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개미로 환생!-170화 (170/387)

170

예언

“그래숴 몬스터들이랑 막 싸우는데 막 미친 좀비 떼 같은 거야. 진짜, 뭘로 때려도 죽찌를 않아. 그래숴 그 멍청한 놈을 아예 태워버렸는데, 그게 넘어지더니, 웬 몬쉥긴 벌레가 등에서 막 기어 나오는 거아!”

“도넬란, 이제 그만 마셔야겠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하나도 이해를 못하겠어.”

“나··· 안 취했어!”

“너 취했어. 벌써 15분째 땅콩 그릇을 술잔 마냥 들고 마시려고 하잖아!”

“···그··· 취한거 같기도 해.”

“마법사들은 더 똑똑할 줄 알았는데. 너 이미 한 시간 전에 취했어, 멍청아. 축제 때 보는 고주망태들보다 더 심해. 걷지도 못할 것 같은데.”

도넬란은 눈을 멍하게 뜨고 양 옆으로 몸을 기우뚱거리며 균형 감각을 시험해보았다.

“너가 마따!”

도넬란이 소리쳤다.

“못 걷게쒀.”

미린은 짜증스럽게 툴툴거렸다.

술자리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곳 지하에서 만드는 술은 지상의 술보다 훨씬 강하고 독했다.

그래서 미린은 일부러 천천히 마시면서, 술집의 유쾌한 분위기와 다양한 종족과 계층들이 어우러져 노는 라일레의 문화를 만끽하고 있었다.

그런데 도넬란이 완전히 취해서 주정을 부리기 시작한 것이다.

“저래서 집에는 갈 수 있겠소?”

바텐더가 물었다.

거대한 골가린 바텐더는 밤새 술집을 지키면서도 굳이 덩치를 내세워 손님들을 위협할 필요가 없었다.

2미터 키에, 암벽을 깎아 만든 것 같이 생긴 골가린 종족은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한 손으로 인간 둘의 머리를 박살 낼 수 있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미린은 골가린이 실제로 암석으로 만들어진 종족이 아니라, 피부의 밀도가 굉장히 높은데 색깔까지 회색 빛이 돌아서 돌의 느낌이 날 뿐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제가 부축하고 가죠 뭐.”

미린이 바텐더를 안심시켰다.

“괜찮을 거예요.”

바텐더는 끙 소리를 내며, 아침까지 달릴 준비가 되어 있는 다른 손님들의 주문을 받으러 자리를 옮겼다.

“야, 도넬란. 빨리 일어나.”

미린이 친구의 어깨를 붙잡고 다그쳤다.

“에! 예에!”

도넬란이 비틀비틀 일어서며 중얼거렸다.

한 시간 뒤, 미린은 막사에 도넬란을 던져 넣고 다시 돌아 나왔다.

복도를 걸어 나오는데 벌써부터 문 밖으로 코고는 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오는 길 내내 비틀거리고, 넘어지고, 심지어는 먹은 것들을 게워내는 바람에, 본래 걸릴 시간보다 훨씬 오래 걸렸다.

도넬란은 침대에 눕자 마자 정신을 잃어버렸다.

“즐거운 저녁이었나 보지?”

어두운 복도 끝에서 조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니 아우릴리아 대대장이 장교들이 쓰는 구역에서 일반 병사들의 숙소 구역으로 나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

미린이 어색하게 헛기침을 했다.

“누군가는 즐거웠을 것 같습니다.”

아우릴리아가 웃음을 터뜨렸다.

“놀랍지는 않군. 도넬란은 항상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일에 애를 먹었으니까. 요즘 들어 특히 많은 변화를 겪은 걸 고려하면 이 정도는 예상 범위 내겠지.”

“말씀하신 것처럼 저희 삶이 송두리째 변했습니다. 이제 저희에게는 지상에 돌아갈 집도 없습니다··· 감당하기 어려운 것도 당연합니다.”

대답하는 미린의 말에서 씁쓸함이 묻어났다.

아우릴리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린에게 다가와, 한 손을 젊은 레기온의 어깨에 올렸다.

“우리 모두 지상의 고향과 가족을 잃었다. 일부가 살아 남아 도망쳤기를 바라는 게 우리의 유일한 희망이지. 마나 수위가 다시 낮아질 때 까지는 불와크를 지키면서 더 큰 재앙을 막는 게 우리의 의무다.”

미린은 대대장의 손을 떨쳐낸 후 몸을 돌려 아우릴리아를 정면으로 주시했다.

“그게 언제쯤입니까? 저희는 이곳에 내려온 뒤로 한 시도 전투를 멈춘 적이 없습니다. 여태까지 살면서 죽였던 몬스터들보다 지난 두 달 죽인 몬스터가 훨씬 많지만, 도무지 싸움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요새에서는 전투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저희가 몬스터를 얼마나 많이 죽이든 아무런 차이도 없어 보입니다. 저희가 하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기는 한 겁니까?”

“물론이지.”

아우릴리아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몬스터 하나를 죽일 때마다 그만큼의 위협을 없애는 것이다. 우리가 불와크를 지키는 하루하루가 의미를 가진다.”

“하지만 어째서입니까? 던전의 이 부분을 틀어막는 일이 왜 그렇게 중요합니까? 이게 레기온이 일반적으로 하는 일입니까? 다른 지역에도 이런 방어선이 있습니까?”

아우릴리아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젊은 레기온을 똑바로 쳐다봤다.

미린은 언제나 강했다.

레기온 훈련을 특히 잘 받았을 뿐만 아니라, 감정적으로도 강인했다.

미린이 아니었다면 훈련을 통과하지 못했을 훈련병이 한둘이 아닐 정도로, 동료들 사이에서도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다.

많은 부분에서 아우릴리아 스스로의 젊은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병사였다.

그리고 장차 중요한 역할을 할 인재였다.

아마 아우릴리아 자신보다도.

“에인션트에 대해 아는 바가 있나?”

아우릴리아가 물었다.

갑작스러운 화제 전환에 미린이 눈을 깜박였다.

“잘은 모릅니다··· 그러니까, 대격변 이전의 사람들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니.”

아우릴리아가 고개를 저었다.

“에인션트. 최초의 몬스터들을 말하는 거다.”

미린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 모습을 보자 아우릴리아는 웃음을 참기 어려웠다.

“그런 이야기는 전부 미신이라고 생각하나 보군. 대격변과 함께 나타난 첫 번째 몬스터들이 세상을 거의 파괴할 뻔했다··· 흔한 전설이지. 길의 교회는 사람들이 그런 옛날 이야기들을 잊어버리게 하려고 아주 열심히 노력했다. 좋은 의도로 한 일이지.”

대대장이 한 손으로 복도의 벽을 짚었다.

단단한 돌의 감촉이 느껴졌다.

“수백 년 전, 여섯 번째 스트라타에 진입한 레기온들이 있었다. 몬스터가 아닌 존재로 그렇게까지 깊이 내려간 유일한 사례였지. 다들 미치광이가 될 뻔했지만 어쨌든 살아 돌아왔고··· 돌아와서 우리가 감히 무시할 수 없는 이야기를 전했다.”

“그들이 무엇을 본 겁니까?”

미린이 속삭였다.

던전 아래로 그렇게 깊이 내려간 사람들이 있었다는 건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 정도 깊이에서는 마나의 밀도가 너무 높아, 거의 헤엄을 칠 수도 있을 터였다.

그런 곳에는 대체 어떤 몬스터가 서식할까?

“고서에 기록된 에인션트 몬스터는 총 열 아홉이다. 열 아홉··· 여섯 번째 스트라타에 다녀온 레기온들은 그 중 셋을 목격했다고 증언했어. 헤아릴 수 없는 힘을 가진 거대한 괴물들을. 몬스터보다는 신에 더 가까운 존재들이라고 말했지.

그들이 복귀한 뒤로, 레기온은 에인션트의 비밀을 밝혀내기 위해 전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후에, 전혀 예상치 못한 사실을 발견하게 됐지.”

아우릴리아는 벽에서 손을 뗐다.

그리고 제복에 손을 문질러 먼지를 닦아냈다.

“시스템이 새로운 에인션트를 원하고 있다는 걸. 우리가 알고 있는 에인션트는 총 열 아홉이지만, 가끔 아주 강력한 몬스터들이 지하로 ‘부름’을 받지. 어떻게 부름을 받는지, 그리고 지하에 도달하면 어떻게 되는지는 우리도 확실히 몰라. 알게 되기를 원하지도 않고.

어쨌든 레기온을 비롯한 여러 세력들은 또 하나의 에인션트가 생겨나는 걸 방지하기 위해 정보와 자원을 공유하고 있다.”

“가라로쉬.”

미린이 말하자, 아우릴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커다란 악어는 벌써 오래 전에 부름을 받았지. 던전이 몬스터를 부를 때면, 던전 예견자들이 그 기운을 감지할 수 있거든. 부름이 감지되자 마자, 레기온은 이 지역을 봉쇄했다. 하지만 가라로쉬를 죽이지는 못했다. 놈은 아주 강력한 몬스터라··· 하지만 더 아래로 내려가지 못하게 막는 데에는 성공했지.”

미린은 이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려고 애쓰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다가 문득 떠오른 질문을 꺼냈다.

“에인션트들이 왜 그렇게 큰 문제인 겁니까? 설사 실제로 존재한다고 해도, 수천 년 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새로운 몬스터 하나가 그 대열에 합류하는 걸 이렇게 필사적으로 막아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그럴지도, 아닐지도 모르지.”

아우릴리아가 대답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고, 에인션트의 수가 점점 더 많아지면 두 번째 대격변이 시작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혹은 스무 마리의 몬스터가 판게라를 멸망시킬 거라는 예언이 적힌 고대 문서를 근거로 드는 학자들도 있고. 그게 진짜일지 아닐지 누가 알겠나? 우리는 그저 최선을 다해 막을 뿐이다.”

+

마침내 돌아왔다!

사실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았지만, 스무 마리의 어린 개미들에게 사냥을 시켜 놓고 죽지 않도록 신경 쓰는 일은 그야말로 고역이었다.

비록 녀석들이 놀랄 만한 수준의 전술적인 사고와 오직 개미들에게만 가능한 수준의 조직력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그 머리 속에 아직도 남아 있는 무조건적인 희생 정신과 순교에 대한 열망을 다스리기가 무척 어려웠다.

“하지만 그게 가장 효율적인 전술입니다!”

한 번은 어린 개미들 중 하나가 내게 그렇게 항의했다.

찰싹!

“뭐가 효율적이라는 거야?! 한 마리가 적의 무리 중 다수를 유인해서 나머지가 더 안전하게 성체늑대와 싸우게 하는 작전이? 그건 자살 행위잖아! 어린 개미 하나가 열 마리의 늑대를 상대할 수는 없어! 설사 놈들이 유체라고 해도!”

내게 얻어맞은 녀석이 더듬이로 자기 머리를 문질렀다.

“그게 시간도 아끼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원을 활용해서 손실을 최소화하는 방법입니다!”

녀석이 불평했다.

“의미 없는 자살 행위와는 다릅니다!”

“시간을 아낀다고?”

내가 으르렁거렸다.

“어디 한 번 정말 그런지 보자.”

나는 나머지 개미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그래서 누가 이 자살 임무에 자원할 거지?”

열 아홉 개의 더듬이가 올라왔다.

고개를 돌리니 방금 내게 얻어맞은, 이 작전을 세운 녀석도 더듬이를 들고 있었다.

“그래서 너희 중 누가 미끼 역할을 맡을지 얼마나 빠르고 효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데?”

작전 입안자가 약간 풀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아니··· 아직도 못 알아듣고 있어.”

찰싹!

내가 힘껏 더듬이를 내리치자 녀석의 머리가 땅에 닿았다.

“너희는 아직도 너희의 목숨이 가진 무게를 정확히 모르고 있다는 말이야! 너희에게 투입된 막대한 경험치와 자원, 둥지가 너희에게 한 투자, 너희가 미래에 해낼 수 있는 일들을! 그 모든 걸 고작 한 번의 사냥에 낭비하겠다고?”

나는 나머지 개미들에게 돌아서서 계속 다그쳤다.

“아주 조금만 생각해 봐도, 미끼 역할을 맡은 개미가 생존할 방법을 찾을 수 있잖아!”

어린 개미들이 멍하니 나를 쳐다봤다.

그런 생각은 아예 해 보지도 못한 게 분명했다.

“미리 미끼 역할을 맡은 개미가 들어갈 수 있는 탈출용 굴을 파고 숨을 곳을 만들어 놓거나, 중간에 구덩이 함정을 파거나, 아예 통로를 처음 출발한 지점까지 연결해서 돌아오게 하거나··· 수많은 방법이 있을 텐데··· 아무도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고?”

위협적인 내 목소리에, 어린 개미들 중 몇 마리는 마치 갑각 아래에서 식은땀을 흘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 작전을 사용하기는 하되, 너희가 스스로의 목숨을 돌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에 미끼 역할은 내가 맡겠다.”

“안돼!”

“이런!”

“그 역할은 제 겁니다!”

“전 오늘이 끝나기 전에 둥지를 위해 제 목숨을 바치는 영광을 누리려 했다고요!”

“그래, 그래.”

내가 녀석들을 비웃었다.

“너희는 위험한 역할을 맡을 자격이 없어. 뒷정리나 해!”

“우우!”

어린 개미들이 ‘영광’을 독차지하려 드는 내게 진심으로 야유를 보냈다.

그 뒤 나는 어린 개미들이 작전을 수정한 다음, 내가 달아날 수 있도록 통로를 만들게 시켰다.

사실 나는 달아날 필요가 없지만···

그리고 변경된 작전을 사용해서 사냥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이미 한 차례 진화를 마쳤지만, 어린 개미들은 아직도 빠른 속도로 경험치를 쌓아가고 있었다.

녀석들이 감당하기 힘든 몬스터가 나타나가면 나나 타이니, 크리니스가 나서서 해치운 다음 마무리를 양보했기 때문이다.

다들 위장 업그레이드를 한 덕분에 아무런 페널티도 없이 변이를 위한 바이오매스도 빠르게 축적했다.

결국 고작 하루 남짓한 시간 만에 스무 마리 전부를 레벨 10까지 올릴 수 있었다.

저 금수저 녀석들을 보면서 내가 레벨 10이 될 때까지 했던 고생을 떠올리니···

어쩐지 입맛이 쓰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건 안락한 노후를 위한 투자다!

이 녀석들이 알아서 둥지를 돌볼 수 있게 되면 더 이상 내가 고생할 일이 없을 테니까!

장기적인 관점으로 바라봐야지.

먼 미래를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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