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끊을 수 없는 나쁜 짓 (11)화 (11/86)

11.

무슨 뜻인지 생각하는데 시간이 소요됐다. 액세서리를 사주겠다는 뜻이라, 당혹감이 실린 입술이 흐트러졌다.

“네가 왜 해줘?”

“세 번이나 만나는데 뭐라도 줘야지.”

만나는 게 엄청난 일인 양 말한다. 마치 선물을 받아야 마땅한 일이라는 것처럼.

아니면 만나는 상대에게 늘 이런 식으로 해주었나. 놀란 소현이 무색해지는 반응이라, 떨떠름하게 말했다.

“받는 건 사양할게. 서로 어떤 것도 묻지 않기로 한 거에 뭐든 남기지 않는 것도 포함이거든.”

지한은 불만스러운 듯 눈썹을 구겼다.

“살 덧붙이지 마.”

“실례하겠습니다.”

주문한 음식이 차례대로 나왔다. 소현은 잘 되었다는 식으로 웃으며 식사를 했다. 쫄깃쫄깃한 뇨끼를 입술에 깔끔하게 밀어 넣던 소현의 눈이 희미하게 구겨졌다. 의자 뒤로 놓아두었던 핸드백에서 미세한 진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소현은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면서 한 손으로는 물을 마셨다. 입에 그 어떤 것도 남기지 않고 나서야 소현이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안녕하세요. 서 팀장님. 저녁 식사는 하셨어요?”

자연스럽게 발현된 웃음이 입술에서 만개했다. 그 모습을 본 지한이 식사를 멈추었다.

“잘하고 있습니다. 네. 그럼요. 안 그래도 오늘 말씀하셨던 거 보완하기 위해 회의 거쳤습니다. 정리한 뒤에 전화 드릴 예정이었는데 팀장님께서 먼저 연락해 주시니 제가 기회를 빼앗긴 기분이에요.”

끌어올린 입술을 유지한 채 먼저 먹으라며 소현이 눈짓했다.

“네. 알고 있어요. 기억합니다만……정말요? 네, 그날 괜찮습니다. 제가 괜찮은 곳 알고 있습니다. 그럼 그때 식사하도록 해요. 서 팀장님 만족하실 자리가 되도록 준비할게요.”

조곤조곤 속삭이던 소현의 목이 가느다란 소리를 냈다. 웃음이 계속 쉴 새 없이 흘러나오는 묘한 통화였다.

“서 팀장님도 좋은 밤 되시길 바랍니다. 네. 들어가세요.”

끝까지 속삭이는 음성이 이어졌다. 호흡을 크게 한 소현은 핸드폰을 내려 두며 지한을 보았다.

“왜 안 먹어?”

“폰 섹스 해?”

“뭐?”

소현은 넋이 나갔다. 방금 제 사무적인 통화가 어떻게 해야 그렇게 비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지한은 소현을 삼킬 것처럼 보며 와인 잔을 들었다.

“아주 간드러지던데.”

붉은 액체가 위험하게 출렁거렸다. 소현은 헛웃음을 흘렸다.

“그럼 클라이언트한테 냉랭하게 전화 받겠어? 별걸 다…….”

괜히 말하니 입만 아프다.

“내가 얼마나 핵심만 꼽아서 전달하려고 노력하는지, 호소력 있게 말하려는지 네가 어떻게 이해하겠니.”

소현은 한숨을 내쉬며 다시 포크와 나이프를 움직였다. 어긋남 없이 정갈한 모습이었다. 그를 빤히 지켜보는 지한의 시선을 느끼고서 소현이 웃었다.

“한마디만 더 할게. 내 앞에서 사회생활 안 해본 티 좀 내지 마.”

지한은 나이프를 빼 들며 대꾸했다.

“그런 거 안 해도 너 먹일 수 있어.”

소현은 거기에 답하지 않고 스테이크를 조각했다. 겉면은 아주 완벽하게 익어 먹음직스러운 색에 부드럽게 칼날이 들어가는 것을 보아하니 수준급 요리사가 조리한 레어가 확실했다.

소현이야, 접대가 익숙한 직업이라 이런 곳이 익숙하다지만 지한은 어떻게 친숙한지 의문이다. 액세서리 발언도 그렇고……쟤 차 뭐 끌었더라. 회사 앞에 찾아온 날의 풍경을 되짚어 보던 소현은 생각의 꼬리를 잘라 냈다.

궁금해서 뭐하게. 어차피 세 번만 만날 사이였고, 오늘 봤으니 앞으로 두 번 남았다.

그럼 이 짓도 끝인 셈이다. 지한은 테이블 위로 나이프를 든 팔을 세워 올렸다.

“맛은 어때.”

“미안한데 나 여기 이미 와 봤어. 처음 아니야.”

“나 봐.”

소현은 시선을 들어 올렸다. 조명에 반사된 나이프와 은회색빛 눈동자가 양날의 검 같았다. 지한은 턱을 손등에 대며 소현을 끝까지 주시했다. 암살당하는 듯 소현의 목이 바싹 마르자 느리게 입을 연다.

“이제 다시 말해. 맛 어때.”

그 모습이 이기고 지는 싸움을 벌이는 사람처럼 보였다. 저를 앞에 두고 통화한 게 그렇게 불쾌했나. 소현은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특별히 더 맛있는 거 같긴 해. 네가 있어서 그런가?”

그제야 손을 내린 지한이 시선을 내리깔며 고기를 잘라 씹었다.

“아부는 언제 들어도 기분 좋지.”

와인 탓인지 목소리가 젖어 있었다.

소현은 화장실 거울 앞에 서서 얼굴을 살폈다. 음식을 먹으면서 닦여 나간 입술 위로 립스틱을 재정비하고 머리카락도 단정하게 늘어뜨렸다. 다시 화장을 보정해야 하나. 핸드백으로 향하던 손이 멈칫했다.

“됐다, 신경 써서 뭐 해.”

식사 자리 때문인지 잠시나마 이 자리가 데이트라는 착각이 들었다. 와인으로 풀어진 몸이 이성을 흐리게 만든 거다. 지한이 말하지 않았는가. 이건 그저 재미를 위한 행위라고, 괜히 의미 부여를 할 필요 없다는 듯 소현은 찬물로 손을 닦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는 지한의 옆으로 매니저가 함께였다. 그는 애피타이저부터 디저트까지 담당하며 최고의 만족도를 안겨 주었다. 고객을 위한 배려는 배웅까지 이어졌다.

“내년에 또 찾아와 주십시오.”

거울을 제대로 안 봤나. 소현이 약지를 세워 입술 끝을 매만졌다.

“아, 얼마 전 사장님께서 다녀가셨습니다. 가족 모임으로요.”

“그래요.”

뭔가 계속 묻은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다시 화장실을 다녀올까, 팩트를 꺼낼까. 갈등하던 사이 턱 밑으로 손이 들어왔다. 놀랄 새도 없이 촉촉한 무언가가 신경 쓰이던 부위에 밀착됐다. 혀끝으로 진득하게 눌렀다가 떼어내자 소현의 동공이 굳었다.

“뭐 안 묻었어.”

낮게 속삭이니 입술 끝이 말끔해진 것만 같았다. 지한이 직접 확인시켜 준 덕분이었다. 소현은 얼떨떨한 기분을 뒤로 한 채 지한의 가슴팍을 밀었다.

“갑자기 뭐 하는 거야.”

“혀는 안 넣었잖아.”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었다. 매니저와 대화하는 줄 알았는데 언제 보고 있었을까. 그보다 목격자가 있다는 것이 회사 앞 상황과 겹쳐졌다. 매니저는 이해심 넘치는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머릿속으로는 저를 어떻게 생각할지 끔찍했다.

“좋은 밤 되시길 바랍니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소현은 빨개진 얼굴을 손부채질했다. 뜨겁게 뺨을 달구는 건 민망한 기분도 포함돼 있었다. 언제 미팅 자리로 찾을지도 모를 일인데, 제발 매니저가 소현을 기억 못 했으면 한다.

한숨을 내쉬자 화끈거리던 입술이 짙어졌다. 다른 의미로 뜨거워지는 열감이다.

도착한 곳은 41층이었다. 지한의 뒷주머니에서 나온 카드 키가 스치자 고급스러움이 점철된 내부가 펼쳐졌다. 몸을 돌린 지한은 다짜고짜 제게 달려들어 입술을 물어뜯는 소현을 보며 눈썹을 구겼다.

의중을 알아차릴 수 없었지만 야살스러운 움직임이었다. 밀착했던 입술 점막이 떨어지며 뜨거운 숨을 흘렸다. 곧바로 지한의 아랫입술을 물었다. 부드러운 촉감이 한곳에 고였다. 치열로 살짝 누르자 지한이 소현의 허리를 잡아 끌어당겼다.

더 세게 하라는 의미인데 소현은 지한에게 결박당한 채로 감질나게 움직였다. 살짝살짝 간만 보듯이. 물에 오랫동안 푹 담갔다가 꺼낸 사람처럼 부드럽게 아랫입술을 빨아 당기는 통에 꽉 잡은 손이 무색해진다.

지한의 목으로 긴장이 넘어갔다. 점막과 점막이 마찰했다. 타액이 매끄러운 막으로 형성되자 숨어 있던 혀끝이 나와 그 위로 끈적하게 지나갔다.

“후…….”

지한의 목에서 낮은 신음이 흘렀다. 짐승의 울음소리 같았다. 소현은 잡힌 허리를 유연하게 비틀며 코끝을 지한의 얼굴에 문질렀다. 혀와 다른 감촉이 동시에 밀착되자 사납게 끓어오르는 숨이 터져 나왔다. 참지 못한 지한이 혀를 움직이자 곧바로 밀착된 부위가 떨어졌다. 지한이 눈을 치떴다. 그에 개의치 않고 소현은 실선이 생길 만큼 입술 끝과 끝을 오고 갔다. 눈앞에서 비벼 댔다. 마치 넣을지 말지 허벅지 사이에서 간을 보는 남자처럼. 제가 여자가 된 것만 같은 기분이라 지한이 경고했다.

“하아……강소현.”

그러자 소현이 긴 속눈썹을 들어 올렸다. 그 촘촘한 선들이 촉수처럼 지한의 눈동자를 핥는 것 같았다. 지한은 폭주한 감정을 그대로 배출했다.

“넣어 줘.”

애끓어 미친 사람처럼 말이다. 그러자 소현이 촉촉한 혀를 공기 중으로 노출시켰다. 매끈하게 타액으로 빛나는 모습은 끝내주게 외설적이었다. 조용히 접근하는 소현의 혀를 낚아채 고개 숙인 건 지한이었다. 빠져나가지 못하게 손으로 허리를 조이며 혀를 쑤셨다. 쩔걱, 음탕한 마찰음이 빚어졌다. 제 것으로 가득 채워 주는 행위처럼 혀가 묵직한 감도로 입천장을 파고들어 쓸었다. 소현은 간드러진 신음을 흘렸다. 그 울림이 안을 조였다.

“하……아. 읏…….”

그 신음에 넣은 것도 아닌데 갈 것 같았다. 디저트로 먹었던 달짝지근한 과일 향과 농염한 와인 향이 뒤섞였다. 혀는 예민한 부위 중 하나였고 이 여자는 미칠 만큼 안이 부드러웠다. 겉은 냉랭한데, 속은 온갖 야한 것들로 집약해 놨다. 마치 아무것도 만져 보지 못한 손처럼.

지한은 온갖 야한 것들에 잡혀 있다가 다시 강렬하게 혀를 밀어 넣었다. 찔꺽, 찔꺽. 젖은 소리가 귀를 먹게 할 만큼 가득 채웠다. 소현이 손을 들어 지한의 가슴팍을 더듬었다. 그걸 잡아 지한은 제 얼굴 옆으로 가져갔다. 너도 느껴 보라는 듯이. 귀 아래에 근육이 팽창했다가 수축하는 걸 느끼던 소현은 손끝을 꿈틀거렸다.

깊게 박았던 혀를 빼자 사정을 맞이하는 것처럼 소현의 입가가 타액으로 번들거렸다. 지한은 눈을 뜨며 그 입술을 매만졌다.

“쌌어?”

젖어 윤기가 흐르는 점이 미치도록 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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