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만 들어보면 몬스터 떼가 엄청나게 몰려오는 것 같은데···
과연 정면으로 맞서는 게 잘하는 짓인지 고민하고 있는데, 소리의 정체가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 받은 인상은 우리를 향해 전력으로 돌진하는 이빨의 파도다.
두 번째와 세 번째로 받은 인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저게 뭐야?!
몬스터 수십··· 아니 수백 마리가 주둥이를 크게 벌리고 발톱을 마구 휘두르며 우리를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야?
심지어 저 많은 몬스터들이 서로 싸우지도 않고 이쪽으로만 달려오다니··· 이상하잖아!
[타이니! 아무래도 만만치 않을 것 같아! 전력을 다해!]
내가 왜 중력 폭탄을 준비하지 않았던 거지?!
온갖 몬스터들이 뒤섞인 무리가 우리를 향해 달려왔다.
그림자 몬스터, 임프, 돼지 그리고 심지어 다리 달린 식물형 몬스터들도 달리고 있었다!
왜 저것들이 갑자기 같은 편처럼 구는 거냐고···
그리고 아까부터 느껴지는 압력이 여전히 보이지 않는 손처럼 우리를 짓누르고 있었다.
어쨌든 더 이상 주저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어디 한 번 해 보자!
개미의 힘을 느껴봐라!
중력 창!
중력 화살!
중력 화살!
나는 세 가지의 주문을 동시에 발사했다.
중력 창과 화살들은 보라색으로 빛나며 쏜살같이 날아갔다.
몬스터들은 통로를 가득 메운 채로 달려오던 중이라, 어디로 피할 공간도 없었다.
가장 선두에 있던 그림자 몬스터의 가슴팍에 창이 정통으로 꽂혔다.
잠시 후 주문이 활성화되면서 구체가 퍼져 나가자 주위의 몬스터들이 즉시 끌려갔다.
거의 열 마리도 넘는 몬스터들이 중력이 닿는 범위 안에 있었다.
예상치 못한 힘이 가해지자 몬스터들은 당황하다가 넘어졌다.
그리고 뒤이어 달려온 몬스터들에게 그대로 짓밟혔다.
앞서 넘어진 놈에게 걸려서 넘어진 몬스터들도 역시나 뒤따르는 무리의 밑에 깔려 압사하고 말았다.
[···처치했습니다.]
[···처치했습니다.]
두 발의 중력 화살은 각각 다른 몬스터에게 명중해서 놈들을 아래로 끌어당겼다.
화살에 맞은 몬스터들은 그대로 넘어졌다가 뒤따르던 놈들에게 무참히 짓밟혔다.
그렇게 대여섯 마리 몬스터들이 죽었지만 다가오는 몬스터 무리의 수는 전혀 줄어든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좀 더 강한 무기가 필요하겠는데!
나는 보조 뇌 두개를 동시에 사용해서 훨씬 더 복잡한 중력장 주문을 준비했다.
둘이 힘을 합치면 좀 어려워도 감당할 수 있겠지!
지금은 원래의 뇌로 작업을 도울 수가 없었다.
당장 벌어질 상황에 대처해야 하니까 말이다.
타이니는 완전히 흥분한 상태였다.
전기가 번쩍이며 녀석의 온몸을 감쌌고, 군데군데 불꽃이 튀었다.
녀석은 정면으로 달려오는 몬스터 떼를 보고도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오히려 거대한 주먹으로 넓은 가슴을 두드리며 포효했다.
몬스터 무리가 내는 소음을 뚫고 들릴 정도로 커다란 사자후였다.
타이니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적들에게 으름장을 놓은 뒤, 곧장 앞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이 원숭이 녀석은 더 이상 기다릴 생각이 없는 듯, 주먹으로 바닥을 짚으며 점점 속도를 올렸다.
한시라도 빨리 싸우고 싶은 모양이었다.
망할 놈아!
[“우리도 타이니와 함께 들어갈 거야! 꽉 잡아!”]
질주!
나는 타이니와 함께 몰려드는 몬스터 무리를 향해 돌진했다.
가까워질수록 수천 개에 달하는 이빨과 발톱들이 점점 커져서 시야를 가득 채웠다.
미쳤군!
완전 아수라장이야!
중력장 주문은?
아직인가?!
쾅!
타이니는 마치 대포알처럼 주먹을 휘두르며 몬스터 무리의 전열과 충돌했다.
몬스터들이 날아가서 벽에 부딪혔고, 타이니는 계속해서 우렁차게 포효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적들의 수는 끝이 없었다!
타이니가 적진을 파고들자, 놈들은 금새 녀석을 둘러싸고 발톱과 이빨, 촉수 등 온갖 수단으로 공격을 퍼부었다.
안돼!
물어서 깨뜨리기!
우직!
나는 스태미나를 쏟아 부어서 만든 2미터가 넘는 에너지 턱으로 몬스터들을 공격했다.
사나운 턱의 무시무시한 힘이 단숨에 놈들의 몸뚱이를 찢어버렸다.
하지만 몬스터의 수가 너무 많았다.
이게 진정한 웨이브인가?
마치 파도에 맞서 싸우는 기분인데!
물어서 깨뜨리기!
물어서 깨뜨리기!
물어서 깨뜨리기!
나는 주위의 몬스터들을 닥치는 대로 죽였지만, 즉시 다른 놈이 그 자리를 대체했다.
타이니는 적들의 무지막지한 수에도 아랑곳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녀석의 온몸을 둘러싼 전기는 아직도 계속 강해지고 있었다.
타이니가 내뿜는 전기가 주위의 몬스터들을 감전시켜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온몸에 계속해서 전기를 흘리며, 타이니는 적들을 향해 무시무시한 주먹을 날렸다.
어떤 몬스터도 타이니의 주먹을 당해내지 못했다.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3미터짜리 고릴라가 휘두르는 주먹을 어떻게 당해낼까?
만약 지구에서 3미터짜리 고릴라를 직접 봤다면···
나는 아마 바지에 오줌을 지렸을 터였다.
육체적인 힘으로는 타이니에 대적할 몬스터가 없어 보였다.
게다가 타이니가 특별히 의식하지 않아도, 온몸을 둘러싼 번개가 다가오는 적들을 감전시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파도처럼 밀려드는 몬스터들은 그걸 보고 타이니와 거리를 벌릴 만큼 영리하지 못했다.
하지만 타이니와 나 모두 적지 않은 피해를 입고 있었다.
우리가 몬스터들을 죽이는 속도 이상으로 새로운 놈들이 밀려들었다.
타이니가 돌진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우리는 몬스터의 홍수 속에 완전히 파묻혔다.
몬스터들은 사방에서 달려들어 발톱을 휘두르고 이빨을 들이밀었다.
공격을 당할 때마다 내 갑각에서 불꽃이 튀었다.
HP가 줄어들고 있었다!
다행히 내 외골격은 충분히 단단했지만, 타이니의 털가죽은 그만한 방어력이 없었다.
녀석의 육체적인 능력치는 공격 쪽으로 지나치게 편중되어 있었다.
몬스터들의 발톱과 이빨이 쏟아지면서, 타이니는 계속 상처를 입고 있었다.
물론 녀석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지만···
빌어먹을 중력장은 아직 멀었나?!
보조 뇌들이 최선을 다해서 복잡한 패턴을 만들고 있었지만, 여전히 중력장 주문은 완성되기 전이었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던 나는 잠시 쏟아지는 공격을 무시한 채 멈춰 서서 정신을 집중했다.
원래 뇌까지 가세하자, 금방 패턴을 완성할 수 있었다.
나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수문을 열어 중력 마나를 불어넣었다.
어서!
주문이···
준비가 돼야···!
됐다!
나는 중력장 주문이 완성되는 순간 즉시 발동했다.
그러자 보라색으로 빛나는 반구가 빠르게 사방 10미터로 팽창해서, 통로를 가득 채웠다.
슈웅!
귀에 들리는 소리와 함께 엄청난 중력이 발생했고, 주위의 몬스터들은 즉시 그 영향을 받았다.
[타이니!]
내가 외쳤다.
그러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차린 타이니가 내 쪽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이 몬스터들은 강한 놈들이라, 중력장 하나로 바닥에 쓰러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움직이고 싸우는 능력이 거의 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그림자 몬스터들은 다른 놈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잘 버티는 것처럼 보였다.
고무처럼 보이는 기이한 근육이 보기보다 더 강력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래 봤자지.
“다 죽여버려어어어어!”
크리니스 각성
타이니가 입을 크게 벌리고 초음파를 내질렀다.
진화 전보다 훨씬 강력해진 음파가 고막을 찢고 들어와서 머리 속을 헤집었다.
아프잖아!
나는 잔뜩 올려놓은 의지 능력치 덕분에 초음파 포효를 듣고도 마비되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주위의 다른 몬스터들은 대부분 그렇게 운이 좋지 못했다.
중력장 안에 붙잡힌 놈들은 두 종류의 디버프를 연달아 당해서 그런지 특히 상태가 좋지 않았다.
물론 중력장 밖의 몬스터들도 힘들어 보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죽여버려!]
우리 둘은 각자 턱과 주먹을 미친듯이 휘두르며 날뛰기 시작했다.
나는 얼굴이 욱신거릴 때까지 물어 깨뜨리기 스킬을 계속 사용했고, 타이니도 거대한 두 주먹을 쉬지 않고 휘둘렀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에도 몬스터들은 계속해서 몰려왔다!
놈들은 곧바로 중력장 안으로 뛰어들면서도 아랑곳 않는 것처럼 보였다.
대체 뭐 때문에 이러는 거지?
[타이니, 일단 물러나서 뭘 좀 먹어! 힘을 회복하라고!]
관건은 우리의 체력이었다.
내가 부상을 덜 당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덩치 큰 타이니에 비해 힘이 달렸다.
물어 깨뜨리기 스킬을 계속 사용하자 체력이 빠른 속도로 바닥났다.
지금도 두 개의 보조 뇌가 중력 분비선에서 계속 에너지를 끌어내 중력장을 유지하고 있었다.
분비선을 업그레이드한 덕분에 체력과 달리 마나가 금방 동날 걱정은 없었다.
내 여섯 개의 다리도 바닥의 마나를 계속 흡수하고 있었다.
다만 그 마나를 중력 에너지로 변환하는 과정은 고통스러울 정도로 느렸다.
타이니는 고개를 흔들었지만, 내 지시를 끝까지 거부하지는 않았다.
녀석은 내 뒤로 물러나서 바닥에 쌓여 있는 바이오매스 더미에 얼굴을 파묻고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뭘 좀 먹으면 타이니의 회복 속도가 빨라지고, 체력도 어느 정도 돌아올 터였다.
[크리니스! 지금은 위험하니까 가서 타이니랑 같이 있어!]
타이니가 내 곁을 스쳐 지나가는 순간, 나는 그렇게 외치며 작은 공 모양의 크리니스를 타이니 쪽으로 튕겨서 보냈다.
그야말로 공격이 비 오듯 쏟아지는 중이라, 혹시라도 크리니스가 맞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크리니스는 아직 성장 중이라 싸울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다.
바이브는 그래도 진화한 몬스터였고, 갑각이 있어서 스치는 공격 정도는 버틸 수 있었다.
타이니가 사라지자 몬스터들이 벌떼처럼 내게 몰려들었다.
대체 몇 마리나 되는 건지, 우리가 수를 조금이라도 줄이기는 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360도를 볼 수 있는 내 겹눈에 주위 360도를 가득 채운 몬스터들의 주둥이가 보였다.
하나같이 나를 물어뜯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모습이었다.
장관일세!
나는 쏟아지는 공격을 갑각으로 버티면서, 기회가 될 때마다 턱을 휘둘렀다.
체력이 완전히 바닥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스킬 사용은 멈추고 대신 턱에 마나를 주입해서 위력을 강화했다.
우직!
우직!
우직!
내 턱이 몬스터를 으깨는 끔찍한 소리와 공격을 당한 놈들이 지르는 괴성이 뒤섞였다.
한 시간은 싸운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실제로는 고작 1분 정도나 지났을까?
머리 속에서 타이니의 성난 목소리가 울렸다.
[싸운다!]
식사를 마친 모양이군!
나는 뒤로 돌아서 타이니 쪽을 향해 쏜살같이 달렸다.
타이니가 나와 교대해서 몬스터 무리 한복판으로 돌진했다.
나는 최대한 타이니 근처에 머물면서 바이오매스를 섭취했다.
온몸에 생긴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재생 분비선도 활성화했다.
타이니가 잘 버텨줘야 할 텐데···
나는 완전히 지친 상태였다.
이번 싸움에서 내 약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정신력은 며칠 내내 싸우고도 남을 만큼 강했지만, 중력 마법만으로는 그걸 전투에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못했다.
최대한 빨리 물 속성 마나 변환을 연습할 필요가 있었다.
다시 전투에 뛰어 든 타이니는 몬스터들을 손에 잡히는 대로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전신을 둘러싼 번개가 주위의 적들을 감전시켜 통구이로 만들기도 했다.
···저 전기는 무한정 나오기라도 하는 건가?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았다.
타이니는 큰 소리로 포효하며 두 손을 머리 위로 번쩍 치켜들었다.
그러자 전신에 흐르던 전기 에너지가 팔을 타고 올라가서 주먹에 모였다.
타이니의 주먹이 어찌나 밝게 빛나는지, 쳐다보기 힘들 정도였다.
전기 에너지가 점점 강해지면서, 내 귀에 이명처럼 일정한 소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소음은 점점 더 높아지더니, 결국에는 들리지 않는 주파수까지 올라가 버렸다.
하지만 귀로는 들리지 않아도 여전히 그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내 더듬이에 난 잔털이 격렬하게 떨렸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