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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로 환생!-264화 (264/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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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의 성과

레기온의 병사들이 겪는 고통, 얼굴과 목소리에 드러나는 슬픔이 모렐리아의 마음을 흔들었다.

이들은 던전의 침략으로부터 지상을 방어하는 일에 평생을 바친 남녀였다.

대격변 때부터 수천 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의무의 계승자들이었다.

던전 안에서 처절한 전투를 거듭한 레기온 병사들의 눈에 비친 리리아의 파괴는, 몬스터 박멸의 정당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해 주는 사례였다.

모렐리아도 그런 감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모렐리아 스스로도 평생 동안 그렇게 믿어왔다.

몬스터들이 이 재난의 원인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었다.

몬스터들은 어딜 가든 죽음과 파괴만을 불러왔고···

지상에 나와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모렐리아는 그 예외를 목격했다.

인간과 협력할 뿐 아니라, 그 이상에 다른 종족까지 끌어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몬스터를.

인간과 몬스터의 공생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모렐리아는 두 눈으로 직접 목격했다.

모렐리아가 여태까지 배웠던 바에 따르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아니, 모렐리아만이 아니라···

지상의 모든 이들이 배웠던 바와 말이다.

그 사실이 뭘 의미할까?

누구에게 이야기를 해야 할까?

아니, 누구에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마을 주민들은 자신들이 배운 바를 잊어버리고 새로운 방식을 열정적으로 받아들였다.

물론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는 했지만···

그 사람들의 시선이 과연 객관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마찬가지로 레기온도 한쪽으로 치우친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레기온은 말 그대로 몬스터를 박멸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집단이었다.

그 누구보다 효율적이고 열정적으로 몬스터를 사냥하는 레기온에게···

몬스터와 공생하고 협력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면?

모렐리아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상상해봤다.

티투스에게 앤서니의 정체를 밝히는 순간, 레기온은 원래의 계획을 모두 버리고 남쪽으로 행군할 것이다.

그리고 눈에 띄는 모든 개미와 인간을 죽인 뒤, 수고했다며 서로의 어깨를 토닥이겠지.

아버지의 도끼가 에니드를 내리치는 장면을 상상하자 구역질이 났다.

아이작이라면 몰라도, 다른 주민들은 그렇게 죽허서는 안 됐다.

“걱정이 많아 보이네요, 모렐리아. 이야기를 들어 드릴까요?”

“미린?”

“안녕하세요.”

미린이라고 불린 젊은 여자가 미소를 지으며 모렐리아가 앉아서 쉬고 있던 돌에 엉덩이를 걸쳤다.

이 근방에서 나름대로 유명했던 ‘하얀 사자’라는 주점의 주춧돌이었다.

주점은 거의 전부 파괴된 상태였다.

부서진 벽 한쪽과 한때 반짝이던 오크 나무 카운터의 잔해가 남아 있는 전부였다.

바닥에는 깨진 유리 조각이 흩어져 있었다.

주점 주인 그레고르가 그토록 자랑스럽게 여겼던 술병들의 마지막 흔적이었다.

“선배한테 조언을 하겠다고 나서는 일이 조금 이상하기는 하네요.”

미린이 말하자, 모렐리아가 코웃음을 쳤다.

“나는 네 선배가 아니야. 너는 정식 군단병이고, 나는 탈락한 훈련병일 뿐이지. 그런데 어째서 내가 네 선배라는 거야?”

미린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모렐리아가 훈련병 시절 워낙 고압적인 성미였기 때문에 아직도 선배로 느껴진다는 말을 차마 면전에서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아마 이제 네가 나보다 레벨도 높을 거야.”

모렐리아가 얼굴을 찌푸리며 덧붙였다.

“뭔지는 몰라도 레기온이 그··· 깊은 지하에서 하는 것 때문에 말야.”

“그럴 리가요!”

미린은 그렇게 말했지만, 내심으로는 모렐리아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웨이브 동안 계속 이어진 전투로 인해, 미린의 레벨과 능력치는 전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수준까지 올라 있었다.

모렐리아는 미린의 생각을 간파한 듯 눈을 가늘게 떴지만, 더 이상 추궁하지는 않았다.

“저희와 함께 가실 거죠?”

미린이 물었다.

“게이트에 대해 들어는 봤지만, 직접 통과해본 적은 없거든요. 반대쪽에 아는 사람들이 더 많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불편한 듯 몸을 바로잡는 모렐리아의 검은 가죽 갑옷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아직 고민 중이야. 확신이 없어.”

“이해해요. 떠나실 때 상황이 좋지는 않았죠.”

“나중에 후회할 말을 많이 했지.”

“애도 중이셨잖아요. 우리 모두 마찬가지였죠.”

“그렇다고 없던 일이 되는 건 아니야.”

“시간은 모든 상처를 치유한다고 하더군요.”

“그럴지도 모르지.”

모렐리아가 인정했다.

미린은 등을 뒤로 기대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선배님이 말씀하신 마을에는 들리지 못할 것 같아요. 한 시간 전에 전갈이 왔거든요. 최대한 빨리 게이트를 통과하라고 말이에요.

사령관님이 이미 짐을 챙기고 행군을 준비하라고 지시하셨어요. 알버튼 님은 아주 화가 나셨고요. 남아 있는 기록들을 찾아서 가져가고 싶으신가봐요.”

“뭐라도 발굴해 내려면 몇 주는 걸릴 거야. 가라로쉬가 모든 걸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렸으니까.”

미린이 키득거렸다.

“사령관님도 그렇게 말씀하셨지만, 알버튼 님은 소중한 책들을 두고 갈 수 없다고 고집을 부리고 계세요. 아마 곧 백인대장들 중 하나가 로어마스터를 어깨에 짊어지고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네요.”

“별로 보고 싶지 않은데.”

모렐리아가 투덜거렸다.

“적어도 내려와서 배웅은 해 주실 거죠? 할 이야기가 너무 많은데, 이렇게 한 시간 만에 작별 인사를 하기는 아쉬워요.”

“그 정도는 약속할 수 있지.”

모렐리아 역시 이렇게 금방 아버지와 헤어지기 싫었고, 오랜 친구들과 대화를 더 나누고 싶기도했다.

“나한테도 좋은 경험이 될 거야. 지하 도시에는 가본 적이 없거든.”

“정말 흥미로운 곳이에요!”

“그렇겠지.”

둘 사이에 편안한 침묵이 흘렀다.

지하로의 여정을 준비하며 물자와 여비를 챙기는 레기온 병사들이 서로에게 이따금씩 말하는 소리를 제외하면, 사방에 고요 뿐이었다.

곧 지하의 요새에 있는 게이트가 열리면 모두가 심연의 레기온 본부, 전설적인 검은 성으로 향할 터였다.

과거의 삶이 송두리째 무너지긴 했지만, 미린은 앞으로 펼쳐질 미래를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그럼 이만 일어나요, 게으른 선배님.”

미린이 일어났다.

“와서 도와주셔야죠.”

“그래.”

모렐리아가 자리에서 일어나 지친 근육을 풀며 투덜거렸다.

던전 입구로 돌아간 둘은 병사들에게 행군 계획을 설명하거나 세부 사항들을 확인하고, 여기까지 오는 동안 낙오한 인원을 챙기는 장교들과 마주쳤다.

그 바쁜 장면의 한복판에는 티투스가 버티고 서 있었다.

사령관은 이따금 우렁찬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지만, 대체로 폭풍 속에 고요히 서 있는 바위처럼 입을 다문 채였다.

그러다 다가오는 모렐리아를 발견하고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우리와 함께 가는 거냐?”

티투스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게이트까지는요.”

모렐리아가 강조했다.

“레기온으로 다시 돌아갈지는 정하지 못했어요.”

티투스의 얼굴에는 아무런 감정도 드러나지 않았다.

하지만 모렐리아는 자신이 동행하기로 했다는 말에 아버지가 기뻐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알았다. 아우릴리아 중대장에게 보고하도록. 인원 파악과 식량 보급을 담당하고 있으니까.”

모렐리아는 자신도 모르게 레기온 식 경례를 올릴 뻔했지만, 마지막 순간에 겨우 팔을 내렸다.

그 점을 눈치챈 티투스가 호탕하게 웃으며 돌아섰다.

“다시는 내가 경례를 하나 봐요!”

혼자 성을 낸 모렐리아는 소지품과 무기를 챙겨서 중대장을 찾아갔다.

레기온이 떠날 준비를 마치자, 도시의 폐허에 어둠이 찾아왔다.

모렐리아를 제외한 마을 주민들은 자신들이 본 내용과 던전의 상황에 대해 레기온이 알려준 정보를 보고하기 위해 다시 남쪽으로 출발했다.

+

지금까지의 결과를 보면 산호초 위쪽에서 불빛으로 몬스터를 낚는 전략은 꽤나 성공적이었다.

상당히 힘들기는 했지만 말이다.

밝고 뜨거운 화염구에 접근하기를 꺼리는 몬스터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불빛을 보자 마자 눈이 뒤집혀서 달려들었다.

화염구를 당장이라도 꺼 버리고 싶어하는 듯했다.

시간이 지나자 원래 위치에 있던 몬스터들이 점점 줄어들어서, 우리는 길을 막는 잔챙이들을 처리하며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겨서 낚시를 계속했다.

벌써 나흘 째였고, 내 펫들은 끊임없는 전투를 통해 얻는 보상을 매우 즐기고 있었다.

타이니와 크리니스 모두 레벨이 꾸준히 올랐고, 전투 스킬도 놀랄 만큼 늘었다.

녀석들이 상대하는 몬스터는 대부분 2단계 이상이라 경험치와 바이오매스를 넉넉히 제공했다.

한편 나는 여러 가지 스킬을 연습하는 중이었다.

대부분 비전투 스킬들이었다.

타이니와 크리니스가 빨리 5단계가 될 수 있도록, 대부분의 전투를 둘에게 맡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집중적으로 연습하는 건 코어 수술 스킬이었다.

소포스가 사용하는 고급 기술의 수수께끼를 풀어야, 둥지에 돌아가서 다른 개미들에게 스킬을 전수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지금까지의 진도를 보면 절대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었다.

코어 조작을 계속 연습해서 스킬 레벨과 단계를 올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코어 두 개를 정확하게 재단해서 레이저로 자른 금속처럼 감쪽같이 융합하는 기술을 익히는 건 거의 악몽에 가까웠다!

일단은 코어 수술 스킬을 다음 단계로 올려야 융합 스킬이 잠금해제 될 것 같지만···

최대한 빨리 기술을 손에 익히기 위해 계속해서 해당 과정을 연습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내 불쌍한 두뇌를 최대한 쥐어짜 봐도, 돌아오는 건 끔찍한 두통과 지난 시도의 형편없는 결과물보다 아주 조금 개선된 코어들 뿐이었다.

코어 융합 연습을 마치고 남은 코어는 크리니스와 타이니에게 건넸다.

둘이 진화 전에 코어 용량을 최대로 채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둘 다 마지막 코어를 흡수할 때까지 얼마 남지 않았을 터였다.

혹시 희귀 코어가 나오는지 예의 주시했지만, 아직은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다.

특별 코어는 심심찮게 나왔지만, 희귀 코어는 확실히 희귀했다.

내 코어의 문제는, 코어를 최대 용량까지 확장한 뒤에···

진화하자 마자 곧바로 특별 코어를 흡수했다는 점에 있었다.

원래는 시간과 인내를 들여서 최대 용량을 넘어서는 특별 코어 두 개를 더 흡수하고, 강력한 진화 에너지를 확보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러다가 희귀 코어를 손에 넣어서 원래의 계획 이상으로 코어를 확장하는 바람에, 내 도박수는 완전히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그러니까 일반적인 한도 이상으로 특별 코어를 흡수했을 뿐만 아니라, 희귀 코어까지 추가로 흡수한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살인적인 고통과 코어 손상의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내가 최악의 운명을 피할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운이었다.

말하자면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것이다!

크리니스와 타이니에게는 희귀 코어 하나만 추가로 흡수시킬 생각이었다.

그래도 굉장히 고통스럽고 불편한 경험을 하게 되겠지만, 영구적인 손상의 위험은 피할 수 있을 테니까.

솔직히 나는 아직도 그때 뭔가 잘못됐는데 내가 눈치를 채지 못한 게 아닌가 하는 불안에 시달렸다.

코어에 난 작은 실금이 나중에 갑자기 주위로 퍼지면서 코어 전체가 부서진다거나···

내 또다른 관심사는 바로 마법 스킬들이었다.

치유 마법은 타이니의 몸 속에 있는 해로운 마나 덕분에 레벨이 꾸준히 오르는 중이었고, 쉬는 시간 동안에는 화염 마법을 연습해서 스킬 레벨을 높였다.

또 공기 마법 친화력을 구입해서 4대 원소 마법을 모두 익혔다.

아직 대지 마법과 공기 마법을 시도해 볼 기회는 없었지만 말이다.

내 두뇌는 치유 마나 구조물과 화염 마나 구조물을 유지하느라 이미 많은 부담을 지고 있었다.

왠지 더 많은 두뇌가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속성을 가진 마나를 제공해 주는 분비선 없이도 원소 마법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려면, 언제나 두 가지 작업을 동시에 해낼 수 있어야 했다.

일단 의지력을 바탕으로 마나 구조물을 만들고 유지하면서, 코어 안의 마나를 그 구조물에 넣어 원하는 속성의 마나로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에는, 속성을 부여한 마나를 다시 복잡하고 정교한 모양으로 엮어서 원하는 주문을 만들어야 했다!

물론 이상적인 상황이라면, 두뇌 두 개로도 이 모든 작업을 수행할 수 있었다.

두뇌 하나가 구조물을 만들어 마나에 속성을 부여하는 동안, 다른 하나가 구조물에서 나온 마나로 주문을 완성하면 되니까.

나는 당분간 약한 보조 두뇌들로 구조물을 유지하고, 강한 보조 두뇌에 속성 부여와 주문 제작 과정까지 맡기기로 했다.

그건 곧 주 두뇌가 중간중간 끼어들어 상황을 확인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그건 엄청나게 괴로운 일이었다···

기능하면 보조 두뇌들이 모든 귀찮은 과정을 처리하고, 주 두뇌는 다른 일에 집중하는 편이 바람직했다.

이런 생각을 알면 보조 두뇌들이 날 미워할지도 모르겠지만, 뭐 어쩔 거야!

내가 주인인데!

또 다른 고민거리는, 원소 마법 스킬들을 융합하기 전에 각 스킬의 레벨을 어느 단계까지 올려야 할까 하는 점이었다.

융합 전의 스킬 단계가 높여 놓을수록, 더 강력한 결과물이 나온다는 게 베인이 내게 알려준 시스템의 법칙이었다.

물기 스킬의 경우는 확실히 베인이 말한 대로 되었다.

각 물기 스킬을 4단계까지 올리고 나서 융합했더니, 엄청나게 강력한 스킬이 탄생했다.

지금 내 목표는 각 원소 마법 스킬을 물기와 마찬가지로 4단계까지 올리는 거였다.

두뇌가 이렇게 많은데 목표를 좀 높게 잡아도 되지 않을까?

어쨌든 기나긴 낚시 여행을 계속하던 우리는 산호초를 절반쯤 내려온 위치에서 적당히 은밀하고 안락해 보이는 공간을 발견했다.

나는 잠시 휴식을 취하기로 결정했다.

먼저 크리니스와 타이니가 잠을 청했고, 내가 망을 봤다.

내가 잘 순서가 돌아오면 타이니가 망을 볼 터였다.

···타이니가 망을 볼 때는 명시적으로 잠들지 말라고 지시를 내려야 했다.

아니면 분명히 게으름을 피울 테니까.

내 앞에는 코어가 조그만 언덕을 이루고 쌓여 있었다.

이번 낚시의 수확이었다.

서른 개면 뭐···

나쁘지 않았다.

여기서는 코어가 워낙 흔하다 보니 내 기준도 좀 달라졌다.

첫 번째 스트라타에서 코어를 서른 개나 얻었다면 엄청난 성과였을 텐데 말이다.

나는 한숨을 쉬며 더듬이를 다음 코어에 가져다 댔다.

이 멍청한 코어들을 최대한 변형시킨 후, 다른 코어와 이어 붙이는 연습을 하기 위해서였다.

정말 괴롭고 머리 아픈 작업이지만···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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