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
깨어나는 둥지
나는 여왕 개미와 대화를 마친 뒤, 어린 개미들을 데리고 농장으로 들어갔다.
사실 어머니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었다.
어떻게 보면 기뻐하는 것 같기도 했고, 또 어떻게 보면 화가 난 것 같기도 했다.
솔직히···
나는 어머니와 대면하는 걸 꽤 무서워하고 있던 중이었다.
종족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어머니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짐작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래 종족에 큰 애착을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르니까!
만약 그런데 아이들 중 하나가 아무런 예고도, 허락도 없이 둥지 전체의 종족을 바꿔 버렸다면···
으음, 그런 건 아닌 듯하니 다행이군.
어쨌든 새로운 종족의 ‘창시자’가 되었다는 메시지는 어쩐지 불길하게 느껴졌다.
이유를 꼬집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뭐랄까, 이번 일 때문에 앞으로 내게 뭔가 커다란 변화가 닥칠 거라는 강력한 예감이 들었다.
물론 여태까지 경험을 돌이켜 보면, 내가 뭔가를 잠금 해제했을 때 시스템이 딱히 반응했던 적은 없었다.
그래도 던전에 없던 완전히 새로운 종족을 만든 건 좀 대사건이 아닐까?
하기사 그것도 모를 일이었다.
어쩌면 던전 안에서는 매일같이 새로운 종족이 계속해서 생겨나고, 그 창시자가 나처럼 별 거 없는 존재일 경우 역시 흔할 수도 있었다.
적어도 나는 그러기를 바랐다.
이것 때문에 뭔가 엄청난 후폭풍이 닥치는 사태는 결코 바라지 않았다.
어쨌든 어린 개미들은 드디어 여왕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는 사실에 아직도 흥분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덕분에 열정에 다시 한 번 불이 붙은 모양이었다.
더 이상 한계 이상으로 커진 코어로 인한 고통과 불편을 호소하는 녀석은 없었다.
잘됐군···
이제 훈련 속도가 더 빨라지겠어!
음훼훼훼.
고맙습니다, 어머니!
내 계획은 처음 태어난 스무 마리의 어린 개미들을 철저하게 훈련시키고, 최대한 유리한 상황에서 출발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거였다.
마치 예전에 바이브에게 해줬던 것처럼 말이다.
모든 개미들이 처음부터 특별 코어를 가진 상태로 진화하게 한 다음···
베인 사제를 통해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앞으로의 변이와 스킬 성장에 대해서도 지침을 제공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또 잠재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첫 번째 진화에서는 신동 개미를 선택하게 할 계획도 있었다.
바이브의 사례를 볼 때, 신동 개미를 거치면 이후 진화에서 더 많은 능력치를 올릴 수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언젠가 먼 미래에 바이브와 이 스무 마리의 개미들이 둥지 최강의 전력으로 성장하면···
아마 나는 편안히 은퇴해서 애벌레들이나 간지럽히다가, 가끔 어린 개미들에게 ‘라떼는 말이야’를 시전하며 지낼 수도 있을 터였다.
아아···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아무런 스트레스도 없이 사는 삶이라!
이 세계에 처음 태어났을 때만 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평온한 노후였다.
그리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이 스무 마리의 어린 개미들을 무자비하게 굴려야 했다!
던전이 한 번도 목격한 적 없는 슈퍼 개미들을 길러내기 위해서 말이다.
“줄 똑바로 맞춰, 이 꼬맹이들아! 진형을 제대로 갖추라고! 이번에는 지난 번처럼 내가 도와주지 않을 거야! 너희는 진짜 전투를 경험하게 될 거라고!”
내가 그렇게 말하자, 어린 개미들의 눈에 열정이 이글거렸다.
나는 또 뭔가 허튼 소리가 나오기 전에 서둘러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절대로 스스로 위험에 몸을 던지는 짓은 안돼, 젠장! 그런 어리석은 방식으로 적에게 덤비는 놈이 있으면, 나머지 훈련 기간 동안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다른 동료들이 사냥한 몬스터의 경험치나 얻으면서 이기적인 쓰레기처럼 지내게 할 줄 알아!”
“허억!”
해츨링들은 마치 지옥의 불구덩이에서 떨어질 거라는 저주를 들은 것 마냥 기겁했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고?
다른 동료들의 짐이 된다고?
이기적인 쓰레기라고?!
모두 개미 사전에는 있을 수 없는 개념이었다.
마치 종족을 개미에서 배짱이로 바꿔버리겠다고 위협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명심하겠습니다, 선배님!”
“선배님의 지시에 복종하겠습니다!”
어린 개미들이 입을 모아 외쳤다.
아마 조금만 긴박한 상황이 벌어져도 돌발 행동을 하는 놈이 나오겠지만···
일단 지금은 내 말을 알아들은 것 같았다.
“저번에 연습한 대로만 하면 돼. 방 안에 들어가자 마자 빠르게 대형을 갖춘 다음, 엉덩이가 적을 향하면서도 상대를 계속 시야에 둘 수 있는 위치에 자리를 잡는 거야.”
“지난 번에는 꽁무니라고 하지 않으셨나요?”
“같은 말이야! 쓸 데 없이 사소한 부분에 신경 쓰지 말고 어서 들어가! 빨리! 빨리!”
어린 개미들은 오직 무리 생활을 하는 곤충에게만 가능한 유기적인 협조성을 보이며, 동시에 농장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재빨리 천장에 자리를 잡은 뒤, 아래에서 정신없이 싸우고 있는 몬스터들을 향해 산성 용액을 퍼부었다.
물론 나는 속임수를 썼다.
말로는 도와주지 않겠다고 했지만, 가장 강하고 멀쩡해 보이는 놈들을 골라서 내 구속 산성 용액을 발사한 것이다.
이래야 다음 단계가 쉬워질 테니까···
“산성 용액이 다 떨어지면 보고해!”
“저는 떨어졌습니다, 선배님!”
“저도요!”
“저도요! 적에게 몸을 던져서 탈출로를 확보할까요?”
“그러지 말라고 분명히 경고했지! 세 번째 경고는 없을 거야, 알겠어? 이제 적들이 많이 약해진 상태니까, 대열을 이루고 진격한다. 근접 전투를 벌이는 거야!”
어린 개미들은 나를 필두로 진형을 짠 뒤, 천장에서 벽을 거쳐 바닥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가장 가까이 있는 몬스터들과 전투를 시작했다.
이미 어린 개미들에게는 다양한 물기 스킬들을 구입한 다음, 각 스킬의 레벨이 비슷한 수준으로 오를 수 있도록 신경 써서 연습하라고 지시해둔 상태였다.
최대한 빨리 모든 물기 스킬을 3단계까지 올려서 융합하기 위해서였다.
정작 나는 4단계에서 융합하기 위해 버티는 중이지만···
3단계와 4단계의 융합 스킬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확인해 보는 것도 흥미로울 듯했다.
어린 개미들은 1단계에 불과한 물기 스킬들을 사용해서 열심히 몬스터를 공격했다.
한 마리 한 마리가 가하는 피해는 굉장히 미미했지만,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 그대로였다.
몇몇 녀석들은 빠른 학습 능력을 발휘해서, 내가 이전에 언급한 전술을 사용하는 중이었다.
내 왼쪽에 있던 개미들이 잽싸게 움직여서 적을 포위했을 뿐 아니라, 그 뒤에 있던 개미들이 동료의 몸 위로 올라가 적을 위쪽에서 덮치는 새로운 각도의 공격을 시작했다.
인간 병사라면 서로의 어깨를 밟고 올라가서 전투를 할 수는 없겠지···
하지만 개미들은 아무런 문제도 없이 서로에게 발판을 제공할 수 있었다.
지구의 개미 중에서는 자신들의 몸으로 살아있는 둥지를 만드는 종도 있었다.
그러니 서로를 밟고 올라가는 정도는 개미에게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었다.
어린 개미들은 이런 식으로 수적인 우세를 활용하는 법, 강력한 몬스터를 상대하는 법을 차근차근 배워가고 있었다.
그러다 상황이 조금 꼬인다 싶을 때면 내가 나서서 약해진 적을 단숨에 처리했다.
농장을 싹쓸이한 뒤, 어린 개미들이 바이오매스를 섭취하고 변이를 구입할 수 있도록 잠시 기다렸다가 곧장 다음 농장으로 이동했다.
그런 뒤에는 또 그 다음 농장, 또 다음 농장···
계속해서 전투와 바이오매스 섭취를 반복하다 보니, 모든 부위를 +5까지 업그레이드한 개미가 하나 둘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녀석들에게 나머지 바이오매스를 여왕에게 가져가라고 지시했다.
어린 개미들은 여왕에게 식량을 바칠 수 있다는 사실에 엄청나게 기뻐하면서 그 자시를 따랐다.
그렇게 모든 농장을 정리하고 나서야 마침내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다.
모든 개미들이 변이를 완료한 상태로 레벨 5가 되었다.
피곤하지만 뿌듯한 상태로, 나는 어린 개미들을 이끌고 여전히 타이니가 보초를 서고 있는 내 방으로 돌아왔다.
이때 바이브가 또다른 기쁜 소식을 전했다.
드디어 일개미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말이다.
둥지가 깨어나고 있었다!
나는 어린 개미들을 방에 몰아 넣고 타이니에게 감시를 맡겼다.
그런 다음 일개미들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바이브를 찾았다.
바이브는 갓 태어난 이백 마리의 유충들 주위를 부산스럽게 돌아다니며, 어린 개미들이 가져온 식량을 내려놓고 있었다.
굶주린 애벌레들에게 밥을 먹이기 위해서였다.
이런!
평소에는 유모 개미들이 보육실에 상주하며 애벌레들을 돌봤다.
하지만 모두 기절하듯 잠들어 버린 지금은 아기들의 식사를 챙겨줄 개미가 없었다.
그나마 바이브가 먼저 깨어나서 다행이었다!
물론 그 짧은 시간 동안 유충들이 굶어 죽을 리는 없지만, 식사 사이의 간격이 너무 벌어지면 그만큼 발달이 늦어질 터였다.
개미의 발달 과정 중에서 유충 시기의 성장은 주로 음식을 먹는 양에 달려 있었다.
애벌레가 할 줄 아는 일은 그저 먹고, 먹고, 먹는 것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많이 먹고 몸을 불릴수록, 더 빠르게 번데기를 짓고 둥지의 진정한 일원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바이브! 일개미들은 좀 어때?”
“잠깐만요, 선배! 애벌레들 밥부터 먹여야 해요!”
바이브가 전속력으로 내 옆을 스쳐 지나가며 소리질렀다.
“다 먹인 것 아니었어?”
“아뇻!”
젠장, 여유 부릴 때가 아니었다.
나도 나서서 도와야지!
내가 여왕의 방에 가득 쌓여 있는 식량을 보육실로 운반하자, 애벌레들은 곧바로 꼬물거리며 모여들었다.
비록 뭔가를 먹기에 적절한 구강 구조는 아니지만···
식사를 향한 열정만큼은 뜨거웠다.
나는 식량을 운반하면서 바이브에게 상황을 물었다.
“일개미들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하는 걸 봤어요. 가장 많이 진화한 개미들, 그리고 제가 데리고 다니던 개미들이 가장 먼저 움직였고요.”
바이브가 쾌활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개미들이 어디 있는데?”
“아! 여기저기 있죠!”
"···."
아마 그런 개미들이 둥지의 여러 방에 흩어져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여기저기 돌아다닌 끝에, 조금씩 움직이는 일개미 하나를 발견했다.
두 번째 진화를 마친, 어떤 종류의 고급 일개미 같았다.
멋진데!
어째서인지 진화수준에 비해 덩치가 조금 작은 것 같기는 하지만···
“하아아··· 으으으으···”
엇!
말을 하잖아!
잠들어 있는 도중에 페로몬 언어 분비선이 생겼다고?
“이봐 친구. 몸은 좀 어때? 잘 잤어?”
내가 물었다.
“나··· 내···”
천천히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며, 일개미가 페로몬 언어로 대화를 시도했다.
“천천히 말해도 괜찮아, 친구. 서두를 필요 없어.”
“내가··· 나는···”
“그래, 네가? 네가 뭐?”
“내가··· 둥지를··· 위해··· 죽었나?”
“···아니.”
“···젠장.”
아, 진짜!
설마 또 이걸 반복해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