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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미스앤트
“아직도 내가 왜 이걸 입어야 하는지 모르겠어.”
리로이가 투덜거렸다.
“모르긴.”
브렌단트는 리로이의 헛소리를 받아주지 않았다.
“우리가 이 장인 개미에게 너한테 맞는 갑옷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이지. 왜냐하면 우리 중 가장 추가 보호구를 필요로 하는 게 너니까.”
리로이는 몸을 꿈틀거리며 좀처럼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
리로이의 갑각에 수많은 강철 조각들을 붙이며 부산스럽게 돌아다니던 장인 개미는, 계속해서 정예 개미를 쿡쿡 찌르며 움직이지 말라고 타박했다.
“움직이지 좀 마세요.”
장인 개미가 꾸짖었다.
“리로이 님의 생존을 위해 준비한 갑옷이라고요.”
“그래서 마음에 안들어.”
리로이가 중얼거렸다.
“뭐라고 했어, 리로이?”
브렌단트가 물었다.
“아냐! 아무것도 아니야.”
“벌써 태도 문제로 여러 차례 지적을 받았을텐데.”
브렌단트가 지친 기색으로 말했다.
“이제 넌 더 이상 어린 개미가 아니야. 애처럼 굴지 마. 전투를 하는 게 네 역할은 맞지만, 군체가 네게 투자한 모든 자원들을 보존하려 노력하는 것도 네 책임 중 일부야. 모두가 너처럼 완전한 코어 진화를 이룰 수 있었다고 생각해? 군체의 모든 개미들이 대선배님의 개인 교습을 받을 수 있을까? 이기적으로 굴지 좀 마.”
리로이는 품위있게 침묵을 지키며 브렌단트의 설교를 견뎠다.
벌써 여러 차례 들은 이야기였다.
한때는 자신이 다른 형제들과 애초에 다른 성향을 갖고 테어난 게 아닐지 고민하기도 했다.
도저히 형제들이 생각하는 방식에 공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정예 개미들은 모두가 대선배님의 말씀을 불만 없이 받아들이는 듯 보였다.
결국 리로이는 군체의 위대함에 영광스럽게 기여할 날을 마음 속으로 몰래 꿈꾸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새 갑옷이 그 계획을 제대로 방해하려 하지 않는가!
벌써부터 마음에 안 들었다.
“마법 장에 마나를 공급하는 코어는 총 다섯 개예요.”
장인 개미가 말했다.
“두 개는 여기, 여기있어요.”
장인 개미는 더듬이로 철판을 내리쳐 위치를 가리켰다.
“무거운 철판의 무게를 조절해주는 역할을 하죠.”
이어서 장인 개미는 리로이의 머리쪽으로 이동해 투구의 끈을 조이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다른 세 개는 갑옷의 앞쪽에 모여 있어요. 여기 있는 철에는 땅의 마나가 주입되어 있고, 안정성과 견고함을 향상시키는 코어들이 있죠.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부분들을 최대로 보호하고, 동시에 갑옷이 주는 질량과 가속도의 이점을 보존하는 게 핵심이에요.”
설명을 마친 장인 개미는 뒤로 물러나 완성된 작품을 바라보며 밀려오는 기쁨을 느꼈다.
리로이는 커다란 4단계 병정 개미였고, 강력한 근육계와 두꺼운 갑각을 지니고 있었다.
경량화 주문을 잔뜩 걸었는데도, 갑옷의 무게는 1톤이 넘어갔다.
물리 능력치가 더 낮은 병정 개미라면 입고 움직이기도 어려울 터였다.
옆에서 그 과정을 지켜보던 브렌단트는, 장인 개미가 놀라운 작품을 만들어냈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다양한 갑옷 조각들이 정교하게 어울렸고, 집게, 후크, 끈이 여기저기 정교하게 사용되어 갑옷을 고정시켰다.
처음에는 이 프로젝트에 큰 기대감이 없었는데, 막상 결과물을 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이미 불굴의 병정 개미였던 리로이는 이제 전혀 다른 존재로 탈바꿈했다.
투구는 무시무시한 데몬의 형상을 하고 있었고, 눈을 보호하는 철판은 리로이의 얼굴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머리 양 옆으로 늘어져 턱 주위를 둥글게 덮은 철판은 아래쪽에서 앞으로 튀어나와 입을 보호했다.
배와 가슴은 두꺼운 철판이 덮고 있었고, 특히 몸의 양 옆을 감싼 부위가 가장 튼튼해 보였다.
반면 갑각의 아래쪽에는 특별한 보호장치가 없었다.
몸을 낮추고 앞으로 돌진해서, 갑옷으로 몸을 보호하는 동시에 부딪혔을 때 적에게 더 큰 충격을 가하기 위한 구조였다.
갑옷은 놀라운 충격 흡수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장인 개미는 철판 안쪽의 구조도 훌륭하게 완성했다.
중간중간 정교하게 만들어진 관절들 덕분에, 리로이는 갑옷을 입고도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또 철판 안쪽의 구조물이 갑옷에서 갑각으로 충격을 전달하면서 그 힘을 분산시켰다.
그런 식으로 원래 갑각의 강도도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갑옷이었다.
“이제 한번 시험을 해봐야겠네. 진행해도 되겠어, 장인 개미?”
몸집이 작은 장인 개미는 분노로 씩씩대는 리로이 주위를 돌아보며, 끈이 잘 묶였는지 확인하고 애정 어린 더듬이로 갑옷을 쓰다듬었다.
갑자기 초조해진 장인 개미는 뒤로 물러나, 마음을 굳게 먹고 대답했다.
“준비됐습니다.”
주위에서 일을 돕던 개미들이 커다란 병정 개미 둘이 마주설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자리를 비켰다.
“좋았어, 리로이. 재미있겠는데!”
브렌단트가 웃으며 앞으로 달려나갔다.
이어진 10분 동안, 브렌단트는 리로이를 신나게 때리고 물고 괴롭혔다.
리로이는 체념한 듯 가만히 서서 그 공격을 받아냈다.
장인 개미는 바로 옆에서 그 과정을 집중해서 지켜보았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조차 없었다.
장인 개미의 작품은 놀라울 정도로 충격을 잘 견뎠다.
수 차례의 변이를 마친 덕분에 강력한 턱을 가진 브렌단트는 갑옷 몇 군데에 구멍을 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철판이 턱의 힘을 모두 흡수해버리는 바람에, 그 아래의 갑각에 유의미한 피해를 입히지는 못했다.
“내 예상보다 훨씬 내구도가 좋은걸.”
브렌단트가 뒤로 물러나서 갑옷을 살펴보며 말했다.
“물론 저렇게 무거운 걸 몸에 걸치고 다니면 기동성은 떨어지겠지만.”
“맞습니다. 강력한 병정 개미만이 이렇게 무거운 갑옷을 입을 수 있어요.”
장인 개미가 말했다.
“장교 개미 같은 다른 직업군에게는 더 가벼운 갑옷이 필요하겠죠.”
“일리가 있군. 좋아, 리로이. 이제 복수할 시간이야.”
한참 동안 브렌단트의 괴롭힘을 견뎠던 리로이는 그 누구보다 복수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물론 정말 신이 나지는 않았다.
죽음의 위협이 없다면···
도저히 신이 나지 않으니까.
리로이는 몸을 흔들어 갑옷을 몸에 밀착시키고, 그 느낌에 살짝 적응한 뒤 앞으로 돌진했다.
처음에는 느린 속도였지만, 점차 속도가 붙으며 발톱이 땅을 디딜 떄마다 흙이 여기저기로 튀었다.
리로이의 질주를 바라보는 장인 개미의 눈이 반짝 빛났다.
저 힘, 저 속도, 저 막을 수 없는 공격!
바로 저거였다!
저게 자신이 꿈꾸던 모습이다!
리로이는 턱을 크게 벌리고 온 힘을 다해 돌진했다.
속도 자체는 갑옷 없이 달릴 때보다 느렸지만, 위력은 훨씬 더 강했다.
브렌단트는 최선을 다해 충격에 대비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강철 곤충이 된 리로이와 부딪힌 순간, 브렌단트는 곧바로 쓰러졌다.
속도를 곧바로 낮출 수 없었던 리로이는 브렌단트를 그대로 지나쳐 달려가서, 벽을 들이받았다.
리로이의 머리가 흙 속에 박히면서 벽의 바위에 커다란 금이 갔다.
리로이를 벽에서 빼내느라 몇 분이 걸렸지만, 어쨌든 장인 개미는 굉장히 신이 났다.
첫 번째 프로토타입일 뿐인데 이렇게 훌륭하다니!
장인 개미의 눈에, 이 프로토타입은 자신이 꿈꿔온 기능의 일부 밖에 보여주지 못하는 투박하고 조잡한 물건이었다.
그런데도 얼마나 뛰어난가!
“와···”
브렌단트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정말 대단한 작품 아니야? 심지어 내 갑각에 금까지 갔어! 나를 물지도 않았는데! 인상 깊은걸. 네 생각은 어때, 리로이?”
리로이는 살짝 현기증이 나는 듯 비틀비틀 걸어왔다.
어딘가 우울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정말 튼튼하네. 입고 있으면 죽을 일이 없을 것 같아.”
“근데 왜 이렇게 시무룩해?”
“입고 있으면 죽을 일이 없을 것 같다니까.”
“아.”
브렌단트는 미치광이 친구의 대답을 무시하고 장인 개미를 돌아봤다.
“축하해. 자원이 많이 들긴 해도, 아주 유용한 갑옷처럼 보이네. 일단은 몇 개 더 만들어서 운용하는 걸로 시작해보는 게 좋을 것 같아. 수정할 사항들이 있어, 스미스앤트?”
장인 개미는 깜짝 놀랐다.
“스미스앤트가 뭔가요?”
“네 이름이야. 앞으로 할 일이 많겠는데. 대선배님께 시간이 되시면 한번 보러 오시라고 말씀 드려야겠어. 네 작품을 보면 마음에 들어 하실 거야. 수고했어!”
+에니드는 단순히 초조한 게 아니었다.
남편이 처음 던전에 데려갔을 때, 그때는 ‘초조하다’는 표현이 어울렸다.
푸른 사막에서 카락의 껍질을 밀수할 때도, 초조했었다.
처음 군체의 둥지에 들어갈 때에도 굉장히 초조했었다.
개미 대표단이 그녀에게 다가와 앞으로 지상의 피난민들과 더욱 긴밀한 협업을 하고 싶다고 밝혔을 때는···
의자에서 떨어질 뻔했다.
주민들이 그간 몬스터의 존재에 많이 익숙해진 것은 사실이었다.
에니드조차도 개미들을 향한 태도가 크게 변했다.
하지만 에니드는 개미들이 자신들의 이웃인 인간들에게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느꼈다.
물론 호기심은 있었다.
지금도 대부분 마법사와 장인들로 이루어진 개미들이 마을을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관찰하고 질문을 해댔다.
개미들은 하루에 한 번씩은 꼭 창문을 통해 인간 장인들을 쿡쿡 찔러 다양한 질문을 던졌다.
그걸 거슬린다고 생각하는 주민들도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개미들은 질문의 값에 합당한 것 이상의 일을 해주었다.
밭을 갈거나, 건축 자재를 조달하거나, 수로를 연장하는 등 아무 대가도 받지 않고 사람들을 도와줬다.
에니드는 아마 개미들이 신성한 장소라고 여기는 듯한 공간을 조심스럽게 걸었다.
이 지하 둥지에 닿기 위해 벌써 던전을 몇 시간 동안 걸어온 상태였다.
마을 의회의 구성원들은 이렇게 깊은 곳까지 들어온다는 사실에 굉장히 불안해했다.
변경 왕국에서는 두 번째 스트라타까지 안전하게 탐험을 마쳤던 자들이 드물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조궁장 아란은 가장 많이 망설였다.
다행히 군체의 개미들은 던전이 지루하게 느껴질 정도로 아무 문제없이 사람들을 인도했다.
백 마리 몬스터 군단의 호위를 받는 일은 사치스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호위대는 맡은 임무를 훌륭하게 해냈다.
에니드는 이곳까지 내려오는 내내 야생 몬스터가 내는 소리조차 듣지 못했다.
평상시라면 말도 안 될 일이지만, 군체의 엄청난 머릿수가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아직도 내 눈을 못 믿겠군요.”
에니드는 그렇게 중얼거리는 아이작을 돌아봤다.
아이작은 터널의 벽을 장식한 정교한 조각들을 믿지 못하겠단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에니드도 조각의 수준을 보고 상당히 충격을 받았다.
그 섬세한 묘사들을 보는 순간 마음 속의 상인 정신이 살아났다.
이런 수준의 작품이라면 굉장한 가격이 매겨질 만한 시장들이 몇 군데 떠올랐다.
둥지를 방문하는 동안 이 예술품을 제작한 작가도 만나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중해요, 아이작. 우리는 의회의 구성원으로서 마을의 주민들을 대표하고 있어요. 얼빠진 것처럼 벽을 쳐다보는 일은 관두고, 좀 더 위엄을 보이란 말이에요.”
에니드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 말에 마을의 경비 대장은 자세를 바로했지만, 그것도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5분 후, 아이작은 또다른 뭔가를 바보처럼 쳐다보고 있었다.
에니드가 다시 아이작을 꾸짖으려 했지만, 아란이 말렸다.
“그냥 두시오, 시장. 나도 도무지 입을 다물 수가 없으니까. 만약 여기 오기 전에 이런 게 던전에 존재한다고 들었다면, 틀림없이 거짓말쟁이라고 했을 거요.”
에니드는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을 한 늙은 장인을 노려봤다.
하지만 아란은 언제나처럼 에니드의 노여움에 아랑곳 않고, 그저 어깨를 으쓱해 보일 뿐이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어?]
개미 인도자의 낯선 목소리가 에니드의 머릿속에 울렸다.
에니드는 정신의 연결 고리에 집중하며 대답했다.
[아니요, 아무 문제도 없어요. 이 짧은 시간 동안 군체가 이토록 발전한 모습을 보고 제 동료들이 많이 놀란 모양이에요.]
연결 고리 너머로 개미가 자랑스러워하는 것이 느껴졌다.
에니드는 개미를 칭찬하는 최고의 방법이, 군체를 찬양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 대선배님께서 가르쳐주신 개념들을 적용하기 위해 아주 열심히 노력했어.]
[저희에게서 배워간 것들 아닌가요?]
[그것부터가 대선배님의 생각이었지.]
마법사 개미가 더듬이를 으쓱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