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개미로 환생!-356화 (356/387)

356

폭풍전야

자기 발전의 아름다운 고통을 느낄 시간이었다.

써야 할 바이오매스가 산더미, 바보처럼 바닥을 구르며 간지러움을 버텨야 할 시간이 한 세월이었다.

그럼 시작해볼까!

하지만 뭘 업그레이드해야 하지?

+25까지 업그레이드할 신체 부위들이 너무 많았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선택지는 눈이었다.

처음 판게라에서 환생했을 때 가장 고생했던 이유는 나의 안타까운 개미 시력 때문이었다.

+20 업그레이드에 몇 가지 변이를 선택적으로 추가해서 상황이 훨씬 나아지기는 했지만, 아직 내가 원하는 수준은 아니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두 번째 스트라타에서는 안구를 업그레이드한다고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

이곳은 두 가지 특징이 두드러지는 장소였다.

칠흑같이 어두웠고, 무덤처럼 서늘했다.

아무래도 눈은 적당하지 않은 선택지 같았다.

최근 중력 마법 분비선에 큰 신경을 쓰지 못했으니 그쪽을 공략해볼 수도 있지만, 아쉽게도 요 근래 나의 주 관심사는 다른 쪽에 있었다.

만약 중력 마법 분비선에 너무 화력을 집중한다면 원소 스킬들의 진전을 늦추게 될지도 몰랐다.

그러니 중력 마법 분비선도 패스.

선택지들을 훑어볼수록, 꽁무니 쪽으로 자꾸만 눈이 갔다.

그쪽에는 괜찮은 선택지들이 많았고, 서로 시너지를 내서 꽁무니를 더욱 강력하게 만들 수 있는 신체 부위들이 여러 개 보였다.

내가 여태까지 꽁무니에 추가했던 새로운 신체부위들은 유연한 조준을 가능하게 해주는 산성 노즐, 산성을 진득하게 만들어주는 산성 농축 분비선, 재충전 시간을 줄여주는 촉진 분비선이었다.

대부분 산성 분비선의 제 역할을 더 잘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신체 기관들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창의성을 발휘해볼까 싶었다.

어서 가능성을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에, 나는 곧바로 메뉴를 열어 조금 색다른 선택지들을 열어보기 시작했다.

첫 번째는 노즐이었다.

산성이 나오자 마자 꾹 눌러주는 압력 튜브로, 호스의 끝을 손으로 눌러 발사 범위를 늘리는 것과 같은 원리였다.

아주 유용했지만 지금의 발사 범위도 충분히 만족스러웠기 때문에, 좀 더 새롭고 독특한 선택지를 찾기 시작했다.

메뉴의 선택지 목록은 피곤할 정도로 길었고, 눈길을 사로잡는 것들이 굉장히 많았다.

이렇게 작은 분비선에 이토록 많은 선택지라니.

노즐의 속성에 새로운 효과를 부여해주는 선택지들이 많았다.

예를 들어 발사된 산성의 타격 범위를 넓혀준다던가, 포물선으로 발사한다던가.

단순히 노즐의 유연성을 높여주어 조준 효율을 높이는 일반적인 선택지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런 평범한 것들에는 관심이 없었다.

특별한 걸 줘, 시스템!

난 뭔가 평범하지 않은 걸 원한다고!

목록을 구경하며, 전투 상황에서 산성을 어떻게 사용할지 생각해봤다.

이전까지는 산성의 끈끈이 효과 덕을 톡톡히 봤었다.

적의 속도를 늦추고, 연약했던 내 몸을 건들지 못하도록 막아주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이제 내가 싸워야 하는 적들은 끈끈한 산성으로 방해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런 수준의 변이로 막아내기에는 너무 강했다.

게다가 나는 이제 적들이 내게 다가와 공격을 날리는 게 두렵지 않았다.

다이아몬드 갑각과 내부 판으로 충격을 얼마든지 흡수할 수 있으니까!

게다가 자가 치유 능력도 날이 갈수록 개선되고 있다고.

적들과 술래잡기를 하고 싶은 건 아니니까, 끈끈함은 더 이상 산성의 주요 조건이 아니다.

물론 마법 해지 속성은 여전히 유용했다.

마법 방패를 분해하고, 마법 효과를 저해하고, 두뇌를 사용하지 않고도 들어오는 주문들을 약화시킬 수 있는 기능은 굉장히 쓸 데가 많으니까.

이 점은 아주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산성 분비선을 +20으로 변이 시킬 때 그 기능을 강화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당장은 다른 특성을 찾아서 조합해야 했다.

뭐가 좋을까.

나는 목록을 내리며 여태까지의 변이들과 어울리며 새로운 기능까지 추가해 줄 선택지를 찾았다.

다른 산성 기반 신체 부위들도 확인해보며, 앞으로 산성으로 무얼 하고 싶은 건지 고민했다.

돌고 돌던 나는 결국 다시 주 산성 분비선으로 돌아왔다.

+20이었기 때문에 +25까지 업그레이드를 해야 했다.

꽁무니를 개선하려면 여기부터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선택지, 선택지, 끝없는 선택지들.

나는 어떤 산성을 원하는 거지?

너무 많은 선택지들이 눈에 들어왔다.

불타는 산성?

얼어붙는 산성?

얼어붙고 타오르는 산성?!

이건 좀 새롭네.

무기물을 더 잘 분해하는 산성?

빛을 잡아먹는 산성.

아니···

어떻게?

왜?

자가 증식하는 산성?

그러니까 산성을 한번 쏘면 더 이상 분해할 게 없을 때까지 산성이 점점 늘어나는 건가?

그건···

강력한데.

또 뭐가 있나?

너무 빨리 결정하고 싶지는 않았다.

젠장, 시스템···

왜 이렇게 선택을 어렵게 만들어 놓은 거야!

계속 보다 보면 시간을 잡아먹는 산성이라도 나올 것 같았다.

아, 안 그래도 저기 있네.

산성이 미래를 갉아먹으며 공격 대상을 늙게 만든다.

저게 뭐지?!

미친 건가?!

왜 저런 선택지가 있는 거야?

자세히 읽어보자, 생각보다 효과가 미미한 것 같았다.

제대로 나이를 먹게 하려면, 일단 변이 레벨을 엄청 올린 후 산성이 가득 찬 수조에 대상을 완전히 담가야 했다.

하긴, 그래야 밸런스가 맞지.

다시 증식하는 산성으로 돌아가 보면···

괜찮은 선택지 같았다.

지금까지 내가 했던 변이들과도 합이 잘 맞았다.

산성 용액이 계속해서 늘어나면 끈끈한 속성도 그 효과가 더 늘어날 것이다.

마법 포식 속성 또한···

산성 용액을 계속 발사하지 않아도 한번 닿은 마나 구조물이 사라질 때까지 계속해서 대상을 갉아먹겠지.

마음에 드는 그림이었다···

산성 용액을 마구 쏘아대면···

설사 명중을 하지 않아도 계속해서 늘어날 테니 적을 방해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농축 분비선이 있어서, 다른 피해 증가 변이 없이도 산성 용액 자체의 위력이 꽤나 강력했다.

첫 변이에서는 효과가 크지 않겠지만, 이번 진화와 다음 진화 때 이 방향으로 계속 밀어붙이면 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잠시 고민하던 나는 결국 이렇게 결정했다..

마나 포식 구속 산성 분비선 +20에 자가 증식 속성을 추가해서, 자가 증식 마나 포식 구속 산성 분비선 +25로 만들었다.

···참 긴 이름이군.

저 모든 속성을 압축하면 좀 더 읽기 쉬워질 것 같았다.

+30이 되면 속성을 압축할 수 있는 기회가 다시 올지도.

바이오매스를 115 포인트나 잡아먹는 산성 분비선 업그레이드 외에도, 꽁무니에 붙어있는 나머지 신체 부위도 업그레이드를 시행했다.

산성 노즐에는 압축 속성을 강화하고 난사 기능을 추가했다.

산성 용액의 자가 증식이 가능하면, 좀 더 넓은 범위에 산성을 뿌리는 게 다수의 적을 천천히, 끊임없이 갉아먹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거대한 적을 상대할 때도 몸에 여러 군데 산성을 맞춰 시간이 갈 수록 상해 범위가 점점 늘어나게 할 수도 있었다.

이렇게 +10 신체부위를 한 번에 +20까지 업그레이드하니, 총 155 바이오매스가 소모되었다.

지금까지 산성 농축 분비선은 주 산성 분비선의 속성을 강화하는 용도로 사용해왔다.

산성 용액의 밀도를 높이는 방식으로 말이다.

마음에 드는 기능이었기 때문에, +15 에는 농축 기능을 강화했다.

하지만 +20로 갈 때는 공격력을 더 강화하고 싶었다.

다행히 농축 분비선은 산성의 효과를 높여주는 선택지들을 다양하게 보유하고 있었다.

늘 등장하는 원소 피해율 증가 등등의 선택지가 보였지만, 나는 조금 색다른 방향으로 업그레이드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산성 용액에 닿은 대상의 방어력을 줄여주는 속성을 선택했다.

이러면 내 산성 용액의 효과가 한 단계 더 올라가겠지.

그렇게 나의 강력한 산성 농축 분비선 +10을 두꺼운 약화 산성 농축 분비선 +20으로 올리느라 155 바이오매스 포인트가 더 들었다.

산성 촉진 분비선은 여전히 +10에서 멈춰 있지만, 당분간은 그걸로 만족해야 할 듯싶었다.

결국 꽁무니에 추가로 부착한 신체 부위 중 +25를 달성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꽁무니 개량을 완성하려면 아직도 갈길이 멀었다.

지친 한숨을 쉬며, 나는 다시 한번 선택한 업그레이드를 확인하고 타이니에게 살짝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타이니도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후, 자리를 옮겨 방의 출입구를 몸으로 막았다.

크리니스도 상황을 파악하고 내 몸에서 떨어져 나와 밖에서 들어오는 모든 시선을 막을 수 있도록 자세를 잡았다.

이러면 내 짜증나는 투명 경호원들도 이 공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볼 수 없을 것이다!

“블랙아웃" 작전 개시···

업그레이드 확인!

하악!

프트트트···. 그극극

쿠콰캌라랴랼으갸갹!

너무 가려웠다!

빌어먹을!

+코룬과 토리나는 다음 번 앤서니에게 제시해야 할 이론과 선택지들에 대해 토론하며 터널을 걷고 있었다.

둘은 이 주제로 몇 시간이고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이는 그들의 목적이자 교단 전체의 존재 이유였으니까.

하지만 앤서니는 이런 세세한 걸 일일이 확인하고 검토하는 데 큰 흥미가 없는 것 같았다.

그래서 코룬과 토리나는 연구의 복잡한 부분들을 먼저 해결한 후 앤서니에게 전해주기로 했다.

몇 분 후 둘은 생각에 깊이 잠기며 침묵에 빠졌다.

“있잖아, 토르.”

코룬이 침묵을 깨고 말했다.

“응?”

토리나가 대꾸했다.

“앤서니가 ‘간지럽다'고 했던 게 무슨 의미 같아?”

토리나는 입을 꾹 닫고 얼굴을 찡그리며 잠시 고민했다.

“모르겠어.”

토리나가 인정했다.

“갑각이 가려워질 수가 있나?”

“다른 개미들에게 물어볼까?”

둘은 망설였다.

갑각 이야기를 할 때는 개미들이 늘 예민하게 굴곤 했기 때문이다.

“다음에 앤서니한테 물어보자.”

토리나가 제안했다.

코룬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최선인 것 같았다.

+지하 깊숙한 곳···

현기증과 울렁거림이 가시는 데는 몇 초가 걸렸다.

모렐리아는 깊은 숨을 들이쉬고 주위를 더 잘 둘러보기 위해, 룬 갑옷의 얼굴 판을 들어올리고 싶은 충동을 애써 참았다.

“안된다.”

갑자기 옆에서 들려오는 아버지의 딱딱한 목소리에, 모렐리아는 깜짝 놀랐다.

“사령관님.”

모렐리아가 신경질적으로 이를 갈았다.

“신병들의 보모 노릇을 하시는 것 보다 더 중요한 일이 더 많지 않으십니까?”

“내 개인 경호원이 내 주위에 머무르는 게 당연한 일 아니겠나?”

티투스가 차분하게 말했다.

모렐리아는 순간적으로 광전사의 분노가 가슴 속에서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지만, 거칠게 감정을 억눌렀다.

훈련을 열심히 하지 말아야 했다고 후회한 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철의 교회에서 제출한 우수한 성적의 훈련 보고서와 현장 관리 백인대장의 평가는, 티투스가 모렐리아를 자신의 근처에 배치하기 딱 좋은 구실을 만들어줬다.

사령관의 호위대에 배치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모렐리아는 강력하게 항의했다.

얼마나 화가 났는지, 아버지의 고집을 꺾어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어머니를 방문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완전한 시간 낭비였다.

모렐리아를 만난 어머니는 딸이 사무실에 들어오자 마자 기쁜 마음으로 으스러지도록 껴안았지만, 막상 이야기를 듣자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네 아버지가 아무리 바위로 깎은 것처럼 무뚝뚝해 보인다고 해도, 자기 딸을 잃을지도 모르는 위험을 감수할 거라고 생각하니?”

모렐리아는 반박하려 했지만, 어느새 어머니의 아우라에 짓눌려 숨을 헐떡이며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딸아, 포기하려무나.”

영사가 얼음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명령했다.

“너는 강하고, 네 진급은 네 능력에 따른 것이다. 게다가 나도 더 이상 내 아이를 잃기는 싫구나.”

그걸로 끝이었다.

지난 몇 년간 어머니와의 실력 차이가 좁아졌을 거라 기대했지만, 오히려 더 벌어진 것 같았다.

하루 종일 사무실에서 시간을 보내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떻게 그렇게 강해진 거지?

“환영한다아아아아.”

소곤대는 목소리가 공기를 미끄러져 다가와 레기온들의 귀를 더럽혔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목소리를 듣는 것 만으로도 불결한 느낌이 들었다.

“누구-"

모렐리아가 입을 열었다.

“나중에.”

티투스가 말했다.

티투스는 앞으로 발을 내딛었다.

자신과 딸에 대해 이미 알고 인사를 던진 대상을 향해, 티투스는 분노로 이글거리는 눈빛을 던졌다.

티투스는 저 생물들을 상대하는 일이 극도로 싫었다.

개미들을 처리한 뒤에는, 지도부를 설득해서 저 몬스터들을 정벌하자고 제안할까 싶기도 했다.

데몬은 수 세기 전에 이미 박멸 당했어야 할 암적인 존재들이었다.

등에 맨 도끼가 티투스의 분노에 반응하며 요동쳤다.

분노가 도끼를 통해 메아리치고 있었다.

티투스는 의지력을 발휘해 무기에 들어간 분노를 억눌렀다.

너는 절대 이길 수 없다.

티투스가 도끼 안에 갇혀있는 데몬에게 전했다.

너는 존재하는 동안 내게 굴복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디.

무기에 갇혀있는 영혼이 분노로 울부짖으며 티투스의 정신을 할퀴려 했지만, 티투스는 공격을 버티고 무기 안으로 타격을 되돌렸다.

데몬은 상처입은 용처럼 도끼 안에서 몸을 움츠렸다.

고향 스트라타에 돌아온 데몬은 지난 몇 십년동안 볼 수 없었던 수준으로 격렬하게 깨어났다.

하지만 티투스는 두렵지 않았다.

데몬이 살아있을 때 놈을 정복한 티투스는, 그 후로 매일같이 이 몬스터를 다스리고 있었다.

통행 협상을 위해 앞으로 나아가던 티투스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도 뒤따라오는 천 명의 무장 병사들이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여기는 세 번째 스트라타였다.

레기온의 작전이 곧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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