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7회
79. 공작님과 마인 러스티 (1)
"선우, 나는 이제 정찰을 가 봐야 한다."
세르펜스가 내 옆에 다가와 쪼그려 앉으며,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아는 얘기를 꺼냈다.
그러면서 피크닉 매트를 두 손으로 받쳐 든 공손한 자세로 그것을 내게 내밀었다.
'가져갈 때는 내 아공간 주머니에서 알아서 꺼내 간 주제에···.'
나는 쯧 하고 혀를 차며 상체를 일으켜 앉았다.
그리고 세르펜스의 손에 올려진 피크닉 매트를 아공간 주머니에 넣었다.
이제 세르펜스는 빈손이 되었다. 그래도 녀석은 여전히 두 손을 활짝 편 채로 가만히 기다렸다.
정찰 중에 먹을 저녁 식사를 챙겨 달라는 뜻이다.
"그냥 본인 아공간 주머니에 넣어두면 될 텐데. 왜 매번 제게 받아가려고 합니까? 귀찮지도 않아요?"
"나는 선우가 매번 챙겨 주는 게 좋은데···. 혹시 선우는 귀찮았던 건가···?"
세르펜스가 입술을 삐죽 내밀며 울멍울멍한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았다.
무언가 말을 잘못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서둘러 녀석에게 손바닥을 내보이며 말했다.
"아뇨, 아뇨! 그럴 리가요! 이거 보세요, 훈련하느라 손이 이렇게나 더러워졌습니다. 아무리 잘 포장해 뒀다고 해도, 흙 묻은 손으로 음식을 집는 게 좀 그렇잖아요? 그것도 우리 공작님 먹을 음식인데!"
"음···. 그런 이유라면 어쩔 수 없지."
변명이 통했는지, 세르펜스가 이해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는 피크닉 매트를 넣느라 입구를 열어뒀던 아공간 주머니를 세르펜스 쪽으로 내밀었다.
세르펜스가 그 속에 손을 쑥 넣어서, 내가 직접 만든 토스트를 딱 하나만 꺼내 갔다.
내가 토스트를 처음 구운 건 약 보름 전 일이다.
그때 꽤 많은 양의 토스트를 구웠지만, 일행들이 관심을 보이며 하나씩 집어가자 동나는 건 순식간이었다.
그래서 그다음 날 작정하고 대량 생산을 시도했다.
하지만 세르펜스와 휴마누스가 정찰을 나갈 때마다 식사 대용으로 하나씩 가져가고.
훈련을 하다 보니 출출해져서 내가 하나 꺼내먹으며 윈스톤, 푸로르, 리에나에게 나눠주고.
우리끼리만 먹기 뭣하니 유지스와 에드나, 아니마에게도 종종 가져다주고.
그러다 보니 금방 다 먹어서 어제 또 잔뜩 만들어 두었다.
계속 같은 맛만 먹으면 질릴까 봐, 이번에는 기본 재료 외에 이것저것 다양한 추가 재료들을 넣었다.
세르펜스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내가 토스트를 구울 때, 옆에서 침을 꼴깍꼴깍 삼켰으니 모를 리가 없다.
'많이 있으니까, 일주일 분량을 한 번에 챙겨가면 편할 텐데.'
내가 직접 꺼내주지 않더라도 매번 이렇게 하나씩 가져갈 생각인가 보다.
다른 이유였다면 혼냈겠지만, 내가 챙겨주는 게 좋아서라고 하니 뭐라고 할 수도 없다.
녀석은 아직 한창 어리광 부리고 싶어 할 나이니까 이해해 주도록 하자.
"그럼 잘 다녀오세요."
"그래, 다녀오마."
세르펜스가 그렇게 대답하며 은빛 날개를 펼쳤다.
그러고는 무릎을 살짝 굽혔다가 제자리에서 뛰어오르며 날개를 크게 펄럭였다.
추진력 덕분인지 녀석은 기다란 은빛 선을 그리며 빠른 속도로 수직 상승했다.
녀석이 저렇게 날아오른 건, 어느 방향으로 정찰을 나가는지 숨기기 위함이다.
숙소 주변에 우리를 감시하는 사람이 있다면 진작 눈치챘을 거다.
하지만 날아가는 방향을 보는 것 정도는 이 도시 어느 곳에서든 확인할 수 있다.
번거로운 것도 아니고 어차피 사람들의 눈을 피하려면 높이 올라가야 한다.
그래서 세르펜스와 휴마누스 둘 다, 정찰할 때는 항상 저런 식으로 일단 높이 올라간 후 방향을 튼다.
"선배, 이제 그만 일어나시오."
윈스톤이 땅바닥에 앉아있는 내게 손을 뻗으며 말했다.
쉬는 시간이 벌써 끝났다니 아쉽다.
"처음 제가 일으켜 달라고 했을 땐 인상을 찌푸리더니, 오늘은 제가 일으켜 달라고 하기도 전에 먼저 손을 내밀어 주시네요?"
"내게 말을 걸어서 시간을 끌 생각이라면 포기하시오."
"칫!"
속셈이 간파당했다. 가만 보면 윈스톤도 참 눈치가 빠른 것 같다.
나는 윈스톤의 손을 잡았고, 그는 나를 일으켜 주었다. 윈스톤의 친절은 딱 거기까지였다.
또다시 인정사정없는 대련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하늘이 점차 어둑해지고, 한 시간에 10분씩 주어지는 쉬는 시간이 세 번째 찾아왔을 때.
"선우야, 토스트! 두 개!"
쉬고 있어야 할 휴마누스가 갑자기 창문에서 뚝 떨어지더니, 다짜고짜 내게 토스트를 요구했다.
또 용병들이 숨어있는 지역이 공격당했나 보다.
나는 손에 묻은 흙을 대충 탁탁 털어내고, 아공간 주머니에서 포장된 토스트를 꺼내어 휴마누스에게 건넸다.
"고마워, 그럼 갔다 올게!"
휴마누스는 토스트가 눌리는 것도 신경 쓰지 않고, 대충 품속에 쑤셔 넣고는 황금빛 날개를 꺼냈다.
그리고 수직이 아닌 사선 방향으로 점차 고도를 높이며 목적지를 향해 날아갔다.
정찰이 아니니까 어디로 가는지 숨기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어? 잠깐만. 두 개? 그럼 내일 점심시간 전에는 돌아오겠네?"
나는 작은 점이 되어 사라지는 휴마누스의 모습을 눈에 담으며, 뒤늦게 깨달은 사실에 깜짝 놀랐다.
만약 마인의 공격을 받은 지역이 편도 6시간 거리라면 왕복은 열두 시간이다.
그런데 휴마누스가 어디 갔다가 바로 오느냐 하면 절대 그렇지 않다.
다친 사람들을 치료해 주고 신성력이 회복될 때까지 쉬었다가 온다. 그렇기에 식사를 막 끝낸 후가 아니라면 토스트를 세 개씩 챙겨갔다.
즉 휴마누스가 토스트를 두 개만 가져갔다는 건, 상당히 가까운 곳에 마인이 출몰했다는 뜻이다.
'한동안 정찰 범위 바깥만 공격했으니, 이제 패턴을 바꿔보기로 한 걸까? 아니면 지금쯤이면 방심할 거라고 생각해서?'
세르펜스라면 좀 더 그럴듯한 추측을 내놓았을지도 모르나, 내 머리로는 이 정도가 한계다.
고민해 봤자 머리만 아프다.
"흐름도 끊겼고, 슬슬 저녁 먹을 시간이니 오늘 훈련은 여기까지 하는 게 어떻습니까?"
"아주 좋은 생각이에요!"
내 말에 리에나가 반색하며 외쳤다.
우리 두 교육생의 의견이 이러하니, 윈스톤과 푸로르는 별말 없이 훈련을 끝내주었다.
숙소로 들어가 씻고 옷을 갈아입은 후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
오늘은 훈련을 조금 일찍 끝낸 덕에 평소보다 여유가 있어서, 밖에서 사온 음식을 먹는 게 아니라 직접 요리를 해 먹기로 했다.
휴마누스와 세르펜스는 나갔고, 아니마는 현재 마력석을 지켜보는 담당이다.
에드나는 아니마와 함께 먹겠다며 2인분의 식사를 들고 3층으로 올라갔다.
그 결과 테이블에 둘러앉은 사람은 나와 유지스, 윈스톤, 푸로르, 리에나. 다섯 명뿐이었다.
아홉 명이나 되는 일행이 둘러앉아 식사하는 게 익숙해진 탓에, 괜히 허전한 기분이 들었다.
"흑마력의 기운이 느껴져요!"
식사가 거의 마무리 되어갈 무렵, 리에나가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세르펜스와 휴마누스가 없는 지금. 우리 중 흑마력을 가장 예민하게 느끼는 사람은 리에나다.
그런 그녀의 말에 우리는 지체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위층에 계신 두 분을 불러서 밖으로 나갈게요!"
"선배는 어서 갑옷을 다시 입으시오."
유지스가 계단으로 뛰어갔고, 윈스톤은 내 무장을 챙겼다.
참고로 윈스톤은 자거나 씻을 때만 빼면 항상 중무장 상태였기에, 갑옷을 입느라 허둥지둥하는 건 나뿐이었다.
그러고 나서 밖으로 나가니, 커다란 불덩이가 숙소 건물을 향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갑옷을 입은 게 무색하게도 세니어는 오늘도 결계를 쳤고, 리에나도 서둘러 신성 결계를 펼쳐 불덩이를 막아냈다.
불꽃놀이라도 하는 것처럼 '펑!' 하는 굉음이 울렸다.
유지스와 두 마법사가 창문을 통해 나온 건 그때였다.
"만약 건물이 무너지면 마력석이 전부 깨질 것 같아서, 급하게 아공간 주머니에 쓸어 담고 나오느라 명찰이 몇 개 떨어졌는데···. 괜찮겠죠?"
에드나가 스태프를 꺼내 들며 걱정된다는 목소리로 물었다.
우리 쪽에서 용병들의 마력석을 깨는 건, '마인 러스티가 처치되었을 때'라고 미리 공지해 두었다.
마력석이 전부 깨지면 용병들은 마인이 처치된 줄 알고 지정된 장소에서 벗어날 테다.
그러면 계획을 다시 처음부터 진행해야 한다.
그에 비하면 명찰 몇 개 떨어진 것쯤은 아무 문제도 아니다.
"당연히 괜찮죠. 잘하셨어요. 그보다 세르펜스랑 휴마누스가 지닌 것과 짝이 되는 마력석은 부쉈어요?"
"네. 세르펜스 님의 마력석은 아까 제가 담당일 때 부쉈어요. 그러니까 약 한 시간 반 전에, 마인이 나타났다는 신호로 마력석이 깨졌을 때요. 그리고 휴마누스 님 거는 방금 깼고요."
에드나가 숙소를 둘러싼 악숭이들을 향해 시선을 고정한 채 대답했다.
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건지 적들의 숫자가 상당히 많다.
방금 불덩이가 결계에 부딪히며 생긴 굉음에 사람들이 놀라서 거리로 나와봤다가, 악숭이 떼를 발견하고는 비명을 지르며 집안으로 도망가는 모습이 보였다.
법숭이 하나가 비릿한 웃음을 머금고, 보란 듯이 도망치는 사람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 손바닥 앞에 마법진이 눈 깜짝할 새에 그려지며, 흑마력으로 이루어진 화살이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아찔한 순간, 초록빛으로 물든 화살이 검은 화살을 맞춰 그 궤도를 틀었다.
유지스가 쏘아낸 바람의 기운이 담긴 화살이다.
화살로 날아가는 화살을 맞추는 기예를 선보인 유지스가 법숭이를 향해 소리쳤다.
"목적은 우리뿐일 텐데요?!"
"크키키킥, 그렇다고 해서 죽일 수 있는 사람을 안 죽일 이유가 있나?"
정신머리가 제대로 박힌 사람이라면 절대 입에 담지 않을 기상천외한 답변이 돌아왔다.
그에 우리는 아연한 표정을 지었고, 그런 우리의 표정이 마음에 든다는 듯 법숭이는 낄낄대며 웃었다.
머릿속에 비상등이 켜졌다.
우리가 섣불리 움직인다면 사람들을 잡아다가 인질극을 벌일지도 모른다.
'이 도시의 사람들을 전부 지키며, 악숭이들과 싸우는 게 가능할까? 심지어 사람들은 우리를 포위한 악숭이들 바깥에 있는데?'
장소가 좋지 않고, 그에 못지않게 시기도 좋지 않다.
휴마누스가 마인이 나타난 지역으로 떠난 게 한 시간 반 전. 그리고 그때는 세르펜스가 정찰을 나가고 세 시간이 흐른 시점이다.
세르펜스든 휴마누스든. 돌아오려면 한 시간 반은 족히 기다려야 한다.
아니, 버텨야 한다.
* * *
♠
최근 일주일간.
마인은 리베타르시(市)에서 여섯 시간 이상 걸리는 곳만 공격했다.
하지만 이번에 공격받은 지역은 세 시간 반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는 포웨아 지방이다.
'나와 세르펜스의 눈에 띄지 않으려고 일부러 먼 곳에서만 나타난 게 아니라, 그냥 아무 데나 공격한다는 게 우연히 맞아떨어졌던 건가?'
그래도 세 시간 반 거리라면 정찰 범위보다 아슬아슬하게 바깥이긴 하다.
무언가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그렇다고 안 갈 수는 없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날개를 이루고 있는 신성력에 더 집중하여, 조금이라도 더 빠르게 나아가는 것뿐이다.
그렇게 한참을 날아가다 보니 슬슬 허기가 지기 시작했다.
'그리 먼 곳도 아니니까, 목적지에 도착한 후에 먹으려고 했는데···.'
품 안에 넣어뒀던 토스트의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오는데 절로 입안에 침이 고였다.
선우가 만든 이 토스트는 무척이나 맛있었지만, 요즘 너무 많이 먹은 까닭에 살짝 물린 참이었다.
그런데 참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그 맛이 아른거리며 허기가 더 강하게 몰려왔다.
'그냥 가면서 먹을까? 날면서 전투도 하는데, 고작 토스트 하나 먹는 것쯤이야 별로 어렵지도 않잖아? 그리고 만약 마인과 마주친다면, 속이 든든한 편이 더 잘 싸울 수 있지 않을까?'
긴 고민 끝에 그냥 지금 먹기로 했다.
품 속에 넣어둔 토스트를 하나 꺼내어 포장지를 벗겼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한 입 베어 물었다.
폭신한 식빵과 아삭한 양배추의 식감이 동시에 느껴졌다.
달콤하면서도 짭짤하고, 조금 느끼한가 싶으면 피클이 씹히며 느끼함을 날려보냈다.
이번에는 계란과 양배추 말고도 다양한 추가 재료를 넣었다더니.
해시 브라운이라도 넣은 건지 고소한 감자의 맛이 느껴졌다. 그 사이로 옥수수 알갱이가 입안에서 톡톡 터졌다.
부지런히 날면서 흘리지 않도록 조심조심 먹다 보니, 먹는 것도 나는 것도 영 속도가 안 난다.
차라리 잠시 멈춰서 빨리 먹고 다시 출발하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런 충동에 사로잡힌 순간.
정면에서 다수의 마물과 마인의 기운이 느껴졌다. 흑마력 섞인 오러를 지닌 사람들의 기운도 함께 느껴졌다.
그들은 정확히 내 쪽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드디어 만났구나!'
긴장인지 흥분인지 모를 감정이 나를 덮쳤다.
손에 힘이 들어가며 나도 모르게 토스트를 꽉 누른 탓에 주륵, 소스가 새어 나와 손가락을 타고 흘렀다.
'···일단 토스트부터 빨리 먹어 치우는 게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