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님, 회개해주세요!-857화 (857/925)

857회

86. 공작님의 납치 (25)

두 사람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일행들에게 알리고 다 함께 수색을 시작했다.

나와 리에나는 하늘을 날아다니며 산 전체를 돌아봤고, 유지스는 정령을 소환하여 하늘에서는 볼 수 없는 커다란 나무 밑이나 동굴 등을 살폈다.

아니마와 에드나는 감지 마법을 펼쳤고, 푸로르는 후각을 최대한 예민하게 끌어 올린 채 별장 주변을 돌아다녔다.

그러나 그 어떠한 흔적도 발견하지 못했다.

"거 이상하네? 떠난 게 몇 시간 전이라 해도 내가 냄새를 아예 못 맡을 수는 없는데···. 그냥 하늘로 날아간 거 아니야?"

푸로르가 막막하다는 표정으로 뒤통수를 긁적이며 말했다.

세르펜스를 찾지 못하더라도, 푸로르의 후각에 의존하면 적어도 떠나간 방향 정도는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기대가 완전히 무너져내렸다.

'정말 푸로르의 말대로 날아서 이곳을 벗어난 건가?'

잘 생각해 보니 그 세르펜스는 1회차에 벌어진 일을 꽤 자세히 알고 있는 듯 보였다.

그렇다면 신성력을 이용한 비행법도 알고 있을 만하다.

하지만 내가 알기로 2회차의 세르펜스는 하늘을 날지 못했다.

꿈을 통해 보아온 그 시기의 기억 속에서도 그러했고, 선우 또한 신성력으로 날개를 만들 수 있다는 걸 몰랐다고 했다.

'그래도 가능성은 열어두는 게 좋겠지···?'

세르펜스나 선우라면 분명 그렇게 했을 거다.

2회차의 세르펜스가 자력으로 날 수 있었다면 어째서 그리 하지 않았는지, 의문스러웠으나 일단은 덮어두기로 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오후가 되자 테일러 이단 심문관이 조사단과 함께 별장에 도착했다.

테일러 이단 심문관이 사라진 두 사람의 행방을 물었을 때,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얼어붙었다.

그런 나를 대신하여 유지스가 나섰다.

"시온이 계시를 받아서 세르펜스와 함께 비밀 임무를 수행하러 먼저 떠났어요. 워낙 급한 일인지라, 테일러 님께 인사도 못 하고 떠나서 죄송하다고 전해달라고 했어요."

유지스의 임기응변에 테일러 이단 심문관은 아무런 의심도 하지 못했다.

교단의 성직자들에게 별장 조사를 맡기고 산에서 내려오며, 나는 땅과 나뭇가지를 자세히 살폈다.

행여 발자국이 남아있지 않을까 싶어서.

운 좋게도 우리가 걷는 이 길을 따라 세르펜스가 도주했을 가능성은 몹시 희박했으며, 설령 그렇다 할지라도 철두철미한 그가 허술하게 흔적을 남겼을 리가 없다.

심지어 2회차의 세르펜스가 하늘을 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까지 제시되었다.

길을 걸으며 주변을 살펴본들 아무 소용없다는 것쯤은 나도 안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무력감에 잠식될 것만 같았다.

"휴마누스 님, 너무 심려치 마세요. 그분도 세르펜스 님이잖아요? 선우 님께서 잘 설득하실 수 있을 거예요."

리에나가 나를 걱정하며 위로의 말을 건넸으나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2회차의 세르펜스가 어떤 사람인지 몰라서 할 수 있는 말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찬란히 빛날 수 있는 그가 그렇게 변한 게, 나 때문이라는 사실에 서글퍼졌다.

"휴마누스. 2회차의 세르펜스는···, 나쁜 사람이었던 거죠?"

"으, 응?!"

묵묵히 바닥을 유심히 살피며 걷고 있는데, 돌발적으로 던져진 유지스의 질문에 나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어 올렸다.

아니라는 말을 할 새도 없이, 유지스는 말하지 않아도 다 안다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역시나 그렇군요.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요."

"유지스는 그렇게 생각했으면서 그 세르펜스 나리를 보고 귀를 파닥거렸던 거야?"

"그, 그건 어쩔 수 없잖아요! 취향인 걸요!"

"방에 있던 각종 도구가 전부 사라졌다던데···."

"그쪽은 취향이 아니에요."

푸로르의 말에 유지스가 정색했다.

지금은 그런 한가로운 대화를 나눌 때가 아니었으나 이들을 나무라고 싶지는 않았다.

울컥하고 올라온 감정이 향한 곳은 따로 있었으니까.

이들에게 화를 내는 건 단순한 화풀이에 지나지 않는다.

무엇보다 푸로르와 유지스는 소중한 동료가 사라졌는데 안일하게 생각하며, 농담이나 주고받을 만한 성정이 못 된다.

푸로르는 한 번 동료로 인정하게 되면 그 사람을 끔찍이도 아꼈다.

유지스는 본바탕이 다정하고 생각이 깊었다.

그런 둘이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이런 대화를 주고받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을 거다.

가령 무거워진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함이라든가, 지나치게 심각해진 내 기분을 풀어주기 위함이라든가···.

일행들이 불안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게 내 역할이건만, 되려 그들을 불안하게 하고 위로까지 받았다.

모두에게 고맙고 미안하다.

"그런데 유지스는 어떻게 알았어? 2회차의 세르펜스가 나쁜 사람이었다는 거···."

"선우도 그렇고 휴마누스도 그렇고, 이제까지 2회차 세르펜스의 행적에 관해 말을 아꼈잖아요."

"겨우 그것만으로 알아챈 거야?"

"전에 세르펜스가 자신이 선우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성검의 선택을 받지 못하였을 때, 존재의 의의를 잃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거라고 얘기한 적이 있어요. 하지만 세르펜스는 성검과 접촉한 후, 휴마누스와 마찬가지로 2회차의 기억을 봤다고 했잖아요? 그러니 선택의 날 이후로 삶을 이어나갔다는 건 기정사실이죠."

고작 성검의 선택을 받지 못하였는데도 계속 살아있었다는 것만으로, 세르펜스가 잘못된 길로 들어섰다고 판단을 내렸다는 건가?

입을 열면 유지스에게 화를 내버릴 것 같다.

나는 주먹을 움켜쥐며 목구멍까지 올라온 분노를 억눌렀고, 그것은 옳은 판단이었다.

"그나마 친구라 할 수 있는 휴마누스는 성검의 주인이 되어 떠났으니, 세르펜스는 존재의 의의를 잃은 채 제국에 홀로 남겨진 거잖아요. 모든 것이 두렵고 혼란스러웠을 거예요. 그렇게 방황하는 세르펜스를 악숭 세력이 가만히 둘 리가 없어요. 성검이 없어도 세르펜스는 강하고 그들에게 위협이 되는 인물이니까요."

어느덧 '악숭'이라는 줄임말이 완전히 입에 붙었는지, 유지스가 그 단어를 자연스럽게 입에 올리며 말했다.

거의 정답에 근접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냥 척 보면 알지 않아요? 엄청나게 위험한 분위기를 대놓고 풍기고 있는데 어떻게 모르겠어요?"

"위험한 건 유지스의 취향 같은데?"

"······."

푸로르가 농담을 던졌고, 유지스는 샐쭉한 표정을 지었다.

나쁜 길로 빠졌던 2회차의 세르펜스를 비난하는 분위기가 아니다. 다른 일행들도 크게 문제 삼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사실대로 털어놔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기왕이면 그 시기의 세르펜스가 타락했던 게, 온전히 그의 잘못만이 아니라는 걸 모두가 알아주었으면 했다.

"유지스의 말대로야. 2회차의 세르펜스는 악숭 세력에 몸담았어. 하지만 그건 세르펜스의 탓이 아니야. 사람들은 세르펜스가 성검의 선택을 받지 못하자 그 이유를 찾으려 했어. 여러모로 부족한 나에 비해 세르펜스는 너무 완벽했으니까. 분명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결격 사유가 있을 거라면서, 없는 얘기를 만들어 붙여가며 그의 명예를 훼손시켰어. 그리고 2회차의 나는 그에게 쏟아지는 비난을 듣고도···, 외면했지."

그저 세르펜스를 변호해 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말을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고해성사라도 하듯 내 과오를 털어놓고 있었다.

"내가 하려던 말은, 그러니까···. 세르펜스는 나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에 의해 내몰려서 그런 선택을 강요당했을 뿐이라고. 그렇게 얘기하고 싶었어."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우리 중 그 누구도 세르펜스 님의 인품을 의심하지 않으니까요."

"그래! 게다가 막말로 리에나랑 유지스랑 휴마누스를 제외하면, 다들 1회차 때는 악숭 세력에 몸담았던 거잖아?"

"우리 언니도 아니거든? 나만 그런 거거든?!"

리에나의 위로 뒤에 푸로르의 농담 같은 말이 뒤따랐고, 아니마가 투정을 부리듯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무거웠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기분이다.

"2회차의 세르펜스는 우리가 아는 세르펜스와 달리 냉혹한 사람이야. 고문에도 상당히 능통하고."

"세르펜스 나리의 큰아버지가 이단 심문관일 때, 그쪽 방면으로 이름깨나 날렸다고 들었는데. 프라시더스 가문 사람들은 대대로 그런 쪽에 재능이 있는 건가?"

"그런 것까진 모르겠고, 중요한 건 세르펜스가 선우를 납치하면서 그런 용도로 쓸만한 도구들을 챙겨갔다는 거야."

"최대한 빨리 찾아야겠네."

푸로르가 난처하다는 듯 코를 찡긋거리며 말했다.

아무런 단서도 없는데 어떻게 찾아야 하느냐는 불평이 나올 법도 한데,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나는 결의에 찬 일행들의 얼굴을 쭉 훑어본 뒤 입을 열었다.

"우리는 교단의 도움 없이 조용히 두 사람을 찾아야만 해. 우리가 두 사람을 찾고 있다는 걸 알면 다들 이상하게 생각할 테니까. 그러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악숭이들을 찾는 척, 수상하거나 이상한 사람들에 관한 정보를 모으면 되지 않을까요?"

"맞아, 선우 걔 되게 이상한 짓 많이 하잖아! 역시 우리 언니는 대단해!"

에드나가 무척이나 유용한 의견을 냈다.

어차피 교단에서도 수상한 이들에 관한 정보를 모으고 있으니, 주기적으로 신전에 방문하여 관련 정보를 받아보면 될 것 같다.

작은 희망이 떠오르는 그때, 유지스가 어두운 표정으로 슬그머니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하지만 선우가 식량을 잔뜩 가지고 다니잖아요. 이런 부정적인 얘기는 꺼내고 싶지 않지만···. 한동안은 식량을 보급할 일이 없을 테니, 목격 정보만 기다리며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요. 두 사람이 앞으로 어떤 목적을 가지고 움직일지 파악하고, 그들의 행선지를 예측해야만 해요."

"식량이 확보되어 있다면, 아무도 모르는 장소에 틀어박혀서 나오지 않을 가능성도 있겠네요···?"

"그런 일은 없어야만 하지만···.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죠."

"아아···."

리에나가 탄식을 흘리며 두 손을 맞잡고 조용히 기도를 올렸다.

그 기도가 신께 닿아 그분께서 세르펜스와 선우의 위치를 알려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 이 시간에도 선우가 세르펜스에게 몹쓸 짓을 당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자꾸만 마음이 초조해지려고 한다.

"유지스는 세르펜스가 앞으로 어떻게 행동할지 알고 있어?"

"저는 모르죠."

"그렇···구나···."

내심 유지스라면 무언가 짚이는 게 있지 않을까 했다.

먼저 얘기를 꺼내기도 했고, 유지스는 선우 다음으로 세르펜스를 잘 파악하고 있으니까.

그런데 모른다는 대답을 들으니 눈앞이 캄캄해지고 몸에 힘이 쭉 빠졌다.

"하지만 휴마누스는 알고 있지 않을까요?"

"어···? 내가?"

대체 유지스가 무슨 얘길 하는 건지 모르겠다.

혹시 내가 2회차의 세르펜스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해서 이런 말을 하는 건가?

하지만 나는 그 시기의 세르펜스에 관해 아는 게 없다. 그리고 그 당시의 나는 현재의 나보다 더 아는 게 없었다.

"세르펜스와 선우가 사라지기 전에, 가장 마지막까지 함께 있었던 게 휴마누스잖아요."

"그렇기는 한데···."

"그때 방에서 무슨 대화를 나눴나요? 그 세르펜스는 무엇을 바라고, 현재의 세르펜스를 흉내 내면서까지 육체를 차지하려 한 거죠? 단순히 그것만이 목적이라면 혼자 사라지는 편이 효율적일 텐데, 선우를 납치한 건 어째서라고 생각하나요?"

정신이 얼떨떨해질 정도로 유지스가 연달아 질문을 쏟아냈다.

[연재] 공작님, 회개해주세요!

출판등록: 2019년 1월 28일

지은이 : 별볆볆별명

발행처 : 글고운

주소 :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권광로139번길 11, 1103호

E-mail : [email protected]

ISBN :979-11-89786-03-8

© 별볆볆별명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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