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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가 간다
우리는 이제 넝마가 되어버린 더러운 거미줄 위에 앉아 있었다.
나는 몇 분마다 타이니를 계속해서 치유했다.
하지만 HP가 가득 찰 때까지 치유를 해 놓아도, 조금 있으면 녀석의 HP가 다시 깎이기 시작했다.
이 중독 상태는 시간 제한도 없나?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만약 내게 부활 능력이 있다면, 저 멍청한 거미를 살려낸 다음 다시 죽이고 싶은 기분이었다.
어떻게 내 충성스럽지만 멍청하고, 부지런하지만 어리석고, 강력하지만 바보 같은 펫에게 이런 짓을 할 수가 있지?
한 시간 정도 계속해서 치유 마나를 사용하다 보니,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타이니의 HP는 여전히 조금씩 깎이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스킬 포인트를 써서 치유 마나 친화력 1레벨을 구입했다.
사실 한참 전에 구입했어야 하는 스킬이었다.
어차피 언젠가는 필요했을 테니까···
하지만 무의식적으로 지금까지 구입을 미루고 있었다.
파티에서 힐러 역할을 맡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역할은 다른 누군가에게 넘기고, 나는 깡패처럼 적들을 쳐부수는 일에 집중하고 싶었다.
하지만 치유 마나를 무식하게 쏟아 부어도 타이니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니, 스킬 레벨을 올리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아하!
그럴 줄 알았지.
스킬 레벨을 올리자 치유 마법에 대한 지식이 서서히 내 두뇌를 채우기 시작했다!
새로운 형태의 주문과 흥미로운 활용 방법들이 머릿속에 차곡차곡 쌓였고, 그 중에는 해독과 관련된 지식도 있었다.
나는 귀찮은 상황이 발생한 것에 대해 속으로 투덜거리며, 해독에 필요한 주문을 만들어 아직도 주먹으로 자신의 배를 때리려고 하는 멍청한 침팬지에게 사용했다.
그냥 때리게 놔두자···
치유 마나가 타이니의 몸 속에 스며드는 동안, 나는 한숨을 쉬며 축 늘어졌다.
이제 됐다.
문제 해결.
[다음에는 좀 더 조심해, 이 멍청아!]
내가 타이니를 꾸짖었다.
녀석은 표정을 찡그리며 박쥐 귀를 움찔거리더니, 다시 한 번 주먹을 들어올렸다.
[안돼! 방금 치유했다고! 왜 자꾸 네 스스로를 때리려고 하는 거-]
그런데 타이니의 HP는 여전히 깎이고 있었다···.
빌어먹을!
왜?!
그 벌레 놈이 대체 무슨 수작을 부려 놓고 죽은 거야?!
핵인가?!
아니면 치트키?!
나한테는 그런 거 안 알려 줬잖아, 시스템!
[크리니스! 왜 이런 건지 혹시 짐작가는 거 있어? 그림자 독의 일종이라던가? 이런 스킬을 본 적이 있어?]
[아니요. 그런데 독 같지는 않아요···]
[뭐? 무슨 소리야?]
[자세히 보세요, 주인님. 마나 감지로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내 마나 감지 스킬 레벨은 너만큼 높지 않은데···]
나는 눈이 아닌 마나 감지로 타이니를 다시 한 번 살폈다.
이 분야에서는 크리니스가 나보다 훨씬 뛰어났지만, 나도 그렇게 뒤떨어지는 수준은 아니었다.
마나 감지를 활성화하자 타이니의 몸을 드나드는 마나의 흐름이 세세히 보였다.
녀석의 코어는 밝게 빛났고, 온 몸을 흐르는 에너지는 환하고 생기 넘쳤다.
괜찮은 것 같은데?
어, 잠깐!
갑자기 뭔가가 쓱 지나갔다.
뭐였지?
나는 방금 본 걸 제대로 알아내기 위해 더욱 집중했다.
저기 있다!
교활한 지렁이처럼 타이니의 몸 속을 돌아다니는 그림자 마나 조각!
거미줄은 타이니에게 독이 아니라 주문을 건 것이다!
이렇게 사악할 수가!
상당히 높은 단계의 스킬이나 기술이 분명했다.
역시 아까 그 거미는 꽤나 레벨이 높았던 모양이다.
웨이브가 계속되는 동안 생겨나는 신선한 몬스터들을 한껏 포식한 결과겠지...
이제서야 상황 파악이 된 나는, 타이니가 입는 피해를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림자 마나가 마치 검은 뱀처럼 타이니의 몸 속을 돌아다니며 상처를 입혀서, 녀석의 HP를 떨어뜨리고 있었다.
내가 그 피해를 치유해도, 마나는 계속 녀석의 몸 속에 남아 있었기 때문에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애초에 중독된 게 아니니까, 해독 스킬이 듣지 않는 것도 당연했다!
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좋아, 타이니. 내 말 잘 들어.]
타이니가 박쥐 얼굴로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녀석은 커다란 주먹을 무릎 위에 말아 쥐고 몸을 앞으로 숙이며 귀를 기울였다.
[너는 거미 독에 중독된 게 아니야. 해로운 그림자 마나에 감염됐어.]
녀석은 나를 가만히 바라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갑자기 커다란 주먹으로 자신의 배를 때렸다.
타이니는 스스로의 어마어마한 힘을 버티지 못하고 끙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이 멍청아.]
녀석이 스스로에게 입힌 상당한 피해를 다시 치유한 뒤, 나는 외부 마나 조작을 활용해 그림자 마나를 제거하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내게는 너무 어려운 작업이었다.
마나가 타이니의 몸 속에 갇혀 있어서 영향을 미치기 어렵기도 했고···
그림자 마나의 속성이 너무 미끄럽고 종잡을 수 없어서 잘 잡히지 않기도 했다.
그래서 결국은, 두 번째 스트라타를 계속해서 탐험하며 중간중간 타이니를 치유해 주는 걸로 결론이 났다.
내 치유 마법 스킬이 더 높아지면 녀석을 치료해 줄 수 있을 테고, 그 전에 외부 마나 조작 스킬의 레벨이 올라가도 그걸로 녀석을 도와줄 수 있을 테니까.
다행히 타이니가 걸린 마법은 그리 심각한 수준이 아니어서 HP가 엄청 빨리 깎이지는 않았다.
내가 치유만 계속 해줄 수 있으면 문제없을 것 같았다.
물론, 내 가장 오랜 동료이자 친구의 생명이 계속해서 위협을 받는다는 건 상당히 불안한 일이었다.
아무래도 두 번째 스트라타 탐험은 시작이 좋지 않았다.
앞으로 좀 더 신중하고 영리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었다.
물론, 나와 펫들의 성격을 고려하면 필연적으로 벌어질 수밖에 없었던 사고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를 잃었으면 외양간이라도 고쳐야지.
이제부터 잘하자!
오···
타이니를 또 치유해 줘야겠군···
나는 보조 두뇌들끼리 서로를 관리하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두뇌 여러 개가 번갈아 가며 치유 마나 구조물을 유지하고, 그 사이에 다른 두뇌들이 쉴 수 있도록 말이다.
보조 두뇌가 세 개나 되니, 별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별 문제가 없다는 말은, 내 원래 두뇌만큼은 자유로울 수 있다는 의미다.
게다가 이러면 스킬 훈련도 되고!
우리는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다시 한 번 길을 나섰다.
거미줄 무덤을 헤치고 옆쪽 통로로 내려가자, 또다시 바닥에 작은 식물들이 널려 있었다.
우리는 계속 나아가기 전에 시간을 들여 식물들을 하나하나 살폈다.
통로를 지나가는 동안, 크리니스는 식물들의 독과 해로운 에너지 때문에 촉수 두 개를 더 잘라내야 했다.
이제 이 스트라타의 분위기를 대충 알 것 같았다.
몇몇 몬스터들과 마주치기도 했는데, 모두 쉽게 쓰러뜨렸다.
그러다가 정말 짜증나는 놈을 발견했다.
지네···.
저 더러운 지네들은 정말이지 어딜 가나 있었다.
나는 통로 앞쪽에 엉켜 있는 징그러운 지네들을 쳐다봤다.
한 눈에 봐도 여태까지 만났던 지네들과는 다른 변종이었다.
매끈한 그림자 피부로 이루어진 몸통에서 그림자 마나가 연기처럼 가닥가닥 피어났다.
마나 감지로 확인하자 놈들의 날카로운 턱이 어둡게 빛나고 있었다.
아니 세상에···
이게 뭐야?!
대체 던전은 왜 저 멍청한 종족을 편애하는 거지?!
지구 상에 무척추동물이 얼마나 많은데!
무작위로 곤충들을 뽑아서 조합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얼마나 많은데···
왜 던전은 저 더러운 지네 놈들에게 이렇게 집착하는 걸까?!
왠지 소포스들의 입장이 점점 이해가 갔다.
어쩌면 포르모가 말해준 대로, 이 망할 종족을 던전에서 싹쓸이해 놈들의 열등함을 만천하에 알려야 할 것 같기도 했다.
[타이니! 크리니스! 자비 없이 공격해! 죄다 싹쓸이해버려!]
질주!
우리 셋은 일제히 앞으로 돌진했다.
우리가 둥지에 접근하는 걸 감지하자, 지네들은 격분하며 쉿쉿 소리를 냈다.
이곳의 지네들은 숲의 개활지에 살던 놈들처럼 언덕 형태의 둥지를 짓는 대신, 통로 바닥에 구덩이를 파고 사는 듯했다.
폭이 10미터 정도 되는 상당히 큰 구덩이였는데, 그 안에는 사악한 지네들이 가득했다.
우리는 그대로 지네 구덩이를 향해 몸을 덩졌다.
열 마리가 넘는 지네들이 동시에 내게 덤볐지만, 전혀 두렵지 않았다.
놈들이 제아무리 숲의 동족보다 크고 강해도, 나를 당해낼 수는 없었다!
챙!
챙!
사방에서 날아드는 턱과 가시들이 내 근사한 다이아몬드 갑각에 튕겨져 나갔다.
빨리 갑각을 더 업그레이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전신이 반짝이는 다이아몬드로 뒤덮일 날이 머지 않았다!
어쨌든 이제···
진짜 물기 공격이 어떤 건지 보여주마, 이 더러운 벌레들아!
죽음의 물기!
스태미나가 쭉 내려가면서, 어둠의 기운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턱이 나타났다. 형
반투명한 에너지 턱 안에 지네 여섯 마리가 동시에 잡혔다.
우직!
[레벨 14 스틸티트 테네브리스 스콜로펜드라 (II)를 처치했습니다.]
···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지네 종족이었군!
다 없애버리겠어!
쾅!
구덩이로 뛰어든 타이니가 득시글거리는 지네들 위를 산사태처럼 덤볐다.
그냥 산사태도 아니고, 번개를 동반한 산사태였다.
타이니의 몸이 적과 닿을 때마다 번개가 작렬하며, 푸른 불꽃이 튀었다.
번개는 사실상 멈추지 않았다.
애초에 지네들이 가득한 구덩이에 뛰어들었으니···
벌레들의 비명소리와 함께 불에 그을린 바이오매스 냄새가 공기를 메웠다.
하하!
다시 간다!
우직!
우직!
구덩이 안에 있는 지네는 수십 마리에 달했다.
놈들은 우리의 갑작스런 주거 침입에 몹시 분노했다.
지네들은 우리를 마구 물고 찔렀고, 우리도 사양하지 않고 응수했다.
크리니스는 구덩이 구석구석까지 촉수를 뻗어서 지네들을 무자비하게 도륙했다.
내 펫들도 나를 닮아서 지네들을 아주 싫어하는 것 같았다.
지네들은 혐오해 마땅한 종족이니까!
못 보던 변종이기는 해도, 이 새로운 지네들이 크게 위협적이지는 않았다.
우리는 짧은 시간 안에 놈들을 모두 제거했다.
나약한 절지동물을 쓰러뜨리고 개미가 승리했다!
그리고 이제는 식사 시간이다!
[새로운 바이오매스의 원천을 섭취했습니다: 스티티트 테네브리스 스콜로펜드라]
[기초 정보가 잠금해제 되었습니다.]
[발톱 지네의 새로운 변종인 ‘어둠 속의 지네’는 그림자 피부, 어둠과 그림자 속성에 대한 친화력, 향상된 독 등 두 번째 스트라타의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강인함, 영리함, 힘, 의지가 전반적으로 향상 되어, 발톱 지네들보다 훨씬 위험합니다.]
뭐라고?!
세상에, 시스템!
그렇게 정성을 쏟아서 겨우 이 정도 몬스터를 만들어낸 거야?
내가 다 먹어 버릴 테니 두고 보라고!
우리는 구덩이 안의 지네들을 신나게 먹어치웠다.
특히 크리니스는 예의 동굴 같은 입 안에 여러 마리를 한꺼번에 던져 넣었다.
식사를 마친 뒤, 우리는 다시 탐험을 시작했다.
중간중간 가던 길을 멈추고 타이니를 치유해야 하는 게 귀찮기는 했지만, 그걸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운 진행 상황이었다.
다음 몇 시간 동안, 몬스터 몇 마리와 마주쳤지만 아까 싸웠던 거미처럼 위협적인 놈은 없었다.
우리는 여유를 가지고 편안하게 사냥을 계속했다.
물론 앞이 거의 보이지 않는 환경에 익숙해지는 데에는 시간이 좀 걸렸다.
초기 바이오매스 포인트 대부분을 눈에 투자했던 나는, 두 번째 스트라타에 오자 마자 거의 장님이 되고 말았다.
이 아래가 어두울 거라고는 짐작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마나 감지를 활성화하면 던전의 마나 줄기를 흐르며 박동하는 그림자 마나가 보였다.
줄기 밖으로 새어 나온 그림자 마나는 주위의 빛을 모두 삼켜버렸다.
몬스터들은 어두운 구름에 가려진 별들처럼 희미하게 빛났다.
구분하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가능은 했고, 다행히 연습을 거듭할수록 점점 나아지고 있었다.
마나 감지 스킬 레벨을 좀 더 올려야 할 것 같지만···
그러려면 적어도 이틀은 걸릴 터였다.
그때까지는 이 상태로 버틸 수밖에 없었다.
우리 중 가장 고생하고 있는 건 타이니였다.
녀석은 말 그대로 소리와 자신의 몸에서 나온 전기 불빛에만 의지해서 움직이고 있었다.
가다가 뭔가와 부딪히면, 녀석은 몸에서 사납게 번개를 뿜으며 주먹으로 그걸 파괴했다.
보통은 바위였다.
통로는 구불구불했지만, 계속 아래로 기울어져 있었다.
앞으로 나아갈수록 바닥의 산호와 식물들이 더 조밀해져서, 조심스럽게 피해가야 했다.
우리는 그렇게 느리지만 꾸준한 속도로 행군했다.
때때로 옆으로 빠지는 좁은 통로들이 나타났지만, 대부분 내가 들어가기에는 너무 작았다.
좀 더 약하고 작은 몬스터들을 위한 장소였고···
더 이상 나는 그런 부류에 속하지 않았다.
몇 시간 정도 더 나아가자, 우리가 처음으로 탐험을 시작했던 주 통로가 다시 나타났다.
터널 지도를 확인하니 주 통로와 거의 나란히 움직였지만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오느라 훨씬 먼 거리를 이동한 셈이었다.
뭐, 상관없었다.
어차피 경험치를 모아야 하니까.
[이리 와, 타이니. 더 내려가기 전에 다른 통로들을 조금 더 돌아보자. 큰길을 따라서 계속 내려가다 보면 결국 개활지가 나올 텐데, 그 전에 준비를 확실히 해 두고 싶어.]
[흐엉.]
타이니가 내게 으르렁거렸다.
몸 안의 그림자 마나 때문에 HP가 계속 깎이는 것도 있지만, 여태까지 마주쳤던 몬스터들이 그리 강하지 않다 보니 만족스러운 싸움을 하지 못해서 짜증이 나 있는 듯했다.
그래도 실망하기에는 일렀다.
틀림없이 머지않아 훨씬 강력한 적들이 나타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