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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회의
주민들이 마을로 돌아가고 나서야 나는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둥지로 복귀하는 길에 이런 일을 처리하게 될 줄은 정말이지 몰랐다.
나는 고개를 돌려, 지휘관 개미이자 이번 소란을 벌인 장본인인 슬론을 쳐다봤다.
[다들 모이라고 해, 슬론.]
내가 으르렁거렸다.
[해둘 말이 있으니까.]
[넵, 선배님.]
슬론이 동기들을 소집하기 위해 서둘러 달려갔다.
나는 스무 마리를 내 방으로 데려가서, 인간들에 대한 몇 가지 설명을 해줄 생각이었다.
사실 이 소동은 녀석들의 잘못이 아니었다.
스무 마리는 내가 마을 주민들과 어떤 관계인지, 장차 인간으로부터 어떤 이득을 취하려 했는지 아는 바가 전혀 없었으니까.
사실 인간들을 건드리지 말라고 미리 당부해 놓지 않은 건 전적으로 내 잘못이었다.
녀석들이야 근처에 바이오매스와 경험치가 넘쳐나니까 당연히 수확하려고 했겠지···
몬스터라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마터면 재앙이 될 뻔했던 소동이지만 다행히 아무도 다치지 않았고···
일개미들에게 마을 주민들을 공격하지 말라는 경고를 전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내 복귀가 조금만 늦었다고 생각하니 갑각 안쪽에 식은땀이 흐르는 기분이었다.
일개미들이 인간들을 죽이지 않고 데려온 이유는, 반항하지 않으니 산 채로 여왕에게 바치면 좋겠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아이들도 섞여 있는 저 일행이 뭔가 기적을 바라며 여왕의 방으로 들어갔다가, 여왕의 턱에 목숨을 잃었다고 상상하면···
속이 울렁거렸다.
지나간 일을 자꾸 생각할 필요는 없지!
일단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했으니, 다시는 비슷한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했다.
하지만 지금은 우선 내 새로운 피조물을 여왕에게 소개할 생각이었다.
타이니와 크리니스를 데리고 둥지를 내려가는 도중에, 쾌활한 안부 인사를 건네는 개미들과 마주쳤다.
상당수가 이번에 새로 태어난 개미들이었다.
“열일하세요, 선배님!”
“지쳐 쓰러질 때까지 일하자구요!”
“안녕하세요 선배님! 일합시다!”
···알았다고.
어휴···
다들 ‘일’개미인 건 알지만, 이건 좀 심하지 않나.
뭔가 개미들이 할 만한 취미나 여가 활동을 만들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포츠를 개발한다거나···
아마 굴파기와 관련된 경기라야 하겠지.
나는 개미들의 일중독에 고개를 흔들며 둥지의 중앙 통로를 따라 여왕의 방으로 내려갔다.
언제나처럼 여왕 주위에는 수많은 개미들이 득실거렸다.
여왕은 대부분의 시간을 이 방 안에서 보내고 있었다.
충성스러운 경호 개미들은 끊임없이 스폰되는 던전 몬스터들을 온몸으로 막아내며, 최대한 많은 바이오매스를 어머니께 전달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어머니!”
나는 바글바글한 일개미들 사이에서 여왕의 모습을 찾으려고 애쓰며 그렇게 외쳤다.
“어서 오거라, 아이야.”
여왕이 따뜻한 목소리로 나를 반겼다.
잠시 후, 일개미들이 양쪽으로 흩어지며 그 사이에서 여왕의 머리가 나타났다.
여왕은 아직도 나보다 두 배는 키가 컸고, 몸길이는 몇 배에 달했다.
작은 버스 크기만한 개미라니, 장관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런 개미가 지구에 나타난다면 엄청난 혼란이 일어나겠지!
“어쩐 일로 이렇게 빨리 둥지에 돌아왔니, 아이야? 탐험을 나갔다고 들었는데.”
여왕이 부드럽게 물었다.
“네, 맞아요! 탐험을 갔다 왔어요! 그러다 아주 유용할 것 같은 뭔가를 발견했는데 어머니의 도움이 필요해서요.”
여왕의 더듬이가 궁금하다는 듯 앞뒤로 흔들렸다.
“내 도움이 필요하다고? 보통은 네가 알아서 잘 해결하지 않니? 별일이구나.”
나를 온화하게 내려다보는 여왕의 목소리에는 웃음기가 묻어났다.
나는 잠시 시간을 들여 그 동안의 경과를 설명했다.
늪지대 개활지에서 식물을 먹고 바이오매스를 만들어내는 몬스터를 찾았는데, 녀석들이 분비하는 바이오매스가 독성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문제없이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진딧물 종족을 직접 설계했다는 내용을 모두 여왕에게 말했다.
“이 충성스러운 진딧물들만 있으면 매번 몬스터들과 싸우지 않고도 둥지에 바이오매스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어요. 사용하지 않던 자원도 활용할 수 있고요. 개활지의 나무는 우리에게는 별 도움이 되지 않지만, 진딧물에게 먹이면 바이오매스를 만들어낼 수 있으니까요!
던전 웨이브가 잦아들면 둥지에 있는 농장에 몬스터가 많이 생겨나지 않게 될 테니까, 이 진딧물들로 부족한 바이오매스 공급을 보충할 수 있을 거예요!”
여왕이 흥미를 보이는 것 같았다.
여왕은 몸을 숙여 타이니가 바닥에 내려놓은 코어를 찬찬히 살폈다.
코어는 둥지의 벽에 가득한 마나 줄기의 푸른 빛을 받아 밝게 빛났다.
“유용할 것 같기는 하구나. 그럼 내가 뭘 해주면 되겠니?”
“어려운 일은 아니에요!”
나는 여왕이 내 말에 관심을 보이자 기분이 좋아져서 그렇게 말했다.
“이 코어는 여왕 진딧물인 진디의 코어에요. 누군가 이 코어를 재구성해서 펫으로 만들어야 하죠. 제 생각에는 어머니가 진딧물 여왕의 주인이 되시는 편이 가장 좋다고 생각해요. 진디가 여기서 여왕님과 함께 있으면, 일개미들이 진디에게 바이오매스를 가져다 줄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럼 진디는 그걸로 새끼 진딧물들을 낳을 수 있고요.
그런 다음 일개미들을 개활지로 보내서 지금 있는 녀석들을 없애고, 우리 진딧물로 대체하라고 하면 돼요. 개활지에 상주하면서 진딧물을 보살피고 바이오매스를 수집하는 개미들이 있어야 하겠지만, 몬스터들이 나무 위로 올라오는 일은 별로 없으니까 안전할 거예요.”
여왕은 가만히 내가 한 말을 생각해보는 듯했다.
원래 자신에게 돌아와야 할 바이오매스의 일부를 다른 종족의 여왕에게 양보하라는 제안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조금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동시에, 여왕은 현명하기 때문에 둥지가 진디에게 제공하는 바이오매스보다 진딧물에게 돌려받을 이익이 훨씬 많다는 걸 이해할 거라고 믿었다.
내가 아는 한에서, 몬스터는 나이를 먹지 않았다.
진딧물들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만 있다면 녀석들은 영원히 둥지를 위해 바이오매스를 생산할 터였다.
물론 하루 만에 엄청난 양을 만들어내지는 못하겠지만···
시간이 지나 진딧물의 수가 많아지면 생산 속도도 빠르게 늘어나겠지.
당연하지만, 여왕은 내 계획이 가져올 이익을 이해할 만큼 충분히 영리했다.
“그렇게 하자꾸나.”
내 제안에 동의한 여왕이 더듬이를 코어에 가져다 댔다.
그러자 코어가 곧바로 빛을 내며 커지기 시작했다.
빛나던 보석이 점차 모양을 갖추고 색깔을 바꾸더니···
이윽고 눈을 깜박이며 앉아 있는 진딧물 여왕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여왕은 새로 생긴 펫이 꽤나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펫을 다루는 법에 대한 내 설명을 듣더니 펫 커뮤니케이션 스킬과 성장 촉진 스킬, 그리고 진디의 상태창을 볼 수 있는 스킬까지 구입하기로 결정한 걸 보면 말이다.
내 생각에는 상당히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펫 커뮤니케이션 스킬이 없다면 여왕과 진디는 아예 소통이 불가능했다.
여왕은 정신 마법을 사용하지 않았고, 진디는 페로몬 분비선이 없으니···
스킬 포인트 하나를 더 써서 펫의 성장이 촉진시키는 것도 여왕에게는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듯 했다.
진디가 빨리 클수록, 진딧물 가축을 더 빨리 생산할 수 있을 테니까.
펫의 상태창 열람은 내가 추천한 스킬이었다.
나는 여왕에게, 상태창 열람 스킬의 레벨이 오르면 나중에는 능력치를 직접 조작하거나, 어쩌면 진화 경로를 선택할 수도 있을 거라는 추측을 전했다.
그러자 여왕 개미는 그 스킬도 곧 바로 구입했다.
진디가 그리 영리하지 못해서 수동 진화가 아예 불가능할 거라는 점을 고려하면 올바른 결정이었다.
스킬 포인트나 바이오매스 사용도 여왕이 대신 선택해 주는 편이 훨씬 더 나을 터였다.
스킬 구입을 마친 여왕은 자신의 새로운 펫을 사랑스럽게 내려다봤다.
초록색 갑각의 조그만 진딧물 여왕은 주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방 안을 열심히 돌아다녔다.
일개미들은 아무런 거부감 없이 진디를 받아들였다.
녀석이 돌아다닐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고, 벽의 위험한 부분으로 다가가면 부드럽게 밀어냈다.
나는 이번 프로젝트의 결과가 대체로 마음에 들었다.
여왕도 펫이 생겨서 기뻐하는 듯했고···
머지않아 진디가 진딧물을 낳으면, 녀석들을 둥지의 가축으로 길들여 키울 수 있었다.
우리는 진딧물을 보살피고 보호하는 대신 소중한 바이오매스를 얻을 터였다.
완벽해!
뇌를 거의 태워버릴 뻔하면서 코어를 융합한 보람이 있었다.
게다가 그런 과정을 경험한 덕분에, 코어 융합의 기술적인 방법론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기도 했다.
하나의 그림을 다른 그림 위에 덮어 씌우면서 붓질 하나하나를 신경 써야 하는 것처럼, 코어를 융합할 때도 한 번에 하나씩 정보를 옮겨야 했다.
그 사실을 알고 나니 소포스의 놀라운 기술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실마리가 잡힐 듯했다.
소포스의 훌륭한 펫들은 아마 두 가지 이상의 몬스터를 조합한 결과가 분명했다.
예전에는 소포스들의 의지 능력치가 높아서, 같은 코어를 가지고도 더 많은 개조를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짐작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의지 능력치가 높은 건 물론이고 코어를 융합하는 기술도 엄청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질적인 두 장의 그림을 합쳐, 완전히 새로운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나는 포르모와 그 동족들에 대해 곰곰히 생각하며, 농장을 지나 내 방으로 돌아왔다.
그러자 어느새 다양한 변이를 거친 스무 마리의 후배들이 모여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스무 마리 외에 하나가 더 있었다.
“안녕-안녕! 잘 지냈어요, 선배?”
“바이브! 간만이네. 네가 데리고 다니던 무리는 어디 두고?”
애벌레일 때부터 나와 알고 지냈던, 다소 과도하게 적극적인 이 개미는 이제 둥지의 강력한 지도자로 성장했다.
심지어 둥지를 위해 탐색을 나설 때마다 데리고 다니는 충성스러운 호위 부대도 존재할 정도였다.
“당연히 다들 자고 있죠! 항상 깨어 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확실해?
어쩐지 네가 태어난 이후로 깨어 있지 않은 모습을 본 기억이 없는데···
정말이라고!
그것보다, 잠시만···
“뭔가 예전과 달라 보이는데, 바이브. 더 커진 거야? 게다가 훨씬 더 공격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혹시 진화했어?!”
“넵! 어때 보여요?!”
바이브가 기쁘게 폴짝거리며 물었다.
드디어 바이브도 세 번째 진화를 마쳤구나!
신동 개미에서, 무슨 병정 개미에서, 마침내 지금의 모습으로!
첫 번째 진화 때 내가 도와주기는 했지만, 그 점을 감안해도 바이브의 성장은 정말 빨랐다.
이제 진화 단계가 나와 똑같잖아!
계속 둥지의 우두머리 노릇을 하려면 나도 성장을 서둘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보다 약한 개미가 되기는 싫다고!
모든 개미들이 계속 나를 ‘선배’로 우러러봐야 해!
내가 바이브와 안부를 주고받는 동안, 스무 마리의 후배 개미들은 커다란 몸집과 강력한 에너지로 공간을 장악하는 바이브를 의식하며 불편하게 몸을 꼼지락거렸다.
“잘 지냈어, 꼬마들아?”
내가 녀석들에게 말했다.
“넵, 선배님.”
어린 개미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하지만 저희는 이제 꼬마 개미가 아니에요, 선배님. 신동 개미도 아니고요.”
힐러 개미인 멘던트가 지적했다.
“나한테는 너희 모두 언제까지나 꼬마야. 너희가 알일 때부터 지켜봐 왔으니까!”
몇몇 녀석들이 항의의 표시로 더듬이를 흔들었다.
내가 자신들을 여전히 어린아이 취급하는 일이 마음에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래봐야 번데기에서 나온 지 이제 일주일이 조금 지난 녀석들인데!
인간이라면 아직 고개도 제대로 가누지 못할 시기였다.
녀석들은 아직 경험이 한참 부족했다.
“좋아, 그럼... 내가 너희들을 교육할 때 미처 짚고 넘어가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 말해주려고 해. 미안하지만 이런 일은 다시 생길 수도 있어. 내가 깜빡하고 말해주지 못한 정보가 더 있을지도 모르거든.”
어린 개미들이 실망스럽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다들 상당히 불만스러운 눈치였다.
미안, 얘들아.
하지만 나도 완벽한 개미가 아니라고!
그래도 최선을 다할게!
“그래서, 인간들의 마을 말인데. 잠깐 그 얘기부터 해보자. 몇 가지 규칙들을 알려줄 게 있거든. 먼저 규칙 1번. 마을에 사는 인간들은 죽이거나 먹지 않는다. 혹시 여기에 대해서 질문 있는 개미?”
스무 쌍의 더듬이가 일제히 공중으로 올라갔다.
“젠장. 알겠어. 누가 먼저 질문할래?”
코어 조작자인 벨라가 앞으로 나섰다.
바이브의 어마어마한 크기 때문에 조그만 몸집이 더 작아 보였지만, 눈빛 만큼은 지성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 ‘인간’들을 죽이면 막대한 양의 경험치와 바이오매스를 얻을 수 있을 텐데요. 그들을 죽이지 않으면 어떤 이득이 있는 거죠?”
많은 더듬이들이 벨라의 말에 동의하며 꼬물거렸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자, 나도 단기적으로는 마을에 있는 인간들을 전부 잡아다 그 바이오매스를 여왕님께 바치는 쪽이 이득일 수도 있다는 걸 알아. 하지만 우리 둥지와 인간들의 공동체가 서로 협력하면 거기서 얻을 수 있는 다른 이득이 있어.
우리 종족 중에서는 너희들이 나이가 많은 편이지만, 실제 살아온 시간은 아주 짧잖아?”
나는 한쪽 다리로 마을 방향을 가리켰다.
“하지만 저들은 수 천년 동안 쌓아온 역사와 지식을 갖고 있어! 바이오매스와 경험치보다 훨씬 중요한 게 바로 지식이야. 저 사람들을 죽이면, 작은 이득을 위해 큰 이득을 버리는 셈이야.
경험치랑 바이오매스는 시간과 노력만 투자하면 다른 곳에서도 충분히 얻을 수 있지. 하지만 장구한 세월에 걸쳐서 축적한 지상 종족들의 지식은 그럴 수가 없다고.
던전, 진화, 언어, 예술, 건축, 제작, 무기, 장갑, 마법, 농사, 교육··· 인간들은 그 모든 분야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 우리가 인간을 공격하지 않는 이유는 그 때문이야.”
“나도 선배의 말에 동의해요.”
바이브가 말했다.
“인간들은 지상에서 몬스터 웨이브가 발생했을 때 우리를 도와서 싸웠어요. 저들이 없었다면 더 많은 개미들이 목숨을 잃었을 거예요. 게다가 인간들이 우리를 공격한 적도 없고요!”
“좋은 지적이야, 바이브. 너도 이제 인간들의 마을에 대한 큰 그림을 보기 시작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