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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 회개해주세요!-910화 (910/925)

< 89. 공작님과 식사 시간 (18) >

내가 개 사료···로 보이는 에드나표 특제 간식을 보며 복잡한 심경을 애써 감추던 그때.

"언니이···."

어디선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난 방향을 쳐다보니 아니마가 에드나의 옷자락을 슬쩍슬쩍 잡아당기고 있었다.

맥아리가 없는 목소리와 달리, 에드나를 올려다보는 아니마의 눈동자 속에서 단단한 의지가 엿보였다.

아까부터 얼굴 가득 근심 걱정이 서려 있더니.

기나긴 고민을 끝내고 무언가 중대한 결정이라도 내린 모양이다.

"왜 그러니, 아니마?"

"저기, 잇짜나···. 오늘부터는 마법 연구 따로 해도 될까···?"

아니마에게 있어 마법이란 다른 이들에게 배척당하게 된 원흉이자, 에드나와 자신을 연결해주는 끈이었다.

[성검의 주인] 속 아니마는 에드나와 함께 하는 마법 연구를 즐거운 놀이라 말하였고, 혼자 연구를 하며 실력을 키우는 건 하기 싫은 일이 되어 버렸다고 설명했다.

굳이 혼자서 따로 연구하지 않아도, 아니마의 실력은 언제나 다른 마법사들보다 우위에 있었으니까. 노력할 필요성 또한 느끼지 못했다고 했다.

지금은 에드나가 일행에 합류하여 함께 마법 연구에 매진하니, 조금씩 실력이 쌓이고 있긴 할 테다.

합동 마법이라는 유의미한 성과도 냈고.

'하지만 [성검의 주인]에서 에드나가 사망한 이후. 복수를 위해 혼자서 미친 듯이 마법 연구에 파고들던 때와 비교하면···. 아무래도 효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겠지?'

재능의 격차가 커도 너무 크다.

에드나도 나름 뛰어난 재능을 갖춘 마법사이기는 하나, 이를 악물고 노력해야 겨우겨우 아니마의 그림자를 따라잡을까 말까 한 수준이다.

그래서 아니마는 일부러 속도를 늦춰서라도 에드나와 보폭을 맞춰 걷고자 했다.

참 묘한 관계가 아닐 수 없다.

에드나가 없었다면 아니마의 실력은 영원히 정체되었을 테다.

그런 의미에서 아니마의 실력을 키워준 존재는 누가 뭐래도 에드나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에드나는 아니마가 재능을 온전히 발휘하지 못하도록, 발목을 붙잡는 족쇄가 되었다.

'에드나도 그 사실을 알고, 늘 걱정했었지···.'

그래서일까?

앞으로는 마법 연구를 따로 하자는 얘기를 듣고도, 에드나는 섭섭하다며 아쉬움을 토로하는 대신 환하게 웃었다.

그녀는 아니마를 꼭 끌어안으며 더없이 기쁘다는 듯 말했다.

"그 말만을 기다렸어. 아니마, 네가 마음만 먹는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훌륭하고 위대한 마법사가 될 수 있을 거야."

"으앙, 언니이-!!"

아니마가 에드나의 품 안을 파고들며 울음을 터트렸다. 그러고는 두서없이 웅얼웅얼 떠들어댔다.

가뜩이나 혀 짧은 발음을 구사하는데 울음기까지 섞이니, 소리가 뭉개져 제대로 알아듣기 힘들었다.

그래도 대충 들리는 단어들을 조합하여 해석해 보자면, 강해져서 에드나를 지켜주겠다고 말하는 듯했다.

그리고 강해진 김에 다른 일행들까지 지켜주겠다는 말도 한 것 같다.

내가 봐도 기특하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데 에드나는 오죽할까.

에드나가 다정한 시선으로 아니마를 바라보며 가만가만 등을 도닥여 주었다.

"선우, 나도 노력하겠다. 그러니 지켜봐 다오."

서로 부둥켜안고 있는 두 마법사를 흐뭇하게 지켜보던 그때, 세르펜스가 내 관심을 끌었다.

자신의 보호자에게 애정과 기대를 듬뿍 받고 있는 아니마가 부러웠나 보다.

나는 피식 웃으며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래, 그래. 늘 지켜보며 응원할게."

"정말 열심히 노력해서···, 꼭 신의 경지에 올라 선우를 지켜주겠다."

훈훈한 분위기가 연출되려나 싶었는데 느닷없이 세르펜스가 급발진을 했다.

신이 되겠다는 녀석의 발언이 타락펜스를 연상케 한 까닭일까?

모두의 시선이 세르펜스에게로 쏠렸다. 심지어 울고 있던 아니마조차 놀라서 울음을 멈추고 이쪽을 쳐다보았다.

모두가 침묵한 가운데, 휴마누스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세르펜스···. 혹시 너도 선우를 너만의 천사로 만들어서 영원히 옆에 붙여 둘 생각이야···?"

"선우가 원하지 않는다면 강제로 그리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 그렇구나?"

"네. 그저 마왕이 이미 신의 경지에 다다랐다고 하니, 저도 그 정도가 되어야 선우와 이 세상을 지킬 수 있지 않을까 하여 의지를 다져 보았을 뿐입니다."

세르펜스의 대답을 듣고 난 이후에도, 깊게 주름이 파인 휴마누스의 미간은 펴질 줄 몰랐다.

하기야 어느 날 갑자기 친구가 '나는 신이 될 거야.' 같은 소리를 진지하게 말하는데, 누가 걱정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런 게 가능···. 아니, 그래. 가능하니까 너랑 2회차의 네가 그런 소리를 한 거겠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능력을 갖추고 수많은 이들의 기대와 숭배를 받으며, 세례명에 걸맞은 존재가 되면 신격을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건 어디서 들은 얘기야?"

"2회차의 제가 그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세르펜스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모두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여 정말로 타락펜스가 그리 말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그러자 휴마누스의 표정이 더욱 심각해졌다.

"내가 2회차의 너처럼 자유자재로 신의 힘을 빌려 와 사용할 수 있게 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부족할까?"

"본인의 힘을 다루는 것과 다른 존재의 힘을 다루는 건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습니다. 더욱이 신 룩스메아는 세상을 여러 번 재시작하느라 힘을 많이 소진한 상태잖습니까. 반면에 마왕은 유구하게 기나긴 세월 동안 힘을 축적해 왔을뿐더러, 이제는 '사제'들로부터 세례명을 강탈하며 자신의 격을 키워나가고 있습니다."

모두가 알고는 있었지만, 외면해 왔던 위기의식이 파도처럼 밀려들어 우리를 덮쳤다.

우리는 아직도 고작 악마를 상대로 애를 먹고 있다.

신의 경지에 들어서지 못한 타락펜스조차 그런 악마를 간단히 해치워 버렸는데, 진정한 적이라 할 수 있는 마왕은 대체 얼마나 강한 건지 가늠조차 안 된다.

과연 승산이 있기는 할까 의구심마저 들었다.

'이쯤 되면 룩스메아가 직접 강림해서 싸워야 하는 거 아니야?'

거기까지 생각이 다다랐을 때.

불현듯 어떠한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묻고자, 손을 들어 올리며 방금 떠올린 생각을 입에 담았다.

"그런데 신 룩스메아는 대륙의 일에 최소한으로 개입하고 있잖아요? 저를 제외한 역대 신의 사자들은 전부 '그런 부류'로 불리며, 두루뭉술한 계시를 받거나 말에 제약이 걸리거나 하고. 세상을 다시 시작해야 할 정도로 상황이 개판인데 직접 나서서 하는 일도 없고···."

"혹시 선우는 세르펜스가 신이 되면 마왕을 물리치기는커녕, 오히려 함께 싸우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건가요?"

유지스가 손을 번쩍 들며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대신 꺼내 주었다.

이건 아주 중요한 문제다.

세르펜스가 확실하게 신이 될 수 있을 거란 보장은 없어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자칫 잘못하다간 핵심 전력을 강화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잃어버릴 수도 있으니까.

'타락펜스에게 물어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어째서 이런 생각은 뒤늦게 떠오르는 건지 모르겠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녀석 앞에서는 머리가 굳어버린 것처럼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던 것 같다.

그것도 마음에 여유가 없었기 때문일까?

"나도 한때 그런 생각을 해 보지 않았던 건 아니다. 하지만 신 룩스메아가 '신'이기 때문에 대륙의 일에 개입할 수 없는 거라면, 마왕 또한 그래야 마땅하다. 하나 현실은 어떠한가?"

나는 상념을 머릿속 한구석에 치워 두고 세르펜스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고 보니 마왕은 반신의 경지를 넘어, 완전한 신이 되어가고 있음에도 그 영향력은 여전하다.

저러다가 완전한 신이 된 순간 대륙의 일에 개입할 수 없게 될 수도 있지만.

그렇다면 놈과 싸울 필요가 없어지니 차라리 잘 된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 간단히 해결될 것 같지는 않단 말이야···?'

애초에 신이 여러 제약에 묶인 처지라면, 마왕은 신이 되고자 하는 마음 자체를 품지 않았을 테다.

그냥 신에 한없이 가까운 최고의 강자로서 세상을 지배하려 했겠지.

"우선···. 세상을 다시 시작한다는 극단적인 방법까지 동원하고, 다른 세상 사람인 선우까지 끌어들인 걸 보면. 신 룩스메아가 이번 사태를 방관할 생각이 없다는 건 확실하다. 그러니 나서지 않는 게 아니라 못하는 것이라 가정하고 추측해 보겠다."

세르펜스가 제 생각을 말하기에 앞서, 나중에 다른 말이 나오지 않도록 전제 조건부터 확실하게 굳혀 놓았다.

일행 중 그 누구도 녀석이 세운 가정에 반대 의견을 내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도 룩스메아가 일부러 나서지 않는 건 아닌 듯했다.

그렇기에 어서 그 추측이 무엇인지 얘기해 달라는 뜻을 담아, 눈빛으로 세르펜스를 재촉했다.

"선우도 알다시피 신 룩스메아는 사람들의 바람 속에서 탄생한 신이다."

"그게 뭐 어쨌는데? 멸망을 목전에 둔 세상을 그 이전으로 되돌릴 수 있을 정도의 힘을 지닌 절대자가, 고작 마왕 하나 처치하지 못하는 건 아닐 거 아냐."

"그래. 신 룩스메아의 힘이라면 마왕을 없애는 것쯤은 언제든지 할 수 있었을 거다. 마왕이 신의 경지에 오르기 이전이라면 더욱이 그러했겠지."

세르펜스가 그 누구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간과했던 점을 지적했다.

룩스메아에게는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까마득한 먼 옛날에 마계를 만들어 마왕과 악마들을 그곳으로 쫓아내고, 균형을 맞추고자 천계까지 창조해 냈다.

그런데 과연 마왕을 없앨 힘이 없었을까?

"자신의 창조물에게 사사건건 간섭받길 바라는 이는 아마 존재하지 않을 거다. 신 룩스메아가 대륙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그 어떠한 규제도, 속박도 하지 않는 건 그러한 까닭이 아닐까 한다. 가혹한 일이나 시련도 삶의 일부일지니. 도움의 수준을 벗어난 과도한 개입은 투쟁을 통한 성장을 앗아가는 결과를 낳게 되겠지."

"마왕의 존재는 이 대륙의 사람들이 직접 이겨내야 할 시련이라서, 룩스메아가 없애지 못하고 마계에 처박아 둘 수밖에 없었다는 거야? 사람들이 마왕을 쓰러뜨릴 수 있는 힘을 갖출 때까지 시간을 벌기 위해서?"

"으음···, 어디까지나 내 추측일 뿐이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언제나 그러하듯 세르펜스는 자신감 없는 태도로 말을 마무리 지었다.

하지만 녀석의 얘기가 사실일 가능성은 충분하다 못해 넘쳤다.

잘 생각해 보면 룩스메아가 원래 '다른 세상 사람을 빙의시킬 육체'로 선택했던 건, 언제든지 전투에 가담할 수 있는 뛰어난 마법사나 기사가 아니었다.

'오직 스크롤 제작에만 재능이 있는 솔레르티아였지.'

스크롤은 도구에 불과하며 심지어 일회용품이다.

지금 내가 빙의한 시온의 육체는 그런 재능조차 없는 한낱 일반인에 불과하고.

마왕과 싸우는 이 여정에 합류하는 건 애초에 내 역할 밖의 소임이었던 거다.

내게 주어진 일은 고작해야 세르펜스가 엇나가지 않도록 막는 것이 전부겠지.

'그러다 내가 악숭이들에게 죽으면, 세르펜스가 분노를 밑거름 삼아 강해질 수도 있고···. 이건 좀 아닌가?'

룩스메아는 2회차에서 에드나를 잃은 아니마가 얼마나 망가졌는지 알고 있을 터다.

자신이 아끼는 세르펜스가 2회차의 아니마처럼 되길 바라지는 않았겠지.

그렇다면 룩스메아는 내가 세르펜스를 데리고, 전장과 멀리 떨어져 숨어 살길 바랐던 걸까?

하지만 녀석이 성검의 주인을 도와 싸우겠다 결심한 것이 기특하여, 각성을 돕는 방법으로 응원해 준 거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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