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끊을 수 없는 나쁜 짓 (12)화 (12/86)

12.

소현은 달싹거리는 가슴을 마무리 짓지 못한 채로 바삐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선 다 풀어진 입술로 웃었다.

“나 너무 많이 흘렸지.”

어지러운 정신을 바로 잡으려 애썼다. 그러자 저보다 더 해이해진 눈이 소현의 입가를 계속 엄지로 문질렀다.

“너무 예쁜데.”

그 말 때문인지 키스를 했을 뿐인데 뜨겁게 육체를 맞댄 것처럼 화끈거렸다. 서로 안고 있어 맞닿은 부위가 쿵쿵 쳐 댔다. 이대로 침대로 가는 것도 나쁘지 않았지만 식사와 퇴근 후라는 게 신경 쓰였다. 미연의 방지를 위해 소현이 지한의 셔츠 단추를 제 손으로 열었다.

“이번엔 안 뜯기게 내가 해야지.”

그걸 내려다보는 지한의 눈은 아직도 다른 세상에 가 있는 것만 같았다.

“아깐 뭐라고 하더니 지금은 왜 먼저 이래.”

그게 궁금했나. 소현은 별 거 아닌 일처럼 말했다.

“거긴 밖이었잖아. 보는 눈들 있는데 그러는 거 싫기도 하고, 실례이기도 하니까.”

솔직히 말해 그 행동에 흥분했던 것도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올라가는 내내 소현은 방으로 가 지한을 삼킬 생각만 가득했었다. 혀끝의 점도가 좋았다. 잠깐 스쳐도 하고 싶은 마음이 불쑥 설 만큼.

“이젠 방에 들어왔으니 뭘 하든 상관없지.”

바지 지퍼까지 열어 준 소현이 웃었다.

“같이 씻을래?”

“어.”

“빨리 와.”

먼저 걸어가는 소현을 보며 지한은 풀린 바지를 내려다보았다. 단단한 형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방문을 열기도 전에 저를 세운 여자는 그동안 없었다.

소현은 열기 띤 눈동자로 차분히 방 안을 스캔했다. 이 호텔 스위트룸은 대한민국 직장인 평균 월급의 두 배라는 가격도 유명했지만 고객에게 최상의 시간을 만들어 주는 공간으로 명성이 자자했다. 그것이 헛된 소문이 아니라는 걸 소현은 확인 중이었다.

블랙을 메인 컬러로 삼은 방은 고급스럽고 지나치게 심플했다. 자고 싶으면 자고, 하고 싶으면 한다는 정지한의 철칙에 부합하는 것처럼. 회색 톤의 타일로 이뤄진 복도를 지나자 서울 야경이 훤히 보이는 창이 나타났다. 그 아래로 놓인 욕조는 두 사람이 들어가기엔 충분할 만큼 넓었다. 소현은 그 앞으로 다가가며 자동차 불빛이 헤엄치는 것을 눈으로 좇았다.

“욕조 좋다. 아예 목욕을 할까.”

고객의 피로를 풀어 주려 비치된 입욕제가 소현의 구미를 당겼다. 욕실에 들어온 지한은 소현의 눈만 봐도 뭘 할지 알아챘는지 사납게 다가왔다.

목욕으로 시간을 죽일 생각 따윈 없었다. 거기다 이미 아래가 단단해져 풀어 주지 않으면 더 포악해질 거였다. 안된다고 말하려는데, 소현이 블라우스를 벗었다. 육감적인 실루엣이 검은 유리창에 비쳤다. 뒤로 팔을 뻗으며 소현이 고개를 돌렸다.

“욕조에서 한 번 하고, 나머진 침대에서 어때?”

때아닌 조건에 무섭게 열렸던 지한의 입술이 올라갔다.

“좋지.”

“그럼 입욕제 넣을게.”

소현은 욕조에 물을 틀었다. 커다란 틀 안으로 뜨거운 물이 연기를 내뿜으며 담겼다. 소현은 호시탐탐 노리고 있던 스파 제품을 조금씩 흘려 넣었다.

“이거 하면 살결 부드러워지는데 너도 자주 해봐. 향도 오래 가고. 반신욕이 건강에 좋다잖아. 피곤할 때 이거 하면 잠도 훨씬 더 잘 와.”

벌써부터 코끝으로 향긋한 냄새가 번지는 것 같았다. 지한은 소현의 손에서 통을 빼앗아 그걸 있는 대로 쏟아 부었다. 조금씩 양을 조절하던 소현이 기함했다.

“이렇게 많이 쏟아 부으면 어떡해?”

순식간이었다. 욕조에 걸터앉았던 다리가 들리더니 욕조로 넘어갔다. 눈을 질끈 감은 소현은 반사적으로 지한의 팔을 움켜잡았다.

“야, 잠까……!”

그리고 입수된 몸을 허망하게 바라보았다. 소현은 이를 아득 씹었다. 아직 바지를 벗지 않았는데, 흠뻑 젖어 축축 늘어진다. 허벅지가 잠길 정도로 낮은 수면이 이내 거대한 육체로 인해 부피감을 늘렸다. 소현은 제 허리 사이로 들어오는 긴 다리의 주인을 노려보았다.

“너 뭐 하는 거야? 옷은 벗고 해야,”

“머리부터 발끝까지 말랑말랑해진다니.”

겨드랑이 사이로 올라선 무릎이 파고들었다. 손으로 사납게 물에 파묻힌 지퍼를 뜯어낸 지한이 소현의 입술을 핥았다. 미끄러지듯 점을 핥고 빨았다.

“아…….”

바르르 살결이 진동하자 그걸 음미하며 귀로 옮겨갔다. 붉어진 귀 끝을 혀가 파고들었다. 소현의 가슴이 가느다랗게 차올랐다. 둥그런 곡선을 손으로 어루만지자 물에 녹은 입욕제가 매끈거렸다. 유두를 손으로 잡으며 미끄러운 존재가 귓바퀴를 핥았다. 혀끝을 세워 파고들었다. 물속에서 헤엄치는 듯이. 귓속으로 질척한 이명이 꿈틀거리며 울렸다.

“하앗……!”

도망치듯 소현의 허리가 뒤로 밀렸다. 끝까지 추격해 속삭이는 입술은 무법자였다.

“밑에 잡아 봐.”

소현은 제 어깨를 잡은 힘을 이겨내며 손을 움직였다. 오일을 뒤집어쓴 것처럼 손바닥이 형체를 제대로 가두지 못했다. 힘을 주니 지한이 낮게 신음했다.

“아직 손 쓰지 마.”

음미하듯 이 감촉을 더 즐기려는 것만 같았다. 그 바람을 소현이 들을 리 없었다. 손목을 살짝 들어 올렸을 뿐인데 지한의 입에선 퇴폐적인 숨결이 뿜어졌다.

“말 안 듣네.”

“하, 혼내던가.”

고개를 비튼 지한이 귓가를 적셨다.

“허리 더 젖혀 봐.”

여유 없는 목소리가 젖은 안을 헤집었다.

*

지한은 뻐근한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암전된 내부가 입욕제 향으로 가득했다. 코끝을 마비시킬 만큼 강한 향의 원천을 찾으려 옆을 헤집자 순간 지한의 눈이 섬뜩하게 올라섰다. 두 팔로 침대를 딛고 상체를 일으킨 지한은 손을 더듬었다. 조명이 공간을 완벽하게 밝혔다.

안은 난장판이었다. 누가 보면 도둑이 들었다고 생각될 만큼 쿠션은 바닥에 떨어져 있었고, 러그는 반쯤 배를 뒤집어 까고 있었다. 그를 지나치며 지한은 방안 곳곳을 헤집었다. 빠짐없이 눈을 살피고 나서야 낮은 욕지거리가 튀어 나왔다.

지한은 무서운 기세로 침대로 돌아갔다. 제 핸드폰을 들어 올리자 아침 6시였다. 그럼 적어도 소현이 빠져나간 건 그 이전이란 소리다. 통화 버튼을 누른 지한은 눈을 감았다. 지독하리만치 반복되는 연결음이 안 그래도 없는 성질을 더 긁어 소멸시켰다.

인내가 끊길 때쯤 연결음이 멈추었다.

“너 언제 갔어.”

바쁜 건지 소현은 질문에 곧바로 답하지 않았다. 어수선한 분위기가 지한의 청각까지 어지럽혔다.

「벌써 일어났어? 나 새벽……4시쯤인가, 잘 기억 안 난다.」

생각보다 훨씬 더 짧은 시간에 지한은 인내하며 말을 뱉었다.

“누가 가랬지.”

「잘 자는 거 안 깨우고 나왔더니만 왜 갑자기 성질이야?」

“누가 가라고 했느냐고.”

차가운 음성이 심상치 않았는지 소현도 낮게 목소리를 깔았다.

「너 만나느라 어제 야근을 못 했어. 일찍 일어나서 저기압인가 보다, 얼른 더 자. 알았지? 좋은 하루 되고.」

“강소현.”

「왜.」

“…….”

왜 이렇게 화가 나는지 모를 일이다. 그날 아침도 일어났을 때 옆자리가 비어 있었다. 메모지와 돈이 소현이 남긴 전부였다.

「나 운전 중이야.」

“끊지 마.”

「왜 화가 난 거야?」

한 번도 제 허락 없이 곁을 비운 사람은 없었다. 그것도 기다렸다는 듯이 도망치는 여자는 더더욱. 지금껏 만나 온 끈질기게 들러붙는 여자들과 소현은 완벽하게 반대를 이뤘다. 호시탐탐 빨리 나가려고 안달이다. 이유 모를 분노에 지한은 충동질이 일었다.

“오늘 나와.”

「……뭐?」

놀랐는지 소현의 목소리가 올라갔다. 그 충격받은 머릿속에 지한은 글자를 새겨 넣었다.

“7시까지. 늦지 말고 와.”

전화를 끊고 나자마자 침대로 핸드폰이 처박혔다. 지한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아 보려 크게 호흡했다. 그리고 욕실로 향했다. 어제의 잔해들이 욕조에 들러붙어 딱딱하게 표피만 남긴 채 굳어 있었다. 매끄러웠던 어제와 달리 오늘은 삭막하다.

시선을 옮기던 지한은 욕실 한편에 놓인 검은 바지를 발견했다. 기억을 더듬자 소현이 입었던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어제 욕실에서 제가 빠뜨리는 바람에 장렬히 전사했던 바지는 아직도 물기가 덜 말라 눅눅했다.

뭘 입고 갔지. 단순한 물음에 생각의 끈이 길어진다. 발길을 돌린 지한은 제 옷장으로 가 보았다. 문을 열자 코트 한 개가 보이질 않았다. 그 밑으로 메모지가 놓여 있었다.

[네가 한 짓 때문에 옷 빌려 간다. 다음에 만날 때 돌려줄게.]

지한은 그 글자를 깊이 있게 쳐다보았다. 분명히 속옷도 젖었는데. 입가에 어이없는 웃음이 스쳤다.

“골 때리는 짓을 하네.”

그 순간 주인의 흔적이 남겨진 필체가 그림을 만들어 냈다. 제게 허벅지까지 오는 길이는 소현이 입었다면 무릎 아래까지 덮을 거였다. 단추를 꼼꼼하게 잠근 채 맨다리로 문 밖을 나섰을 패기가 묘하게 흥분되었다.

얼마나 아찔했을까. 바람이 불어온다면 어디까지 추위를 느낄까. 지한은 손에 들린 메모지를 가볍게 팔랑거렸다.

“자꾸 귀여운 짓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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