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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로 환생!-22화 (22/387)

“자네의 진급 원정 때를 기억하나?”

“그걸 어떻게 잊겠습니까. 사령관님께서 저희를 거의 갈아버린 뒤에, 다시 한 덩이로 뭉쳤다가 재차 갈아버리셨는데 말입니다.”

아우릴리아의 대답에 사령관이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이제 내가 여태까지 본 최고의 장교들 중 하나가 되었지. 우리는 군단병들을 어르고 달래지 않네, 아우릴리아. 그냥 녹여서 액체로 만든 다음 우리의 틀에 부어버리니까. 만약 저 꼬마들이 오늘밤 잠들 때 울지 않는다면 우리가 뭔가 실수를 한 거겠지.”

“알렉시는요?”

“···”

티투스가 인상을 찌푸렸다.

“우리의 수다쟁이 백인대장에게는 내가 이따 한 마디 해 두도록 하지.”

아우릴리아가 인상을 찌푸렸다.

사령관이 ‘한 마디’ 하고 나면, 알렉시는 한동안 수다를 떨지 못할 터였다.

회복에만 몇 주는 걸릴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왕실 경비대에게 웨이브 전까지 수행해야 할 임무는 명확하게 전달했나, 호민관?”

티투스가 물었다.

“네, 사령관님. 이제 던전 입구와 상층부에 대한 경비는 그들에게 맡기고 내려가면 될 것 같습니다. 생각보다 더 우수한 병력이더군요. 원정에서 돌아오면 여왕 폐하께 개인적으로 감사를 드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티투스가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왕실 경비대가 우수한 병력이라는 말은 맞지만, 티투로서는 여왕이 최정예 병력을 보내서 던전의 상층부를 지키도록 한 일이 꼭 최선의 방법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어쨌든 이제 위쪽 동굴의 청소를 모두 마쳤으니, 개활지로 전진할 때였다.

거기서부터 던전의 진짜 힘이, 그리고 진짜 가치가 드러났다.

몬스터 코어는 던전의 심부에서 수확할 수 있는 귀중한 것들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광물과 강력한 크리스탈들, 그리고 몬스터들이 제공하는 경험치 자체도 값을 매길 수 없는 자원이었다.

원정대가 던전 아래로 더 깊이 내려갈수록, 티투스의 움직임도 점점 편해졌다.

여러 해 동안 던전 안에서 싸워온 티투스는 지상에서 장시간 동안 머물기가 힘들었다.

지상의 사무실에서 서류를 작성하거나 예산을 관리하는 일은 티투스에게 맞지 않았다.

티투스는 손에 도끼를 들고 있을 때, 혈관에 마나가 흐를 때 더 편안한 느낌을 받았다.

한 시간 뒤 원정대는 던전의 심부를 향해 전진을 개시했다.

티투스는 대열의 선두에 서서 군단병들을 이끌고 어둠 속을 나아갔다.

때때로 앞을 가로막는 몬스터들을 처치해 가며 십 분쯤 걸어가자, 갑자기 동굴이 넓어지며 ‘숲’이라고 불리는 거대한 지하 공간이 나타났다.

숲의 푸른빛이 군단병들의 얼굴을 비추며 일렁거렸다.

레기온의 병사들은 질서 정연하고 빠르게 야영지를 설치했다.

대지 마법사들이 강력한 주문을 사용하자, 동굴 바닥의 부드러운 흙에서 벽이 솟아나 임시 방벽을 만들었다.

훈련병들은 수레에서 보급품을 내리고, 천막을 세우고 변소로 쓸 구덩이를 팠다.

티투스는 날카로운 눈으로 부하들이 임무를 수행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이번 원정에 참여한 백 명의 레기온 중, 스무 명이 진급을 앞둔 훈련병이었고 나머지가 정식 군단병이었다.

의료와 보급 그리고 요리를 위한 보조 인력도 스물 다섯 명이 따라왔다.

심연의 군단은 이곳에 리리아로 통하는 길목을 봉쇄하는 전진 기지를 건설하고, 웨이브 기간 동안 방어할 계획이었다.

그리고 또한 여기를 거점으로 개미 둥지를 찾기 위한 정찰을 시작할 예정이었다.

갑자기 숲 가장자리에서 무시무시한 포효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나무들 사이에서 성체 번개 주먹 고릴라가 나타났다.

분노에 가득한 몬스터는 커다란 주먹으로 바위를 찍으며 군단병들을 향해 돌진해 왔다.

티투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던전의 이렇게 높은 층에서는 영리함이 형편없이 떨어지는 몬스터와 마주치는 경우가 흔했다.

그래서 번개 주먹 고릴라가 자살에 가까운 돌격을 감행하는 것도 그리 놀랄 일은 아니었다.

불꽃 원숭이는 다양한 계통으로 진화할 수 있지만, 유일하게 번개 주먹 고릴라가 될 경우에는 원래 가지고 있던 영리함을 거의 잃어버린다.

대신 무시무시한 힘과 전기 마나에 대한 높은 친화력을 얻고, 그 결과 주먹에서 번개를 뿜어낼 수 있게 된다.

고릴라가 가까이 다가와도 레기온의 병사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티투스 홀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몬스터가 자신을 향해 달려들자, 비로소 전투 태세를 취했다.

티투스는 한 손으로 자신의 유명한 전투 도끼를 들어올렸다.

거대한 도끼는 날을 세운 무기라기보다 커다란 쇳덩어리에 더 가까워 보였다.

티투스는 고릴라가 달려오는 쪽을 향해 도끼를 수직으로 휘둘렀다.

도끼날이 바위를 내리치자 마치 운석이 땅에 떨어지는 듯한 어마어마한 굉음이 울렸다.

먼지가 가라앉았을 때, 동굴 바닥에는 30미터에 달하는 균열이 생겨났다.

균열 좌우로는 정확히 절반으로 갈라진 고릴라의 시체 두 쪽이 놓여 있었다.

불청객

페로몬의 자취를 발견했다!

역시 내가 태어난 둥지의 개미들도 이 호수를 이용하는 모양이다!

믿을 수 없이 좋은 소식이었다.

그냥 여기서 기다렸다가 동족을 만나서 둥지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뜻이니까 말이다.

나는 호수에서 조금 떨어진 곳까지 자취를 추적했다.

분명히 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개미들이 어떤 길을 더 자주 이용할수록 페로몬의 자취가 강해진다.

이 길은 그리 자주 이용했다고 보기는 어려웠지만, 내 동족들이 최소한 몇 차례에 걸쳐 이 호수를 방문했던 건 분명했다.

나는 다시 안전한 호수 가까이로 돌아와, 나도 모르게 기쁨의 댄스를 췄다.

근처의 몬스터들이 의아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마 춤추는 개미를 별로 본 적이 없는 모양이다.

어쨌거나···

곧 새로운 가족과 만날 수 있다!

며칠 동안 홀로 던전 속을 헤매다 보니, 나를 잡아먹고 싶어하지 않는 존재와 만난다는 생각만으로 가슴이 벅찼다.

그리고 이 세계에서 나를 낳아준 어머니도 만나게 될 터였다.

여왕 말이다.

여왕개미는 얼마나 클까?

전생에는 별로 효도도 하지 못하고 죽어버렸다.

어쩌면 이 세계에서는 다를지도 모른다.

어머니 여왕에게 도움이 되는 자식이 될 수 있을지도!

후!

너무 흥분된다!

하지만 우선 진정하자.

내가 어디 있는지 잊어서는 안 된다.

여기는 극히 위험한 장소였다.

정신줄을 놓고 있다가는 언제 죽게 될지 몰랐다.

나는 적당한 장소를 찾아서, 지난 번처럼 L자 모양의 굴을 판 뒤 그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어둠 속에 편안하게 앉아서 다시 마나 조작 훈련을 시작했다.

*파하*

내가 작은 마나 구름을 뿜어낼 때마다 작은 굴 안이 잠깐 밝아졌다.

*파하*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MP를 모두 소모했고, 이번에도 마지막에는 정신력이 바닥나서 마나를 제대로 인도하지 못하고 실패했다.

아직 갈 길이 멀었다.

훈련을 마치고 나는 휴식을 취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곤충에게 있어서는 잠이나 마찬가지인 명정 상태에 접어들었다.

어느새 이런 방식의 휴식에 점점 더 익숙해지고 있었다.

눈을 감지 않고도 긴 시간 동안 가만히 앉아서 조는 방식 말이다.

한참 뒤 나는 몸과 마음이 모두 회복된 상태로 꺠어났다.

휴.

여기서 너무 흥분되는 사건이 많이 벌어졌다.

잠시 차분하게 상황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호수 근처에 머물면서 마나 조작 스킬의 레벨을 올린다는 원래 계획도 나쁘지는 않았다.

게다가 동족들이 나타나면 함께 둥지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도 생겼다!

또다른 선택지는 내가 직접 페로몬을 추적해서 둥지를 찾아가는 거였다.

하지만 그러려면 너무 큰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가만히 기다려도 동족과 만날 수 있을지 모르는데 말이다.

그냥 여기서 스킬 레벨을 올리며 개미 친구들을 기다리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내가 레벨을 올리고 싶은 또다른 스킬은 굴파기였다.

비록 화려한 스킬은 아니고, 사실상 전투 상황은 물론 평소에도 특별히 유용하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나는 굴파기가 좋았다!

만약 누군가 내게 개미의 가장 큰 장점이 뭐냐고 묻는다면, 둥지를 건설하는 믿을 수 없는 능력이라고 답하겠다.

그리고 굴파기야말로 둥지 건설의 핵심이었다!

게다가 굴파기는 레벨을 올리기도 쉬웠다.

그냥 파기만 하면 되니까···

나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내 작은 은신처를 확장하기 시작했다.

지면으로부터 1미터 아래에서 여러 방향으로 작고 좁은 통로를 만들었다.

여기저기로 흙을 파 나가다가, 바위가 나오면 거기서 멈추거나 더 아래로 파고 들어갔다.

어째서인지 굴을 파고 있으니 마음이 편안하고 즐거웠다.

턱으로 흙덩이를 이리저리 옮기면서, 코만 있다면 콧노래를 부를 듯한 기분이었다.

이 주변의 흙은 특히 축축해서, 호수 반대편으로 굴을 확장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얼마 지나지 않아 커다란 나무 뿌리에 가로막혔다.

나는 때때로 지상까지 굴을 파서 작은 숨구멍을 만드는 동시에 주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살폈다.

그러면서 파낸 흙을 밖으로 버리기도 했다.

굴파기에 너무 열중한 나머지 스킬 레벨이 올랐다는 메시지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여섯 시간 동안 굴을 파고 있었다.

그리고 굴파기 스킬은 5가 되어 있었다!

만약 스킬 포인트가 남아 있었다면, 뭐가 나올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굴파기 스킬을 업그레이드시켰을지도 모른다.

···

문득 배가 고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사냥을 나설 때가 된 것 같았다.

혹시 물을 마시러 온 내 동족이 없는지 살피기도 하고 말이다!

나는 신이 나서 굴 바깥으로 나간 뒤 호수 주변에 동족이 보이는지 살폈지만 안타깝게도··· 없었다.

갖가지 몬스터들이 물을 마시고 있었지만 개미는 한 마리도 없었다.

음··· 뭐.

언젠가는 나타나겠지!

이제 할 일은 사냥을 시도하거나, 아니면 내가 파 놓은 굴 안에 들어가서 마나 조작을 연습하는 것뿐이었다.

잠깐만···

저게 뭐지?!

멀리서 뭔가가 호수 근처의 작은 언덕을 넘어오고 있었다.

너무 멀어서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아무래도 내가 아는 모습 같았다.

그리고 몬스터가 아니었다!

나는 두 번 생각할 겨를도 없이 굴 안으로 뛰어든 다음 나무 뿌리가 나올 때까지 호수 반대편으로 달렸다.

대체 인간들이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야?!

언덕 위에 나타난 건 틀림없이 인간의 그림자였다.

설마 나를 쫓아서 여기까지 온 건가?

너무 빠르잖아!

나는 최단 거리나 다름없는 수직 통로로 내려왔다.

하지만 놈들은 여기까지 오기 위해 구불구불한 동굴을 멀리 돌아와야 했을 텐데?

게다가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저 인간들은 내가 지상 가까이 갔을 때 봤던 병사들과 뭔가 달랐다.

자세 때문인가?

갑옷이 다른가?

잘 모르겠군···

내 일부는 더 자세히 살펴보고 싶어했고, 다른 일부는 최대한 빨리 여기서 도망치고 싶어했다.

젠장!

이렇게 인간과 마주칠 때마다 무턱대고 도망칠 수는 없어!

설사 인간이 극도로 위험한 존재라고 해도, 내 은신 스킬이 최소한 잠깐은 통할 거야.

그리고 몬스터들을 따라다녀 봤자 얻을 수 있는 정보가 거의 없지만···

인간들을 염탐하면 아마 엄청나게 많은 걸 배울 수 있겠지!

그럼 결정했다.

심호흡 한 번 하고···

나는 땅굴을 통해 다시 호수 쪽으로 돌아가다가, 도중에 만들어 놓은 숨구멍을 발견하고 조심스럽게 머리를 내밀었다.

더듬이는 이제 거의 다 자라난 상태였다.

먹이를 조금 더 먹기만 하면 끄트머리까지 완전히 복구될 것 같았다.

어쨌든 감지 능력에 큰 지장은 없었다.

좋아, 아무도 없군.

나는 천천히 지상으로 올라온 뒤 몸을 최대한 땅에 바짝 붙이고 은신 모드에 들어갔다.

그리고 커다란 원을 그리며 내가 인간들의 그림자를 봤던 언덕의 뒤쪽으로 돌아갔다.

인간들의 시야에 노출되지 않도록 극도로 조심하면서 말이다.

저기 있다!

나는 무성한 수풀 속에 몸을 숨기고 더듬이만 내놓은 채, 인간들 쪽으로 조금 더 다가갔다.

다섯 명의 인간들이 모두 내게 등을 보인 채 호수를 응시하고 있었다.

보다 정확히는 호수 주변의 몬스터들을 보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인간들의 주의가 다른 쪽을 향한 틈을 타서 좀 더 가까이 다가갔다.

[고급 은신 스킬이 레벨 3이 되었습니다.]

사랑한다, 시스템.

인간들은 내가 전혀 모르는 언어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지만,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서로 이야기를 계속하면서 손짓으로 호수 쪽을 가리켰기 때문이다.

그리고···

뭔가에 합의한 것 같았다.

내가 지켜보는 가운데 다섯 명의 인간들이 뿔뿔이 흩어져서 무기를 뽑았다.

그리고 그 중 하나가 지팡이를 치켜들고 집중하기 시작했다.

지팡이의 머리 부분에서 빛나는 룬 문자들이 떠오르더니 점점 속도를 높이며 회전했다.

잠시 후 지팡이 위에서 이글이글 타오르는 거대한 파이어볼이 생겨났다.

언덕 건너편에서 그 모습을 본 몬스터들이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마치 감히 호수 주변에서 공격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듯한 소리였다.

몬스터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인간이 지팡이를 휘둘렀다.

그리고 파이어볼이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무슨 일이 생겼는지 궁금해할 필요는 없었다.

땅이 미친듯이 흔들리더니 폭발로 인한 엄청난 빛이 주위를 온통 밝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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