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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선 사령부
둥지와 몬스터 무리의 예상 경로 사이에 위치한 첫 번째 집결지까지 가는 데에는 시간이 꽤 걸렸다.
여러 마리의 일개미들이 나란히 줄지어서 둥지로 정보를 전달하러 가거나, 휴식 시간을 마치고 동료와 교대하기 위해 집결지로 향하고 있었다.
이제 향상된 감각과 지능 덕분에 더 이상 지구의 개미처럼 페로몬 경로를 따라서 이동할 필요가 없는데 여전히 그렇게 움직인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대형견 크기의 개미 수백 마리가 한 줄로 길게 늘어서서 이동하는 장면은 꽤나 인상깊었다.
지구에서 개미들의 행진을 구경할 때와 가장 다른 점은 - 개미들의 크기를 제외하면 - 내가 개미들이 이동하면서 떠드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멈추지 마! 계속 뛰어!”
“할 수 있어! 가, 가, 가!”
“할 일이 산더미야. 늑장부릴 여유가 없어!”
“발톱을 들어! 너는 다리가 두 개밖에 없는 인간이 아니라 여섯 개나 달린 개미라고! 그러니까 일을 세 배는 더 해야지!”
“둥지를 위해 열심히 일하자!”
“둥지를 위하여!”
끝도 없었다.
개미들은 호흡을 사용해서 말하지 않기 때문에, 달리는 속도나 피로도와 상관없이 계속 떠들 수 있었다.
뛰어가면서 서로를 격려하고 응원하는 소리를 계속 듣고 있으니, 내가 몬스터 개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건지 스피닝 수업을 견학하는 건지 헷갈릴 정도였다.
바이브가 여기 있었다면, 분명 가장 열정적으로 고함을 지르며 개미들을 격려했겠지···
오랜만에 녀석과 함께 싸운다고 생각하니 조금 기대가 되기도 했다.
지금 바이브는 자신의 부하들과 함께 둥지에 남아서, 식량을 축적하는 중이었다.
그 작업을 마치는 대로 전선에 합류하기로 했다.
바이브가 직접 나선 이상, 식량을 축적하는 시간이 상당히 단축될 터였다.
그러면 병정개미들이 더 빨리 전선에 합류해서 몬스터 무리를 공격할 수 있을 테고···
물론 우리가 싸우는 동안에도 둥지에 남아 있는 개미들은 계속 사냥을 통해 식량을 확보할 예정이었다.
모든 일이 내 생각대로만 진행되면, 전투를 계속하는 동안에도 태어나는 개미 수가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이번 위기만 이겨내면, 결과적으로 둥지의 미래는 더 밝아질 수 있었다.
잠시 후 나와 펫들은 마침내 집결지에 도착했다.
공격 부대를 통솔하는 개미들이 모여서 더욱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정찰대를 운영하며 매복을 준비하고 있는 장소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의 아무 것도 없는 듯한 풍경이었다.
나도 페로몬 흔적을 따라오지 않았다면, 여기가 집결지인 줄도 몰랐을 터였다.
개미들이 땅 속에 미니 둥지를 만든 다음, 눈에 잘 띄지 않도록 파낸 흙을 여기저기 뿌려서 가려 놓았기 때문이다.
땅에 뚫려 있는 1 미터 남짓한 지름의 구멍이 둥지의 존재를 알리는 유일한 흔적이었다.
타이니가 들어가기에는 너무 작은 구멍이었고, 나도 잘못하면 몸이 낄 정도였다.
나는 타이니와 크리니스를 잠시 지상에 남겨 두고, 수직으로 뚫린 통로 안으로 들어갔다.
비교적 고요한 지상과 달리 지하에서는 수많은 개미들이 부산스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둥지의 크기를 늘리고, 샛길을 만들고, 은밀하게 드나들 수 있는 비밀 출입구를 만드는 등등의 작업이 한창이었다.
개인적인 공간에 대해 완전히 개미다운 마음가짐을 갖지 못한 나로서는, “사령부”로 이어지는 페로몬 흔적을 따라가는 동안 자꾸 동료 개미들과 부딪히거나 얼굴에 흙을 뒤집어쓰는 일이 상당히 불편했다.
그래서 마침내 제법 넓은 공간에 개미 두 마리만 있는 사령부에 도착하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서 오십시오, 대선배님.”
지휘관 개미인 빅토르가 나를 환영했다.
“첫 번째 공격을 감행하기 직전에 도착하셔서 다행입니다.”
놀라운 소식이었다.
“벌써 공격 준비가 끝났다고? 몬스터 무리가 어디에 있는지는 파악했어?”
빅토르가 고개를 흔들었다.
“몬스터 무리의 위치를 알아보기 위해 우리가 보유한 가장 빠른 정찰대를 보냈지만, 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아마 내일까지는 놈들의 위치를 파악하고 나서 복귀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적이 대선배님께서 저희에게 설명해 주신 돌로 된 흔적을 따라서 이동하고 있다면 말입니다.”
“길이야, 빅토르. 그 돌로 된 흔적은 길이라고 하는 거야.”
빅토르가 더듬이를 흔들었다.
“인간들의 이상한 관습은 아무래도 좋습니다. 어쨌든 저희는 적을 정탐하고 전장을 준비하기 위해 일개미들을 내보낸 상황입니다. 와서 보시죠.”
빅토르는 나를 방의 한쪽 구석으로 데리고 갔다.
그러자 땅에서 약간 솟아오른 납작한 둔덕이, 주변 지형과 흡사한 모습으로 조각되어 있었다.
아까 말한 길과, 인간의 마을들을 나타낸 놀랍도록 정교한 작은 건물들···
한쪽에는 우리 둥지와 피난민들의 마을이 있었고, 멀리 미둠과 다른 인간 거주지까지 표시되어 있었다.
“되게 잘 만들었네, 빅토르. 이런 걸 만드는 스킬이 있는 거야?”
내가 놀라며 물었다.
빅토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슬론과 저는 위치 정보와 지형을 시각화할 수단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같이 턱을 맞대고 고민한 끝에 이걸 완성했죠!”
빅토르는 정교한 지도를 자랑스레 가리켰다.
“그러기 위해서 스킬 몇 가지를 구입해야 했습니다. 정신 시각화나 흙 세공 같은···”
호오···
흥미롭군.
세공 같은 스킬이 있으면 원하는 모양을 쉽게 만들 수 있는 듯했다.
그래서 저렇게 정교한 지도를 만들어낼 수 있었군.
정신 시각화 스킬 이름으로 볼 때, 아마 머리 속에 존재하는 심상을 시각화할 수 있게 도와주는 스킬 같았다.
덕분에 우리는 전장을 한 눈에 살피며 의논할 수 있게 되었다.
영리한데.
“아주 유용해! 이런 지도는 작전을 세우는 일에 큰 도움이 될 거야. 잘했어, 빅토르.”
빅토르는 공을 인정받아 기쁜지 더듬이를 꿈틀거렸다.
다른 개미들은 이 지도의 의미나 가치를 잘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원래 인간이었던 나는 이게 얼마나 유용한 수단인지 잘 알았다.
병정개미에서 지휘관 개미로 곧장 진화하는 경로를 만들어 놓기를 잘한 것 같았다.
사실 대규모 병력을 지휘할 개미들은 그리 많은 수가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에, 진화 경로를 설계할 때 다소 망설이기도 했다.
하지만 슬론과 빅토르를 보니···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때는 병정개미들의 영리함 능력치가 가장 낮다는 점이 걱정되기도 했지만···
지휘관 개미들이 지금처럼만 역할을 해 준다면 아무 문제도 없을 터였다.
지금 우리가 당면한 커다란 위기 상황에도 말이다.
“이 지도에 몇 가지 추가하고 싶은 게 있어, 빅토르. 그런 다음 나는 직접 전선에 나갈 거야. 여기 서 굴을 파는 것 보다는 나가서 싸우는 편이 더 큰 도움이 될 테니까.”
+
나는 다른 개미들과 함께 땅 밑에 웅크리고 있었다.
좁은 통로는 거의 밀실 공포증을 유발할 정도였다.
천장이 머리에 닿을 정도에 좌우로도 몸을 움직이기 어려워서 무척 답답했다.
물론 채굴 스킬 덕분에 통로가 구조적으로 튼튼하다는 사실은 쉽게 파악할 수 있었지만···
그래도 심리적으로 압박감이 느껴졌다.
어쩌면 곧 벌어질 전투가 불안한 탓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내 양 옆의 정찰병 개미들은 아무런 걱정도 없어 보였다.
다들 침착한 태도로, 미동도 하지 않고 적을 기다렸다.
돌처럼 굳건히 서서 공격 신호를 기다릴 뿐이었다.
개미들은 꼬박 이틀 동안 오늘의 공격을 준비했다.
몬스터 무리가 계속 길을 따라 남하한다는 가정 하에, 지휘관 개미들은 둥지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미리 준비 작업이 가능한 위치에서 첫 번째 기습을 감행하기로 결정했다.
둥지의 개미들이 그 어느 때보다 열정적으로 땅을 판 결과, 나와 펫들이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주위가 온통 함정 구덩이로 가득한 상태였다.
일개미와 병정개미들은 길에서 보이지 않는 숲 안쪽의 나무를 턱으로 날카롭게 잘라서 구덩이 바닥에 꽂았다.
그리고 또다른 개미들은 우리가 매복할 땅굴을 만들었다.
얼마 전만 해도 이 일대는 부산스럽게 움직이며 흙을 나르는 개미들로 가득했다.
몬스터 무리가 도착하기 전에 절대로 마무리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대공사였고, 난장판이었다.
하지만 개미들의 저력을 의심하다니, 내가 어리석었다.
통로 안으로 들어오기 직전에 바라본 전장은 수상한 구석이 전혀 없는, 한적한 숲을 우회하는 멀쩡한 도로의 풍경을 하고 있었다.
수많은 함정, 지상부터 지하에 걸쳐 매복하고 있는 개미들의 흔적은 도저히 찾아볼 수 없었다.
“충전을 시작하십시오.”
내 뒤쪽에서 속삭이는 페로몬 언어가 전해졌다.
나는 즉시 두뇌 세개의 정신력을 중력 마나 분비선에 모두 집중했다.
나는 부디 가라로쉬나 카르모도 도마뱀이 땅 밑에서 압축되고 있는 마나를 감지하지 못하기를 바랐다.
내가 통로 입구가 아니라 몇 미터 뒤쪽에 자리잡은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적어도 중력 폭탄을 만드는 동안에는, 적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싶었다.
다행히 그런 노력이 통하는 것 같았다.
나는 꾸준한 속도로 분비선에서 중력 마나를 끌어냈다.
개미들이 가장 가까운 던전 입구와 이 통로를 연결해 놓았기 때문에, 코어의 마나가 소진될 걱정은 없었다.
물론 통로로 공급되는 마나가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둥지에서 여기까지 오는 동안 소모한 양을 다시 채울 정도는 되고도 남았다.
중력 폭탄은 시간이 갈수록 밀도가 높아졌다.
나는 계속해서 폭탄에 마나를 공급했다.
“변화 없음. 충전을 계속하라.”
내 뒤에서 다시 페로몬이 전해졌다.
몬스터 무리의 행동에 변화가 없다는 건, 내 마법 주문이 들키지 않았다는 의미였다.
지금까지는 좋았다.
나는 지상에서 몬스터 무리를 감시하는 개미들만 들키지 않고 잘 숨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탐색 마법의 원리를 제대로 몰랐기 때문에, 나는 되도록 모든 개미들을 철저히 숨게 했다.
다들 이런 땅굴이나 아니면 얕게 판 구멍 안에 들어가 있어서, 설사 하늘에서 내려다본다고 해도 발견할 수 없을 터였다.
중력 폭탄의 밀도가 커질수록 더 많은 정신력이 필요해서, 점점 딴 생각을 할 여유가 없어졌다.
적어도 땅굴 안에서 폭탄이 터지는 바람에 기습에 실패하는 일은 없어야 하니까 말이다.
“준비되면 바로 발사.”
내 뒤의 개미가 밖에서 전해진 소식을 알렸다.
원래 나는 외부의 페로몬을 인지하거나 그 의미를 이해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온 정신이 마치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듯, 강력한 주문에 매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명상 스킬 덕분에 가까스로 동료 개미의 말을 알아듣고 움직일 수 있었다.
방금 전해진 소식은 적이 예상 위치에 도달했고, 따라서 준비가 끝나는 대로 중력 폭탄을 발사해도 된다는 의미였다.
시간이 촉박했기 때문에 빠르게 움직여야 했다.
나는 다리를 하나씩 움직여, 숨겨져 있는 땅굴의 입구 쪽으로 이동했다.
양 옆에서 정찰병 개미들이 나를 땅 위로 밀어 올렸다.
정찰병 개미들은 주문에 빨려 들어가지 않기 위해, 내 살짝 뒤쪽에 머물렀다.
회전하는 검은색의 구체가 내 의식을 완전히 잠식하고 있었다.
폭탄 안에서 끓어오르는 에너지는 당장이라도 내 제어를 벗어날 것처럼 거칠게 꿈틀댔고, 나는 강철 같은 의지와 강한 정신력으로 겨우 구체를 붙들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속도를 높여 땅굴 밖으로 뛰쳐나갔다.
입구를 가리고 있던 풀과 나뭇잎이 흩어지자, 곧바로 적의 무리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망설임 없이 폭탄을 발사했다.
후우우우우웅.
중력 폭탄이 이제는 익숙해진 무시무시한 바람 소리를 내며 날아갔다.
검은 구체는 주위의 공기를 모조리 빨아들이며 몬스터 무리를 향했다.
더 이상 중력 마나를 압축하기 위해 집중할 필요가 없어진 나는, 재빨리 다가오는 적들을 살폈다.
오늘 아주 운 나쁜 하루를 겪게 될 몬스터들이었다.
몬스터들은 마치 좀비 무리처럼 느린 속도로 조용히 도로를 따라 이동하고 있었다.
완만한 언덕에 위치한 땅굴에서 고개를 내밀자, 지평선 너머까지 가득한 몬스터 무리가 보였다.
가라로쉬는 무리의 뒤쪽에 있는 듯,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솔직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병정개미들이 놈의 무시무시한 아우라를 견딜 수 있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몬스터 무리를 덮친 중력 폭탄은 곧바로 엄청나게 부풀어 올랐다.
그리고 주위의 몬스터를 고요한 죽음 속으로 빨아들여 압축했다.
시스템의 알림이 내 머리 속에서 수도 없이 울렸다.
[···처치했습니다.]
[···처치했습니다.]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처치했습니다.]
중력 폭탄은 그 자리에서 꿈틀거리며 계속해서 더 많은 몬스터를 빨아들였다.
무시무시한 바람 소리 외에는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폭탄이 완전히 잦아들기 직전에, 개미들이 공격을 개시했다.
내 주문이 공기를 빨아들이는 날카로운 소리를 듣고 주위 언덕의 땅굴 속에서 병정개미들이 일제히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모두 적을 향해 엉덩이를 내밀었다.
이게 바로 개미의 무기다!
내 주문 때문에 혼란에 빠진 적들의 머리 위로, 수백 마리의 개미가 발사한 산성 용액이 쏟아져 내렸다.
산성 용액은 몬스터들의 몸에 닿는 즉시 살갗을 녹였다.
내 주위의 정찰병 개미들은 대단한 사격 실력을 선보였다.
녀석들이 발사한 산성 용액은 앞쪽의 병정개미들 너머로 엄청난 거리를 날아가, 몬스터 무리 안쪽 깊숙이 떨어졌다.
오 맞아!
나도 그렇게 하려고 했어!
나도 다른 개미들처럼 뒤돌아서 죽음의 액체를 연신 발사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적을 처치했다는 알림이 계속 떠올랐다.
푸슝!
푸슝!
푸슝!
푸슝!
산성 용액이 비처럼 쏟아지는 사이, 마침내 중력 폭탄이 깜박이더니 자취를 감췄다.
주문이 사라지자 적은 비로소 정신을 차린 듯했다.
마치 예상치 못하게 얼굴을 한 대 맞은 거대한 괴물 같았다.
우리의 기습 공격에 당황했던 몬스터 무리가 울부짖으며 돌진해 왔다.
그때 타이니와 크리니스가 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