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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격전
갑작스레 공포에 사로잡힌 나는 몸을 바짝 숙이고 최대한 가만히 있었다.
숨도 쉬지 않고, 심지어 눈도 깜박이지 않았다!
잠깐···
난 어차피 눈꺼풀이 없잖아!
진정해, 침착하자.
내 정신은 이 예상치 못한 상황에 몹시 흔들리고 있었다.
이럴 때 쓰기 딱 좋은 스킬이 있지.
나는 망설임 없이 명상 스킬을 사용해서 내면으로 침잠했다.
명상 스킬을 사용하면, 일체의 감정은 내 의식 뒤쪽으로 물러났다.
의식에게 달려들어 내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대신, 그 가장자리를 맴도는 느낌이었다.
솔직히 하루 종일 명상을 하면서 다녀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이 스킬을 사용하면 감정 때문에 마음이 복잡해지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내가 냉철하고 논리적이 되는 걸 나 스스로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건 어쩐지 내가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감정을 배제하면 훨씬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되도록 명상 스킬을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
명상을 하면 할 수록, 스킬 레벨은 점점 높아질 터였다.
그러다 단계가 오르면 아예 감정 없는 기계처럼 변할지도 모르잖아?
그런 고민은 일단 나중으로 미루고···
지금은 이 상황을 벗어나는 일에 집중해야 했다.
평정을 되찾은 나는 공터에 나타난 여섯 개의 형체를 냉철하고 객관적인 눈으로 살피며, 아까는 눈치채지 못했던 점들을 집어냈다.
바위 인간들은 최소한의 방어구만 갖춰 입고 있었다.
팔과 가슴은 거의 피부를 그대로 드러냈다.
팔목에는 일종의 보호대로 보이는 팔찌를 차고 있었다.
단단해 보이는 금속이 짙은 회색 피부에 대비를 이루며 빛났다.
등과 허리에는 다양한 무기를 지닌 모습이었다.
휘어진 칼과 양손검은 녀석들의 체격에 걸맞게, 인간들의 무기보다 훨씬 컸다.
놈들 중 하나가 가지고 있는 검은 정말 거대했다!
저런 크기라니!
무시무시한 칼날이 내 외골격을 부수는 장면이 머리 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의식 바깥으로 밀려난 감정의 작용으로 온몸이 떨리는 게 느껴졌다.
너무 걱정하지 말자.
다이아몬드 갑각은 무적이니까!
내 외골격이 날 실망시키는 일은 없을 거야.
바위 인간들은 공터를 돌아다니며 남아 있는 단서들을 확인하는 듯했다.
놈들의 움직임은 깔끔하고 전문적으로 보였다.
절대 서로 멀리 떨어지지 않았고, 계속해서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는 와중에도 손은 항상 무기 자루 근처에 머물렀다.
아마도 자기들이 지금 보거나 느끼고 있는 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듯했다.
이 스트라타의 어둠을 밝히기 위해, 바위 인간들은 저마다 한 손에 빛나는 수정을 들고 있었다.
작은 크리스탈 조각은 엄청난 밝기의 빛을 내뿜었다.
조심해야겠군.
나는 인간들이 마나 탐지 스킬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마나 탐지 수정을 이용하는 모습도 봤다.
만약 저 종족도 그런 물건을 사용한다면, 진화 전부터 한도 이상으로 성장했던 내 5단계 코어는 마치 폭죽처럼 환하게 드러날 터였다.
이 정도 봤으면 됐다.
더 오래 머물면 너무 위험해질 것 같았다.
[여기서 몰래 빠져나가야 해, 얘들아. 움직일 준비를 해.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이동할 거야.]
둘은 내게 알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나는 다리를 느리지만 꾸준히 움직이며, 공터에서 멀어지는 방향으로 이동했다.
저 바위 인간 여섯이 여기서 뭘 하고 있는지 궁금하기는 했지만, 괜한 호기심 때문에 위험에 빠지기도 싫었다.
저들이 얼마나 강할지 전혀 짐작이 가지 않으니까···
물론 중력 폭탄을 던져서 모두 쓸어버린 다음, 경험치를 잔뜩 얻고 유유히 떠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놈들은 몬스터가 아니라 지성을 가진 종족이 분명했다.
괜히 건드렸다가 사흘 뒤에 성난 바위 인간들이 홍수처럼 밀려와서 내 반짝이는 갑각을 찾아 돌아다니기라도 하면?!
던전 속에서 환생한 직후, 레기온이라는 인간들이 조직적인 사냥을 벌였을 때의 악몽을 반복될 터였다!
[고급 은신 (II)이 레벨 10이 되었습니다. 업그레이드가 가능합니다.]
업그레이드!
완벽한 타이밍이다.
나는 주저없이 스킬 포인트를 사용해서, 은신 스킬의 단계를 올렸다.
머리 속으로 은신에 대한 갖가지 지식들이 스며들었고, 나는 곧바로 그걸 활용하기 시작했다.
내 커다란 몸집을 최대한 작게 움츠리고, 그림자를 활용하며···
움직일 때 나는 소리를 최소화하기 위해 몸을 가볍게 만드는 방법 등에 대한 지식이었다.
하지만 열 걸음 정도 옮겼을 때, 더듬이를 통해 충격이 전해지며 무척추 동물이라 존재하지도 않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리고 전율이 온 몸을 휩쓸었다.
숙여!
쾅!
근처에 있던 산호가 갑자기 폭발했다.
나는 초고속 반사 신경의 도움을 받아 머리를 땅에 박고 낮게 엎드렸다.
이번에 새로 장만한 신경계의 능력 덕분에, 더듬이까지 잽싸게 내릴 수 있었다!
더듬이 둘 다 떨어져 나가지 않고 안전했다!
아싸!
[가, 가, 가! 전속력으로 달려!]
타이니는 분노와 기쁨이 뒤섞인 괴성을 지르며 두 다리로 펄쩍 뛰었다.
녀석은 단번에 저 위쪽에 있는 산호 가지로 올라갔다.
하지만 그러자 마자 산호 가지가 무너져 내렸다.
나는 360도에 가까운 시야를 통해, 산호초가 마치 거대한 칼로 싹둑 잘라낸 것처럼 우리를 향해 떨어지는 장면을 목격했다.
타이니는 뭐랄까, 어···
뭔숭이처럼 민첩하게 무너져 내리는 산호를 박차가 뛰었지만, 그 모습을 보며 감탄하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당장 움직여야 한다!
나는 여섯 개의 다리를 잽싸게 놀렸다.
최대 속도를 발휘하자, 근육이 팽팽하게 당겨지며 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강한 힘을 발휘했다.
다행히 내 다리는 그 부담을 견뎌냈다.
어서 도망치자!
쾅!
피했지롱!
[고급 회피가 레벨 3이 되었습니다.]
좋았어!
계속 달리자!
질주!
나는 모든 스킬을 동원해서, 최대한 빠른 속도로 달렸다.
바람 때문에 더듬이가 머리에 착 달라붙고 주위의 풍경이 흐릿하게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뒤에서 여섯 개의 형체가 놀랄 만큼 빠르고 정확하게 우리를 쫓아오고 있었다.
놈들의 레벨이 예상 보다 높을지도 모르겠는걸!
이런 상황만큼은 정말 피하고 싶었는데!
하지만 어떻게 나를 찾아낸 거지?
탐지 스킬?
아니면 마법 수정을 사용한 건가?
시력이 엄청 좋은가?
아니, 그런 건 상관없었다.
지금은 일단 도망치는 게 우선이었다.
[크리니스! 놈들을 떼어 놓을 방법을 생각해봐!]
[네!]
나는 좌우로 날렵하게 움직이며, 날아오는 공격들을 피했다.
내 주위를 스쳐 지나가는 공격들이 어렴풋이 눈에 보였다.
검에서 나오는 빛이었는데, 내가 여태까지 보아왔던 인간들의 스킬보다 훨씬 날카롭고 빨랐다.
빛의 칼날은 심장이 한번 박동하는 사이에 주위의 모든 걸 베어낸 뒤 사라졌다.
높은 단계의 스킬이 확실했다.
이런 스킬을 구사하는 적과 굳이 싸우고 싶지는 않았다.
변수와 잠재적인 위험 요소가 너무 많았다.
둥지를 방어하는 중도 아니고, 이 장소에 딱히 미련도 없었다.
일단은 도망친 다음 더 강해진 뒤에 상대하는 편이 맞았다.
그래서 나는 달렸다!
질주!
또 한 번 다리에 엄청난 힘이 들어가면서, 나는 내 눈으로도 쫓기 어려울 만큼 빠르게 앞으로 달려나갔다.
산호 가지들과 해초들이 내 옆구리를 쓸고 지나갔다.
독에 쏘여도 상관없었다.
탈출부터 하고, 나중에 해독하면 되니까!
하지만 바위 인간들은 아직도 우리 뒤를 바짝 쫓고 있었다.
놈들은 무너진 산호초 사이를 마치 그림자처럼 수월하게 가로질렀다.
왼쪽!
슈욱!
바람 소리가 들리더니, 금속 촉이 달린 석궁 화살이 내 바로 옆의 바닥에 꽃혔다.
나는 갑작스러운 방향 전환 때문에 살짝 비틀거리다가, 다시 자세를 바로잡고 달리기 시작했다.
놈들을 방해할 만한 수단이 더 필요했다!
푸슝!
푸슝!
푸슝!
푸슝!
푸슝!
나는 바위 인간들의 기척이 느껴지는 방향으로 무작정 산성 용액을 발사했다.
산성이 어디 명중하든, 뭔가를 맞춰서 끈적거리기만 하면 놈들은 그걸 피하기 위해 경로를 바꿔야 할 것이다.
판도를 바꿀 정도는 아니지만, 도움이 될 만한 일은 뭐라도 해야 했다!
[크리니스? 무슨 방법이 없을까?]
푸슝!
푸슝!
푸슝!
[지금이에요!]
크리니스가 내 등에 드리워진 자신의 그림자 안으로 촉수를 집어넣었다.
촉수들은 수십 미터 뒤쪽의 바닥에서 어두운 색 그물처럼 폭발하더니, 사냥꾼들 중 하나를 집어 삼켰다.
좋아!
하지만 이내 빛의 칼날들이 다시 날아왔다.
저 바위 인간들이 대체 뭔지는 몰라도, 엄청나게 끈질긴 것만큼은 분명했다!
긴박한 추격전을 벌이는 중에도, 명상 스킬 덕분에 내 마음 속은 잔잔한 호수처럼 평온했다.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쾅!
우직!
하나도 불안하지 않고, 깊고 푸른 바다처럼 고요했다.
나는 완벽하게 침착한 상태였다.
쾅!
침착한 상태라고!
내 꽁무니 좀 그만 자르려고 들어!
그쪽이 원하는 삭감은 이번 회계 연도에는 수용 불가능이라고!
지금 꽁무니가 얼마나 훌쭉한데!
뭐, 실제로 그렇지는 않지만···
어쨌든 가능하면 꽁무니 말고 조금 잘려도 내가 죽을 일 없는 다른 부위를 노렸으면 좋겠네!
바위 인간들은 서로 별다른 대화 없이도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나를 포위하려 들었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주위의 산호초들이 개활지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자 마치 거대한 건물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무시무시한 굉음이 사방에서 울려 퍼졌다.
왜 이렇게 나를 죽이지 못해서 안달이 거야?
내가 그렇게 맛있어 보이나?
아니면 내 코어가 그렇게 귀한 건가?
아닐 텐데!
내 갑각 때문인가?
···그럴지도?
반짝이는 다이아몬드로 뒤덮인 갑각을 누가 탐내지 않을까?
너무 아름다운 게 내 죄였다!
내가 너무 매력적이고 화려해서 이렇게 된 걸까?
보석처럼 찬란하게 빛나는 탓에 말이다.
이유가 뭐든, 나는 도망칠 거다!
순순히 잡혀줄 수는 없지!
나는 계속 산성 용액을 날리며,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마법 주문을 쓸까?
아니, 어려웠다.
이렇게 도망치면서 불이나 물, 중력 마법을 쓰는 건 무리였다.
만약 놈들이 더 가까워지면, 중력 마법이 유용할 것 같기는 했다.
중력 화살이나 중력장으로 속도를 늦출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이렇게 산호초들이 무너져 내리는 와중에 주문을 명중시키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게다가 굳이 놈들의 적개심을 강화하기도 싫었다.
이대로 별다른 충돌 없이 도망치는 게 가장 바람직한 결과였다.
그러려면 우선 놈들의 주의를 산만하게 만든 다음, 그 틈을 타서 빠져나가야 했다.
[크리니스, 방해물이 나타날 테니 그림자 눈을 활성화해!]
[지금 좀 바빠요, 주인님!]
[두 번째 두뇌를 사용해!]
크리니스는 아마 주 두뇌를 사용해서 기습 공격을 가했을 터였다.
실제로 녀석의 견제는 효과가 좋았다!
크리니스의 촉수 그물에 갇힌 상대는 무시무시한 칼날로 가득한 구체 안에 갇혀서 움직이지 못했다.
···나는 그것 때문에 저 괴상한 놈들이 원한을 품지 않기를 바랐다.
하지만 나머지 사냥꾼들은 터무니없이 빠른 속도로 위협에 대응했다.
놈들은 동료가 촉수 그물에 갇히자, 주저없이 검을 휘둘러 그쪽으로 빛의 칼날을 날렸다.
[아아악!]
촉수를 잘린 크리니스가 고통스럽게 울부짖었다.
그리고 그림자 통로를 통해 남아있는 촉수를 거둬들였다.
[왜 그래? 원래는 촉수가 잘려도 그렇게 아프지 않잖아?!]
[모르겠어요! 이번에는 아파요!]
제기랄···
저 사냥꾼들이 내 심기를 건드리고 있었다.
감히 내 펫을 다치게 해?
[꽉 잡아!]
하지만 이건 기회였다!
나는 여러 개의 두뇌를 동원해서 여러 가지 일들을 한꺼번에 처리했다.
연신 산성 용액을 발사하며 밀집해 있는 산호초 사이로 달려 들어갔고, 동시에 마나 감지로 주위의 몬스터들을 찾았다.
그러자 마나 감지 스킬에 작은 불빛 하나가 잡혔다.
내가 뭘 발견했는지 깨닫자, 개미의 입으로 미소를 지을 수 없다는 사실이 아쉬웠다.
이제 곧 저 빌어먹을 바위 인간 놈들에게 정의의 심판을 내릴 테고, 나는 즐겁게 그 광경을 감상할 생각이었다.
물론 안전하게 멀리 떨어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