람들을 죽여가며 마법진을 그리고 있는 걸 수도 있잖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에드나와 아니마에게 시선을 던졌다.

두 사람은 이미 종이를 꺼내어 선을 죽죽 그어가며, 마인의 이동 경로를 따라 그려보고 있었다.

그러나 마법적으로 접근해 보아도 아무런 소득이 없었는지, 얼마 안 가서 아니마가 펜을 반쯤 내던지다시피 내려놓았다.

"그날그날 기분이 내키는 곳에 쳐들어간다 해도, 사람의 습관이나 사고방식이 반영될 텐데. 어떻게 아무런 규칙이 없을 수가 있죠? 그 마인은 아침마다 무슨 룰렛이라도 돌리나?"

답답한 마음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세르펜스가 묘한 시선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이제껏 사람들이 그녀를 '마인 러스티'라고 지칭할 때, 나 혼자만 꿋꿋하게 '공왕'이라고 불러왔다.

그런데 갑자기 그 호칭이 바뀌었으니 이상함을 느낄 수밖에.

나는 녀석에게 신경 끄라는 눈짓을 보냈다.

세르펜스가 얌전히 시선을 내리깔고, 공격당한 지역 목록과 지도를 다시 살펴보는 척했다.

"적이 어디서 갑자기 나타날지 모르는데, 그곳에 오래 머무르는 것도 아니라니···. 어떻게 해야 마인을 붙잡아 둘 수 있을까?"

휴마누스는 마인 러스티를 부르는 내 호칭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한 건지, 본론에서 벗어나지 않고 대책을 고민했다.

"하다못해 도망치는 마인을 추적할 방법이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유지스가 호칭의 변화에 대해 눈치껏 넘어가며 희망 사항을 중얼거렸다.

세르펜스나 휴마누스라면 날개가 있으니, 비행형 마물을 타고 하늘 높이 도망치는 마인과 휘하 병사들을 뒤쫓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게 무슨 소용인가?

마주치지 못하면 아무 의미가 없고, 마주쳤다면 술래잡기를 할 게 아니라 바로 처치해야 한다.

즉 마인을 목격한 다른 누군가가 추적하여, 우리에게 그 위치를 제보해야 의미가 있다.

"마인이 일정한 수준 이상의 병력이 주둔한 지역을 건드리는 건, 그저 눈속임에 불과합니다. 그자가 제물을 모을 수 있다고 확신할 만한 곳에 병력을 숨겨놔야 합니다. 그것이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입니다."

세르펜스가 조심스레 의견을 말했다.

무력이 부족한 곳에 병력을 보내어, 사람들을 지켜야 한다는 단순한 얘기를 하는 건 아닐 테다.

유지스의 생각도 나와 같은지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발언했다.

"허를 찌르자는 건가요?"

"으음···. 그렇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세르펜스가 두루뭉술하게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적이 방심한 틈에 역공하자는 의도가 어느 정도 깔려 있기는 하지만, 그런 이유만 있는 게 아닌가 보다.

"마인이 직접적인 전투를 피하는 건, 소모전이 되면 자신이 불리해지기 때문일 겁니다."

"아! 전에 얘기했었죠? 마인의 병사와 마물의 수에는 한계가 있다고."

유지스가 예전에 세르펜스가 했던 얘기를 꺼내며 맞장구를 쳤다.

주교가 이해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리는 게, 자신을 위한 설명이라고 생각하나 보다.

"그렇다 하더라도. 마인이 진정으로 바라는 게 악마 숭배 세력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지금처럼 몸을 사리지는 않았을 겁니다. 성검의 주인이 오기 전에 최대한 많은 양의 제물을 확보하려면, 적극적으로 전투에 임해야 합니다. 하나 마인은 자신의 힘을 보전하고자 몸을 사렸습니다."

"아까는 마인이 확실하게 제물을 모을 수 있는 곳에 병력을 배치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어째서 갑자기 제물 확보에 관심이 없다는 듯 말씀하시는지···?"

세르펜스의 화법을 처음 접하는 주교가 의아하다는 듯 질문했다.

제물 얘기로 시작하여, 마인이 전투를 피하는 이유를 설명했다가, 이제는 마인이 악숭 세력에 도움이 되려 하지 않는다는 말이 튀어나왔으니.

녀석이 입을 열 때마다 주제가 자꾸 변하는 게 다소 헷갈릴 만도 했다.

"제물에 아예 관심이 없다는 얘기가 아니었습니다. 공을 세우기 위해 제물이 필요하기는 하나, 마인에게는 공을 세우는 것만큼이나 힘을 보전하는 일 또한 중요할 거라는 얘기였습니다."

"아, 네···."

주교가 알았다고 대답은 했지만, 표정으로 봤을 때 이해하고 있는 것 같지가 않다.

왜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지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낌새다.

그건 휴마눈새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그는 가만히 있으면 세르펜스가 알아서 설명해 준다는 걸 경험으로 알았다.

휴마눈새에 이어 새로운 눈새의 등장에 답답해진 세르펜스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제가 병력을 숨겨 놓아야 한다고 말한 건, 무력이 갖춰지지 않은 지역이라면 마인이 무작정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 예상하기 때문입니다."

"어째서죠···?"

"그곳에서 제물 외에 얻을 수 있는 것이 한 가지 더 있기 때문입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식량입니다."

세르펜스가 답을 알려 주었음에도 주교의 얼굴에 드리워진 의문은 더 짙어졌다.

마물을 타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마인이 보급이 끊겨, 현지 조달 방식을 택한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는 모양이다.

"이건 제 추측에 불과하나, 그 마인은 악마 숭배 세력 내에서 배척받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진심으로 악마를 숭배하는 게 아닌, 그저 욕심을 채우기 위해 악마와 계약한 자가 아닙니까?"

녀석은 추측이라는 단어를 쓰며 말문을 열었으나 실은 확신이라 봐야 했다.

왜냐하면 2회차의 악숭이들이 타락펜스를 그리 달가워하지 않았으니까.

물론 타락펜스의 경우 신성력을 계속 사용했고, 마왕이 묘하게 끼고돈 탓에 질투심이 더해져서 그런 것도 없잖아 있지만.

악마와 마왕을 숭배하지 않는다는 종교적 이유 또한 무시 못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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