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개미로 환생!-96화 (96/387)

정신 마법이로군! 

나는 여왕의 마법을 밀어내기 위해 애썼다. 

여왕이 공격에 성공한다면 얼마나 무서운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다. 

나를 그냥 죽일 수도 있지만··· 

내 정신을 조종할지도 모르니까. 

정신 마법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알 수 없었다. 

으아, 진짜 아프잖아! 

내 머리 속에서는 계속해서 싸움이 벌어졌다. 

이 고통이 영영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정신이 산산이 부서지는 기분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나를 공격하던 모든 힘이 사라졌다. 

시야가 돌아오자 놀란 얼굴로 쓰러져 있는 인간 여왕이 보였다. 

작은 개미 한 마리가 여왕의 발목을 물고 있었다. 

바이브였다!

불길

여왕은 나만큼이나 싸움에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바이브에게 물리자, 집중력을 잃고 한 순간 공격을 멈췄다. 

지금이 기회다! 

나는 턱을 크게 벌리고 치명적인 일격을 날리기 위해 여왕에게 다가갔다. 

원래는 인간의 여왕을 살려두려 했었다. 

첫째로는 보복이 두려워서. 

만약 우리가 인간들의 여왕을 죽인 무리로 낙인이 찍히거나, 사람들이 여왕의 흔적을 추적해서 우리를 발견하기라도 하면 큰 문제가 생길 수도 있었다. 

그런 일이 벌어지면 최소한 다른 곳으로 도망쳐서 새로운 둥지를 만들어야 할 텐데, 그리 달가운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둘째로는 정보가 필요해서였다. 

이번 기회에 정신 마법 스킬의 레벨을 올린 뒤, 여왕을 안전하게 풀어주는 대가로 이 세계와 주변의 환경에 대한 정보를 얻을 계획이었다. 

정보 획득은 나한테는 아주 중요한 일이었다. 

인간 하나를 포로로 삼아서 얻을 수 있는 지상 세계에 대한 지식은 내게 보물과도 같았다. 

도시들의 위치, 문화, 던전, 마법, 무기를 이용한 스킬 등등··· 

알고 싶은 것들이 너무나 많았다. 

정보가 곧 힘이다! 

운 좋게 심문할 수 있는 인간이 생겼는데 그 기회를 놓치기는 싫었다. 

하지만 그 인간이 정신 마법을 사용한다면···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마법으로 다른 개체의 정신을 지배하면 어떤 일까지 가능할지 누가 알겠는가! 

적어도 나는 알지 못했다. 

그래서 너무 위험했다. 

일단 숨통을 끊어 놓고··· 

여파는 나중에 고민하는 편이 나았다. 

정보는 위에 잡아 놓은 인간 전사로부터 캐낼 수도 있을 테니까. 

물론 자기가 섬기는 여왕을 죽인 개미에게 순순히 정보를 내주지는 않을 것 같지만 말이다. 

[잠깐, 몬스터!] 

그때 절박한 목소리가 내 머리 속에 울렸다. 

나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내 턱이 여왕의 목을 자르기 직전이었다. 

여기서 턱만 다물면 끝이었다. 

···좀 어색한 순간이로군. 

인간 여왕과 나는 서로를 응시했다. 

마나 감지를 통해, 여왕이 소포스 포르모가 나와 소통하기 위해 만들었던 것과 비슷한 연결 고리를 서둘러 만들고 있는 걸 파악할 수 있었다. 

하지만 포르모의 연결 고리가 금실로 정교하고 섬세하게 짠 느낌이라면··· 

여왕이 만들고 있는 고리는 마치 양말을 꿰매는 것처럼 조악한 솜씨였다. 

하긴 이런 극단적인 상황에서 사용하는 마법이니 당연할지도 몰랐다. 

제대로 양방향 소통이 가능한 고리를 만들어 내기만 바랄 수밖에. 

···하지만 내가 뭐라고 해야 하지? 

이 인간은 경의와 존중에 익숙한 지배자였다. 

그러니 제대로 의사 소통을 하려면 나 역시 예의를 차려야 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동시에 내 머리 속을 찌르려고 했던 적이기도 하니까, 지나치게 공손할 필요는 없겠지. 

[말해라! 아니면 죽던가!] 

좋아. 

이 정도면 아주 균형 잡힌 대응인 듯했다. 

무시무시한 던전 몬스터와 마주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여왕은 비교적 침착한 태도를 유지했다. 

하지만 내 목소리가 머리 속에 울리자 깜짝 놀라더니 한동안 다음 말을 골랐다. 

[어떻게 내 말을 이해하는 거지?] 

마침내 여왕이 놀랍다는 듯 그렇게 물었다. 

···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내가 과거에는 인간이었다고? 

이 육체로 환생해서 최선을 다해 몬스터 개미의 삶을 살아가는 중이라고?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지도 모르면서 말을 걸었다는 건가?] 

[네가 내 정신 칼날에 저항하는 걸 보고, 몬스터가 그렇게 강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다니 이상하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어차피 곧 목이 잘릴 상황이라 말을 한 번 걸어봤다.] 

그럴 만도 하지. 

아마 대부분의 몬스터들은 그런 정신 공격을 버티지 못할 터였다. 

사실 나도 엄밀히 따지면 저항에 성공한 건 아니었다. 

바이브가 나를 구해주기 전까지 겨우 버티고 있었을 뿐이지. 

바이브는 여전히 여왕의 발목 근처를 지키고 앉아서 위협적으로 턱을 흔들고 있었다. 

내가 곧장 여왕을 죽이지 않아서 불만인 듯했다. 

흠··· 

어쨌든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 텐데. 

오랜만에 인간과 대화를 하려니 어렵군. 

어쨌든 최대한 예의를 지키도록 해보자. 

[내가 왜 널 살려둬야 하지?] 

잘했어. 

여왕은 내 말에 또다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한참 지나서야 대답했다. 

[너희가 원하는 게 뭐지?] 

하! 

질문에 질문으로 대답을 하시겠다? 

하기는 몬스터 개미 둥지가 살아 있는 인간 여왕에게 뭘 원하는지 궁금하기는 하겠지. 

[너희들은 내 가족을 공격했고, 여왕님을 다치게 했다. 그리고 백 마리도 넘는 내 형제 자매들을 죽였지. 우선 이 침략 행위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싶다.] 

너무 강압적으로 들리지는 않았겠지? 

전생에서도 사람들과 대화하는 일은 늘 어려웠다. 

그래도 어찌어찌 적당한 말투를 선택한 듯했다. 

[나와 내 부하들은··· 도시를 탈출하는 길이었다.] 

인간 여왕이 내가 교회 언덕에서 봤던 도시가 있는 방향을 가리켰다. 

[그러다가 네··· 형제 자매들과 우연히 마주쳤지. 처음에는 한 마리였지만 계속 나아가니 더 많은 수가 있더군.] 

그리고 너희는 전투를 시작해서 수많은 개미들을 죽였지! 

그냥 물러나서 다른 길로 갔다면 이런 상황도 없었을 것 아냐! 

[개미들은 자신의 집과 가족을 지키려 했을 뿐이다. 너희가 저지른 죄의 대가로 두 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처형했다. 하나 남아 있는 네 부하와 함께 살아서 인간들에게 돌아가고 싶다면 순순히 내 질문에 대답해야 할 거다.] 

[···무슨 질문 말이지?] 

오, 엄청나게 많은 질문들이 있지. 

그렇게 기나긴 심문이 시작됐다. 

마을에는 열광적인 분위기가 가득했다. 

베인이 주민들을 이끌고 위협적인 몬스터 개미의 침략을 멋지게 물리친 뒤로 며칠이 지났다. 

그 사이 마을 사람들의 가슴 속에는 전에 없던 불꽃이 뜨겁게 타올랐다. 

이야기는 사람들의 입을 거칠수록 점점 과장돼서, 한 마리의 개미가 다섯 마리, 다시 쉰 마리로 늘었다. 

주민들은 순수한 영혼으로 사악한 주문을 이겨냈다. 

신실한 마음과 무기의 힘으로 승리를 쟁취한 것이다. 

마치 대격변 당시의 전설적인 던전 탐험가들처럼 말이다! 

다음날이 되자 소문은 말게이트 마을 인근의 다른 촌락과 농장들까지 퍼져 나갔다. 

‘길’의 교회에 던전이 열렸다. 

그 안에서 나온 몬스터는 주민들을 해치지 않았다. 

이는 분명 마을이 신의 선택을 받았다는 계시였다! 

마을 주민들에게 던전은 특별한 장소였다. 

도시 밖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던전 입구도 구경해본 적이 없었다. 

퇴역 군인이나 은퇴한 용병이 아닌 이상 직접 던전에 들어가본 경우는 더욱 찾기 어려웠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던전 몬스터는 신화나 전설 속의 존재와도 같았다. 

지상의 몬스터보다 훨씬 더 사납고, 강하고, 영리한 괴물들! 

농부와 상인들에게 던전에서 나는 자원들은 금이나 다이아몬드만큼 귀했다. 

평생 만져볼 일이 없는 물건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수도 인근의 작은 마을에서 던전이 열렸다고? 

마을 주민들이 던전 몬스터와 싸워서 이겼다고? 

경험치를 얻고 레벨이 오른 사람들은 삶이 바뀌었다. 

그야말로 신의 선물이 확실했다! 

시스템의 신 말이다! 

개미들을 상대로 승리한 다음날 아침, 첫 번째 순례 행렬이 말게이트를 방문했다. 

밤에는 더 많은 순례자들이 찾아와 마을의 여관을 가득 채웠다. 

더 이상 남는 방이 없자, 사람들은 마을 밖에 천막을 치거나 나무 아래 잠자리를 꾸렸다. 

어린아이, 노인, 농부와 상인··· 

모두가 낡은 무기나 심지어 농기구를 한 쪽 어깨에 걸치고 속속 마을에 도착했다. 

하나같이 먼지를 뒤집어쓰고 지친 모습이지만, 눈에는 믿음의 빛이 가득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의 중심에 베인이 있었다. 

결코 포기를 모르는 사내였다. 

이 사제는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사람들에게 설교를 했다. 

베인의 몸짓은 강렬했고, 걸음걸이는 단호했다. 

목소리는 절대 흔들리는 일이 없었다. 

사제는 군중에게 활기를 불어넣으며, 신의 뜻이 가진 정당성을 전달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베인을 보는 사람들의 눈빛은 더욱 깊고 열정적인 경의로 가득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던전 몬스터들과의 싸움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몬스터들은 마치 지옥에서 올라오는 악마처럼 하나 둘 성당의 구멍으로 기어 나왔다. 

던전 몬스터를 상대로 한 전투는 마을 주민들에게 풍부한 경험치를 안겨줬다. 

그들에게 구멍에서 나오는 몬스터들은 악마가 아니라 따끈따끈한 식사와도 같았다. 

던전 몬스터들은 지상의 사냥감보다 훨씬 많은 경험치를 주기 때문에, 싸움에 나섰던 마을 주민은 전투 스킬을 올리고 클래스를 바꿀 수 있었다. 

평범한 사람들은 꿈조차 꾸기 어려운 기회였다. 

“기분이 안 좋아 보이세요, 루서 부인. 무슨 걱정거리라도 있으신가요?” 

에니드 루서는 얼굴을 찌푸리며 어린 하녀를 돌아봤다. 

일은 부지런히 잘 했지만, 그리 영리한 아이는 아니었다. 

하지만 말게이트 같이 작은 마을에서 더 나은 하녀를 찾기도 어려웠다. 

갑자기 어떤 생각이 에니드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릴리, 요즘 네가 어울리는 그 청년 이름이 뭐였지?” 

하녀 릴리는 얼굴을 붉히며 한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건 왜요, 루서 부인? 버톤과 저는 아무 사이도 아니에요.” 

둘이 무슨 사이건 에니드가 알 바는 아니었다. 

“버톤도 요즘 그 교회 무리와 어울리니?” 

그러자 릴리가 존경심으로 눈을 빛내며 말했다. 

“’던전이 선택한 자들’ 말씀이세요?” 

“뭐라고?” 

에니드가 다시 묻자, 릴리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모르셨어요? 베인 사제님이 오늘 아침 그 이름을 말씀하셨어요. 이제 마을 사람들 모두가 그렇게 부른답니다.” 

에니드는 자기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멍청한 하녀를 한참 쳐다보다 이내 고개를 돌렸다. 

이제 마을 주민 몇 명이 전설적인 던전의 용사들이 되었다 이거지? 

데리온이 살아 있었다면 이걸 보고 뭐라고 했을까? 

죽은 남편을 떠올리자, 늘 그렇듯이 마음 속에 슬픔이 차올랐다. 

에니드는 수다스럽게 떠드는 하녀를 뒤로 하고 서재 뒤쪽의 방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는 갑옷과 낡아빠진 수련용 검이 보관대에 놓여 있었다. 

데리온은 저 수련용 검을 던전을 탐험할 때 쓰는 값비싼 마법 무기보다 더욱 소중히 여겼다. 

용병 일을 그만 두고 은퇴하던 날, 데리온은 전투용 마법 무기를 팔고 대신 저 훈련용 검을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진열했다. 

에니드는 한숨을 내쉬었다. 

남편이 은퇴한 직후가 살면서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다. 

에니드는 도시의 사업을 접고 데리온의 고향인 말게이트로 와서 가게를 열었다. 

그리고 남편과 함께 조용한 은퇴 생활을 즐겼다. 

5년 뒤, 데리온은 세상을 떠났다. 

“저 사람들이 내게 귀를 기울이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데리온?” 

에니드가 남편의 갑옷에 대고 속삭였다. 

“나처럼 늙은 여자의 말은 들으려고 하지도 않을 텐데.” 

한창 때의 데리온은 아주 우수한 용병이었다. 

검술을 꾸준히 연마한 끝에 “전문 검객” 클래스에 올랐을 정도였다. 

던전 탐험을 나설 때면 추가 수당까지 받았다. 

그래서 데리온이 던전에 대해 말하면 누구도 감히 토를 달지 못했다. 

오랜 세월 우수한 용병과 결혼 생활을 했던 에니드도 강력한 던전의 몬스터들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데리온과 에니드는 늘 서로를 존중했기 때문에, 남편은 자신의 일에 대해서도 숨김없이 말했다. 

덕분에 에니드는 데리온이 던전 안에서 겪었던 위험과 마주쳤던 무시무시한 몬스터들을 잘 알고 있었다. 

반면에 이 마을의 농부들은 던전 안에 얼마나 끔찍한 세계가 펼쳐져 있는지 전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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