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개미로 환생!-342화 (342/387)

342

탐험대

“다 왔나요?”

“아니.”

“다 왔나요?”

“아니.”

“다 왔나요?”

“젠장, 바이브! 아니라고! 도착하려면 한참 걸릴 거야, 알겠어?! 벌써 최대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고. 이것보다 더 빨리 갈 수는 없어. 제발 차라리 다른 이야기를 해!”

그제야 소중하고 축복받은 침묵의 순간이 찾아왔다.

나와 내 펫들, 바이브와 그 추종자 수백 마리, 그리고 내 ‘그림자 호위’ 스무 마리가 함께 이동 중이었다.

하나같이 강력한 개미들로 이루어진 이 일행은 던전의 더 깊은 층을 탐험하기 위해 내가 꾸린 팀이었다.

일종의 특공대라고도 할 수 있지.

코룬과 토리나의 경고가 사실이라면, 둥지 아래쪽에 라일레보다 더 큰 정착지나 도시들이 있을지도 몰랐다.

내가 걱정하는 건 그런 세력이 우리를 공격해 오는 사태였다.

군체는 최대한 깊은 층까지 파악하고 있어야 했고, 우리가 그 선봉이었다.

나는 여전히 쓸모 없는 개미가 된 기분이었다.

물론 필요한 임무고, 우리가 군체에서 이 일을 하기에 가장 적합한 전력이기는 했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일, 그러니까 둥지를 짓고, 애벌레를 키우고, 문화를 발전시키고, 새로운 영토를 길들이는, 개미 왕국을 건설하기 위한 과업은 모두 다른 개미들이 떠맡고 있었다.

반면 우리는 단지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싸움이나 하려고 길을 나선 것이다.

우리 군체가 어느새 이렇게 크고 강력하게 성장해서···

넓은 영토에 가족보다 국가에 가까운 뭔가를 건설해 나가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낯설게 느껴졌다.

하지만 녀석들이 훌륭한 개미라서 그런 걸 어쩌겠어.

성실하고, 강인하고, 그야말로 끝내주는 곤충 집단이라는 이유로 가족들을 탓할 수는 없지.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을 하는 것뿐인데···

대선배로서 나의 의무는 성장하는 군체를 보호하고 지원하는 것이다!

개미들의 꿈과 희망을 억누르는 게 아니라!

“다 왔나요?”

“악! 바이브! 이제 너도 여러 번 진화하지 않았어? 너도 다 컸잖아! 게다가 넌 리더고, 너를 따라다니는 추종자들이 많잖아? 정예 개미이기도 하고!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인내심이 부족할 수가 있어?!”

“무슨 말씀이세요? 저는 항상 이랬다고요! 왜요? 제가 바뀌어야 할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세요? 저는 항상 했던 방식으로 행동하고 있는 거예요. 아직까지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고요!”

나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이브를 쳐다봤다.

저렇게 태평스럽고 무신경한데, 여태까지 아무 문제도 없었다고?

믿기지 않았다.

나는 충실하게 바이브를 따르는 추종자 개미들을 잠시 쳐다봤다.

내가 기억하는, 언제나 정신없고 충동적인 바이브가 여전히 원래 모습 그대로라면···

어떻게 이 개미들이 아직 살아있는 거지?!

우리 뒤를 따라오던 작은 개미들 중 하나가 무심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황급히 정신을 차리고 바이브에게 들키지 않았는지 눈치를 살폈다.

물론 바이브가 그 모습을 봤을 리 없었다.

끊임없이 재잘거리면서 사방의 모든 페로몬을 향해 더듬이를 까딱이느라 바빴으니까.

휴···

솔직히 이보다는 더 성장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속도를 강화하기 위해 습득했던 모든 신체기관과 변이들 때문에, 세상의 일반적인 속도가 괴로울 정도로 느리게 느껴지는 건 아닐까?

지금 우리 모두 열심히 달리고 있지만···

사실 바이브가 마음만 먹으면 어렵지 않게 한참 앞서 나갈 수 있을 테니까.

“요즘에는 뭘 하고 지냈어? 네가 데리고 다니는 무리가 더 늘어난 것 같은데. 그나저나 저 개미들은 어떻게 뽑아? 그냥 푸른 하늘에 날벼락처럼 나타나?”

“어어, 푸르다니요? 여기는 꽤 어두운데, 검은 하늘 아닌가요? 하긴 첫 번째 스트라타의 마나는 푸른 색이었죠! 그러니까 이 개미들이 첫 번째 스트라타에서 오냐는 거죠? 그런 것 같아요. 왜냐면 저희 모두 거기서 자랐잖아요!

물론 저는 아니지만요! 저는 어릴링 때 지상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았나요? 뭐, 대선배님께 말씀드릴 필요는 없는 일이죠. 왜냐면 계속 같이 계셨으니까요! 물론 항상은 아니지만. 제가 무슨 말 하는지 아시죠?”

“응, 알아.”

진이 빠지는군.

“푸른 하늘에 날벼락이란 건···. 아니다. 어쨌든 그래서, 어떻게 뽑는 거야?”

“뭐, 저도 잘 몰라요. 저한테 와서 합류할 수 있냐고 물어보는데, 저는 항상 좋다고 하죠. 왜냐면, 왜 거절을 하겠어요? 저희는 모두 개미인걸요! 수가 더 많을수록 기쁘고 효율적이라고요!”

뭐, 개미에게는 그게 상식일 수도 있겠다.

인간이라면 모두가 타인과 함께 있는 걸 좋아하지는 않겠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개미들의 스타일이 좋았다.

이제 내가 적응이 많이 되기도 했고.

주위에 가족이 많을수록 마음이 편해졌다.

“그러니까 기준 같은 건 없는 거야? 원하면 누구든 받아주는 거라고?”

“그럼-그럼요!”

나는 내 뒤에 있던 조그만 개미에게 주의를 돌렸다.

녀석은 내가 자신을 돌아볼 거라고 생각도 못했는지, 즉시 움츠러들었다.

“너는 왜 바이브의 팀에 합류하고 싶었어?”

그러니까, 바이브가 인간들이 흔히 말하는 ‘챔피언 몬스터’라는 점은 나도 알았다.

높은 능력치를 가지고 태어났을 뿐 아니라 더 나은 진화를 하고, 다른 개체들을 이끄는 지도자의 특성을 발휘했다.

내가 알기로 아직 바이브 외에는 군체에서 태어난 챔피언 몬스터가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

그리고 우리가 바이브를 통해 챔피언 몬스터에 대해 더 잘 이해할수록, 그런 재능이 더 나타났을 때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도 늘어날 터였다.

장교로 보이는 개미는 잠시 동안 내 질문을 심각하게 고민하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바이브 님을 돕는 게 저와 군체를 위해 최선의 일이라고 느꼈어요. 여태까지 이뤄낸 걸 고려하면 맞는 선택이었던 것 같고요.”

좋은 답변이로군.

바이브와 녀석의 추종자들은 군체의 확장을 위한 최전선에서 일하고 있었다.

내가 붙잡혔을 때 구하러 나서기도 했고...

하지만 단지 ‘느낌’으로 동기 부여가 되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바이브가 가진 불가사의한 챔피언의 특성에 영감을 받기라도 한 건가?

[주인니이이임.]

[무슨 일이야, 인비디아? 뭔가 느껴져?]

[개활지를 찾았습니다아아아아아아. 그 비밀을 원합니다아아아!]

[응, 비밀을 알아낼 수 있을 거야!]

그렇다고 네가 만족하지는 못하겠지만···

“어이, 바이브. 인비디아가 근처에서 개활지를 찾았다고 하는데.”

“오예, 오예! 가요오오!”

그렇게 바이브는 달려가 버렸다.

“아직 어디인지 말 안해줬잖아?! 어이?!”

+충분한 용기를 가지고, 던전의 고통과 영광을 깨달을 정도로 오랜 기간 그 안을 탐험한 자라면, 세상의 뿌리에 파묻혀 있는 힘을 갈망하게 될 것이다.

-심연의 군단 창설 멤버인 가이우스 마그누스의 어록 중에서

+우리는 내부로 이동해 들어갔다.

그 어떤 개미도 발 디딘 적 없는 장소를 나의 형제들과 함께 탐험하는 기분은 참 좋았다.

우리는 인비디아가 감지했던 강력한 마나의 흐름을 따라 기어갔다.

가는 길에 등장하는 몬스터들은 즉시 처리해 버렸다.

내가 턱을 벌리기도 전에 수십 마리 개미들에게 당하는 몬스터들을 보니 미안한 마음까지 들었다.

선두에 나서서 공격할 수도 있지만, 모든 경험치를 나 혼자 차지하는 건 좋지 않은 행동 같았다.

군체는 강한 개체들을 필요로 했고, 애초에 내가 바이브와 녀석의 추종자들을 데리고 온 것도 그 래서였다.

그러고 보니 떠오르는 게···

“프로텍탄트!”

내 페로몬이 터널 안을 쩌렁쩌렁하게 울리자, 바이브와 다른 개미들은 깜짝 놀라 몸을 움찔했다.

특히 바이브는 알쏭달쏭하게 더듬이를 기울이며 나를 쳐다보았다.

내 추측이 맞다면, 녀석은 나를 보호할 스무 마리 보모 개미를 배치하는 계획에 아무런 연관이 없는 것 같았다.

바이브 앞에서 이 계획을 논했다 하더라도, 녀석의 흥미가 동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이런 책략은 확실히 바이브의 스타일이 아니었다.

나는 2분 정도 기다리다가 다시 한번 불렀다.

“당장 나오지 않으면 정예 개미들에게 말해서 너희가 리로이를 호위하게 만들 거야!”

그러자 프로텍탄트가 몇 초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터널 천장에 매달린 프로텍탄트는 골이 난 듯 보였다.

위협을 한 게 미안하게 느껴졌다.

“저희는 이런 식으로 모습을 드러내선 안 됩니다, 대선배님.”

녀석이 말했다.

“참나. 침묵의 방패 작전은 나도 다 알아. 네가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확인하려고 부른 거야.

네게 작전 지시를 내릴 수 있는 개미는 정예 개미나 어드반트, 슬론, 그리고 여왕님도 아니야. 바로 나지.

우리가 함께 작전을 수행할 수 있다면, 모두가 기쁘고 안전할 거야. 내가 네 다음 행동이 뭘지 혼자 계속 추측해야 하는 상황보다 말이야.”

녀석은 내가 말하는 동안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내 말을 곱씹으며 머리를 굴리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만약 내게 협력하는 척만 하면서 배운 대로 행동하라는 멍청한 지시를 따르려고 한다면, 나 정말 화낼 거야.”

움찔.

속마음을 읽기가 너무 쉽군.

평소에 모습을 완전히 숨기고 다니다 보니 그런 건가?

만약 아무도 녀석을 보지 못한다면, 굳이 반응을 통제하는 법을 배울 필요가 없잖아?

훈련의 맹점이 확실하군.

“앞으로는 갑자기 튀어나와서 내게 오는 공격을 막을 때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하라고 말해주고 싶었어. 어차피 그러고 나서 곧바로 죽을 거라면 너희는 아무런 도움이 안 돼. 차라리 이 개활지에서는 외곽을 돌아다니면서 경험치와 바이오매스를 확보하면 좋겠어.”

프로텍탄트는 잠시 나를 빤히 쳐다봤다.

“저희가 배운 내용과는 다른데요, 대선배님.”

“그렇겠지. 분명 군체의 역사 상 가장 희생적인 삶을 살라고 배웠겠지. 늘 의무를 다하고, 쉬거나 평화의 순간을 갖는 건 꿈도 꾸지 말라고. 그래, 참 숭고하고 좋기는 한데···

한 번 물어보자. 내가 진화를 해서 6단계가 되었는데 너희들은 여전히 4단계라면, 내가 직접 처리하지 못하는 상대로부터 나를 어떻게 보호할 생각이지?”

···

나는 프로텍탄트에게 생각거리를 던져준 뒤, 더듬이를 까딱여 이만 가도 좋다는 신호를 보냈다.

녀석은 곧바로 어둠 속으로 사라져 자신의 동료들에게 돌아갔다.

크리니스가 내 배 위에서 몸을 꿈틀거리는 게 느껴졌다.

[불만 있어, 크리니스?]

[저 새로운 개미들이 주인님의 안전을 자기들의 책임으로 여기는 게 마음에 안 들어요.]

[내가 시킨 게 아니야. 저 아이들이 선택한 거지. 어차피 데리고 왔으니까, 제 할 일을 다하도록 해야지. 걱정 마. 내 진짜 최종 방어선은 너니까, 크리니스.]

헉!

감정을 추스리려고 하는 건지, 크리니스는 내 갑각이 거의 부서질 정도로 나를 꽉 쥐었다.

나는 신음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개미들과 함께 전진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새로운 개활지의 입구에 도착했다.

순수하고 어두운 마나가 우리의 주위를 감쌌다.

발 밑으로는 낭떠러지가 펼쳐져 있었다.

눈 앞에 방대한 공간이 펼쳐졌다.

그 안에서는 밀도 높은 그림자 마나가 엄청난 조류를 일으키며 소용돌이쳤다.

마치 고리처럼 감기는 밧줄을 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가장 충격적인 사실은···

이 장소 전체가 거미줄로 뒤덮여 있다는 점이었다.

거대한 거미줄.

무시무시하게 크고, 산더미 같은 거미줄.

굵고 커다란 거미줄 사이의 빈 공간은 또 다른 거미줄로 메워져 있었다.

뭐 이런 곳이 다 있지?!

“역겹네요.”

바이브가 불평했다.

녀석은 앞에 놓인 난장판을 보고 혐오스럽다는 듯 더듬이를 움찔거렸다.

“최소한 저 중에 반은 독성이 있을텐데···”

내가 중얼거렸다.

그 말에 일행의 사기가 급격히 꺾였다.

타이니만 빼고.

거대한 침팬지는 크게 미소를 지으며, 양 주먹을 꽉 쥐고 두 눈을 사납게 빛내고 있었다.

[복수하고 싶어, 친구?]

내가 묻자, 타이니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주먹으로 가슴을 내리쳤다.

[박살낸다!]

타이니가 내 머리 속에서 으르렁거렸다.

타이니가 말을 하다니!

제대로 된 단어를 말했어!

물론, 타이니가 딱 한 가지 단어를 말할 수 있다면···

‘박살낸다’가 가장 적합한 단어일 것 같기는 했다!

[잘했어, 타이니! 들어가서 저 멍청한 거미줄들을 갈기갈기 찢어버리자고!]

“가자, 얘들아! 더러운 거미 종족에게 제대로 한방을 날려주고, 최강의 곤충이 누구인지 제대로 각인시켜 주자고! 군체를 위하여!”

“군체를 위하여!”

“거미류는 물러가라!”

“군체를 위하여!”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