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주둥이는 두 개라도 목구멍은 하나를 공유하겠지?
그러니 당분간 놈이 불길을 토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산성 용액이 목구멍 안쪽의 부드러운 살을 녹이는 건 물론, 끈적하게 엉겨 붙어서 완전히 막아버릴 테니까.
“크아아! 크롸롸롸!”
악어가 고통스럽게 쉭쉭거리며 몸부림치다가, 급기야 균형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쿵.
거대한 악어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흙 바닥에 충돌했다.
놈은 발톱을 세워서 자신의 목을 있는 힘껏 긁었다.
비늘과 살점이 떨어져 나갈 정도였다.
잠깐···
저거 내가 생각하는 그건가?
악어 색깔이 어쩐지 점점 파랗게 변하는 것 같은데?
그렇다.
악어는 질식으로 괴로워하는 중이었다.
구속 산성 용액이 놈의 기도를 완전히 막아버린 것이다.
화상이 아니로 산소 부족이 거대한 악어의 숨통을 조이고 있었다.
나는 거칠게 숨을 쉬며 누워서 몸을 천천히 재생시켰다.
엉덩이 부분의 갑각이 뜯겨져 나가는 바람에 내장이 바깥 공기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그래도 악어 괴물이 나보다 더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니 힘이 났다.
그리고 마침내···
[레벨 53 가라로쉬 프라이켑토렘을 처치했습니다]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레벨 15가 되었습니다.]
[레벨 16이 되었습니다.]
[레벨 17이 되었습니다.]
[레벨 18이 되었습니다.]
[레벨 19가 되었습니다.]
[레벨 20이 되었습니다.]
[레벨 21이 되었습니다.]
···엉?
지금 7레벨이 올랐다고?
그리고 저 놈 레벨이 53?
대체 몇 번이나 진화한 거야?
지금 단계에서 내가 오를 수 있는 최대 레벨은 40이었다.
그러니까 놈은 나보다 적어도 한 번 이상 진화한 것이다.
아마 그보다 많을 가능성이 무척 높겠지···
맙소사.
그런 괴물에게 덤비고도 살아남다니.
와, 내가 정신이 나갔던 걸까?
겨우 한 번 더 진화한 걸 가지고 세상을 정복이라도 할 것처럼 굴다니.
진정한 강자가 되려면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
물론 저 악어만큼 강력한 몬스터가 흔하지는 않겠지.
적어도 이 층에서는 말이다.
놈은 그저 나이가 많았을 뿐일지도 몰랐다.
하도 오래 살아서 그만큼 경험치와 바이오매스를 모았던 걸지도···
바이오매스.
놈에게서 얼마나 많은 바이오매스가 나올까?
···
꿀꺽.
[타이니, 움직일 수 있겠어?]
타이니는 쓰러진 악어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가볍게 으르렁거렸다.
[와서 좀 먹어. 다리 재생해야지.]
타이니가 두 손으로 몸을 끌며 악어 시체로 다가가는 동안, 나는 크리니스를 찾았다.
[크리니스? 괜찮아? 어디 있어?]
[여기 있어요, 주인님.]
크리니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주위를 둘러보자, 몇 미터 떨어진 곳에 축 처진 촉수 하나가 꾸물거리는 게 보였다.
나는 지친 몸을 억지로 끌고 촉수 쪽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동그란 공 주위에 말라붙은 촉수 다발이 늘어져 있었다.
아무래도 화상을 심하게 입은 것 같았다.
[여기, 내 더듬이를 붙잡아. 음식이 있는 곳으로 데려가 줄게.]
[적은 물리쳤나요?]
크리니스가 물었다.
[그래, 싸움은 끝났어. 어서 가서 먹고 치유해.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
크리니스가 내 더듬이를 잡기 위해 촉수를 뻗었다.
촉수들이 덜덜 떨리는 모습을 보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크리니스는 내 더듬이를 힘껏 잡지도 못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더듬이를 움직여서 크리니스를 땅에서 들어올린 뒤, 악어 시체가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갔다.
“식사 시간인가요, 선배?”
바이브가 명랑하게 물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바이브. 식사 시간이야.”
우리 중에서는 바이브가 그나마 제일 덜 다친 편이었다.
물론 녀석의 갑각에도 아직 치유되지 않은 상처가 길게 나 있었다.
그래도 상처가 많이 깊지는 않아서, 외골격 안으로 내장이 아니라 근육이 보였다.
우리 넷은 그야말로 너덜너덜해진 상태로 거대한 악어의 시체를 향해 기어갔다.
이렇게 늙고 진화 단계가 높은 생물은 얼마나 많은 바이오매스를 갖고 있을까?
나는 조심스럽게 한 입을 베어 물었다.
[새로운 바이오매스의 원천을 섭취했습니다. 가라로쉬 프라이켑토렘. 1 바이오매스를 얻었습니다.]
[가라로쉬 프라이켑토렘의 기초 정보를 잠금 해제했습니다.]
[가라로쉬 프라이켑토렘, 가라로쉬 사령관. 가라로쉬의 자녀 중 가장 진화한 몬스터 중 하나인 사령관은 강력한 근접 전투원입니다. 사령관은 상호보완적인 방식으로 변이한 두 개의 화염 분비선과 강력한 재생 능력, 놀라운 물리적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라로쉬는 다른 자손들을 지휘할 수 있도록 사령관들을 직접 양육합니다. 이들은 또 강력한 오러를 발산합니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가장 진화된 몬스터 중 하나?
그러니까 이만큼 진화한 다른 형태도 있다는 거네?
그리고 이건 또 뭐야?
가라로쉬가 직접 양육한다고?
새끼 때부터 어미의 보호를 받아서 이렇게 크고 강해진 모양이다.
설마 이 놈을 죽였다고 가라로쉬가 복수를 하러 오거나 하는 건 아니겠지?
제발 아니기를···
나는 갑자기 초조한 기분이 되어서, 열심히 악어의 살점을 씹었다.
빨리 상처를 치유하고 이 괴로운 긴장감도 떨쳐버리고 싶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1 바이오매스를 얻었습니다.]
[1 바이오매스를 얻었습니다.]
[1 바이오매스를 얻었습니다.]
···
엄청나잖아!
바이오매스의 밀도가 높다는 게 대번에 느껴졌다.
삼키자 마자 뭔가 묵직한 느낌이 뱃속에 자리잡았다.
대체 무슨 마법을 부렸는지 몰라도, 한 입을 먹을 때마다 바이오매스를 구성하는 재료 자체가 내 몸 속에 쌓이는 느낌이었다.
이건 그냥 음식이 아니었다.
이건 금이다!
그것도 순금!
게걸스럽게 악어를 뜯어먹던 나는, 다른 녀석들도 나만큼이나 정신없이 흡입 중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심지어 바로 조금 전까지 힘없이 늘어져 있던 크리니스조차 무서운 기세로 악어를 먹어치우고 있었다.
질 수 없지!
나는 한 번에 베어 물 수 있는 양을 늘리기 위해 코어에 남은 마나를 턱에 주입했다.
바이오매스는 내 거야!
얌냠냠···
결국 우리는 그 큰 악어를 모조리 먹어 치웠다.
배가 터질 듯이 불렀고, 부상도 빠르게 치유되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그 거대한 악어를 다 먹었는지 모르겠지만···
신기하게도 과식으로 인한 부작용은 전혀 없었다.
사령관 악어가 죽고 놈의 오러로 인한 압박감이 사라지자, 개활지의 생물들이 서서히 활동을 재개했다.
던전에서 웨이브가 시작된 이래 하도 들어서 익숙해진, 몬스터들끼리 서로 싸우며 포효하는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대조적으로 악어 괴물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식사를 마치고 휴식하는 동안에도, 주변에서 악어 비늘 한 장 찾아볼 수 없었다.
아마도 사령관이 발산하는 오러가 사라지자 후퇴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 가설이 사실인지 확인하려면 개활지를 정찰해볼 필요가 있었다.
일단 소화부터 시키고 나서···
소화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거대한 악어 괴물로부터 얻은 바이오매스의 양은 정말 어마어마했다.
진화 단계로 인한 바이오매스 섭취 페널티가 전혀 없는 데다가, 워낙 많은 변이를 한 놈이라···
나 혼자만 310개의 바이오매스를 얻었다.
310이라니!
입이 떡 벌어지는 숫자였다.
아마 다른 녀석들도 비슷한 양을 섭취했을 것이다.
크리니스와 바이브의 경우에는 지금 단계에서 가능한 모든 변이를 한 번에 마칠 수 있을 정도였다.
부러워라!
어쨌든 이번 탐험으로 바이오매스 때문에 받았던 스트레스가 한 방에 해소됐다.
그동안 개활지를 돌아다니며 모은 바이오매스 포인트까지 합치면 무려 400 개였다.
게다가 다음 진화를 하기 위한 레벨도 반 이상 달성했다.
레벨 40이 눈에 보이고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나는 누워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아직 남아 있는 악어 시체를 향해 힘겹게 기어갔다.
솔직히 남아있다 하기도 민망한 수준이었다.
몸을 질질 끌고 이동한 나는 잠시 후 보석 하나를 발견했다.
[호환 가능한 희귀 코어를 발견했습니다. 코어를 강화하거나 몬스터를 재구성하겠습니까?]
희귀 코어라.
특별이 아니라···
희귀.
여태까지 봤던 특별 코어들보다 확실히 더 컸다.
사령관 악어의 시체 한 가운데 놓인 둥근 보석은 사납게 소용돌이 치는 에너지를 머금은 채 붉은 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엄청 귀해 보이는군.
지난 번에 특별 코어를 흡수한 뒤로 계속 나를 괴롭히던 가슴의 통증과 답답함은 이제 거의 사라진 상태였다.
잘하면 원래 계획대로 다음 진화 전에 특별 코어를 하나 더 흡수할 수도 있을 듯했다.
어쨌든···
지금 이 코어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아무래도 내가 사용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이렇게 거대한 코어를 흡수하면 그대로 가슴이 터져버릴지도 몰랐다.
이 귀한 보물을 적절한 처리 방안에 대해서는 좀 더 고민이 필요했다.
또 한 가지 생각해 봐야 할 점은, 특별 코어보다 높은 등급의 희귀 코어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건 곧 희귀 이상으로 강력한 코어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미였다.
아마 가라로쉬는 희귀 코어, 혹은 더 강력한 코어를 가지고 있겠지?
희귀 다음 등급은 뭐지?
전설?
알 수 없는 일이다!
어쨌든 희귀 코어를 흡수면 어떤 추가 진화가 가능할지 상상만 해도 두근거렸다.
상상은 자유니까!
몇 시간이 지나자 겨우 다시 움직일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아직 완전히 회복하지는 못했지만, 치명적인 부상들은 대부분 치유된 상태였다.
지금은 휘귀 코어를 챙겨서 지상으로 돌아가는 편이 가장 좋을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개활지에 몬스터가 늘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도저히 전투를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물론 나중에 다시 돌아와서 악어 괴물들이 확실히 사라졌는지 정찰하고, 더 이상 몬스터 웨이브가 둥지로 밀려오지 않는지도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지쳤지만 승리감에 뿌듯한 채로, 우리는 절뚝거리며 최대한 전투 상황을 피해서 늪지대를 가로질렀다.
개활지를 빠져나와 지름길까지 가는 데에만 여섯 시간이나 걸렸다.
지름길에 도착한 뒤, 나는 재생 분비선을 한 차례 더 활성화 했다.
다행히 이제 엉덩이는 거의 회복된 상태였다.
아직 갑각이 약간 얇은 부분도 있지만···
적어도 내장이 흘러나올 일은 없었다.
이 정도면 훌륭하지.
마침내 개미 언덕이 눈에 들어오자, 나는 밀려오는 안도감을 느끼며 바닥에 축 늘어졌다.
나는 이제 지쳤어요!
너무너무 지쳤어요!
우리는 모두 죽을 고비를 넘겼다.
뭔가 스트레스 해소가 필요했다.
그리고 스킬 연습도 좀 더 해야 했다.
아직도 정확히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주문을 활용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 내게 마법에 대한 조언을 해 줄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의 몬스터는 스킬 연습 따위 신경도 쓰지 않을 테니까···
예전에 인간 여왕과 대화를 했을 때에는 마법에 대해 어떤 질문을 해야 하는지도 정확히 모르는 상태였다.
지금이라면 훨씬 더 유용하고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 텐데.
답답하군!
···어쩌면 에니드가 나를 도와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