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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로 환생!-351화 (351/387)

351

해결책

에니드는 나와 좀 더 대화를 나누다 차를 모두 마시고 쉬러 갔다.

에니드와 이야기한 내용을 고려하면, 내일의 협상은 무척 파란만장할 터였다.

하지만 일단 지금은 기대 어린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골가리들을 먼저 상대해야 했다.

[간만이야, 앤서니.]

코룬이 담담하게 인사했다.

[던전은 어땠어? 흥미로운 일이 있었어?]

토리나는 평소처럼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지만, 어딘가 평소보다 좀 더 차가운 느낌이었다.

이 둘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추측해내기가 너무 쉬웠다.

[좋아. 뭐가 불만이야? 너희는 원래 이런 식으로 대화 주제를 겉돌지 않잖아. 그라닌은 말을 참지도 못하는 성격이었고.]

그 말을 듣자 코룬은 살짝 미소를 지었고, 토리나의 눈빛도 조금 부드러워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바로 말을 잇지는 않았다.

나를 한참 바라본 뒤에야 토리나가 먼저 입을 뗐다.

[앤서니, 우리가 왜 여기 있다고 생각해?]

그것 참 좋은 질문이로군.

[그라닌이 내가 에인션트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봤고, 그래서 너희 둘을 보내서 나를 감시하면서 기록하라고 시킨 것 아니야? 내 성공과 실패를 기록해서 미래의 개체를 키울 때 그 지식을 활용하려고?]

토리나는 고개를 저었다.

[정확히는 아니야. 우리는 감독자가 아니라, 안내자이자 조수로 와 있는 거야. 네 생각보다 훨씬 직접적인 역할을 맡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무슨 소리야.]

내가 반대했다.

[나는 너희한테 뭘 하라고, 하지 말라고도 한 적이 없어. 나는 너희들을 믿고, 너희는 네 임무와 나에 관한 건 뭐라도 해도 된다고. 그저 내 가족들 주위에서는 조심히 행동했으면 좋겠어. 녀석들은 가끔 꽤 예민해질 때가 있거든.]

내가 살인적인 몬스터 개미 수천 마리가 모여 만든 문명을 ‘꽤 예민하다’고 표현하는데도, 둘은 눈도 깜박이지 않았다.

이곳 생활에 꽤 잘 적응한 것 같았다.

하긴 둥지에는 언제나 살인적인 개미들이 가득하니까!

[그럴 줄 알았어.]

토리나가 한숨을 쉬었다.

[우리를 우리끼리 내버려두면, 뭐든 알아서 할 거라고 생각했지? 하지만 그건 우리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야.]

[그럼 너희가 원하는 방식이 뭔데? 알겠지만, 나는 골가리들과의 기억이 그리 좋지 않아. 너희 잘못이 아닌 건 알지만, 지렁이 교단의 행동 양식을 내가 지원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 알겠어?]

[네 마음은 이해해. 하지만 우리 이야기를 좀 들어줬으면 좋겠어.]

토리나는 자신과 코룬을 가리켰다.

[우리는 지금까지보다 훨씬 다양한 방식으로 너를 도울 수 있어. 그러니까 네가 우리를 믿고, 데려갔으면 좋겠어. 네가 우리를 둥지에 남겨 두고 한 번에 1주일씩 던전 속으로 자취를 감추거나, 우리를 지상에 두고 혼자 지하로 돌아간다면, 우리가 너를 돕기도 힘들어져.]

[그으래서, 계속 내 곁에 붙어서 다니고 싶다?]

[결론적으로는, 맞아.]

토리나가 끄덕였다.

어어어어어···

수행원이 또 늘어나는 건가?

지금도 충분히 많다고!

내가 망설이는 것을 느꼈는지, 코룬이 끼어들어 토리나를 지원했다.

[이봐. 우리는 작전에 끼지도 않을 거고, 앞에 나가서 싸우거나 할 필요도 없어.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있고, 필요할 때 다가가서 도와줄 수 있는 위치에 있다면 그걸로 충분해. 그 정도는 괜찮잖아?]

나는 잠시 고민했다.

[그래, 괜찮은 제안이야. 그렇게 하자.]

나는 문을 통해 더듬이를 밀어 넣었고, 토리나와 코룬은 나의 더듬이를 잡고 엄숙하게 악수를 한 후 다시 차를 마셨다.

나는 방에서 나와 페로몬 자취를 따라 움직였다.

해야 할 일들, 만나야 할 개미들이 많았다!

부산스러운 터널로 돌아온 나의 첫 번째 행선지는 산업 구역이었다.

장인 개미들은 둥지의 산업 구역들을 자신들만의 왕국으로 탈바꿈시켰다.

군체의 광산은 벌써 던전의 평방 수백 킬로미터 이상으로 펼쳐져 있었고, 현장에서 추출되는 모든 광물 조각들은 이곳으로 옮겨져 제련을 거쳤다.

매일 산더미 같은 자재들이 산업구역에 들어왔고, 대장간의 불은 밤낮이고 타오르며 원자재를 녹이고, 광물을 추출하고 정화했다.

덥고 어려운 작업이었지만, 직업군들 중 가장 몸집이 작은 장인 개미들은 온갖 도구와 장치들을 사용하며 할 수 있는 것 이상의 일을 했다.

몸이 따라주지 않을 때에는 마법까지 사용했다.

그런 작업실의 미로 깊숙한 곳에서, 나는 내가 찾아다니던 개미를 만날 수 있었다.

“네가 스미스앤트?”

비교적 큰 크기에, 4단계가 분명해 보이는 장인 개미 하나가 개인 작업실에서 여러 가지 작업을 동시에 해내고 있었다.

다리 하나로는 단조를 쿡쿡 찌르며 그 안의 물질을 만지고 있었고, 다른 다리로는 도르래 망치를 사용해 뜨겁게 달궈진 철판을 다듬고 있었다.

턱으로는 재료를 잡고 구부렸고, 완성된 작품에는 룬을 새기는 마법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열심히 일을 한다고는 들었지만, 이건 정말 엄청났다!

게다가 녀석은 내가 곁에 온 줄도 모르는 것 같았다.

“저기? 괜찮은 거지?”

장인 개미는 일을 계속하며 내게 대꾸했다.

“이틀 전에 쉬었잖아! 자꾸 강제로 필수 휴식을 취하게 하는데,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어! 잠을 자면서, 정예 개미들이 주문한 갑옷 제작을 할 수는 없지 않겠어? 그러니까 좀 가줄래?”

“이틀이라고? 낮잠을 상당히 미룬 모양이네.”

“내가 말했지··· 엇.”

마침내 일을 멈추고 문을 제대로 쳐다본 스미스앤트는, 자신이 누구와 대화를 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우리 대화가 끝나면, 넌 가서 자는 거야. 반박 없이.”

내가 경고했다.

그러자 스미스앤트는 살짝 풀이 죽었다.

“네, 대선배님.”

“네 작품은 봤어. 리로이에게 만들어 준 갑옷. 놀랍던데! 마법도 직접 걸었다고 들었어.”

“맞습니다···”

방금 전까지 열정으로 불타오르던 장인 개미는, 막상 칭찬을 들으니 수줍은 듯했다.

“하지만 그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장인 개미가 열의를 갖고 말했다.

“지금 제 능력으로 만들 수 있는 최상의 결과물에 비하면 쓰레기에 불과하죠. 제 마법과 대장장이 스킬은 계속 레벨이 오르고 있고, 앞으로 수정을 거치면 철의 내구도와 마법의 효율이 15퍼센트, 어쩌면 20퍼센트까지 개선될 겁니다!”

“그건 작은 차이가 아닌데.”

“하지만 그것도 시작에 불과합니다.”

일에 대한 이야기를 할수록, 녀석은 뒤쪽의 화로에서 타오르는 불꽃만큼 뜨거운 열정을 불태웠다.

“영토가 확장될수록, 더 좋은 광물을 찾을 수 있겠죠. 시간이 지나면, 정제 실력도 더 좋아질 테고요. 매일 작업실에서 보게 되는 철의 수준이 점점 좋아지는 느낌입니다. 재료가 되는 철이 좋을수록, 제 스킬도 빠르게 좋아지겠죠! 더 효율적인 모루와 망치 설계를 연구하는 장인 개미 팀이 있다고도 들었습니다.”

스미스앤트는 아직도 빨갛게 빛나고 있는 모루를 발톱으로 두드렸다.

“제가 오래된 도구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수요를 맞추기에는 어려워서요.”

조금 놀라운 이야기였다.

“함께 일할 수 있는 장인 개미들이 많지 않아? 아니면 적어도 너를 지원해줄 수 있는 친구라도.”

군체가 문제를 해결하는 일반적인 방법은, 머릿수로 덤비는 것이었다.

일반적으로는 문제가 잘 해결되었기 때문에, 왜 이 경우에는 적용되지 않는지 궁금했다.

스미스앤트는 짜증스러운 듯 턱을 딱딱거렸다.

“아직도 대부분의 장인 개미들이 개미 갑옷의 필요성을 못느끼고 있습니다. 저희는 갑각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정예 개미들도 유용하다고 인정했잖아!”

“하지만 아직 저를 보조할 개미들을 붙여주지 않았고, 그러기 전까지는 아무도 자원하지 않을 겁니다. 군체에서 갑옷을 만드는 개미는 저뿐입니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람?!

군체에서 가장 능력있는 대장장이가,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노예처럼 일만 하고 있다고?!

“앞으로 바뀌게 될 거야.”

내가 말했다.

“군체의 생존을 돕는 물건이라면 연구 가치가 있어. 앞으로의 전투를 갑각만으로 버티기에는 충분치 않을 거야. 내가 갑옷 사업을 우선순위에 놓으라고 말을 전할게.

모든 개미가 갑옷을 완벽히 갖춰 입을 필요는 없을 것 같지만, 전방에 설 병정 개미들에게는 방어력 강화가 반드시 필요해. 다음 진화를 마치면, 내 갑옷 제작도 네게 맡길게.”

개미 산업 혁명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드는 순간이었다!

+시스템이 판게라의 사람들에게 적용되기 시작했던 ‘강림’ 사건 이후의 수 세기는 미궁 속에 남아있다. 그 후 이어진 대재앙이 대부분의 기록을 파괴했기 때문이다. 남아있는 기록 조각들은 대격변과, 그 후 던전이 지상에 열리기 전까지 이어졌던 계몽의 시대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문명화된 사회가 접하게 되는 대부분의 개념들처럼, 시스템은 정복한 자에게 엄청난 이점을 가져다주는 무기로 빠르게 인식되었다. 대격변 이후 시대의 사람들은 잃어버린 것들을 되찾기 위해 미심쩍은 관행들을 종종 따랐는데, 나의 추측이긴 하지만 이 시대의 사람들도 동일한 행동을 보였을 가능성이 높았다.

당시에 인간이 노환으로 죽는 일은 거의 없었다. 갈등이 많았을뿐더러, 사람을 자연적으로 죽게 두는 것은 엄청난 자원 낭비이기 때문이었다. 자녀가 죽어가는 부모를 죽여서, 그로 인한 경험치를 물려받는 일은 아주 흔했다. 잔혹한 일이었지만, 이는 무난한 편이었다. 오로지 주인의 경쟁력을 위해, 노예들은 실험이라는 이름으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고통을 견뎌야 했다.

많은 자들이 고통과 비밀의 시대 이후 역사 속의 ‘황금기’가 다시 도래하기를 바랐지만, 아직도 많은 것들이 미궁 속에 남아있다. 시스템에 대한 지식은 사회와 신앙 속에 쌓이기 시작했고, 심지어 같은 탐험대의 일원들 조차도 시스템을 통해 얻게 된 것을 공유하지 않았다. 설계, 클래스, 융합, 이 모든 정보들이 경쟁 우위가 될 수 있었다.

의미 있는 일이었다. 시스템은 인간이 놀라운 경지에 오를 수 있도록 해주었다. 마나의 힘과 내공을 어떻게 발휘할 지에 대한 지식을 통해, 엄청난 묘기들이 가능해졌다. 무기에서 빛의 칼날을 발사하고, 원소를 제작하고, 정신으로 빛까지 굴절시킬 수 있었다. 실력을 갈고 닦아 경지, 정점에 이른 가장 강한 클래스들은 모두 판게라에 크나큰 영향을 남겼다. 자신만의 왕국을 세우거나, 몇 세기 동안 존재했던 제국을 파괴하기도 했다.

그런 힘을 얻기 위해, 사람들은 무엇이라도 할 것이다. 내 의문은, 이런 갈등이 ‘황금기’ 동안은 어떻게 관리되었냐는 것이다. 내게 떠오르는 유일한 답변은, 엄청 강한 누군가가 나타나 온 세계에 이상향을 강제했다는 것이다.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그 자들은 결국 어떻게 되었을까?

“논문 - ‘강림’의 결과와 현대 사회에 미친 영향 – 이단자 이니릿 저”에서 발췌.

+나는 회의 한번 참석하려고 해도 이렇게 정신없고 분주한데, 다른 정예 개미들은 나에 비해 일처리 능력이 훨씬 뛰어났다.

부끄러운 일이었다.

협상 과정을 단순화하자는 에니드의 제안은 간단하고 기발했다.

에니드는 문제가 무엇인지, 대화가 왜 이렇게 늘어지는지, 라일레의 대변인들이 무엇 때문에 다루기 힘든 건지 금방 깨달았다.

바로 라일레들의 권력자들이 무능한 게 문제였다.

그렇다고 멍청한 건 아니었다.

적어도 에니드 생각은 그랬다.

지금의 위치가 너무도 편안해서, 바꾸길 원하지 않을 뿐이라고 말이다.

그들 대부분은 태어났을 때 때부터 그 위치에 있었다.

부와 힘을 모아 독립적인 공간을 마련해서 ‘라일레’라는 도시로 키운 용감무쌍한 탐험가들의 자손들이었던 것이다.

그럼 이 부유한 거머리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간단했다.

슬론의 지시 하에 도시 안의 월리스의 도움을 받으며, 군체는 권위자들을 하나하나 납치해서 지상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그리고는 베인의 교회 문간에 길을 잃은 양처럼 떨어뜨려 놓았다.

그 동안 개미들은 권력자들의 저택을 털고 부순 후, 사람들의 응원을 받으며 진귀한 자재들을 옮겼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지 깨달은 시민들 사이에서 몇 세대 동안 쌓였던 불만이 터졌고, 갑자기 대중의 의견이 바뀌며 군체는 순식간에 해방자가 되었다.

물론 아예 동요가 없었던 건 아니었다.

커다란 가문의 저택을 일방적으로 해체하면서 모두가 행복하길 바라기는 어렵지 않은가.

하지만 라일레에서의 난리보다 군체가 경험한 호의가 훨씬 컸으니, 괜찮은 거래였다.

지상의 마을에서는, 한때 귀족이었던 자들이 이제 궁핍해져서 개미를 믿는 마을의 지원 없이는 살아가지 못하는 처지가 되었다.

처음에는 돈을 줄 테니 제발 던전에 다시 데려다 달라고 마을 사람들을 설득했지만, 하루만에 포기했다.

다음날 그들은 함께 뭉쳐 자기들끼리 탐험을 나섰다.

마을 밖으로 200미터 정도 나갔다가, 정찰 개미 한 무리에 쫓겨서 돌아왔다고 들었다.

그 다음날, 그들은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라일레에서 선거가 진행될 때까지 당분간 협상은 미뤄진 상태였다.

훨씬 쾌활해진 에니드는 나와 코룬, 토리나와 차를 마시고 수다를 떨었다.

둥지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베인을 멈춰 세울 수 있을 때는, 사제도 종종 수다에 끼었다.

나로서는 슬론을 제외한 정예 개미들을 만나 다음 작전을 세워야 했다.

우리는 예전보다 더 고급스러워진 대회의실에 모였다.

개미 의자는 이제 부드러운 천으로 덮여져 있었고, 탁자에는 이전 같은 투박한 돌이 아니라 아름답게 조각된 나무 판이 올려져 있었다.

천은 왜 덮어 놓은 건지 알 수 없었다.

우리는 개미인데!

사실상 몸이 뼈로 덮여 있는 생물이라고!

물론 천 덕분에 내 다이아몬드 갑각에 기스가 날 일이 줄긴 했지만···

있어도 괜찮을 것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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