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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로 환생!-271화 (271/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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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문

그라닌의 두통은 골가리의 관문 통로를 향한 여정 내내 점점 심해졌다.

트라이아드 다른 두 구성원이 몬스터와 대화하는 걸 금지했으니, 이제 모든 소통은 그라닌의 몫이었다.

그리고 그건 굉장히 힘들고 짜증스러운 일이었다.

물론 며칠 동안 던전의 개활지와 통로 안을 다리 없이 끌려 다니면 기분이 좋을 리가 없겠지만···

이 몬스터는 그 분노와 답답함을 그라닌의 신경을 긁고 발타의 화를 돋우면서 푸는 것 같았다.

예를 들어 한 번은 발타가 몬스터 뒤에서 걸어간 적이 있었는데, 굉장히 잘못된 선택이었다.

몬스터는 갑자기 어디선가 끈끈한 산성 용액을 발사했고, 그걸 뒤집어쓴 발타의 피부가 부식되고 말았다.

발타의 분노를 폭발하게 만든 모욕적인 행위였다.

그로닌은 발타처럼 강력하고 가문이 좋은 자를 적으로 만들면 얼마나 위험한지 여러 차례 설명했지만, 몬스터는 신경도 쓰지 않는 눈치였다.

산성 공격이 있고 나서, 개미는 발타가 가까이 올 때마다 한층 더 신나게 턱을 부딪혀 웃음 소리를 냈다.

발타도 몬스터를 두 차례나 더 공격했다.

두 번째 공격했을 때에는 갑각이 깨져서 피까지 나왔다.

하지만 몬스터는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어떤 부상이든 몇 분 만에 저절로 치유되곤 했기 때문이다.

그라닌은 몬스터를 관찰하며 엄청난 분량의 기록을 작성했다.

조작자의 원 소속일 뿐 아니라 교단의 일원이기도 한 그라닌은 몬스터의 특징을 문서화하는 일에 정통했다.

교단에 있는 그라닌의 상관들도 분명 이 몬스터에 대한 상세한 보고를 기대하고 있을 터였다.

처음에 그라닌은 몬스터의 능력에 대해 의심을 품었다.

원래 개미 몬스터는 단독으로 있을 때에는 가엾을 정도로 약한 생명체였기 때문이다.

물론 수가 많아질수록 무시무시하지만···

혼자 있을 때에는 던전에서 가장 만만한 몬스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 허약한 생물을 기반으로 이처럼 강력한 힘을 가지게 될 때까지 진화를 하다니···

굉장히 놀라운 일이었다.

물론 환생해서 몬스터가 된 개체들은 평균 이상의 지능 덕분에 출발선부터가 유리했다.

하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망가지는 경우도 많았다.

교단은 지난 여러 세기 동안 그런 사례를 여럿 발견했다.

환생한 몬스터 전체에 비하면 훨씬 적겠지만, 어쨌든 찾는 족족 집요하게 관찰하고 분석해서 기록으로 남겼다.

그리고 그 중 몇몇을 후원하기도 했지만···

에인션트의 자리에 오른 몬스터는 없었다.

그래서 그라닌은 원래 이번 표본에 대해서도 그다지 희망을 품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기대감이 생기고 있었다.

[두 번째 펫이 어디로 갔는지 혹시 기억 안 나나?]

[그게, 이제는 솔직히 두 번째 펫이 있었는지도 모르겠어··· 오랫동안 나랑 타이니 둘 뿐이었던 것 같아.]

[내가 네 원숭이 친구의 치유를 그만들 수도 있다는 걸 알 텐데. 만약 그런다면 녀석이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 것 같나?]

[난 주문 한 방으로 너와 나, 그리고 여기 있는 모두를 죽일 수 있어. 그러니까 일을 어렵게 만들지 말자고, 응? 이제 더 이상 나와 협조하기 싫다는 거야?

세상에,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 내 원숭이를 치유하면서 같이 데려가면, 내가 네 제안을 수락할 이유가 하나 더 생기는 거라고. 그러니까 내가 주는 이점을 받아들여!]

이 망할 몬스터가 하는 말에는 어느 정도 일리가 있었다.

분명한 지성에 인상적인 방어력과 마법까지 갖추고 있기는 하지만, 과연 교단이 이 몬스터를 지지할지 확신이 서지는 않았다.

교단이 이미 육성하는 몬스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몬스터에게 오랜 기간 많은 자원을 투자한 만큼 기대도 컸다.

이제 와서 다른 몬스터로 지지 대상을 바꿀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요사이 교단 내부에 뭔가 변화가 일어나고 있기는 했다.

최근 들어 교단 안에는 항상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라닌은 자세한 사정을 알 수 있을 정도로 교단의 고위층과 가깝지는 않았다.

하지만 분위기가 점점 더 심상치 않아지는 것만은 분명했다.

모두가 잔뜩 예민하게 굴었고, 긴급 회의들이 수시로 열렸다.

그건 아주 특이한 일이었다.

교단은 비밀스러운 조직이라, 구성원을 빠르고 움직이게 이동시키는 일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지막 점검! 조작자들은 앞으로!”

커다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라닌은 고개를 들어, 사냥감 주위에서 경계 태세를 취하고 있는 트라이아드들을 바라봤다.

몬스터는 평소처럼 미동도 없이 가만히 있었다.

거대한 개미가 주위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유일한 단서는 천천히 흔들리는 더듬이 뿐이었다.

포획한 몬스터를 여기까지 운반하느라 무려 닷새가 걸렸다.

평소에 비해 굉장히 긴 시간이었다.

움직이지 못하는 몬스터를 질질 끌고 개활지와 터널을 가로질러 여기까지 오는 일은 모두에게 고역이었다.

어쩌면 발타도 몬스터의 다리를 자른 일을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결국에는 도착했다.

막다른 길이 탐험대를 맞이했다.

던전의 다른 수많은 통로처럼, 아무 특징도 없는 돌벽으로 가로막힌 길이었다.

[이게 관문이야?]

[소통을 끊어라. 집중해야 한다.]

[네가 관문을 여는 거야? 어떤 종류의 마법이지? 공간 마법?]

[조용히 해! 아주 어려운 작업이다!]

[일리 있네. 시간이나 공간에 구멍을 뚫는 일이 절대 쉽지는 않겠지.]

[이제 더 이상 대답하지 않겠다.]

[알았어, 알았어! 행운을 빌지, 돌 아저씨.]

그라닌, 니움, 라크샴은 터널의 끝을 막고 있는 벽 앞에 모여 서서 두 손을 들어올렸다.

그라닌은 엄청난 집중 끝에 트라이아드의 두 번째 구성원인 니움에게 정신을 연결했다.

이번 작업이 더욱 어려운 이유는 세 번째 구성원인 라크샴의 도움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라크샴은 탐험 내내 자신들이 치유를 해 왔던 커다란 침팬지를 숨기는 일을 맡고 있었다.

라크샴이 없기 때문에 그라닌과 니움은 이번 작업에 더 많은 힘을 쏟아 부어야 했다.

그래도 그라닌은 충분히 노련한 조작자였다.

그라닌의 주도로 두 조작자는 통로 벽에 새겨진 룬을 찾아 활성화시켰다.

마법이 걸린 채 벽에 묻혀 있던 몬스터 코어들이 다시 살아나서, 던전의 마나를 관문에 공급하기 시작했다.

룬 문자들은 벽의 가장자리를 따라 원을 형성하고 있었다.

곧 원 한가운데 부분에서 순수한 빛이 밝은 점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여기 두 번째 스트라타에서 이 정도의 빛은 눈이 멀 정도로 밝게 느껴졌다.

그라닌은 눈을 굳게 감았다.

이제부터는 눈이 아닌 정신으로 과정을 살피며 작업을 해야 했다.

그라닌은 니움의 도움을 받아서, 머리 속의 입구를 통해 사방으로 끝없이 펼쳐진 백색의 텅 빈 세계로 들어갔다.

그리고 노련하게 원하는 방향으로 생각을 조정한 뒤, 자신에게 다가오는 정신을 향해 손을 뻗었다.

마치 서로 손을 부여잡은 사람들처럼, 그라닌과 목적지 관문의 조작자는 서로의 정신을 단단히 붙잡고 연결 고리를 공고하게 만들었다.

그러자 두 개의 관문 사이에 순수한 마나의 다리가 생겨났다.

“관문은 5초 안에 열릴 거요.”

그라닌이 말했다.

“20초 동안 열겠소. 그 이상은 무리요.”

발타가 고개를 끄덕였다.

관문을 여는 건 전적으로 조작가들의 일이라, 발타가 끼어들 여지는 없었다.

전사 계급이 굳이 스스로를 낮추어 조작자의 일에 관여할 필요도 없었고 말이다.

“줄을 잡고 당겨라!”

발타가 외치자, 사냥 대원들이 그 명령에 따라 몬스터를 관문 쪽으로 끌고 갔다.

조그만 빛의 원이 점점 벌어져 룬들 사이를 가득 메우자, 대원들은 더 속도를 냈다.

빛은 눈이 멀 정도로 밝았고, 끌려가는 몬스터는 눈꺼풀이 없기 때문인지 상당히 괴로워하며 꿈틀거렸다.

다행히 통과에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전사들은 굴과 몇 초 만에 몬스터를 끌고 관문의 빛 속으로 사라졌다.

아마 관문 너머에 이미 도착했을 것이다.

이제 남은 건 조작자 세 명과 비밀 손님 하나 뿐이었다.

“준비됐나, 라크샴.”

라크샴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고, 그라닌도 알았다는 의미로 마주 고개를 끄덕였다.

몇 초 뒤 라크샴은 관문 안으로 사라지고, 그 뒤를 니움이 따라갔다.

마지막 주자인 그라닌은 니움의 도움 없이 관문을 유지하느라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집중력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빛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빛 안에 발을 딛는 순간, 그라닌의 등 뒤에서 관문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마치 절벽에 서 있다가 안전한 지대로 점프하자 마자 발 밑에 있던 땅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아드레날린이 솟구쳤다.

혼란스러운 잠깐의 시간 동안, 아무 것도 없는 공허 속에 갇혀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곧 관문을 안전하게 통과한 그라닌은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켰다.

“드디어 집에 왔군.”

고개를 돌려 몬스터를 살피자, 반짝이는 눈을 빛내며 그라닌을 쳐다보고 있었다.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탐험 대원들이 다들 기지개를 켜며 긴장을 푸는 찰나, 갑자기 뭔가가 터지는 듯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황급히 소리가 들린 쪽을 쳐다보니 몬스터의 다리가 눈에 띄는 속도로 다시 자라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불과 몇 분 사이에, 몬스터는 자신의 여섯 다리로 설 수 있게 되었다.

*딱*

몬스터는 턱을 한번 다물어 소리를 낸 뒤, 다시 제자리에 앉았다.

+

관문 너머도 역시 어두운 통로 안이었다.

벽을 타고 흐르는 검은색 마나 줄기는 일행이 아직 두 번째 스트라타에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증거였다.

하지만 그라닌은 일행이 엄청나게 먼 거리를 이동해 왔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무려 100키로미터가 넘는 거리였다.

탐험대는 이제 리리아 동쪽의 대(大) 호수 건녀편에 위치한 갈가린 제국의 영토에 들어와 있었다.

통로 안은 거의 텅 빈 상태였다.

조금 전에 들어선 관문 반대쪽의 통로와 거의 비슷한 풍경이지만, 교대 근무를 하는 조작자들이 지내는 조그마한 전초 기지가 있다는 좀아 달랐다.

이쪽 관문을 맡고 있던 조작자 트라이아드가 나와서 탐험대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관문을 통해 끌려온 거대한 개미를 흥미로운 눈빛으로 잠시 쳐다본 뒤, 전초 기지 안으로 쉬러 들어갔다.

그라닌은 관문을 마지막으로 통과하는 주자가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끔찍한 기분을 떨치며 숨을 몰아쉬었다.

반면 앞서서 관문을 통과한 발타는 여유로웠다.

“어서 가자. 전사의 원에 저 짐승을 데리고 가서 의뢰를 종료한 뒤 휴식을 취해야 하니까. 빨리들 움직여!”

명령을 외친 자신만만한 전사는 몸을 돌려 앞으로 행진해 나갔다.

나머지 대원들은 대장의 지시 대를 따르기 위해 서둘러 몬스터를 담은 그물에 달린 줄을 붙잡았다.

그라닌은 발타의 말에 아연실색했다.

그리고 애써 관문 통과로 무기력해진 상태에서 벗어나 목소리를 높였다.

“전사 발타! 이번 의뢰의 목표는 저 몬스터를 전사의 원으로 데려가는 게 아니라, 도시 밖에 있는 조작자들의 전초 기지로 데려가는 거였소!”

늙은 골가린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발타는 몸을 돌리더니 그라닌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거리가 충분히 가까워지자, 발타는 단단한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그라닌의 복부를 주먹으로 가격했다.

전사의 무시무시한 완력에, 그라닌은 숨을 헉 하고 들이쉬며 무릎을 꿇고 쓰러졌다.

발타는 주먹을 흔들며 늙은 조작가를 차갑게 내려다봤다.

“현장에서 감히 내 명령에 반박하지 마시오, 조작자. 당신네 빌어먹을 원 덕분에, 여기서 도시까지 가려면 아직 한 시간이나 더 가야 하오. 아직 이 탐험이 완전히 내 소관이라는 의미지. 한 번만 더 내 명령을 반박한다면, 불복종의 죄로 죽음을 면하지 못할 거요. 알아들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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