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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대결
준비를 해야 했다.
그라닌은 내 다음 시합의 상대를 확인하러 갔다.
첫 번째 라운드에서 가장 첫 순서가 나였으니, 두 번째 라운드에서도 아마 마찬가지일 터였다.
나는 원소 마법의 실력을 키우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훈련을 했고, 어느 정도 성과를 얻었다.
당장이라도 원소 마법들을 융합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충동을 애써 참아야 했다.
물론 그러면 당장 쓸모가 있을 테고···
어쩌면 이 대회의 마지막 단계까지도 유용할지 몰랐다.
하지만 그런 다음에는?
곧 보잘 것 없는 무기가 되어, 결국에는 스킬 포인트의 낭비가 될 것이다.
여태까지의 노력을 수포로 되돌릴 수는 없지!
이 마법들은 미래의 더 큰 힘을 위한 토대로 쓰겠다.
먼저 그때까지 생존해야 하겠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내게 주어진 자원들을 충분히 활용해야 했다.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넉넉한 자원은 바로 바이오매스였다!
···간지러움의 시간이 찾아왔다!
타이니, 크리니스와 함께했던 사냥의 보상, 코뿔소를 먹고 확보한 바이오매스, 그라닌이 내게 제공해준 음식까지 모두 합하자 바이오매스 포인트가 꽤 많이 쌓였다.
나는 내 모든 신체 부위를 +25까지 업그레이드해서, 최대한의 힘과 효과를 확보할 생각이었다.
만약 시간이 조금 더 주어진다면, 전투가 시작되기 전 변이된 신체에 어느 정도 적응할 수 있을 터였다.
좋아, 그럼···
뭘 업그레이드할지 볼까.
+20부터 +25까지의 업그레이드는 바이오매스 포인트를 한번에 115포인트나 소모했다.
너무 비싸서 갑각이 아플 지경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변이 가능한 신체 기관들을 최대한 빨리 +25로 만들고 싶었다.
마지막 업그레이드가 필요한 +20 기관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갑각 판, 눈, 더듬이, 다리, 턱···
악! 너무 많잖아!
모두 업그레이드하려면 수천 바이오매스는 들게 생겼군···
그래도 경기가 끝나면 바이오매스가 풍부한 식량을 좀 확보할 수 있겠지.
가장 먼저 업그레이드하고 싶은 건 턱이었다.
물리적 공격을 하는 기본적인 신체 부위였고, 그만큼 강력하기도 했다.
아마 최선의 선택은 마나 주입 기능을 강화하는 것일 터였다.
턱 안에 더 많은 종류의 마나를 주입할 수 있다면, 공격 방식도 다양해질 테니까.
상대방의 약점을 겨냥해서 공격할 수 있다면, 나에게는 분명 이득일 것이다.
추후에 원소 스킬들을 융합해 강력한 신기술을 얻고 나면, 내 물기 공격도 다른 마법들과 함께 새로운 지평에 들어서겠지.
좋아.
그래도 일단은 선택지들을 확인해 볼까?
평소와 마찬가지로, 메뉴를 펼치자 마자 너무나 긴 목록이 머리 속을 가득 채웠다.
목록을 읽다 보니 매력적인 선택지들과, 처음 보는 선택지들 여럿이 눈에 띄었다.
저주받은 턱, 다이아몬드 턱(!!!), 마비시키는 턱, 늘어나는 턱 등등···
턱을 다이아몬드로 뒤덮어 갑각만큼 반짝이게 만드는 건 확실히 끌리는 선택지였다.
나는 내 다이아몬드 갑각에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니까.
늘어나는 턱도 멋졌다.
턱을 머리에서 더 멀리까지 늘어나게 만드는 새로운 신체 기관이 추가되어, 공격 범위를 50퍼센트나 늘리는 업그레이드였다.
스킬로 형성된 에너지가 공격 범위를 상당히 늘려주는 것과 비슷한 효과 같았다.
하지만 겨우 이런 것들 때문에 원래의 목적을 잊을 수는 없었다.
나는 원래대로 마나 주입 기능에 집중하기로 했다.
[빛나는 강화 턱을 마나가 넘치는 턱으로 업그레이드하겠습니까? 115 바이오매스 포인트가 소모됩니다.]
일단 수락.
물리적인 힘보다 마나 주입 공격에 더 의존하게 되는 방향이기는 하지만, 다양한 마나를 주입할 수 있다는 장점으로 균형을 맞출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럼, 다음!
아무래도 경기를 진행하는 동안 많은 부상을 입을 것 같으니, 방어력에 신경 쓸 필요가 있었다.
물론 치유 마나가 있어서 예전만큼 재생 분비선에 의존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재생 분비선은 전투 중 치유 마나 구조물을 형성해야 하는 번거로움 없이 부상을 상당 부분 치료할 수 있다는 편리함이 있었다.
요즘에는 세 번째 펫을 들여 치유 역할을 맡길 수 있게 되는 날을 고대하고 있지만, 아직 그런 역할에 적당한 몬스터를 찾지는 못했다.
아마 조만간 발견할 수 있겠지.
그 전까지 일단은 내부 갑각판 업그레이드와 재생 분비선 업그레이드로 버텨야 했다.
우선 내부 갑각판부터.
이 신체 부위는 역할이 굉장히 구체적인데도, 업그레이드 선택지는 여느 때와 같이 장황했다.
어떤 선택지는 이상했고, 어떤 선택지는 미심쩍었다.
나는 그 동안 흡수 피해량을 늘리고 재생 기능을 탑재하는 방향으로 내부 갑각판을 업그레이드해 왔다.
상해를 입는 게 거의 불가능할 수준까지 갑각의 물리적 방어력을 높이고, 어느 정도 자가 치유를 가능하게 하려는 목적이었다.
이제 결정해야 할 건, 내가 피해 흡수와 재생 중 어느 기능에 더 중점을 두느냐 하는 문제였다.
흠. 지난 번에는 재생을 선택했으니···
이번에는 강화로 가야겠군.
내 의도에 부합하는 선택지들 몇 가지가 눈에 띄었다.
일단 초기에 선택했던 방어력 관련 선택지 ‘피해 분산’ 기능을 업그레이드하는 것.
이 선택지는 내부 갑각판을 보다 신축성 있게 만들어서, 충격을 분산시키고 연결되어 있는 갑각이 직접적인 타격으로 부서지는 것을 방지했다.
다른 선택지들을 좀 둘러본 후, 나는 ‘피해 분산’ 기능을 강화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갑각은 찌르는 공격에 강한 반면 때리는 공격에 약했다.
내부 갑각판은 그런 약점을 상당 부분 보완했다.
나는 선택을 마치고 다음 신체 부위, 재생 분비선의 업그레이드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치유 속도를 높이고 사지 재생 속도를 올리는 방향으로 재생 분비선을 강화해 왔다.
다리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물론 지구의 개미만큼 가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아주 약했고 다른 신체 부위만큼 방어력이 강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의 사지 재생 속도도 꽤 빠른 편이지만, 전투 도중에 새로운 다리가 뿅 하고 생겨날 정도는 아니었다.
그걸 보완하기 위해 치유 마법이 있기는 하지만···
그걸로는 충분치 않을 것 같았다.
생각해 보니, 주위에 개미들이 많을 때에는 집단적 의지 통로 덕분에 재생 분비선이 더 빨리 충전된다.
그래서 분비선 충전 속도를 높여주는 변이가 낭비일 수 있지만, 나는 그라닌이 이야기했던 ‘시너지’ 효과를 떠올렸다.
만약 재생 분비선에 고속 충전 효과를 계속 쌓아갈 수 있다면, 한 번의 싸움을 하는 동안에도 여러 차례 치유가 가능하고···
결국 절대 죽일 수 없는 악마의 오뚝이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방어력과 치유 능력을 계속해서 쌓아 나간다면, 그만큼 강력한 시너지가 발생하지 않을까?
마음에 들어!
그 방향으로 가자!
[보조 치유 내부 갑각판을 보강 치유 내부 갑각판 +25로 업그레이드하겠습니까? 강력한 재생 분비선 +20을 빈번하고 강력한 재생 분비선 +25로 업그레이드하겠습니까? 230 바이오매스가 소모됩니다.]
다 합치면 345 바이오매스였다.
아이고.
쓰고 나면···.
15 포인트가 남는다.
세상에.
부디 다음 상대가 1: 맛있고, 2: 나를 죽이지 않았으면.
이제 간지러울 시간이었다!
나는 선택을 확정한 후, 긴장한 채로 대기했다.
으갸갸갸그갸갸갸갹!
+
그라닌이 내 방으로 돌아오기 전에 회복할 시간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그래도 변이 도중에 그라닌이 들이닥치지 않은 건 다행이었다.
그랬다면 꽤 민망한 상황이 펼쳐졌을 테니까···
사실 변이에 대해 그라닌에게 물어보고 싶은 점이 있었다.
소포스에게 미처 물어보지 못한 질문이었다.
왜 내 펫들이나 둥지의 다른 개미들은 변이할 때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나만 이렇게 간지러워서 고생을 해야 하는 걸까?
지구에서 환생한 몬스터들만 겪는 일인가?
아무래도 다음 번에 짐과 사라를 만나게 되었을 때 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히 그라닌에게 물어보았다가 놀림거리가 될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그라닌이 도착했을 때, 나는 상황이 안 좋다는 사실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라닌은 울퉁불퉁한 얼굴에 평소보다 더 우울해 보이는 표정을 한 채 내 방 안으로 내려왔다.
[어이, 그라닌. 화강암을 막 조각한 것 같은 표정인데. 뭐가 잘못 됐어?]
[재미없는 농담이로군.]
[네가 유머 감각이 없는 거지.]
그라닌은 한숨을 쉰 후 방 안의 유일한 의자 위에 몸을 던졌다.
그리고 바위 몸이 쿵 소리를 내며 의자에 안착하자, 손을 이마에 가져다 댔다.
예감이 안 좋은데.
[그렇게 심각한 일이야?]
내가 초조하게 물었다.
[좋은 상황은 아닐세.]
그라닌이 인정했다.
[아직도 그대를 어려운 상대와 짝지어 놓으려고 애를 쓰고 있더군. 첫 번째 시합을 망쳤으니, 두 번째 시합에서는 그 실수를 바로잡으려는 모양일세.]
[이번에는 뭔데? 또 무슨 힘 세고 사나운 종이야? 강철 발굽으로 나를 짓밟기라도 할 건가?]
[아닐세. 이번에는 그대의 강점을 노리기로 한 모양일세. 지난번에는 멍청하지만 힘만 센 상대를 붙였다면, 이전에는 고난도의 지능적인 마법을 사용하는 몬스터를 내놓았지.
기본 능력치나 스킬 레벨 모두 그대보다 훨씬 높을 걸세. 이번에는 마법 공격에 있어서 그대가 우위를 가질 수가 없네. 반대로 안참 뒤진다고 봐야겠지.]
좋지 않은데.
나는 그동안 마법에 많은 투자를 했다.
만약 이 몬스터가 나보다 진화 등급이 높고, 마법에 더 많은 투자까지 했다면···
내 가장 큰 강점이 무력화되는 셈이었다.
그럼 물리적인 공격력에 의존해야 한다는 의미인가?
어쩌면 그래야 할지도.
[그리고 또 한 가지, 그대의 적수는 데몬일세.]
[음··· 지옥에서 온 악마 말하는 거야? 그게 무슨 의미인데? 쇠스랑이라도 갖고 다녀? 나 삼지창에 찔리는 거야?]
데몬?
데몬이라니 그게 대체 무슨 소리지?!
설마 개미 한 마리 죽이겠다고 지옥의 문을 열어서 악마를 데려오기라도 한 건가?!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둠가이는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거야?
[지옥이라니 그게 뭔가? 쇠스랑? 쇠스랑은 농부들이 쓰는 것 아닌가? 이상한 소리는 그만 두게. 데몬은 세 번째 스트라타에 사는 몬스터를 가리키는 명칭일세. 악몽, 재와 불의 공간이지.
그곳의 몬스터들은 다른 생물의 정신적, 감정적 약점을 공격하고 상대의 사기를 꺾어 약하게 만드네. 강력하고 까다로운 적일 뿐 아니라, 그대에 비해 뚜렷한 스트라타 우위를 가지네.]
처음 들어보는 용어였다.
[스트라트 우위가 무슨 뜻인데?]
[그대가 기억하지 못하는 그대의 펫 말일세. 그림자 몬스터. 그런 부류가 그림자 피부를 가지고 있는 걸 알겠지?
그림자 피부는 생성하는 데 높은 밀도의 마나가 필요한 물질이라, 첫 번째 스트라타에서 탄생하는 몬스터들은 그런 물질로 이루질 수가 없지.
거래를 할 때 우리는 그림자 몬스터들이 첫 번째 스트라타에 거주하는 몬스터들보다 ‘스트라타 우위’를 가진다는 점을. 즉 신체 부위와 신체를 구성하는 물질이 좀 더··· 낫다는 뜻이지.]
[그럼 세 번째 스트라타 몬스터들도 마찬가지겠네, 그렇지? 마나의 밀도가 더 높아야 스폰이 가능한 물질로 이루어져 있는 거잖아. 내가 메뉴에서 찾아볼 수도 없는 그런 물질로 말이야.]
그라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맞네.]
그라닌이 무겁게 말했다.
[그 차이를 극복하려면 굉장히 어려울 걸세. 그대가 이길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쉽지는 않겠지. 경기 시작 전까지 몇 시간 남지 않았네.
그 사이에 그대의 마법 방어력을 높일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하네. 스킬 레벨을 하나라도 올릴 수 있다면 의미가 있을 걸세.]
그 후 몇 시간 동안 그라닌은 계속해서 허공에 마나를 형성했고, 나는 외부 마나 조작 스킬로 그라닌의 구조물을 부쉈다.
어떻게든 성과를 얻기 위해, 나는 모든 두뇌를 사용해서 몸 밖의 마나를 붙잡은 뒤 그라닌의 구조물을 와해하기 위한 시도를 반복했다.
굉장히 지치는 훈련이지만, 나를 데리고 갈 ‘안내역’들이 방에 들어오기 전까지 스킬 레벨 하나를 올릴 수 있었다.
나는 경쟁자들이 갇혀 있는 다른 방들을 지나치며, 이제는 익숙해진 기다란 통로를 따라 걸어갔다.
심장이 가슴 속에서 마구 두방망이질 쳤다.
경기장 문까지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고, 내 뒤를 따라오는 조작자 셋은 나의 움직임을 조금도 놓치지 않고 살폈다.
마침내 느린 ‘덜컹’ 소리와 함께 경기장의 문이 열렸다.
나는 문 뒤의 비교적 넓고 텅 빈 경기장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흥미롭군···
시합 전에 바깥쪽 벽은 모두 수리를 마친 것 같았다.
수작업으로 수리를 했다고 보기에는 완성도가 너무 높았다.
대지 마법인가, 아니면 돌의 마법?
혹은 둘을 모두 사용했나?
경기장에 있던 장애물들, 모래 바닥에 솟아 있던 바위들도 원상 복귀되어 있었다.
관람석에는 조작자들이 앉아서 경기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워낙 거리가 멀어서, 놈들이 웅성거리는 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벌써 경기장 반대편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적수였다.
첫 인상은 박쥐 같았다.
놈은 몸에서 뻗어 나온 가죽 재질의 날개 두 짝을 느릿느릿 펄럭이며 공중에 떠 있었다.
두 번째로 든 생각은, 놈의 몸집이 작다는 거였다.
고작 멜론 크기 만한 몸통에 날개가 달려 있었다.
세 번째 든 생각은···
정말 소름 끼치는 눈알이로군.
놈의 ‘몸통’은 거대하게 부풀어 오른 눈알 모양이고, 가장자리는 이상할 정도로 밝게 빛나는 검붉은 색의 살갗으로 덮여 있었다.
하지만 나의 주의를 끈 것은 그런 생김새가 아니라, 바로 눈알 자체였다.
충격적이고, 구역질이 나고, 정신을 어지럽게 만드는 초록색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눈알인지 몸통인지 모를 것에 달린 날개 바로 밑에는 가느다란 팔 한 쌍이 달랑달랑 매달려 있었다.
나는 모든 감각을 곤두세웠다.
잔뜩 긴장하며 놈과 맞서 싸울 준비를 했다.
하지만 그런데도 상대가 내게 뱀처럼 뻗는 소통의 연결 고리를 눈치채지 못할 뻔 했다.
놈은 미처 막을 새도 없이 내게 연결 고리를 이었다.
나는 곧 이어질 공격에 대비해 정신을 똑바로 차리려고 애썼다.
하지만 공격 대신, 낮고 쉰 목소리가 머리 속에 울렸다.
[네가 보인다.]
뭐···
그래?
나는 놈과 마찬가지로 목소리를 낮게 깔고 대답했다.
[당연히 보이겠지. 넌 기본적으로 날개 달린 눈알이잖아.]
[네 집이 보인다. 네 가족이 보인다. 그 따스함, 그 온기. 얼마나 좋은지 보이는구우우운.]
그 말을 듣고 나는 혼란에 빠졌다.
[응 좋아. 하지만 그걸 대체 어떻게 보는 거야?]
갑자기 초록색 눈이 밝게 빛나며, 놈의 목소리가 내 머릿속에서 폭발하듯 울려 퍼졌다.
[원한다. 내가 다 가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