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개미로 환생!-201화 (201/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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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공격

그 일련의 사건들을 직접 경험할 수 있었던 건 말할 필요도 없이 엄청난 행운이었다.

하지만 내가 그보다 더 가치를 두는, 크나큰 기쁨의 원천은 따로 있다.

바로 그 경험으로 인한 ‘이해’···

즉 그 사건들이 내 삶의 방향성에 미친 영향이다.

시스템이란 무엇인가?

대부분은 신성한 은혜라고 답할 것이다.

특히 ‘길’의 교회가 자리잡고 있는 인간들의 왕국이라면 말이다.

문명의 빛을 야만으로부터 보호하고, 전투를 통해 보다 가치 있는 존재로 거듭날 수 있도록 현명한 자들에게 주어지는 힘이라고.

던전이란 무엇인가?

아마 신성한 섭리라고 답할 것이다.

시스템이 부여한 재능이 발전하고 완성되며, 자격 있는 자들을 가려낸 다음 합당한 대우를 제공하는 시험의 공간이라고 말이다.

그게 바로 ‘길’의 교리다.

하지만 나는 그와 다른 진실을 목격했다.

지금 와서 돌이켜 봐도, 그 진실이 당시의 나를 더 큰 혼란 속에 빠뜨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나는 평생 신실하고 근면하게 살아왔을 뿐 아니라, 또래보다 2년 앞서 졸업할 정도로 사제가 되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이다.

크로닌하임에 위치한 ‘길’의 신전에서 나를 가르친 스승님들은 내게 많은 기대를 하셨다.

하지만 그 분들도 내가 이와 같은 통찰을 얻을 줄은 몰랐을 것이다.

나는 그때 새로운, 다른 ‘길’을 보았다.

교회의 타락과 부패는 세상의 진실을 우리에게 숨겨왔다.

시스템이란 무엇인가?

도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강력한 개인들이 자신의 미래를 개척하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

던전이란 무엇인가?

신성과는 무관한 자연적인 공간이다.

시스템과 마찬가지로 그저 수단일 뿐이다.

나는 진정한 신성을 엿보기 위해 한쪽 팔을 잃었다.

다른 이들이 숭배를 대상으로 삼았던 도구를 연민과 나눔, 보호와 순수의 길을 열기 위해 사용한 생물에 의해서.

그 축복받은 깨달음을 위해, 나는 필멸자들의 손으로 끌어내려진 뒤 신성한 바람으로 다시 날아올랐던 것이다.

- 배교자 베인 나갈릭이 쓴 ‘길의 재구성’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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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 무리가 주위의 낮은 언덕에서 자신들을 괴롭히는 귀찮은 개미 떼를 공격하기 위해 돌진을 시작하는 순간, 타이니가 온몸에서 전기 에너지를 내뿜으며 숨어 있던 장소로부터 뛰쳐나왔다.

타이니는 내가 내린 굉장히 상세하고 구체적인 명령에 따라, 적들 가까이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우리의 계획이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타이니가 수천 마리의 몬스터 무리 한복판에 뛰어드는 일이 없어야 했다.

녀석은 당장이라도 그러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 계획에서 내가 맡은 역할도 있었다!

내 보조 두뇌들은 내가 꽁무니로 산성 용액을 발사하는 사이에 기본 물의 마나 변환 구조물을 완성했다.

그래서 산성 용액 발사를 마치고 돌아서서 몬스터 무리를 마주했을 때, 나는 이미 물의 마나를 끌어내 압축하지 않은 물 대포를 만들고 있었다.

잠시 후 내 턱 앞쪽의 공중에서 세찬 물줄기가 솟구치기 시작했다.

무리의 선두에 있는 몬스터도 나와는 30미터 정도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압축도 하지 않은 물대포가 적에게 의미 있는 피해를 입힐 리는 없었다.

기껏해야 몇 마리를 넘어뜨리는 정도···?

하지만 어차피 내 목적은 놈들을 직접 해치우는 게 아니었다.

내가 뿌린 물줄기가 몬스터 무리를 덮치자, 타이니는 우렁차게 포효하며 육중한 두 주먹을 앞으로 내밀고 전기 에너지를 뿜어냈다.

미세한 안개에 뒤덮인 적들은 굉장히 높은 전도성을 띄고 있었다.

이어서 타이니가 주먹에서 벼락 두 줄기를 뿜어냈다.

수많은 몬스터가 순식간에 전기 구이로 변했다.

하지만 우리의 계획은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니, 몬스터 무리 사이사이로 어두운 그림자가 보였다.

이제 크리니스가 솜씨를 발휘할 차례였다.

타이니가 계속 번개를 날려 몬스터들을 감전시키는 사이, 바닥에서는 검은 촉수들이 솟아났다.

몬스터들은 사람 팔뚝 만한 두께의 검은 촉수에 붙잡히고 나서야 뭔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이내 촉수가 빠르게 움직이며 날카로운 가시로 잔인한 작업을 시작했다.

촉수들은 붙잡고 있는 몬스터의 몸뚱이를 순식간에 해체해서 그 파편과 바이오매스를 사방에 흩뿌린 뒤, 다시 새로운 사냥감을 찾아서 움직였다.

크리니스는 적들의 발 아래, 지하 5미터 깊이의 아주 작고 좁은 땅굴 속에 들어가 있었다.

그림자 마법과 그림자 눈으로 마나 감지 능력의 범위를 확장해, 그 안에서도 땅 위의 전장을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 지상에 끔찍한 광경이 펼쳐졌다.

내 두 펫이 각각 선두의 적을 공격하자, 몬스터 무리의 돌진 속도가 잠시 느려졌다.

하지만 효과가 그리 오래 가지는 못했다.

최대한 빠른 속도로 산성 용액을 발사한 병정개미들은 이제 분비선이 텅 빈 상태였다.

전투를 시작하고 불과 1분이 지났을 뿐이지만, 이제 후퇴할 시간이었다.

마침 그 순간 타이니의 주먹에 흐르던 전기 에너지도 깜박거리다가 사라졌다.

타이니는 실망과 분노로 울부짖었다.

아마 당장이라도 직접 뛰어들어 싸우고 싶겠지만···

내가 이미 엄격한 명령을 내려 놓은 상태였다.

나는 타이니에게 전기 에너지가 떨어지자 마자 곧장 원래 숨어 있는 통로로 후퇴하라고 지시해 두었다.

녀석은 불만스러운 표정을 하면서도 내가 명령에 따라 물러났다.

그 모습을 보고 나서야 나는 긴장을 풀었다.

자살 돌격을 막기 위해 신신 당분을 해 놓았지만, 그래도 타이니는 항상 일을 꼬이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타이니는 땅굴로 돌아가 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반면 크리니스는 여전히 스무 개의 촉수를 마구 휘두르며, 겁에 질린 몬스터들을 갈기갈기 찢어버리는 중이었다.

아무래도 공포 주입 스킬이 효과를 제대로 발휘하고 있는 듯했다.

어떤 몬스터도 감히 크리니스에게 반격할 엄두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병정개미들도 타이니와 함께 땅굴 속으로 후퇴했다.

조금 전까지 몬스터 무리를 향해 산성 용액을 뿌리던 수백 마리의 부대가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개미들이 모두 후퇴하자 크리니스도 촉수를 모두 거둬드렸다.

촉수는 땅 속으로 돌아가는 와중에도 근처의 몬스터들을 몇 대씩 후려쳤다.

곧 전장에는 전열이 완전히 초토화된 몬스터 무리만 침묵 속에 남았다.

물론 그 침묵은 오래 가지 않았다.

정신을 차린 몬스터 떼가 조금 전까지 자신들을 도발하던 개미들을 짓밟기 위해 성난 포효와 함께 돌진을 시작했다.

몬스터들은 이제 입구가 드러난 땅굴 속으로 물밀듯이 밀려 들어왔다.

내가 있는 통로 쪽으로도 수많은 몬스터가 몰려왔다.

정확히 우리가 계획한 대로였다.

개미들이 만든 땅굴은 대부분 천장이 낮고 폭도 좁았다.

타이니 전용으로 파 놓은 통로를 제외하면 커다란 몬스터가 통과할 수 없었기 때문에, 안까지 들어온 놈들은 대부분 지네와 토끼 종류였다.

우리는 땅굴 안쪽으로 50미터 정도 달아나다가, 갑자기 돌아섰다.

좁은 통로가 작은 방으로 넓어지는 공간이었다.

내가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병정 개미들이 방 안에 U자 대형으로 포진한 채 적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몬스터들이 방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자, 사방에서 성난 개미들의 턱이 놈들을 맞이했다.

아니···

사방만이 아니었다.

개미들은 천장과 벽으로도 이동해서 몬스터들을 공격했다.

나는 적의 공세가 집중되는 대열의 한복판에 자리를 잡고 서서, 다이아몬드 갑각으로 몬스터들의 이빨과 발톱을 튕겨냈다.

몬스터들은 수적으로 우세했지만, 땅굴의 좁은 폭 때문에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했다.

통로에서 서로 밀치고 부딪히다가 겨우 방으로 나오자 마자 수많은 물기 공격이 쏟아졌다.

아마 다른 땅굴에서도 비슷한 양상의 전투가 벌어지고 있을 터였다.

개미들의 위험을 최소화하면서 적에게 큰 타격을 입히기 위한 작전이었다.

이제 남은 과제는 안전하게 철수하는 것뿐이었다.

딱!

딱!

나는 동료 개미들과 함께 기계적으로 턱을 다물었다.

적은 그야말로 끝도 없이 밀려왔다.

하나를 쓰러뜨리면 곧바로 다른 놈이 통로에서 나타났다.

어느새 방 안에 바이오매스가 잔뜩 쌓였다.

저걸 먹을 시간이 없다는 게 아쉽군···

5분 정도 치열한 전투를 벌이다가, 개미들이 무언의 신호를 받고 일제히 몸을 떨었다.

그리고 마치 한 몸처럼 일제히 뒤쪽으로 물러났다.

다음 순간 엄청난 굉음과 함께 우리 앞쪽에서 땅굴이 무너져 내렸다.

통로 안으로 들어왔던 몬스터들은 순식간에 생매장을 당하고 말았다.

땅굴이 무너지며 갑작스럽게 전투가 종료되자, 소름 돋을 만큼 고요한 침묵만이 남았다.

이렇게 우리의 첫 번째 공격이 막을 내렸다.

별다른 일이 없다면, 아마 다른 땅굴의 상황도 모두 비슷할 터였다.

나는 주위의 개미들을 돌아보고 사상자가 거의 없다는 사실에 만족했다.

시작이 좋았다.

+

텅스탄트, 빅토르와 멘단트는 작은 방에 모여서 다음 번 정찰 보고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럼 일단 공격은 계획대로 진행된 거네.”

멘단트가 동료들에게 말했다.

빅토르는 한쪽 더듬이를 건성으로 흔들어 대꾸한 뒤, 계속해서 턱을 신경질적으로 딱딱거렸다.

“전투가 우리 의도대로 이루어졌는데 뭐가 그렇게 불안한 거야?”

지휘관 개미가 초조해하는 모습을 바라보던 텅스탄트가 이해하기 어렵다는 듯이 물었다.

“잘된 거 아냐?”

몇 차례 턱을 더 딱딱거린 빅토르가 마침내 텅스탄트를 돌아보며 말했다.

“잘된 일이지.”

빅토르가 인정했다.

“하지만 우리는 가라로쉬나 그 도마뱀 종족의 반응을 확인하고 싶었거든. 그 둘이야말로 가장 큰 위협인데, 아직도 놈들이 얼마나 강할지 전혀 감을 못 잡고 있으니··· 걱정이 될 수밖에.”

“반응할 틈조차 없었던 것 아닐까? 우리가 너무 빨리 치고 빠졌으니까.”

멘단트가 말했다.

작은 체구의 힐러 개미 멘단트는 지난 몇 시간 동안 사령부로 후퇴한 개미들의 부상을 치료했다.

이번 공격으로 발생한 둥지 측 전사자의 수는 극히 적었지만, 그래도 땅굴 안에서 싸우느라 여기저기 다친 개미들이 많았다.

아무리 일방적인 싸움이라도 최전선의 개미들이 다리나 더듬이를 잃는 일까지 완전히 막을 수는 없었다.

몇몇 운 나쁜 개미들은 실제로 목숨을 잃기도 했다.

빅토르는 다시 턱을 딱딱거렸다.

“빠르기는 했지만, 정말 그 정도로 빨랐는지는 잘 모르겠어. 우리가 수집한 정보에 따르면 카르모도는 심지어 대선배님에 비해도 몇 배나 강력한 마법사니까. 그런 적이 반응조차 하지 못했다는 건 납득이 가지 않아.”

“그럼 네 생각은 뭔데?”

텅스탄트가 다소 짜증을 내며 물었다.

돌이나 흙처럼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오는 재료들을 가지고 작업하는 장인 개미라서 그런지, 텅스탄트는 온갖 변수를 놓고 고민하는 지휘관 개미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커다란 도마뱀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무슨 수로 알 수 있단 말인가?

“···모르겠어.”

빅토르의 대답에 텅스탄트가 바닥에 배를 대고 주저앉았다.

멘단트는 좀 더 인내심이 있는 편이었다.

“일단 정찰대가 가져오는 소식을 듣고 나서 더 논의해 보자.”

멘단트가 제안했다.

세 개미는 침묵 속에서 정찰대의 보고를 기다렸다.

물론 대화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전혀 어색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최근 들어서는 점점 드물어진 일이지만, 스무 마리는 서로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걸 상당히 좋아했다.

이들은 바이브를 제외하면 대선배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은 유일한 개미들이었다.

그 사실에 대한 자부심, 그리고 함께 겪었던 많은 일들 덕분에 스무 마리의 개미들은 유독 서로에 대한 우애가 깊었다.

잠시 후 윌스가 보고를 위해 나타났다.

누구보다 빠르게 움직이면서도 결코 서두르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재주가 있는 개미였다.

“다들 내가 보고 싶어서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 그렇게 할 일이 없었나?”

윌스가 키득거리며 말했지만, 빅토르는 농담할 기분이 아니었다.

“어서 보고나 해, 정찰병. 오늘 얼마나 많은 동료들이 전사했지?”

“많지는 않아. 이런 결과가 나오기도 어려울걸”

윌스가 더듬이를 으쓱해 보이더니, 자세를 바로 하고 보고를 시작했다.

“지난 번 보고에서는 우리를 추격하던 몬스터들이 다시 무리로 합류해서 원래 경로를 따라 이동하기 시작했다는 점까지 전달했지. 그 이후로 아직까지 별다른 변동 사항은 없어. 지금까지 파악한 우리 쪽의 전사자는 열 다섯이야. 부상을 당한 개미들은 대부분 무사히 복귀했어. 네가 가르친 힐러들 덕분이야, 멘단트.”

윌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자, 멘단트가 차분하게 더듬이를 내려서 답례했다.

둥지가 보유한 힐러 개미는 아직 스무 마리 정도에 불과했지만, 그 전원이 이번 공격에 동참했다.

힐러 개미들은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동료들에게 치유와 재생의 능력을 사용했다.

“그리고 우리가 죽인 적의 수는 대략 5천 마리 이상으로 추정돼. 아마 거기서 더 늘어나겠지만.”

빅토르가 혼란스럽다는 듯 더듬이를 움직였다.

“무슨 뜻이야? 전투는 이미 끝났는데 왜 죽인 적의 수가 더 늘어난다는 거지?”

“정찰 보고에 따르면, 산성 용액에 맞아서 부상을 당한 채로 살아남은 놈들을··· 다른 몬스터들이 잡아먹고 있는가 봐. 여태까지는 서로를 공격하지 않았지만, 애초에 그렇게 만들었던 자들이 부상을 입은 몬스터들 때문에 이동 속도가 늦어지는 걸 원하지 않는 모양이야.”

전사자 열 다섯이 발생한 대가로 적의 수를 6천 가까이 줄인다면, 숫자 상으로는 엄청난 승리였다.

하지만 방 안에 있는 개미 넷은 모두 입을 다물었다.

“대선배님이 좋아하지 않으시겠는데.”

마침내 침묵을 깨고, 텅스탄트가 말했다.

“대선배님도 필요한 일이었다는 걸 이해하실 거야. 이런 위기를 헤쳐 나가면서 가족을 하나도 잃지 않을 수는 없어.”

빅토르가 다소 방어적으로 대꾸하자, 텅스탄트가 고개를 저었다.

“물론 대선배님도 이해하시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좋아하지는 않으실 거야.”

정예 개미 넷은 자신들의 독특하고 괴팍한 대선배를 떠올리며 다시 침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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