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나무와 키 큰 버섯들 속으로 들어갔다.
발 밑의 덤불이 며칠 전보다 더 무성하게 느껴졌다.
마치 점점 더 밝아지는 빛을 한껏 흡수해서 자란 것 같았다.
뿐만 아니라 나무 뿌리들과 버섯의 하얀 줄기들 사이로 나아가는 동안, 숲 전체에 이상할 정도로 활기가 넘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태풍이 지나간 직후의 열대 우림처럼 말이다.
사방에서 몬스터들이 으르렁거리고, 포효하고, 서로 싸움을 벌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야말로 숲 속에 몬스터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늘어난 몬스터들이 서로 마주치면 벌어질 일은 하나밖에 없었다.
싸움!
지금 내 주위의 숲 속에서는 그런 싸움들이 수도 없이 벌어지고 있었다.
강한 몬스터가 약한 몬스터를 잡아먹고, 그 경험치와 바이오매스로 더욱 강해질 터였다.
갑자기 왜 이렇게 몬스터의 수가 늘어난 건지 알 수 없었다.
아마 숲 속의 푸른 빛이 더 강해진 것과 관계가 있을지도···
어쨌든 몬스터가 많아졌다면 나로서는 좋은 일이었다.
나와 우리 둥지가 차지할 경험치와 바이오매스의 양도 늘어날 테니까!
나는 높은 곳에서 기회를 찾기 위해 나무 위로 올라갔다.
일단 나무 꼭대기 근처에 자리를 잡고 초점 시력을 이용해서 주위를 살폈다.
내 기억으로 아마 이쪽 방향에··· 그렇지!
주변의 다른 나무들에 비해 유독 커다랗게 솟아오른 나무 한 그루가 보였다.
주위로 길게 뻗은 가지들에 무성한 나뭇잎은 수많은 은신처를 제공했다.
이렇게 멀리서 봐도, 나뭇가지 사이로 작은 형체들이 빠르게 움직이는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
나는 커다란 나무의 위치를 기억해 두고 아래로 내려간 다음, 개미 언덕으로 돌아갔다.
여전히 일개미들이 주위를 맴돌며 혹시나 있을지도 모르는 위협을 경계하는 중이었다.
어, 그래··· 수고한다.
잠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한 끝에, 나는 바닥에 먹이를 의미하는 페로몬을 뿌리며 아까 봤던 커다란 나무 쪽으로 향했다.
그렇게 수백 미터를 이동한 뒤 나는 다시 둥지로 돌아와서 페로몬을 한 차례 더 강화했다.
그리고 한 번 더.
같은 자취를 여러 번 강화하면 개미들에게 더 중요하고 흥미롭게 느껴진다.
그래서 더 많은 개미들이 이 자취를 따라올 가능성이 높아졌다.
과연 내 노력이 헛되지 않아서, 곧 둥지 안에서 몇 마리의 일개미들이 나타나더니 더듬이로 내가 만들어 놓은 길을 더듬으며 따라오기 시작했다.
잘했어, 친구들.
지금 이 선택을 후회하지 않게 해 준다고 약속하지.
나는 앞장서서 커다란 나무로 향했다.
그러면서 이번에도 자취를 강화했다.
바이오매스를 써서 페로몬을 강화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었다.
실제로 둥지의 인력··· 아니 개미력을 동원할 유일한 방법이 페로몬인 이상···
더 분명하고 강력한 신호를 보내서 다른 개미들이 더 빨리 반응하게 할 수 있다면 유용할 테니까 말이다.
지금은 세 차례나 강화한 자취로도 겨우 몇 마리의 일개미들을 끌어들였을 뿐이다.
만약 페로몬을 +3이나 +4로 업그레이드하면 훨씬 더 열광적인 반응을 얻을 수 있을 터였다.
바이오매스를 어디다 쓸지 결정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모든 선택지가 다 엄청나게 유용해 보이니까 말이다!
나는 걸음을 빠르게 놀려서 따라오는 다른 개미들보다 한참 먼저 목적지에 도달했다.
멀지 않은 곳에 아까 봤던 커다란 나무가 보였다.
그 나무 위에는 내가 예전에 봤던 작은 원숭이들이 엄청난 수로 모여 있었다.
내가 혼자라는 사실을 아쉬워하게 만들었던 불꽃 원숭이 무리였다.
타이니와 내가 나무 아래로 접근하는 모습을 본 원숭이들이 미친 듯이 괴성을 지르며 우리를 손가락질하기 시작했다.
놈들이 단체로 질러대는 엄청난 불협화음이 숲 속에 울려 퍼졌다.
반면 타이니는 자신들의 사촌과 만났지만 별 감흥이 없는 듯, 이를 드러내고 낮게 으르렁거릴 뿐이었다.
나는 계속 울부짖는 나무 위의 원숭이들을 올려다봤다.
목청 한 번 좋구나, 너희들.
어디 싸움도 그만큼 잘 하는지 한 번 볼까?
둥지 성장 전략
나는 눈 앞의 커다란 나무 밑동을 바라보며, 신중하게 턱을 열었다 닫았다 하면서 근육을 풀었다.
이 주입 턱이 내가 생각한 만큼 힘을 발휘해야 할 텐데···
머리 위쪽에서 귀가 아프게 소리를 질러대는 원숭이 무리를 무시한 채, 나는 나무의 밑둥을 향해 다가갔다.
내가 나무에 가까이 가자 몬스터들의 도발은 점점 더 격해졌다.
원숭이 무리는 고작 한 마리의 적이 감히 자신들의 영역을 침범했다는 사실에 잔뜩 화가 난 모양이었다.
분노로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린 채 소리를 질러대는 모습이 우스꽝스럽기까지 했다.
뒤를 돌아보자 세 마리의 일개미들이 내가 페로몬 자취를 마무리한, 나무로부터 오십 미터쯤 떨어진 위치에 도착해 있었다.
더 이상 페로몬이 이어지지 않자 녀석들은 이리저리 서성이며 대체 자기들을 여기까지 오게 한 먹이가 어디에 있는지 찾으려고 애썼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손님들.
음식 금방 나갑니다!
주입 턱!
내가 그렇게 생각하자 마자 코어에서 흘러나온 마나들이 내 몸을 거쳐 턱으로 모였다.
턱에서 느껴지는 에너지가 너무 엄청나서, 과연 이걸로 물어서 자르지 못할 게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단단히 물기나 날카롭게 깨물기 같은 액티브 스킬과 조합하면, 매번 물 때마다 엄청난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무 위에 가득한 원숭이 몬스터들이 일제히 놀라서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쳐다보는 가운데, 나는 머리를 뒤로 젖혔다가 힘껏 앞으로 내밀며 턱에 모인 힘 전부를 나무 밑둥에 가했다.
날카로운 깨물기!
우직!
내 턱의 날카로운 부분이 기이한 던전 나무의 밑둥을 파고들자, 파편이 튀어서 내 갑각에 부딪혔다.
나는 코어에서 나오는 마나의 흐름을 끊지 않고, 계속 내 턱으로 들어가 위력을 강화하게 만들었다.
다시 한 번, 날카로운 깨물기!
우지직!
한 번 더!
우직!
마나가 엄청난 속도로 줄어들고 있었다.
이 턱에 실린 힘은 강한 만큼 말하자면 연비가 안 좋았다.
그래서 코어를 성장시키지 못한 몬스터에게는 무용지물이겠지만···
다행히 나는 코어를 여러 차례 강화했고, 앞으로도 계속 강화할 예정이었다!
우직!
나무 위의 원숭이들은 이제 완전히 꼭지가 돌아서 입에 거품을 물고 있었다.
이제야 내가 뭘 하려고 하는지 알아차린 듯, 몇 마리가 나를 막기 위해 아래로 내려오는 중이었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우직!
우지지지지직!
됐다!
나는 타이니를 등에 단단히 태운 다음 쏜살같이 달려서 나무로부터 멀어졌다.
그리고 충분히 거리를 벌린 다음에는 내가 한 일의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돌아섰다.
거대한 나무가, 충격에 사로잡힌 수많은 원숭이들과 함께, 천천히 기울어지고 있었다.
원숭이들은 완전히 공포에 질려서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놈들의 세계가 말그대로 무너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기들이 아직 그 안에 있는 채로···
넘어간다아아아아아아!!
우지끈.
점점 더 빠른 속도로 기울어지던 나무가 엄청난 소리와 함께 완전히 쓰러졌다.
나뭇잎이 서로 마찰하고 가지들이 부러지는 소리가 숲 속에 메아리쳤다.
그리고 분기탱천한 수백 마리 작은 원숭이들의 포효 소리가 이어졌다.
나를 따라온 세 마리의 일개미들은 미동도 하지 않고 서서, 한 무리의 부상당한 원숭이들이 마치 성난 악마들처럼 쓰러진 나무에서 뛰쳐나오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마 몬스터 개미인 녀석들의 눈에도 이건 상당히 신선하고 충격적인 장면인 듯했다.
둥지를 위하여!
나는 속으로 그렇게 외치며, 몰려드는 원숭이 몬스터들을 향해 마주 돌진했다.
역시 원숭이 몬스터인 타이니도 내 등에 탄 채로 무슨 기사라도 된 마냥 함성을 질러댔다.
작은 원숭이들은 내 커다란 덩치를 보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간혹 반격을 가하려던 놈들도 다이아몬드 갑각에 부딪히자 그대로 튕겨져 나갔다.
내 공격을 보고 정신을 차린 다른 개미들도 행동을 개시했다.
동료 개미가 싸우고 있다!
싸움!
먹이!
개미들 중 두 마리가 즉시 돌아서서 둥지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도 놀라지 않았다.
저 개미들은 겁에 질려서 도망치는 게 아니다.
개미들은 애초에 두려움이라는 걸 모르는 족속이다.
녀석들은 있는 힘껏 달려서 지원군을 부르기 위해 간 거다!
나머지 한 마리의 개미는 곧바로 내게 가세해, 턱으로 가장 가까이 있는 원숭이를 물었다.
그리고 치열하게 싸우기 시작했다.
이제 내 임무는 다른 개미들이 올 때까지 옆에 있는 이 친구가 죽지 않게 하면서 시간을 끄는 거다!
원숭이들은 미친듯이 끽끽거리며 내게 달려들어 주먹과 발을 휘둘렀다.
몇몇 놈들은 심지어 나뭇가지나 돌 같은 임시 무기를 들고 덤비기도 했다.
음하하하하하하!
가소로운 것들!
고작 그 정도로는 내게 상처 하나 입힐 수 없다!
새로 업그레이드한 다이아몬드 갑각은 원숭이들의 자잘한 공격을 완벽하게 막아냈다.
적진 한복판에서 몸으로 버티고 있지만, 내 HP의 숫자는 1도 줄어들지 않았다!
애초에 이 작은 원숭이 몬스터들은 근력이 약한 편이었다.
거기다 내 다이아몬드 갑각은 물리 피해에 저항력을 가지고 있으니, 놈들의 공격으로는 작은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
나는 원숭이들 사이를 마음껏 날뛰며, 몸통 박치기로 놈들을 쓰러뜨리고 내 커다란 턱을 휘둘러 멀리 날려버렸다.
내가 그렇게 자신들을 가지고 놀다시피 하자 놈들은 더욱 분노해서, 여러 마리가 무리를 지어 사납게 덤벼들었다.
그리고 작은 주먹으로 있는 힘을 다해 내 머리통을 두들겼다.
···
그게 다냐?
간지럽지도 않군!
나는 옆에서 싸우는 동료 개미가 포위당할 때마다 그쪽으로 돌진해서 원숭이들을 한꺼번에 날려버리고, 어그로를 다시 내게 돌렸다.
솔직히···
이거 꽤 재밌는데!
그때 옆구리에 따끔한 통증이 느껴졌다.
아얏!
뭐지!
놈들이 드디어 스킬을 사용하기 시작한 건가?
재빨리 주위를 살피니 원숭이들 중 한 마리가 내 옆구리를 때린 주먹을 거두는 중이었다.
놈의 양 팔 주위로 노란 불똥이 튀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 작은 놈들도 전기 스킬을 쓴다 이거로군?
상태창을 확인하자 HP가 1 줄어들어 있었다.
흠···
진화 과정에서 강인함 능력치를 올릴 때, 나는 외부적인 방어력 뿐 아니라 내부적인 저항력도 높이기 위해 신경을 썼다.
하지만 이번에 업그레이드한 다이아몬드 갑각은 이런 원소 공격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충분한 저항력에도 불구하고 일부 피해가 내 방어를 뚫고 들어와서 HP를 깎았다.
이 공격이 성공하는 걸 보자 다른 원숭이들도 전기 에너지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놈들의 털가죽에서 작고 노란 불똥이 일며 에너지가 점점 더 쌓여갔다.
그러게 내버려둘 수는 없지!
나는 한층 더 사납고 난폭하게 날뛰며, 주위의 원숭이들이 전기 공격을 제대로 준비하기 전에 멀리 날려버렸다.
타이니도 내 등 위에서 으르렁거리나 고함을 지르다가, 때때로 너무 가까이 접근하는 원숭이가 있으면 주먹과 발로 때려서 물러나게 만들었다.
그래도 전기 에너지가 실린 주먹이 몇 차례 더 나를 때리는 걸 피할 수는 없었다.
전기 에너지가 다이아몬드 갑각을 관통하자 짜릿한 통증이 느껴졌고, HP가 몇 점 더 줄어들었다.
이런 식으로 피해가 누적되면 나도 곤란···
할 것 같냐!
재생 분비선!
차가운 감각이 몸 속을 흐르며, 전기 에너지가 입힌 몸 속의 피해를 모두 복구했다.
순식간에 HP가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왔다.
헛수고하느라 고생했다, 원숭이 놈들아!
타이니를 확인해 보니 녀석은 내 몸을 통해 전달된 전기 에너지에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타이니는 이 작은 원숭이들의 보다 진화한 버전이니, 전기 저항력도 훨씬 더 높을 터였다.
...사실 신나 있는 표정을 보면 전기가 흐른 걸 알아차리기나 했는지 의문이었다.
원숭이들을 때려눕히며 동료 개미의 상태를 확인하던 내 눈에 마침내 기다리던 장면이 들어왔다.
어느새 다른 개미들이 나타나서 전투에 뛰어들고 있었다!
뒤를 돌아보니 내가 남겨 놓은 자취를 따라 점점 더 많은 개미들이 달려오는 중이었다.
이제 둥지의 진짜 힘을 보여줄 때였다!
지원군으로 온 개미들은 전장에 도착하자 마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싸움을 시작했다.
나는 다시 한 번 개미들의 일사불란한 협동성, 그리고 기이할 정도로 조용한 공격성에 놀랐다.
만약 인간의 군대라면...
이런 식으로 돌진할 때 우렁찬 전투의 함성을 지를 터였다.
그리고 얼굴 표정에는 영웅적인 희생 정신과 결단력, 승리에 대한 갈망이 드러나겠지.
그런 장면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 격동하게 만들며, 엘프 여인들의 눈물을 자아내고···
영웅들이 전장에 뛰어들며 선보인 용기와 투지는 시와 노래로 만들어져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하지만 개미들이 전장으로 나아가는 장면은 전혀 달랐다.
일개미들은 아무런 소리도 전투 함성도 없이 적들을 향해 나아갔다.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자 마자 곧장 적을 향해 달려가서 싸웠다.
개미들의 차가운 눈에는 그 어떤 두려움이나 망설임, 환희나 승리감도 없었다.
하지만 내게는 그래서 더욱 영웅적인 행동으로 보였다.
일개미들은 이기심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존재였다.
자기 자신의 안위는 돌보지 않고, 둥지를 위해서라면 아무렇지도 않게 목숨을 바쳤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 어떤 고결한 이상은 물론 부와 명예 같은 보상도 필요로 하지 않았다.
개미들에게 있어서 둥지를 위해 싸우는 일은 당연한 임무이자 자신들의 역할이었고, 삶의 목적이었다.
장하다 일개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