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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 회개해주세요!-915화 (915/925)

< 90. 공작님과 마인들 (1) >

사막 지형을 완전히 벗어났으므로 우리는 교단 측에서 내어준 말을 타고 이동했다.

휴마누스는 말 없이 날아서 우리를 따라왔으나 문제 될 건 없었다.

내가 타고 있던 말을 휴마누스에게 내어주고 세르펜스의 말에 함께 타면 되니까.

휴마누스는 타고 갈 말이 생겨서 좋고, 나는 운전기사 겸 등받이 겸 안전벨트가 생겨서 좋고.

세르펜스는 뭐···, 내게 효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여기겠지.

아무튼 서로서로 모두가 윈윈이다.

"대체 어쩌다가 폭주 마인이 여섯이나 생겨난 거래요?"

"목격자의 증언을 따르면 처음 마인이 된 건, 도박 빚 때문에 사채업자에게 시달리던 청년이라고 하더라. 사건이 일어난 장소는 그 청년이 일하던 잡화점이고. 사채업자가 거기까지 찾아와서 빚을 갚으라며 위협하니까, 가게 사장에게 돈을 가불해 달라고 매달리다 거절당했다나 봐. 그러자 갑자기 몸을 부들부들 떠는가 싶더니 검은 기운을 내뿜으며 날뛰기 시작하더래."

휴마누스의 말에 나는 혀를 내둘렀다.

대단한 원한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고작 도박하다 생긴 빚 때문에 악마의 꼬임에 넘어가서 마인이 되다니.

심지어 정황을 들어 봤을 때 그 꼬임이란 것도 대단치 않다고 해야 하나, 악의만 가득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대충 '사채업자고 가게 사장이고, 모두 죽여버리면 그만이다.' 따위의 말을 속삭였겠지.

어쩌면 평소에도 사채 업자를 죽여서 빚 변제 의무에서 벗어난다거나, 사장을 죽이고 돈을 훔치는 상상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악마의 제안을 덥석 받아들인 것이리라.

"마인이 된 청년이 가게 주인을 찢어 죽이니까, 사채업자도 마인으로 변했대."

"엑?! 너무 뜬금없지 않아요? 그 사람은 갑자기 왜 마인이 된 거랍니까?"

"그건···. 아, 그렇지! 지금 내가 하는 얘기는 목격자의 증언이라고 얘기했잖아."

내가 놀라서 묻자, 휴마누스가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잠시 고민했다.

그러다 곧 갈피를 잡았는지 목격자에 관한 얘기로 운을 뗐다.

청년이 마인으로 변하기 전부터 현장에 있던 것 같으니, 그 목격자는 누구보다도 사건의 정황을 잘 파악하고 있을 터.

"네, 그래서요?"

"목격자는 가게에 물건을 사려고 방문한 손님이었는데, 청년이 마인으로 변하자마자 진열대 아래로 들어가 숨어 있었다나 봐. 겁에 질려 숨을 죽이고 있으니까,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고 하더라. 살고 싶으면 자신의 힘을 받아들이라고."

"헐···?"

설마 사채업자에게도 비슷한 제안이 들어왔던 걸까?

그래서 방법 따윈 아무래도 좋으니 도와달라 답했고, 그 결과 계약이 성립되어 마인이 된 거려나?

사람 하나를 마인으로 만들어 목숨을 위협한 뒤, 그것을 빌미로 또 다른 마인을 만들어 내다니.

창조 경제가 따로 없다.

"목격자···라고 하는 걸 보니 그 손님은 마인이 되지 않고도 무사히 살아남았나 보네요."

"응. 사채업자까지 마인으로 변하는 걸 봐서, 제안을 받아들이면 자신도 그렇게 될 것 같아서 필사적으로 머릿속 목소리를 무시했대. 그래도 운 좋게 마인들이 가게 밖으로 나가서 살았다고 하더라."

거리를 지나다 마인들을 마주친 사람들에게는 끔찍한 재앙이었겠지만, 목격자 손님의 입장에서는 행운도 그런 행운이 없으리라.

그보다 처음 폭주 마인이 된 청년이 죽이고자 한 대상에는 사채업자도 있었을 텐데.

본래 자신이 품었던 원한조차 잊고 사채업자 마인과 함께 날뛴 걸 보면, 이성은 완전히 날아가고 사람들을 학살해야 한다는 살의만 남은 모양이다.

"세르펜스의 말에 따르자면 폭주 마인은 총 여섯 명이라고 하던데···. 이후 추가된 네 명은 악마의 제안을 받아들인 거겠죠?"

"아마도 그렇겠지."

사채업자까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다른 사람들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

그저 살고 싶어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머릿속에서 말을 걸어오는 목소리에 대고 살려달라고 빌었을 뿐일 텐데.

졸지에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넘긴 꼴이 됐다.

이 세상은 연좌제가 존재하는지라 괜히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혹시 그 사람들의 가족에게 뭔가 불이익이 생기지는 않겠죠?"

"나도 그 점이 맘에 걸려서 지원 나온 성기사들에게 얘기해 뒀어. 그들 또한 피해자이니, 선처해 줬으면 한다고."

"그랬더니 뭐래요?"

"자신들에겐 결정을 내릴 권한이 없으니 윗선에 얘기해 보겠대."

"······."

"아마 괜찮을 거야. 성기사들도 정황을 파악하고는 다들 안타까워 했으니까."

다행히 앞뒤가 꽉 막힌 사람들은 아니었나 보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다음 영지에 도착하면 신전에 가서 내가 직접 얘기해 둬야겠다.

폭주 마인이 연쇄적으로 생기는 일이 이번 한 번으로 끝날 것 같지는 않으니까.

"이런 일이 있었다는 걸 알리고, 머릿속에 울리는 목소리는 악마의 것이니 귀를 기울여선 안 된다고 경고하면. 어차피 악마가 목숨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걸 사람들이 알게 되면, 피해가 좀 줄어들 수 있을까요?"

"조금쯤은 줄어들지 않을까? 실제로 사채업자가 마인으로 변하는 걸 보고, 악마의 말을 무시한 사람도 있잖아. 그리고 이성을 잃고 날뛰는 괴물이 되어 처단 당하는 것보다, 사람으로서 죽는 게 나으니까."

휴마누스가 씁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어느 쪽이든 결국에는 죽는다는 뜻이었으니 그런 표정을 지을 만도 하다.

"그런데 악마들은 원래 이런 식으로 계약을 막 남발할 수 있는 거야?"

나와 휴마누스가 나란히 입을 다물자, 푸로르가 잠시 생겨난 침묵을 비집고 질문을 던졌다.

감이 좋은 사람답게 예리한 질문을 했다.

그러고 보면 [성검의 주인]에서도 마인이 꽤 많이 생겨나긴 했지만, 이딴 방식은 아니었다.

[성검의 주인] 속 마인들은 전부 뭐라도 한가락 하는 자들이었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제대로 다룰 수 없는 힘을 쥐여 주는 일은 없었다.

아무나 상관없다는 듯 불특정 다수에게 계약을 제안하는 일은 더더욱 없었고.

"악마들이 한 번에 계약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뿐이라고 하니, 그건 아닐 겁니다. 더욱이 마인이 죽으면 그자에게 건넸던 힘을 잃게 되는바. 이런 무분별한 계약은 악마들도 반기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푸로르의 질문에 대답을 한 건 세르펜스였다.

녀석은 덤으로 마인이 공포를 떨치고 많은 이들을 죽이면, 악마의 힘이 늘어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계약을 하려면 강자와 하는 게 악마들에게 이득이라는 소리다.

그런데도 계약 후 곧바로 처단 당할 수밖에 없는 폭주 마인 따위를 생산하는 건.

정말 꼴같잖은 얘기지만, 악마들에겐 '대의를 위한 희생'쯤 된다는 뜻이다.

[성검의 주인]에서는 최하급 및 하급 악마가 굉장히 많이 등장한다.

현재로 따지자면 거의 법숭이 급으로 흔한 잡몹 취급당하여, 이름은커녕 능력이나 외형조차 언급되지 않을 정도로.

'아마 폭주 마인을 만들어 내는 건 바로 그놈들이겠지.'

안 그래도 부족한 제물을 하위 악마 따위를 소환하는 데 소모하긴 아까우니까, 놈들의 힘을 이런 식으로 써먹는 걸 테다.

참 알뜰살뜰하게도 전력을 활용하는구나 싶다.

그따위로 살아서 살림살이는 좀 나아졌느냐고 마왕에게 비아냥거리고 싶은 심정이다.

얼굴도 목소리도 모르는 마왕이 그렇다고 답하며 낄낄거리는 게 상상이 가서, 기분만 더 나빠졌다.

"그래도 이제까지는 폭주 마인이 한 명씩만 나타났다고 했는데, 이번에만 여러 명이 거의 동시에 나타난 건···. 갈 길이 바쁜 와중에 사람들을 직접 구해야 할지 남에게 맡겨야 할지. 이를 두고 의견 다툼을 하여 우리 사이에 균열이 생기길 바라서 일까요? 아니면 이런 억지스러운 방법으로 계약을 강요하는 게 통할지, 단순히 실험해 본 것뿐이려나요?"

유지스가 빠르게 말을 몰아 달리면서도 착실하게 한쪽 손을 들어 올리며 발언했다.

덕분에 나보다도 말을 모는 것이 미숙하여, 처음부터 유지스의 뒤에 탄 에드나가 기겁하며 '으아아···.' 하는 소리를 흘렸다.

비명인지 신음인지 모를 소리를 내며 유지스의 허리를 꽉 끌어안는 에드나의 모습에, 아니마가 부러움과 질시 어린 눈빛으로 유지스를 흘겨봤다.

균열은 악마들이 아니라 유지스가 지금 만들어내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으음···. 악마가 생존 본능을 자극하며 불합리한 계약을 맺으려 한다는 것이 알려지면, 그에 응하려는 자는 거의 없을 터이니. 일부러 이 타이밍에 '실험'을 시도했을 가능성에는 이견이 없다. 하나 그게 우리의 균열을 야기하려는 의도는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어째서요?"

"악숭 세력은 일부러 먼 곳에서 악마를 소환했잖은가."

"아! 그러게요?! 악숭이들은 우리가 악마 소환 장소를 파악했다는 걸 모르죠? 그러니 발을 붙잡고 말고 할 것도 없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니 근처에 나타난 마인들을 처리하는 문제로 다툴 거라는 계산도 하지 않았겠네요."

유지스가 이해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프뤼네 왕국에 악마가 나타난 것 같다는 추측이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져, 원래라면 알지 못하는 게 당연한 정보라는 걸 깜박 잊었던 모양이다.

"그럼 폭주 마인을 여럿 만들어낸 건···. 우리가 눈앞의 문제 처리에 급급하여, 소환된 악마에 관해 신경 쓰지 못하도록 하려는 의도였을까요?"

"별달리 정보가 없으니 현재로서는 그렇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겠군. 악마가 소환된 방향을 알아채지 못했더라도, 일단은 대륙의 중심부까지 빠르게 이동하자는 결론이 나왔을 터이니."

"우리가 어디에서 소환되었는지도 모를 악마를 쫓는 대신. 근처에서 생겨나는 폭주 마인의 처리를 우선시하며, 계속 이 주변에 묶여 있길 바랐을 거라는 뜻이군요."

"확실한 건 아니지만, 아마도 그런 게 아닐까 한다."

유지스와 세르펜스가 사이좋게 말을 주고받으며 대화를 진행시켰다.

그런 둘을 휴마누스가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이제 슬슬 익숙해질 때도 되지 않았나 싶지만, 휴마누스는 아직도 새롭게 느껴지나 보다.

"참, 세르펜스는 악마가 북동쪽에서 소환되었다는 걸 어떻게 알았어요?"

"어떻게 알았느냐고 물어도, 그저 그렇게 느껴졌을 뿐인지라···. 그래도 짚이는 바가 하나 있기는 하다."

"짚이는 바? 그게 뭐죠?"

"거의 신의 경지에 다다른 존재가 내 육체에 잠시 머물다 갔잖은가. 그 영향이 남아있는 게 아닐까 한다."

타락펜스가 머물다 간 영향이 맞기는 하나 그게 전부는 아닐 텐데.

세르펜스는 진지하게 고민하는 표정을 꾸며내며, 진실과 거짓이 반반 섞인 가설을 내놓았다.

예리한 유지스도 녀석의 완벽한 연기는 꿰뚫어보지 못하고, 그럴 수도 있겠다고 말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또 한 명, 세르펜스의 말에 넘어간 이가 있었으니.

"그래서 신이 되겠다는 말을 자신 있게 할 수 있었던 거구나?"

휴마누스가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그런 그의 표정에서 감탄과 함께 미묘한 착잡함이 읽혔다.

저 착잡함은 진짜 휴마누스의 감정일까, 아니면 내가 느끼는 것을 그에게 투영한 것일까?

불현듯 세르펜스가 머나먼 존재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일부러 상체를 뒤로 기울여 녀석과 더 밀착했다.

"똑바로 앉아라. 그러다 다칠라."

"다치면 세르펜스가 치료해주면 되잖아."

"처음부터 다치지 않는 게 더 좋다."

농담 삼아 가볍게 던진 말이었는데, 어쩐지 세르펜스의 목소리에서 못마땅한 기색이 느껴졌다.

여기서 버팅기면 녀석이 진심으로 화를 낼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나는 뒤로 기울였던 허리를 꼿꼿하게 세웠다.

"이번에는 힘이 너무 들어갔잖은가. 원래 하던 대로 해라."

또다시 이어진 세르펜스의 지적에, 나는 입술을 삐죽거리며 자연스럽게 상체에 힘을 빼고 녀석의 가슴에 등을 기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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