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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악녀가 살아남는 방식-33화 (33/83)

<-- 4. 파티라 쓰고 난장판이라 읽는다 -->

4.

파티장 홀 안에서 잔잔한 음악이 흘러 나온다. 파티가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오늘 검술 대회에서 이긴 우승자가 '여신' 을 골라야했다. 우승자는 카일론스 레이번, 그가 아직 파티장에 도착하지 않았기에 여신을 고르는 이벤트를 시작할수 없었다.

"오, 과자."

다시 파티장에 입장한 나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디저트나, 간단한 음료로 배를 채웠다. 휴안이 생각보다 늦게 오네. 늦게오면 나야 좋지만, 혹시 무슨일이 생겼나 싶어 조금 걱정이 되었다.

혹시 휴안을 사모하는 누군가가 납치, 혹은 감금을 한 것은 아니겠지? 끔찍한 상상을 하고 있으니 속이 안좋다. 이럴때는 속을 달래줄 시원한 음료수 한잔...

"라델 카르엘, 겨우 만났네."

...을 먹으려 했지만, 갑자기 뒤에서 불쑥 나타난 휴안 덕에 크게 놀랐다. 요즘 불쑥 나타나는게 유행인가. 나는 놀란 가슴을 진정하고 자연스럽게 휴안에게 인사했다.

"...아, 안녕."

자연스럽게는 개뿔. 솔직히 무서워 죽겠다. 휴안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져 있어서 저절로 몸이 움츠러지는 것 같았다. 그와중에 연미복을 입은 휴안의 모습이 눈이 부셨다. 나는 슬쩍 고개를 돌리고 손가락을 꼼지락 거렸다. 그에게는 큰 잘못을 했다. 사과를 하고 싶어도 성난 얼굴을 한 휴안을 앞에 두니,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따라와."

"...응?"

"여기서 화내는 모습을 보일순 없잖아."

휴안은 눈짓으로 주위에 있는 귀족들을 가리켰다. 파티장 홀에는 이미 수많은 귀족들이 있었다. 여기서 만약 휴안이 분에 못이기고 화를 낸다면 그의 평판이 내려갈것이다.

"아, 기다려!"

무뚝뚝하게 앞장서 걸어가는 휴안의 뒤를 따랐다. 휴안은 인적이 드문 복도까지 가는 도중에도 내게 말을 걸지 않았다. 내가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질렀다고 해도, 저리 싸늘한 태도를 취하니 섭섭하였다.

"휴안아, 화 많이 났어?"

"..."

"말 좀 해봐..."

상대가 화났다면 최대한 비위를 맞춰 줘야 한다. 나는 어깨를 축처진 채, 조심스럽게 휴안에게 말을 걸었다.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저기, 휴안아?"

"좀, 조용히해."

휴안이 나를 돌아보고 낮게 으르렁 거렸다. 그의 눈매가 사나워진 채,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감히 나한테 노래를 시켜?"

"잘부르던데..."

나는 괜히 말했다고 생각하며 입을 두손으로 막았다. 더욱 흉흉해진 휴안의 얼굴을 더이상 보기 힘들어 고개를 푹숙였다. 평소에 내가 짓궂은 장난을 쳐도 소리만 크게 내지를뿐, 딱히 화를 내지 않았던 휴안이였다.

'차라리 소리를 지르지...'

아무말 없이 노려보는것 뿐이데 굉장히 무서웠다. 조용한 분노가 더 무섭다는 말을 이제야 깨달았다. 나는 슬쩍 고개를 들어 휴안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내가 그렇게 큰 잘못을 저지른 것도..."

"뭐?"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다시 고개가 땅으로 꺼질듯 푹 숙여졌다. 마치 죄인이 된 것처럼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데, 휴안의 손이 눈에 띄었다. 정확히는 그의 손등이.

"어..."

길고 붉은 상처. 마치 무언가에 긁힌 듯한 상처는 금방 생긴 것인지 피가 살짝 고여있다. 워낙 곱고 하얀 피부라 상처가 뚜렷히 보였다. 피를 못보는 것은 아니지만, 좋아하는건 아니기에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상처가 깊지 않을걸 보니 아무래도 손톱같은 것으로 긁은것 같은데...

"이거, 누가 그런거야?"

나는 서둘러 휴안의 손을 잡아 얼굴에 가까이 가져다 대었다. 자세히 보니 상처 주변도 붉게 부어올라있었다. 얼마나 아팠을까. 나는 휴안의 손등을 들여다보며 입술을 잘근 씹었다. 손등에 상처를 내다니, 용서 할수 없는 일이였다.

"너, 지금 뭐하는..!"

지금 휴안이 화를 내고 성질을 부려도 나는 개의치 않았다. 당황해하며 손을 뺄려는 휴안의 얼굴이 새빨개져있었다. 역시나 신체적 접촉에는 약한지 화를 내던 것도 잊고 그는 손을 빼는 것에 열중했다. 억지로 잡다가 상처가 덧날까봐 휴안의 손을 순순히 놓아주었다.

"말해봐, 손등이 왜그래?"

"...긁혔어."

휴안은 아무렇지 않은듯 말했지만, 나는 심각했다. 저리 고운 피부에 붉은 생채기를 낸 사람을 찾아내고 싶었다. 그렇기에 집요하게 휴안을 타일렀다. 아까와 반대로 휴안이 고개를 푹숙이고 내 눈을 피하고 있었다.

"이래서 노래 같은거 하기 싫었는데."

계속 물어보고 타이른 끝에 휴안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무대위에서 노래를 부르는 휴안의 모습을 꽤나 많은 여학생들이 목격했다고 한다. 그 잔잔하고 기품있는 모습을 보고 인기가 더욱 상승한 모양인데, 세리아와 함께 있던 휴안은 순식간에 여학생들에게 포위되었다고 한다.

휴안은 여자를 대하기 어려워 하기에 평소 접촉하는 것을 꺼려했다. 그렇기에 화장품 냄새를 풍기며 접촉해오는 여자들이 끔찍히도 싫었던 휴안은 그자리를 벗어날려고 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폭력적인 성향이 강했던 여학생들이였기에 긁히고 많이 부딪혔다고 한다.

"지옥이였어."

휴안이 짧게 소감을 말한다. 진심이 느껴지는 소감이였다.

이로써 휴안이 파티장에 늦게 온 이유와, 나를 향해 엄청난 분노를 표출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한마디로 내가 괜히 노래를 시켜서 이런일이 생겼다는거다. 진짜 내가 죽을 죄를 지었네...

"미안해."

여학생들에게 둘러싸여 얼마나 고생했을지 안봐도 비디오 였다. 악질중에 악질로 불리는 휴안 팬클럽 '휴사모'라면 몸을 만지거나 달려드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을거다. 휴안 말대로 지옥이였겠지.

다친 손등을 빤히 쳐다보았다. 흉터가 남을까봐 걱정되었다. 괜한 말 꺼냈다가 화를 낼것 같아서 우물쭈물거리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상처, 치료해야지."

"...됐어. 큰 상처도 아니고."

휴안은 손을 슬쩍 가렸다. 계속 설득 해봤자 듣지 않을것 같았다.

"하아..."

한숨소리가 들려서 휴안을 올려다 보았다. 안색이 안좋아보인다. 여자들 때문에 피곤한가보네. 그동안 장난삼아 휴안의 몸에 손을 댄 적이 많았는데, 반성해야겠다...

"이제부터 절대 안 만질게."

나는 다짐하듯 휴안에게 말했다. 비장한 표정인 나를 내려다보던 휴안은 슬쩍 자신의 입을 손으로 가렸다.

"라델."

"...?"

"내가 둘러싸이면서 알아챈게 있거든?"

그게 뭐야?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상황에서 뭐를 알아차렸다는 건지 궁금했다.

"둘러싸이면서 지독한 화장품 냄새도, 날 만지던 촉감도 끔찍했는데."

휴안은 그때를 떠올린것인지, 몸을 살짝 떨었다. 그리고는 한번 숨을 몰아 내쉬고는 이어말했다.

"생각해보니 너는 괜찮더라고."

"...엥?"

이해할수 없는 말이기에 나는 머리위에 물음표라도 띄우고 싶었다. 그러니까, 휴안말은...난 괜찮다는건가? 근데 뭐를..?

"음."

"갑자기 뭐야..!"

시험삼아 휴안의 손을 꼭 잡아보았다. 여전히 초고속으로 얼굴이 새빨개지는 휴안이었다. 전혀 안괜찮아 보이는데? 내가 이해할수 없다는 듯이 쳐다보자 휴안은 말을 덧붙였다.

"그러니까, 다른 여자보다는 네가 낫다는거지!"

"영광이네."

뭐야, 그래도 기분 나쁘다는건 변함없잖아. 이로써 세리아를 제외하고 가까이 있어도 아무렇지 않은 여자사람 친구가 되었다. 나는 떨떠름한 기분을 떨치지 못한채 복도를 거닐었다.

"근데 나 오늘 화장했는데 괜찮아?"

"참을만 해."

여러모로 신경을 많이 써야하는 파트너였다. 그것보다 다행이다.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다보니 화내고 있던 사실을 까먹은 모양이야.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저기, 이제부터는 내가 지켜줄게."

"필요없거든."

그래도 나때문에 피해를 받은 휴안을 위해 나는 자처해서 경호원이 되기로 했다. 휴안은 질색하며 싫어했지만, 내 마음은 꺽이지 않았다.

"나한테 맡겨, 더이상 여자들에게 시달리지 않게 해줄게."

"오, 그건 좋은데?"

휴안이 좋게 반응한다. 생각보다 내 말이 솔깃한 모양이다. 그는 팔짱을 끼고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더니 이내 눈을 반짝였다...아까 둘러싸인 충격이 컸나보다.

"라델! 거기서 뭐하고 있어!"

"아, 다이아!"

다이아가 하늘색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달려오고 있다. 푸른색 드레스를 입었는데, 가운데 사파이어로 보이는 푸른 보석이 박혀있었다. 대충보아도 가격이 심상치 않은 드레스일게 분명했다.

"아, 잠깐!"

다이아가 내 앞에 당도하기전 나는 서둘러 휴안을 등 뒤로 숨겼다. 휴안이 나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전혀 가려지지 않았지만, 일단은 열심히 숨겼다. 휴, 생각보다 지키는게 힘드네.

휴안은 멀뚱히 내가 하는 행동을 바라보다가 이내 담담하게 말하였다.

"괜찮아, 다이아는 예외니까."

"뭔가 기분나쁘다?"

둘은 또 만나자마자 으르렁 거렸다. 두사람의 지겨운 싸움을 한동안 구경하다가 다이아에게 물었다.

"다이아, 무슨 일이야?"

"아, 맞다. 조금 있으면 이벤트가 시작된다는데?"

"벌써 시간이..?"

나는 복도에 걸린 시계를 슬쩍보고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여신을 고르는 특별한 이벤트가 시작하든말든 상관없었다. 우승자는 어차피 카일이고 여신이 될 사람은 당연히 세리아라는걸 알고있었다. 둘이 꼬냥거리는 장면을 보는건 꽤나 곤혹일거 같았지만, 그래도 보기 싫다고 안갈수는 없었다.

========== 작품 후기 ==========

항상 선추코 감사합니다! 오늘은 연참을 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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