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많은 그림자 야수들과, 상대하기 어려운 커다란 짐승형 몬스터들의 수가 늘어났다.
이전에 봤던 식물형 몬스터의 진화한 형태나, 아예 더 강한 종류로 보이는 식물들도 나타났다.
그 중에서도 어린 나무처럼 생긴 놈이 특히 까다로웠다.
우리가 처음으로 마주친 나무 형태의 몬스터였다.
놈은 가지를 휘둘러 우리를 공격할 뿐 아니라, 땅의 마법까지 사용했다.
좀 더 자세히 관찰하고 싶었지만 타이니가 두 주먹을 동시에 휘둘러서 완전히 으깨 버렸다.
어쨌든 던전의 이 부분에서도 식물 몬스터들이 스폰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 몬스터들도 뭔가 좀 이상했다.
우선 몬스터들과 마주치는 빈도가 너무 적었다.
알 수 없는 압박감을 느낀 순간부터, 통로에 나타나는 몬스터의 수가 적어졌다.
둘째로, 꽤 많은 몬스터들이 우리 쪽이 아니라 통로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우리는 벽에서 생성된 몬스터들이 곧장 아래로 내려가는 모습을 종종 목격했다.
다들 어디로 가는 거지?
누가 우리만 빼 놓고 파티라도 열었나?
그런 놈들을 쫓아가보고 싶기도 했지만, 알 수 없는 압박감이 우리를 짓누르고 있는데 아무 것도 모른 채로 무작정 달려가기는 꺼러졌다.
나는 꽤 오랜만에 진정한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만약 이 알 수 없는 느낌의 원인이 몬스터라면···
아직 눈에 보이지도 않는 몬스터가 이렇게 큰 압박감을 주는 거라면···
대체 얼마나 강력한 몬스터인 걸까?
혹시 그 유명한 가라로쉬인가?!
하지만 그 악어는 리리아 지하에 있다며!
지상 기준으로도 일주일 거리인데···
여기까지 왔을 리가 없잖아?
솔직히 말해서 정말로 그 모든 악어 몬스터들의 어미가 이 근처를 돌아다니고 있다면, 나는 당장 지상으로 도망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내가 극도로 조심하면서도 계속 전진하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가라로쉬가 여기 있을 리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아주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구불구불한 통로는 계속 아래를 향했다.
깊이 내려갈수록 통로가 더 넓어졌다.
중간중간 우리가 지나온 길 말고 다른 통로들도 이 넓은 동굴로 이어지고 있었다.
이 길의 끝에는 분명 뭔가가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우리는 평소보다 느리게 움직였지만, 마주치는 몬스터들이 워낙 줄었다 보니 결과적으로 이동 속도가 굉장히 빨랐다.
웨이브 도중인데 통로가 이렇게 비어 있다는 사실이 어쩐지 불안하게 느껴졌다.
물론 벽에서는 여전히 몬스터들이 계속 스폰되고 있었다.
다만 벽을 뚫고 나오자 마자 어디로 달려가 버릴 뿐이었다.
터널 지도에 따르면 지상에서 약 10km 아래까지 내려왔을 때, 길이 활짝 열리더니 기이한 빛이 우리 앞의 바위들을 비추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개활지인가!?
아까부터 우리를 괴롭히던 압박감이 이제 피부로 느껴질 정도였다.
마치 죽음을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가는 기분이었다.
바이브는 극도로 불안해하며, 내 머리에 매달린 채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그러다 마침내 통로의 벽이 사라지고···
광활한 지하 공간이 우리를 맞이했다.
끝없이 펼쳐진 어두운 늪지대였다.
사방에 물안개가 자욱했고, 버드나무처럼 아래로 축 처진 나무들과 덩굴로 둘러싸인 현란한 색의 꽃들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그리고 악어들.
셀 수 없이 많은 악어들이 있었다.
늪 속에 그리고 드문드문 솟아오른 육지 위에도, 다양한 진화 단계의 악어 괴물들이 득실거렸다.
그 중에는 내가 처음 보는 형태로 변이한 악어들도 있었고···
몇 마리는 정말 어마어마하게 몸집이 컸다.
가장 충격적이면서도 위협적인 사실은 이 개활지에 들어선 순간, 우리를 짓누르던 알 수 없는 압박감이 극도로 강해졌다는 점이었다!
마치 누군가 내 목에 칼을 들이대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심지어 난 목도 없는데 말이다.
이 압박감의 근원이 바로 눈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늪지대 어딘가 정말로 무시무시한 몬스터가 도사리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근처에서 개활지로 이어지는 또 다른 통로가 보였다.
그 통로에서 주기적으로 몬스터들이 나타나, 곧장 늪지대 안쪽으로 향했다.
신기하게도 악어 괴물들은 물론 식물 몬스터들 또한 그 몬스터들을 공격하지 않았다.
마치 뭔가가 이 몬스터들의 생태계 전체를 지배하며, 먹이를 얻기 위해 끊임없이 사냥하고 서로 싸우려는 본성을 억누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분명 이 압박감을 풍기는 장본인일 터였다.
난 저 개활지 안으로 달려가서 그 강대한 몬스터와 하이파이브를 하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지···
하지만 저 몬스터들은 뭔가 다른 영향을 받는 모양이었다.
우리가 통로에서 싸웠던 몬스터의 해일은 여기서 비롯한 걸까?
여기에 몬스터를 잔뜩 모아 놓았다가, 충분히 수가 많아지면 지상을 침략하라고 보내는 걸까?
무슨 목적으로?
어떤 계획으로?
단지 지상을 파괴하려는 걸까, 아니면 뭔가 다른 속셈이 있는 걸까?
그러니까, 만약 내가 수백 살 먹은 거대한 악어 괴물이고···
작은 악어들을 계속 낳고 싶은 갈망으로 가득하다면···
무슨 짓을 할까?
···
음···
폭식?
아니, 아니!
이것보다 잘할 수 있잖아!
생각하자!
악어처럼 생각해 보는 거야!
···
음···
으으음···
몰라 젠장.
멍청한 악어 자식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내가 알 게 뭐야?
하다못해 파충류를 애완동물로 길러본 적도 없는데!
그냥 미친놈이 날뛰는 거라고 생각하자.
가라로쉬가 지상 세계에 열이 받았거나 뭐 그래서 몬스터들을 모았다가 내보내나 보지 뭐...
어쨌든 그렇다 치고.
진짜로 중요한 건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할 거냐였다.
우리는 둥지와 상대적으로 가까운 위치의 개활지를 발견했다.
지상에서 여기까지 이어지는 지름길을 만들 수 있다면, 일개미들이 이 개활지의 자원을 운반하는 시간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터였다.
문제는 어떤 무시무시한 괴물이 저 안 어딘가 자리를 잡고 앉아서 죽음의 기운을 풍기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런 장소에 무모하게 뛰어들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타협을 하기로 했다!
아직 돌아가기로 예정한 때까지 하루 정도 여유가 남아 있었다.
그 정도 시간이면 무모하게 돌진하는 것 말고도 여러 가지를 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심지어 타이니조차 싸우고 싶어하지 않는 뭔가가 있다면···
일단은 피하는 게 상책이었다.
나는 우선 문제의 괴수가 어떤 놈이지 직접 보고 싶었다.
하지만 놈에게 그만큼 가까이 가려면 상당한 노력이 필요할 듯했다.
그럼 일을 시작해 볼까!
우리는 개활지에서 도로 나온 다음, 이미 존재하는 비밀 통로와 이어지는 새로운 지름길을 만들기 시작했다.
정체 불명의 압박감 때문에 받은 스트레스를 달래는 방법으로 개미 특유의 명상법보다 나은 대안이 있을까?
굴파기가 진리다!
진리는 굴파기야!
타이니의 덩치 때문에 통로를 크게 만들어야 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지름길을 팔 수 있었다.
크리니스 덕분이었다!
성체가 된 크리니스는 정말이지 큰 도움이 되었다.
물론 녀석의 전문 분야는 직접 굴을 파는 게 아니라, 이미 파낸 흙을 통로 밖으로 내보내는 일이었다.
크리니스는 촉수의 힘을 발휘해서 한번에 엄청난 양의 흙을 밖으로 옮겼다.
지금 파고 있는 굴 안에서는 길을 찾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크리니스도 혼자서 충분히 이동할 수 있었다.
흙을 밖으로 옮기는 시간이 단축되니, 굴을 파는 속도가 굉장히 빨라졌다.
이런 게 바로 팀이지!
우리는 때때로 휴식을 취하면서, 몬스터를 개활지 밖으로 유인한 다음 통로에서 사냥을 했다.
나는 악어 무리가 지나갈 때마다 타이니를 시켜서 돌을 던지게 했다.
통로 쪽에서 돌이 날아오는 걸 알아차린 악어들은 예상대로 화를 내며 달려왔다.
그러면 우리는 대기하고 있다가 일제히 공격을 퍼부어 놈들을 처리한 뒤, 그 시체로 배를 채웠다.
이런 식으로 몇 차례를 반복하자, 개활지 안을 배회하는 악어 무리들이 더 이상 이쪽 통로로 접근하지 않았다.
이제 사냥감을 유인하려면 개활지 안쪽으로 더 깊이 들어가야 했다.
늪지 탐사
나는 바이브와 펫들이 지름길을 파는 동안, 혼자 늪지대 개활지를 조심스럽게 탐험했다.
녀석들이 이 안의 몬스터를 당해내지 못할 거라고 생각해서 두고 온 건 아니었다.
그저 아직 불필요한 이목을 끌기 싫었을 뿐이다.
심지어 한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스킬도 활성화했다.
바로 은신 개미 모드였다.
다행히 나는 아직도 몸집이 작은 편이었다.
그래서 수풀이 무성하고, 갈대와 언덕이 시야를 가리는 이런 지형에서 은밀하게 이동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모든 감각 기관을 최고 경계 태세로 맞춰 놓은 채,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기어서 이동했다.
그러다가 수풀이 살짝 흔들리기만 해도 움찔하며 걸음을 멈췄다.
긴장된다!
엄청 긴장돼!
머리 위에 예의 알 수 없는 압박감을 느끼면서 오랜만에 혼자 움직이니 온몸의 신경이 곤두섰다.
게다가 주위가 늪지대라는 점도 상당히 불안했다.
물 속에 몬스터가 있을지도 모르고···
바로 곁의 식물이 몬스터일 수도 있으니까.
다행히 열 감지 능력 덕분에 후자 경우는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식물 몬스터는 일반 식물에 비해 체온이 훨씬 높았다.
늪 중간중간 솟아오른 언덕에는 되도록 올라가지 않으려고 했다.
지대가 높은 만큼 눈에 띄기 쉬웠기 때문이다.
가능하면 이 안의 악어들과 식물 몬스터들의 눈 앞에 내 멋진 자태를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낮은 지대를 따라 움직이면서도 최대한 시야를 확보하려고 노력했다.
이 개활지는···
엄청나게 거대했다.
지하에 존재할 수 있는 공간에 대한 내 선입견을 처음으로 깨뜨렸던 숲 개활지보다 훨씬 더 컸다.
천장은 숲 개활지의 두 배 정도로 높았고, 낮게 깔린 물안개와 나무들 너머로는 어떤 벽도 보이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범위만 가지고 판단해도, 숲 개활지의 두 배는 족히 될 것 같았다.
문득 판게라의 반지름이 10,000km 정도라고 했던 포르모의 말이 떠올랐다.
그건 지구보다 훨씬 거대한 크기였다.
지구의 반지름이 6천 킬로미터 정도였던가···
즉 판게라의 부피는 지구보다··· 그러니까···
···
많이 컸다.
아마 그래서 지하에 이렇게 거대한 공간들이 존재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던전 아래로 내려갈수록 개활지는 점점 더 커졌고, 그 중 몇 군데는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규모라고 들었다.
면적만 놓고 보면 아마 지구에 있던 국가들과 비슷한 수준일 터였다.
이 늪지대만 해도 내가 던전의 첫 번째 계층에서 발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개활지의 규모가 아니었다.
이게 잭팟일지, 아니면 내 무덤일지 아직은 알 수가 없었다.
인간 여왕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이런 개활지는 던전의 노다지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더 강한 몬스터, 더 많은 코어, 마나가 깃든 특수한 목재나 석재 같은 자원을 채취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기회가 큰 만큼 위험도 존재했다.
개활지는 갈등과 전투가 끊이지 않는 공간이었다.
지상의 국가들 사이에 개활지의 소유권을 두고 분쟁이 일어났고, 내부에 서식하는 몬스터들도 서로 끊임없이 싸웠다.
어디서나 거물들은 가장 좋은 영토를 원하니까 말이다.
그리고 내 생각에 아무래도 이 개활지에는 악어 괴물들을 이끄는 엄청난 거물이 자리를 잡은 듯했다.
아마 악어들은 이 개활지에서 생산되는 바이오매스를 독점하고 싶은 거겠지?
어쩌면 이놈들이 몬스터를 지상으로 보내는 이유가 단지 인간들을 공포에 빠뜨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을지도 몰랐다.
약한 몬스터들을 곧장 자기네 어미의 뱃속으로 보내서 알의 재료가 되게 만든다거나···
몬스터들이 거대한 악어의 입 안으로 기꺼이 줄지어 들어가는 괴상한 장면이 머리 속에 떠올랐다.
그건 당연히 아니겠지···
여기 몬스터들이 특이하게 조용하고 순종적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설마 제 발로 죽으러 가기까지 하겠어?
아무래도 그 문제는 좀 더 조사가 필요할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조사를 하려면, 우선 이 개활지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사방에 널려 있는 물웅덩이 때문에 주변을 탐색하기가 정말 불편했다.
중간중간 솟아 있는 언덕을 밟고 다니면 발도 젖지 않고 좋겠지만···
그러면 물 속에 있는 열기의 원천을 감지하거나 흐린 수면 아래를 들여다보기도 어려웠다.
결국 나는 계속 웅덩이의 가장자리를 따라 기어 다녀야 했다.
끊임없이 초점 겹눈으로 주위를 경계하면서, 수면 아래를 살피기 위해 정신을 집중했다.
이 개활지에는 식물형 몬스터가 유독 많았다.
우뚝 솟은 빽빽한 나무들의 뿌리는 천 개의 손가락처럼 물 속에서 뒤엉켜 있었고, 그 사이에 나무형 몬스터들이 군데군데 몸을 감추고 있었다.
예전에 지상에서 마주쳤던 나뭇가지들과는 딴판으로 호전적인 놈들이었다.
이 몬스터들에 대해 좀 더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몇 놈을 사냥해서 바이오매스를 섭취해볼 필요가 있었다.
몬스터가 아닌 진짜 나무들도 크기가 엄청났다.
믿을 수 없을 만큼 거대한 나무들이 늪 여기저기 솟아올라, 나뭇가지를 사방으로 뻗고 있었다.
어지간한 거실 면적의 두꺼운 나뭇잎들이 아래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나뭇잎 위에서 뭔가 그림자가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지만, 당장은 올라가 보지 않기로 했다.
좀 더 정보를 얻을 때까지 기다릴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