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개미로 환생!-53화 (53/387)

이거 먹을 수는 있는 거야?

산성 혈액 때문에 화끈거리던 얼굴이 좀 진정됐다. 

나는 상태창을 열어서 HP가 아직도 내려가고 있는지 확인했다.

다행히 몬스터가 죽은 뒤로는 더 이상 피해를 입지 않는 듯했다.

몬스터를 턱으로 물 때 느껴졌던 역겨운 기분을 떠올리며, 나는 조심조심 시체에 접근했다.

으··· 

냄새가 끔찍했다.

마치 죽은 쥐를 일주일 내내 덫에 걸린 채로 썩게 내버려뒀을 때에나 날 법한 냄새였다.

아니··· 

그보다 더 끔찍했다.

그렇다고 바이오매스를 그냥 포기해?

···적어도 한 입은 먹어 봐야지!

그래, 그래.

한 번 시도나 해보자.

냠.

···

와, 젠장.

젠장.

우웩. 

꾸우웨에엑...

[새로운 바이오매스의 원천을 섭취했습니다: 쿠안툼 모르스 라보르 타베스. 1 바이오매스를 얻었습니다.] 

[쿠안툼 모르스 라보르 타베스의 기초 정보가 잠금 해제됩니다.]

우웨에에에엑.

흡!

으···

숨을 쉬기가 어렵다.

휴.

몬스터도 토할 수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시체의 맛은 냄새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차원이 다른 맛이었다.

일단 놈의 정보를 확인해 볼까.

[쿠안툼 모르스 라보르 타베스: 부패하는 죽음의 토끼, 핏빛 이빨 토끼의 진화형으로, 기존의 어둠 친화력을 무시무시한 죽음의 친화력으로 변형시켜 주위 생물의 HP를 흡수하는 사악한 오러를 방출하는 몬스터입니다. 생명 흡수 오러 때문에 무리 생활을 하지 못합니다. 이 몬스터의 몸 속에는 항상 몇 가지 효과를 지닌 죽음의 에너지가 가득합니다.]

뭐라고? 

하긴, 죽음의 에너지로 가득 찬 시체를 먹는다면 딱 이런 맛일 것 같았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좀비 토끼인 셈이로군?

뱀파이어 토끼에 이어서 이제는 좀비 토끼야?

나머지는 절대 못 먹겠다.

타이니조차 내가 토끼를 한 입 뜯어먹자 무슨 미친 개미 보듯 쳐다보고 있었다.

그래, 이번에는 네가 나보다 똑똑했다 이거지?

이제 좀 커지고 주먹에서 번개도 나온다고 해서 갑자기 맞먹는 거야?

아깝지만, 뭐···

몬스터 시체는 던전이 흡수하게 내버려 두기로 했다.

냄새 때문에 다른 몬스터들이 몰려들까봐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군침 도는 향기가 아니라 끔찍한 악취를 풍기고 있으니까 말이다.

오히려 이 냄새 떄문에 다른 몬스터들이 접근하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이었다.

그럼 애써 판 내 함정들이 무용지물이 되어버리는 건데···

제발 빨리 사라져라, 이 끔찍한 토끼야!

나는 던전이 어서 시체를 흡수하기를 바라며 다시 굴을 파러 돌아갔다.

잠깐 사이에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나서, 마음의 안정을 찾을 필요가 있었다.

다행히 한 시간쯤 지나자 던전이 좀비 토끼의 시체를 흡수했고, 악취도 함께 사라졌다.

시체가 사라지고 난 자리에는 작고 동그란 물체가 흙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코어잖아!

지금은 딱히 필요가 없으니, 통로의 벽에 묻어놔야겠다.

나중에 꺼내서 이것저것 실험을 해 봐야지.

나는 토끼가 사라진 함정을 정리하고, 다시 통로를 파러 돌아갔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지나자,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채굴 스킬이 레벨 5가 되었습니다]

[터널 센스가 레벨 5가 되었습니다. 업그레이드 가능합니다.]

오오오.

둥지 쪽으로 터널을 파면서 나도 모르게 터널 센스의 레벨이 오른 모양이었다.

한동안 스킬 업그레이드를 하지 못했는데, 오랜만에 좋은 소식이네!

[터널 센스 -> 터널 지도. 1 스킬포인트 소모: 지하에 있을 때 방향 감각과 강력한 기억력까지 더해주는 업그레이드입니다. 터널의 전체적인 형태를 기억할 수 있게 됩니다.]

좋은데! 

당장 업그레이드!

강적 출현

업그레이드를 승인하자 이상하게 간지러운 감각이 뇌를 타고 흘렀다.

마치 뭔가가 내 머릿속을 돌아다니며 간지럽히는 느낌이었다.

간지러운 감각이 잦아들고 나서 터널 지도를 발동한다고 생각하자, 놀라운 그림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지도였다!

내가 지나온 모든 터널이 기록되어 있는 3차원 지도!

이 스킬 엄청 유용하잖아!

내가 여태까지 들렸던 모든 통로, 공동 그리고 둥지 내부까지 하나의 거대한 지도에 담겨 머릿속에 그려졌다.

마치 저장해 놓은 사진을 불러내서 보는 것처럼 각 장소에서 보았던 세세한 특징들이 모두 떠올랐다.

심지어 예전에 던전 아래쪽으로 도망치면서 갈림길에 새겼던 표식까지 기억이 났다.

이거 너무 좋잖아!

이제 어디를 가더라도 길을 잃을 일은 없었다.

항상 가고 싶은 방향을 정확히 찾을 수 있는 건 물론이었다.

함정에 이어진 내 비밀 통로가 둥지에 거의 가까워졌다는 사실도 바로 알 수 있었다.

방향만 살짝 조정한 뒤에 조금 더 파면 완성이었다.

터널 지도 스킬이 레벨 1인 걸로 볼 때, 더 발전시킬 수도 있는 모양이었다.

아직도 기능이 더 추가될 수 있다는 의미였다.

앞으로 얼마나 더 편리한 스킬이 될지 기대되는데!

어쨌든···

터널 지도 만세다!

나는 신이 나서 다시 작업을 시작했다.

빨리 둥지로 돌아가 다들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필요한 도움은 없는지 살펴보고 싶었다.

내 함정들로 둥지가 바이오매스를 안전하게 획득하게 도울 수도 있을 터였다.

작업을 마치고 나면, 다시 사냥을 시작해서 레벨을 올릴 예정이었다.

그 후에 진화를 해서 (아마도) 엄청난 힘을 얻고 나면, 계속 정찰을 하면서 둥지가 위험에 처하지 않도록 미리 나서서 보호하는 동시에 나 자신도 더욱 강해질 방법을 찾을 생각이었다. 

적어도 내 계획은 그랬다.

한 시간쯤 더 판 끝에 둥지와 통로를 연결할 수 있었다.

이제 내 비밀 통로는 개미 언덕의 수직 통로와 이어졌다.

관문 역할을 하는 수직 통로의 끝에서 3분의 1 정도 되는 지점이었다.

둥지의 더 안쪽 구역으로 연결하고 싶지는 않았다.

통로가 지나치게 길어질 뿐 아니라, 자칫 산란실과 연결할 경우 둥지 자체에 불필요한 위협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수직 통로의 벽을 뚫고 나오자, 흙과 자갈이 터널 아래로 떨어졌다.

에구, 미안!

통로를 타고 위아래로 오가던 일개미들이 의아한 듯 나를 쳐다봤다.

다들 그동안 잘 지냈지?

어디 내려가서 한 바퀴 둘러봐야겠군.

아래쪽으로 내려가자 개미들이 둥지 안을 바쁘게 돌아다니며 식량을 나르고 있었다.

산란실을 들여다보자, 유충들이 전보다 훨씬 크게 자라 있었다.

다만 그때처럼 잘 먹어서 포동포동한 상태는 아니었다.

새로운 산란실로 가 보니 거기 있던 알들도 많이 부화했지만, 마찬가지로 애벌레들이 배불리 먹은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식량 공급에 문제가 좀 있나 보군.

하지만 걱정 마, 아가들아!

내가 먹이를 구해다 줄 테니까!

나는 서둘러 다시 함정으로 돌아왔다.

함정 근처의 비밀 통로에 도착하니, 타이니는 그때까지도 잠들어 있었다.

녀석은 이제 나보다 키가 컸다.

물론 나는 체형상 높이보다 앞뒤가 더 길었지만···

그래도 타이니가 처음에 비해 엄청나게 자란 건 사실이었다.

귀여운 박쥐 얼굴을 내려다보던 나날이 지나갔다고 생각하니 괜히 서운했다.

어쨌든···

아직 함정에 빠진 몬스터는 없었다.

흠.

유충들이 빨리 자라려면 더 많은 식량이 필요한데.

함정을 두고 밖으로 나가서 사냥을 할 수도 있지만, 그러면 상황이 복잡해지기 쉬웠다.

최선의 경우에는 지난 번처럼 일개미들을 불러서 전리품을 잔뜩 얻겠지만···

최악의 경우에는 몬스터의 홍수에 깔려 죽게 될지도 몰랐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기다리기로 했다.

여태까지 경험에 비추어 보아 함정을 이용하는 작전은 상당히 효과적이었다.

몬스터와 1대1로 싸우면서, 다른 몬스터들의 이목도 끌지 않고 조용히 바이오매스를 획득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숲 속에 몬스터들이 득실거릴 뿐 아니라 인간들까지 돌아다니고 있기 때문에, 지금은 무엇보다 신중할 필요가 있었다.

몬스터가 빨리 안 잡힌다?

그럼 함정을 더 만들지 뭐!

나는 바로 4번, 5번 함정의 제작에 돌입했다.

새로운 함정을 만드는 중에 늑대 드래곤 유생체 한 무리가 원래 있던 함정에 굴러 들어왔다.

이제 타이니와 함께 싸우니 놈들을 굉장히 빠르게 처리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이번에도 타이니에게 막타 한 번을 빼앗겼다!

···뭐 크게 신경이 쓰이지는 않았다.

이리 와 봐, 타이니.

머리 쓰다듬어 줄게···

나는 시체 하나를 타이니에게 먹으라고 준 뒤, 다른 두 마리를 미끼로 설치했다.

그리고는 남은 한 마리를 턱으로 물고 둥지까지 가서, 수직 통로 아래쪽에 떨어뜨렸다.

그러자 잠시 후 시체를 발견한 일개미 한 마리가 바이오매스를 안쪽으로 옮겼다.

수고하라고, 친구!

조금이기는 하지만 다시 둥지에 기여했다고 생각하니 기쁜걸.

이제 다시 함정으로 돌아가야지.

나는 새로운 함정을 완성하기 위해 하루 종일 흙과 씨름하다가, 가끔씩 걸려드는 몬스터들을 처리했다.

타이니는 본인 몫의 바이오매스를 챙겼고··· 

나는 당분간 내 몫을 둥지에 양보하기로 했다.

애벌레들을 먹여야 했으니까 말이다.

하루 종일 이어진 작업 끝에 나는 결국 탈진하고 말았다.

한숨 자야겠는걸···

쾅!

몬스터 하나가 함정 안으로 떨어졌다.

나뭇가지가 부러지고 잎사귀가 부스럭거리는 반가운 소리에 소리에, 나는 화들짝 놀라서 일어났다.

설마 새끼 지네 한 마리는 아니겠지.

이제 지네 한 마리는 반갑지도 않았다.

나는 타이니를 쿡쿡 찔러 깨운 뒤, 여섯 개의 다리를 부지런히 놀려서 함정으로 향했다.

일단 함정에 사냥감이 걸려들면 시간이 관건이었다.

더 빨리 갈수록 적이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 못했을 때 선제 공격을 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크아아앙!

귀를 찢는 포효 소리가 비밀 통로 안을 쩌렁쩌렁 울렸다.

포효 소리가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마치 물리적인 힘처럼 나를 강타하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나는 갑자기 피가 차갑게 얼어붙는 느낌이었다.

대체 어떤 놈이지?!

함정에 가까이 다가가자, 비밀 통로 안쪽을 노려보는 몬스터의 커다란 머리통이 보였다.

놈의 덩치는 함정 안의 공간보다 훨씬 커 보였다.

보아하니 앞발로 함정이 있는 자리를 딛었다가 그대로 고꾸라진 모양이었다.

상체가 구덩이에 거꾸로 박혀 있으니, 놈의 엉덩이는 함정 밖에서 하늘을 향해 솟아 있을 터였다.

저렇게 무서운 몬스터만 아니었으면 재미있는 광경이었을 텐데···

놈은 곰이었다.

거대한··· 아주 거대한 곰.

보기만 해도 흉폭한 두 눈 주위에는 초록색 줄무늬가 들어간 흑갈색 털이 빽빽했다.

놈이 주둥이를 벌리고 다시 한번 울부짖었다.

나는 곰이 표출하는 분노에 압도당해 그대로 굳어버렸다.

세상에나!

곰은 내 머리통 만한 두 개의 앞발로 땅을 마구 할퀴고 파헤치며, 몸뚱이를 구덩이 밖으로 밀어내려고 애썼다.

날카로운 발톱이 함정의 벽에 길다란 자국을 남겼다.

그··· 

함정에 빠진 몬스터를 꼭 전부 사냥해야 한다는 법은 없잖아?

사실 개미가 곰을 상대로 싸운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지.

이 친구는 그냥 보내줘도 될 것 같은데···?

내가 분노한 곰을 보며 망설이고 있는데, 뒤쪽에서 발을 끌며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듣자 내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냐, 하지 마.

좀···

지금은 아니야.

하지만 내가 마음 속으로 외치는 소리는 타이니에게 닿지 않았다.

녀석은 쏜살같이 내 곁을 지나쳐 달려갔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