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님, 회개해주세요!-835화 (835/925)

835회

86. 공작님의 납치 (3)

"마왕에게 이름이 생긴 건 아주 우연한 일이다."

타락펜스가 가볍게 운만 떼 놓고 포크로 돌돌 만 파스타 면을 입에 넣었다.

설명을 하다 말고 딴짓을 하는 격이었으나 불만은 없다.

파스타가 식으며 면이 퉁퉁 불고 크림 소스가 뻑뻑해지는 것을 감수할 만큼, 마왕의 이름에 관한 사연을 급히 듣고 싶은 건 아니니까.

"빵 잘라 줘. 아니면 수갑을 풀어주든가."

나는 내 몫의 음식이 든 접시를 녀석 쪽으로 슥 밀면서 말했다.

수갑을 풀어주는 건 싫었는지, 타락펜스가 입안에 든 음식을 꿀꺽 삼키며 나이프를 들었다.

그러고는 그릇된 빵을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르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내가 본 기억에 의하면 그 시기의 사람들은 성검의 주인이던 나를 탐탁지 않게 여겼다. 내가 대륙을 구원할 수 있는 용사로 걸맞는 인물인지 의심하며 또 불안해했지."

"참 나! 알고는 있었지만, 다시 들어도 진짜 염치없네! 그럼 지들이 나서서 좀 싸우든가. 세르펜스한테 평화를 맡겨 놓기라도 했나?"

"선우, 당신이 처음부터 이 세상에서 태어났다면 좋았을 텐데···."

내가 투덜거리며 불만을 터트리자, 타락펜스가 빵을 다 잘라 놓은 파스타 접시를 도로 내게 밀어주며 말했다.

그 목소리에서 옅은 아쉬움이 느껴졌다.

"나는 이쪽 세상의 사고방식에 물들지 않았을 뿐, 특별한 사람이 아니야. 그런 소린 그만 하고 하던 얘기나 계속해 봐. 사람들이 1회차의 성검펜스를 욕한 거랑 마왕에게 이름이 생긴 게 대체 무슨 상관인데?"

"신 룩스메아가 선택한 성검의 주인은 신용할 수 없으니, 사람들은 다른 곳에서 구원을 찾으려 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불안과 간절함을 이용해 잇속을 채우려는 자들도 생겨났지."

나는 타락펜스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신중하게 파스타 면을 두 가닥 골라내어 포크에 말았다.

그러고 나서 포크 끝으로 작게 잘라진 빵 한 조각을 콕 찍어 면과 함께 한입에 넣었다.

타락펜스가 그런 내 행동을 유심히 살피더니, 설명을 멈추고 나와 같은 방법으로 파스타를 먹었다.

그리고 내가 피클을 먹는 것까지 따라 하고 난 뒤에야 설명을 이었다.

"그 결과 여러 이단 종교들이 난립했다. 개중에는 빛은 더 이상 세상을 밝혀줄 수 없으니, 어둠 속에서 구원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종교도 있었다."

"설마 그 종교가···."

"테네브리오 교단이다."

즉 '테네브리오 교단'은 원래 마왕을 숭배하는 종교가 아니라, 사기꾼들이 만든 사이비 종교였다는 뜻이다.

그런데 대체 어쩌다가 테네브리오라는 이름이 마왕에게 붙게 된 걸까?

나는 점차 꾸덕해지는 바질 페스토 크림 파스타의 고소하고 향긋한 맛을 혀로 느끼며, 타락펜스의 말에 집중했다.

"빛을 부정하는 종교가 퍼지는 건 악마 숭배 세력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호재다. 그렇기에 물밑에서 그 이단을 지원하다가 기회를 틈타 집어삼켰고, 사람들은 그 이단 종교가 만들어낸 가상의 신을 마왕과 동일시하게 되었다는 것 같다. 마침 그 이름의 뜻도 마왕에게 부합하고."

이미 불리는 명칭이 있어서 이름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다가, 불현듯 '나도 슬슬 이름을 가져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충동적으로 직접 지었다는 게 낫지.

사이비 종교의 가짜 신 이름을 받아서 신이 되었다니 놀려먹기 딱 좋다.

완전 흑역사 수준 아닌가?

그래서 너무 부끄러운 나머지 사실대로 얘기하지 못하고, 자기가 지은 이름이라고 떠들고 다니나 보다.

"아무튼 그 사이비 종교 때문에 마왕이 신의 경지에 다다랐다는 거네?"

내 말에 타락펜스가 오물오물 파스타를 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마왕이 이름만 얻지 않았더라면, 2회차 정보를 바탕으로 훨씬 수월하게 악숭 세력을 상대할 수 있었을 텐데.

돕지는 못할망정 적에게 힘을 실어 주다니, 진짜 뭐라 할 말이 없다.

성검펜스가 홀로 괴롭고 힘든 전투를 이어나가며, 얼마나 고통스럽게 대륙을 지키려 아등바등했는지 알고 있어서 짜증까지 솟구쳤다.

"너는 대체 뭐하러 성검에 찔려가면서까지 그 시기의 기억을 보려고 한 거야?!"

"으음···, 글쎄?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군. 굳이 이유를 붙이자면, 지식과 정보는 많은 편이 여러 상황에서 대처하기 유리해서?"

답답한 마음에 질문을 던지자, 타락펜스가 묻은 것도 없으면서 손수건으로 입가를 톡톡 두드리며 대답했다.

그냥 습관적으로 정보를 확보하고자 위험에 몸을 던졌다는 뜻이다.

녀석에게 그런 습관이 생긴 건 혼자서 많은 것을 짊어져야 했기 때문이다.

'대륙을 망가뜨리는 것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서라고 대답했으면, 오히려 덜 안쓰러웠을 텐데···.'

한숨이 나오려는 걸 꾹 참으며 다 먹은 접시에 포크를 걸쳐 놓았다.

타락펜스에게 정을 주면 안 된다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는데, 이 녀석도 세르펜스인지라 자꾸만 마음이 쓰여서 큰일이다.

나는 최대한 생각을 다른 방향으로 돌리려 노력했다.

"아무튼 신이 되는 데 이름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겠어. 그런데 이런 얘기를 세례명으로 불러 달라고 부탁한 이후에 한다는 건···. 너는 신이 될 생각인 거야?"

"그러하다. 만약 내가 신이 된다면···."

타락펜스가 대답하다 말고 자리에서 일어나 내 옆에 앉았다.

그러더니 손수건으로 내 입가를 닦으려 들었다. 내게 점수를 따려고 아주 그냥 별짓을 다 한다.

나는 고개를 돌려 그 손길을 피하며, 바지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어 입가에 묻은 크림을 문질러 닦았다.

"나도 손수건 있거든?!"

"보통 잠옷 주머니에도 손수건을 넣어 두나?"

"시도 때도 없이 잘 우는 애가 있어서 말이야."

"그렇군."

분명 목소리에서는 아무런 감흥도 느껴지지 않건만.

돌연 녀석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뭐, 뭐야?! 갑자기 왜 울어?"

"선우, 그대가 닦아주길 바라서."

"···감정이 복받쳐서 우는 것 같지는 않은데, 혹시 신성력으로 눈물샘을 건드려서 우는 것도 가능해?"

"그렇다면?"

"니가 닦아."

"······."

난데없이 눈물을 흘렸던 것처럼, 단박에 눈물을 그친 타락펜스가 손수건을 뒤집어서 눈가를 훔쳤다.

정말이지 잠시도 방심할 수 없는 녀석이다.

나는 타락펜스와 물리적 거리를 두고자 슬금슬금 왼쪽으로 이동하여 입을 뗐다.

"아무튼 신이 된다면, 뭐? 혼자서도 마왕을 상대할 수 있을 거라고?"

"그리고 성검이 반환된 이후에도 지금의 자아를 계속 유지할 수 있겠지. 마왕이 그러한 것처럼."

타락펜스가 침대 헤드 보드 쪽에 바짝 붙은 나를 가만히 응시하며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마왕과 싸우겠다는 얘기를 듣자마자, 성검이 반환된 이후를 생각했던 터라 가슴이 뜨끔했다.

반사적으로 몸이 움츠러들고 시선이 허공을 향했다.

"어, 그런데 세례명을 불리는 것만으로도 신이 될 수 있는 건 아니지?"

"우선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능력을 갖춰야 한다. 또한 수많은 이들의 기대와 숭배를 받아야 하지. 그리고···, 그 이름에 걸맞는 존재가 되거나 자신에게 걸맞는 이름으로 불려야 한다."

그러고 보니 타락펜스는 조금 전, 마침 테네브리오라는 이름의 뜻이 마왕과 부합한다는 말을 했었다.

단순히 이름이 생겨서 신이 될 수 있었던 게 아니라, 우연히 그 뜻까지 맞아떨어져서 신이 될 수 있었나 보다.

"그런데 네 세례명은 '아도르'니까···."

"수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으며, 나 또한 그자들과 이 세상을 사랑해야겠지."

"저기, 진짜 궁금해서 묻는 건데···. 너는 그게 가능할 거라고 생각해?"

이 세상과 이곳에서 살아가는 이들을 사랑하기엔, 타락펜스는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렸다.

자신이 성검의 주인이 되었을 때의 삶과 그렇지 못한 삶.

어느 쪽이든 지나치게 가혹했다. 두 번의 삶 속에 녀석이 행복을 느낀 적은 일순간조차 없다.

그뿐만이 아니다.

타락펜스는 셀 수 없이 많은 이들을 죽음으로 몰아가고, 대륙을 멸망 직전으로 몰아넣었던 전적이 있다.

이 녀석이 개과천선하더라도 이 세상 사람들을 사랑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 전에 죄책감에 매몰될 테니까.

그러므로 확신하건대 타락펜스는 결코 '아도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사람이 될 수 없다.

"가능하다. 선우, 그대가 나를 도와준다면."

"그런 걸 내가 어떻게 도와?"

"현재의 나를 변화시켰던 것처럼, 나도 이끌어주면 되잖은가? 내가 그 이름에 걸맞는 존재가 될 수 있도록, '아도르'라는 이름에 담긴 그 감정을 가르쳐 주십시오."

타락펜스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나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정말 터무니없는 요구다.

차라리 현재펜스가 열심히 수련해서 실력을 쌓고 신이 되는 게 더 빠르지 않을까 싶다.

아도르라는 이름은 타락펜스보다 그 녀석에게 훨씬 더 잘 어울리니까.

"굳이 그 이름을 고집하는 걸 보면, 세례명 말고 다른 이름은 신명으로 삼을 수 없나 봐?"

"세례명은 단순한 이름이 아닌 존재에 새겨진 정의다. 그런 점에서 세례명을 받은 자들은 신이 될 기본 준비가 갖춰진 셈이라 할 수 있다."

아무래도 세례명은 일종의 예비 신명 같은 거였나 보다.

이제껏 그런 걸 막 뿌려댄 룩스메아도 참 대단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룩스메아가 유일신이라니, 신이 된다는 게 어렵긴 어려운가 보다.

아니면 룩스메아의 작명 실력에 문제가 있거나.

'일부러 신이 되지 못하게 막으려고, 엉뚱한 이름을 붙여준 것 같지는 않은데···.'

태어나자마자 세례명을 내리는 것도 아니고, 열 살까지 기다렸다가 지어주는 정성만 봐도 그러하다.

내가 알고 있는 세례명의 수가 꽤 되는데, 전부 이름의 주인과 잘 어울렸다.

물론 세르펜스도 포함해서 말이다.

안타깝게도 타락펜스는 후천적인 영향으로 그 이름과 멀어져 버렸지만.

"세례명 문제만 해결되고 나면 나머지는 쉽다. 몇 번 사람들을 구하고, 신 룩스메아의 힘을 빌려 이적을 행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찬송을 받겠지."

내가 자신을 변화시켜 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는 듯, 타락펜스가 이후의 계획을 입에 올렸다.

변화는 남이 시켜줘서 되는 게 아니라는 걸 모르나 보다.

그 사실을 말해 줘도 아직은 믿으려 하지 않겠지. 현재펜스를 돌려받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할 게 뻔하다.

스스로 천천히 깨닫게 할 수밖에 없다.

"말 나온 김에 묻겠는데, 그 힘은 대체 어떻게 쓸 수 있는 거야?"

"성검과 연결된 신 룩스메아의 힘을 끌어오면 된다."

"설명이 너무 간단하잖아? 더 구체적인 방법을 설명해 줬으면 좋겠는데···."

"본래 성검의 쓰임새가 아니니 구체적인 방법 따윈 없다. 말 그대로 그냥 끌어다 쓰는 거다."

"······."

마왕의 힘을 가로챘던 경험을 십분 살려서, 룩스메아의 힘을 야금야금 빼다 쓴 거였나 보다.

그런 주제에 신 룩스메아의 힘을 빌려 기적을 행하겠다 말하다니.

돈을 빌려 달라며 삥 뜯는 양아치가 따로 없다. 애초에 빼다 쓴 힘을 도로 채워 놓는 게 가능하기는 한가?

심지어 문제는 그게 끝이 아니다.

"성검이 지닌 능력을 이끌어 낸 거라며! 성검을 제대로 다루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성검을 내어줄 수 없다면서! 전부 거짓말이었던 거야?!"

"본래의 쓰임이 아니라 해도 어쨌거나 성검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건 사실이다. 그리고 그자가 성검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것 또한 사실이지. 그렇지 아니한가?"

틀린 말은 아닌데 사기당했다는 기분을 지울 수가 없다.

이 녀석이 성검을 통해 룩스메아의 힘에 접근하고 그것을 빼다 쓸 수 있는 건, 녀석이 거의 신에 근접한 존재가 되었기 때문일 터.

휴마누스는 못 하겠지. 괜히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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