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님, 회개해주세요!-797화 (797/925)

797회

83. 공작님과 가면 무도회 (9)

"어떻게 그걸, 그···. 후우···. 이미 봐 버린 건 어쩔 수 없나? 그런데 설마하니 그 살롱 사람들은 이렇게 노크도 없이, 누가 들어간 테라스에 따라 들어오는 걸 미덕으로 여기는 건 아니겠지?"

사실은 어떻게 그걸 그렇게 오해할 수 있느냐고 따지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현재 설정에서 어긋나는 행동이므로 내가 할 수 있는 건 정색하는 것뿐이다.

비록 초전자의 오해를 긍정하는 꼴이 되어버렸지만. 달리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하하, 실례가 많았습니다. 그런 건 절대 아니니 걱정하지 마시지요."

히죽히죽 웃으며 말하는 초전자의 모습이 참으로 얄밉기 짝이 없다.

나는 놈을 흘겨보다가 과장되게 한숨을 푹 내쉰 뒤, 초대장이 들어있는 편지 봉투를 흔들며 말했다.

"아무튼 나쁘지 않은 제안이니까, 받아들이도록 하죠. 날짜랑 장소, 시간은 여기에 적혀있는 거죠?"

"네. 그리고 드레스 코드도 적혀 있으니 꼼꼼히 읽어주세요."

"드레스 코드? 별걸 다 챙기네."

"고작 옷차림일지라도, 그런 소소한 부분이 소속감을 느끼게 하고 유대감을 강화하는 요소로 작용하는 겁니다."

개소리 같지만, 초전자의 말도 나름대로 일리가 있었다.

그도 그러할 게 이 살롱은 악숭을 하기 위한 모임이니까. 정보가 새어 나가지 않으려면 소속감과 유대감이 중요할 만도 하다.

"그건 그렇고 아까부터 반말과 존댓말이 왔다갔다하시는데, 혹시 무슨 기준이라도 있는 겁니까?"

"기준은 무슨. 그쪽도 살롱 참가자일 거 아닙니까? 게다가 초대장까지 나눠줄 권한이 있다면 살롱 내에서 입지가 확고한 사람일 테고. 괜히 밉보여서 제게 좋을 건 없으니까, 앞으로는 존중해 드려야겠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과연 성공을 위해 자존심 따윈 가볍게 버릴 수 있는 분답군요! 아주 멋진 자세입니다."

나를 칭찬하는 건지, 비꼬는 건지. 초전자의 의중을 모르겠다.

그래도 확실한 건 듣는 내 기분은 몹시 아니꼽다는 거다.

앞서 존중이 어쩌고 하는 소리만 안 했다면, '그렇게 멋져 보이면 너도 한번 개처럼 짖어보지 그래?' 하고 시비를 걸었을 텐데.

어쩔 수 없으니 그건 포기하고, 빨리 쫓아내 버려야겠다.

그러려면 에드나의 살롱 참가부터 확정 짓는 게 우선이다.

"저는 살롱에 참석할 생각인데, 숙녀분의 의향은 어떠신지요? 아! 참고로 살롱에 가서 돈 많은 친구들을 사귀더라도, 제가 당신께 소홀해질 일은 없을 겁니다. 돈은 많을수록 좋으니까요."

"그런 소리를 잘도 하시네요."

"저는 야망 있는 개자식이지만, 당신의 충성스러운 개가 되기로 했으니까요. 솔직하게 모든 것을 털어놓는 것뿐입니다. 멍멍!"

"아···! 이 개자식을 어떻게 하면 좋지?"

에드나가 이마를 짚으며 탄성을 내뱉었다.

설정을 벗어날 듯 말 듯 간당간당한 발언이다.

초전자의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나는 엄지와 검지를 'L'자 모양으로 펴서 턱밑에 가져다 대며 말했다.

"왜요, 어찌할 바를 모를 정도로 제가 너무 매력적입니까?"

"그래, 이 개새끼야.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 귀여워해 주고 싶지만, 저도 저쪽 분이랑 얘기를 좀 나눠봐야 할 것 같으니까 닥치고 기다려 주실래요?"

개새끼라 말하는 에드나의 발음이 굉장히 차지다.

귀부인을 연기하고 있는 만큼, 이제까지는 나름대로 절제한답시고 '개자식'이란 단어를 쓰고 있었던 건가?

'에드나는 욕을 잘하니까, 본래 설정보다는 이쪽이 더 잘 어울릴지도···?'

일반적인 귀부인의 입에서 '개새끼'란 단어가 튀어나왔다면 의심을 샀을 거다.

하지만 에드나의 설정 덕분에 초전자는 의심을 하기는커녕 '오···.' 하고 감탄했다.

"그래서 제가 살롱에 참석해서 얻을 수 있는 기회라는 건 뭐죠?"

짜증이 가득 묻어난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검은 베일 너머에서 흘러나왔다.

그에 초전자는 기분 나빠하기는커녕, 도리어 보는 사람의 기분이 나빠지게 만드는 얄미운 웃음을 입가에 띠었다.

"혹시 제가 좋은 시간을 방해해서 기분이 상하신 겁니까?"

"개소리는 충분히 들었으니까, 그만 짖고 본론이나 꺼내 보세요."

어쩜 이렇게 대사 처리가 자연스러울 수 있을까?

방금 말을 한 사람이 발연기의 대가인 에드나라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는다.

드디어 에드나가 자신에게 맞는 배역을 찾은 것 같아서 기쁘고, 내가 그에 일조했다는 게 자랑스럽다.

"저희 살롱에는 숙녀분과 마찬가지로 가학적인 취향을 지닌 분들이 많습니다."

개소리는 그만해 달라는 에드나의 청에도 불구하고, 초전자는 개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나쁜 놈이란 의미의 개자식과 멍멍 짖는 개를 둘 다 선호한다고 말했던 에드나였지만, 이렇게 '가학적인 취향'이라 정의가 내려지자 새삼스레 충격을 받은 걸까?

에드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하는 수 없이 내가 또 나서야 하나?'

기다리라는 지시를 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는 게 마음에 걸렸지만.

만약 그 점을 지적당하더라도 아직 길들여지기 전이라서 그렇다고 둘러대면 그만이다.

"잠깐, 그건 제게 별로 좋은 소식이 아닌 것 같은데요?"

"이런 이런! 오해입니다. 숙녀분께 다른 파트너를 소개해 주겠다는 뜻이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시지요."

"그런 게 아니면?"

"비슷한 취향을 가진 분들끼리 다양한 정보 교류를 할 수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보아하니 숙녀분께서는 이제까지 취향을 잘 숨기며 살아오신 듯하니, 접해온 정보 또한 한정적이었겠죠."

혹시 이놈도 그런 취향이었던 걸까?

초전자는 전부 이해한다는 듯 퍽 온화한 말투를 구사하며 에드나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을 받은 에드나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검은 베일로 얼굴을 전부 가려버려서 표정을 볼 수 없었지만, 있는 대로 얼굴을 구기고 있을 게 분명하다.

"그런데 그 취향은 아무래도 과격한 면이 있잖습니까? 이래저래 즐기다 보면 아차 하는 사이에 사고가 나기 다반사죠. 사실 저도 비슷한 취향을 가져서 아주 잘 압니다."

정말로 그런 취향이었나 보다.

하기야 초전자 또한 악숭하는 놈일 테고, 악숭이들은 원래 누군가를 괴롭히는 것을 즐기는 놈들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숙녀분께서는 본인과 파트너분, 모두를 위해서라도 살롱에 참석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살롱에 참석하면 그쪽 취향에 관한 지식을 듣게 되는 건가?

초전자의 말이 이어질수록, 우리가 직접 살롱에 잠입하는 게 정말 맞는 일인지 회의감이 가중되었다.

초대장에 장소와 날짜, 시간이 전부 적혀 있다고 했으니. 그냥 잠입 같은 거 하지 말고, 살롱이 열리는 날에 다 함께 돌격해서 뒤엎어 버리면 안 되는 걸까?

그런 생각이 나를 유혹했다.

'하지만 그랬다간 악마를 놓칠지도 모르니까 별수 없나?'

살롱을 엎어버렸을 때 악마가 그곳에 없다면, 우리가 냄새를 맡고 이곳에 왔다는 것을 깨달은 악마가 도망쳐버릴 테고.

만약 악마가 직접 참석했다 하더라도, 우리가 살롱에 들이닥치는 순간 뒤도 보지 않고 도망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정체가 밝혀지지 않는 선에서 악마에게 최대한 접근해야 한다.

그리고 세르펜스가 악마와 싸우며 놈을 붙잡아 두는 사이에, 휴마누스가 빠르게 합류해서 같이 싸우는 것이 우리의 최종 계획이다.

에드나도 그 계획을 되새김질하며 마음을 다잡은 걸까?

"제 몫의 초대장, 이리 주세요."

검은 장갑을 낀 에드나의 손이 내 쪽을 향해 내밀어졌다.

나는 들고 있던 두 장의 초대장 중 하나를 에드나에게 건넸다.

이런 우리 둘의 행동을 보며 초전자가 또 기분 나쁜 웃음을 지었다.

"현명한 선택을 하신 겁니다."

"용건이 끝났으면 이만 나가주세요."

"물론 그렇게 해야지요. 그럼 너무 위험한 짓은 하지 않는 선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시길···. 크크크···."

초전자는 그 말을 남기고 테라스를 떠났다.

목표하던 살롱 초대장을 얻었는데 만족스럽기는커녕 기분이 뒤숭숭하다.

나는 정신적 피로를 느끼며, 흐트러진 커튼을 다시 정돈한 뒤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초대장을 자세히 읽어볼 기운조차 나지 않아서 그냥 밤하늘이나 보면서 쉬려던 그때.

위에서 웬 그림자 하나가 뚝 하고 떨어져, 고양이처럼 가벼운 몸놀림으로 소리 없이 사뿐히 착지했다.

나와 에드나는 놀라서 반사적으로 소리를 지르려 했지만, 그 누군가가 우리의 입을 막아버렸기에 미수로 그쳤다.

그 누군가는 면장갑을 끼고 있어서 촉감까지는 모르겠지만, 입을 덮은 손 크기가 몹시 익숙하다.

나는 침착하게 눈동자를 굴려 그자의 모습을 살폈다.

하이 포니테일 스타일로 묶은 베이지색 머리칼, 웨이터로 변장한 세르펜스였다.

'이 녀석은 왜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져서 사람을 놀라게 하고 난리야?'

나는 내 입을 막은 녀석의 손등을 툭툭 쳤다.

그러자 세르펜스가 내 입을 막은 손뿐만이 아니라 에드나의 입을 막은 손까지 거둬들였다.

에드나도 녀석의 정체를 알아챘는지, 손이 치워졌어도 비명을 지르지 않고 조용히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고 보니, 아까 구두를 벗겨 낼 때 본 에드나 씨의 발뒤꿈치가 다 까져 있었지?'

마침 잘 됐다.

나는 세르펜스의 소매를 잡아당기며, 치료해 달라는 뜻으로 에드나의 발 쪽을 가리켰다.

당연히 그러겠노라 고개를 끄덕일 줄 알았던 녀석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왜 치료를 안 해 주겠다는 거지?'

나는 가면을 벗고 불만을 가득 담아 눈살을 찌푸리며 세르펜스를 노려보았다.

그러자 녀석 또한 가면을 슬쩍 벗어서 억울하다는 듯 불쌍해 보이는 표정을 드러냈다.

치료해 주기 싫어서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건가 보다.

'신성력을 쓰면 들킬까 봐 그런 건가?'

하긴 마법사 에드나를 옆에 두고도 방음 마법을 못 쓰고 있는 것도 그래서니까.

아쉽긴 하지만 어쩔 수 없음을 이해하고, 나는 엄지와 검지를 붙여 오케이 사인을 보내며 가면을 썼다.

억울함이 풀린 세르펜스도 빙긋 웃어 보인 뒤 다시 가면을 썼다.

'그런데 얘는 왜 온 거지? 초전자의 뒤를 쫓는 거 아니었나?'

나는 초전자가 나간 문 쪽을 가리킨 뒤, 양 손바닥이 하늘을 향하도록 손을 살짝 들어 올린 채 어깨를 가볍게 으쓱였다.

이번 질문은 바디 랭귀지로 대답하기 곤란했던 걸까?

세르펜스가 우왕좌왕하다가 아공간 주머니에서 펜과 종이를 꺼냈다.

[ 얼굴과 신분을 알았으니 더는 뒤를 밟지 않아도 된다. 조금 전 다른 테라스에서 흑마법사에게 보고를 올리며 가면을 벗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둘이 나누는 대화 내용을 들어보니 귀족인 듯하더군.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일행들이 모여있을 때 하겠다. ]

이 내용으로 미루어 보아 알 수 있는 건 크게 두 가지다.

초전자는 끄나풀 중의 끄나풀인 민숭이라는 것. 그리고 이 건물 어딘가에 법숭이가 있다는 것.

테라스에 들어온 후에도 말을 조심하길 잘했다.

'그런데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할 거고 에드나 씨의 발도 치료해주지 못하는 거면, 이 녀석은 여기에 진짜 왜 온 거야?'

나는 세르펜스에게 펜을 받아서 떠오른 의문을 종이에 적은 후, 펜을 다시 돌려주었다.

펜을 받아 든 세르펜스가 대답을 적었다.

[ 나도 <선우>와 놀고 싶다. ]

그 황당하고 어처구니없는 글을 읽고, 나는 소리 내어 웃지 않기 위해 무던히 노력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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