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끊을 수 없는 나쁜 짓 (27)화 (27/86)

27.

긴 속눈썹을 세다 지친 것처럼 지한의 눈은 찌들어 있었다. 언제부터 나를 보고 있었지. 소현은 주춤하다가 호선을 그리며 속삭였다.

“어떨 거 같은데? 알고 싶으면 말해 줄게.”

“이미 알아. 여기서 키스하고 올라가서 섹스 하겠지.”

적나라한 나열이 소현은 부끄럽지 않았다. 전부 다 맞는 소리였으니까. 그것만이 횟수를 사용할 방법이었고, 이 관계를 완벽히 끊어 낼 수 있는 수단이었다.

어제 성민을 만나면서 소현은 이제 모든 것이 지겹고 진부해졌다. 관계의 회의감이 몰려왔다. 오늘의 즐거움이 내일의 고통이 될지도 모른다. 그전에 그만두려고 하는 거다. 한시라도 빨리 이 자극적인 행위에 길들여지기 전에. 지한은 어느 면을 보아도 제가 좋아하는 것을 갖추고 있었다.

“그래서 싫니?”

이런 유혹 앞에서 쉽게 무너지는 것이 지한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소현은 제 계획이 들통 났다고 한들 실패로 생각하지 않았다. 쾌락을 좇는 것은 서로가 쌍둥이처럼 무척 닮아 있었다.

“나 지금 너랑 키스하고 싶어. 하자……응?”

벌어진 입술로 다시 다가간 소현이 아랫입술을 지분거렸다. 젖은 마찰음이 야릇하게 울려 퍼졌다. 소현은 몸을 떨며 뺨으로 옮겨가 입술을 부딪쳤다. 달그락, 달그락……느린 턱짓과 사탕 소리가 여유롭게 들려왔다.

“너 어제 무슨 일 있었어.”

지한의 얼굴에 입술 자국을 남긴 소현은 가파른 숨을 죽여 말했다.

“난 여기서 해도 괜찮긴 한데, 여기서 하고 올라가면 되잖아.”

“강소현.”

묵직한 목소리가 소현의 심장을 쥐어짜는 것만 같았다. 제 이름이 어떤 의미라도 생긴 것처럼 들려왔다.

“어제 무슨 일 있었느냐고.”

묻지 않기로 했었다.

“말 안 해?”

그 어떤 것도. 지한의 얼굴 위를 더듬던 소현이 입술을 짓누르며 허리를 뒤로 뺐다.

“안 쓸 거면 하지 마.”

“어딜 가?”

“너 안 할 거잖아. 딴짓에 이상한 거 묻고, 그래서 식었어.”

“야.”

“너 지금 흥분도 안 되지? 이제 나랑 만날 필요도 없겠네. 흥미가 떨어져서 즐겁지가 않을 테니까 서로 마지막까지 갈 필요도 없을…….”

소현이 문을 열려고 하자 잠금 장치가 달칵하고서 묵직하게 잠겼다. 등골이 싸늘해졌다. 문고리를 잡아 당겼지만 열리지 않았다. 소현의 고개가 옆으로 움직였다. 저에게 주겠다며 공들여 빨던 사탕이 거센 턱짓에 으깨지며 부서졌다.

“흥분은 충분히 됐고.”

지한이 안전벨트를 풀자 바지 사이로 흉흉하게 선 형체가 보였다.

“그래서 무슨 일인지 말해. 어제 네 목소리 듣고 종일 기분이 개 같았으니까.”

더는 뭉개지듯 발음하지 않았다. 지한은 아까와 달리 또렷한 형태로, 각인되듯 소현의 시야에 박혀 왔다.

소현을 향해 완전히 몸을 비틀자 내부가 순식간에 좁아졌다. 철장에 갇힌 것처럼 소현의 몸이 한없이 작게만 느껴졌다.

“네 기분이, 나와 무슨 상관이니?”

소현은 움츠러든 채 뛰기 시작한 심장을 모른 체하며 말했다.

“연관 있는 것 같거든.”

“사생활에 대해서 안 묻기로 한 거 잊었어?”

“…….”

지한이 눈썹을 구겼다. 사생활을 궁금해하면 그날로 횟수와 상관없이 끝이었다. 삐딱하게 눈썹 끝이 올라갈 만큼 손으로 밀어낸 지한이 입을 벌렸다.

“실수했네. 그치?”

차가운 음성이 소현의 청각을 예리하게 할퀴었다. 소현은 마른침을 삼켰다. 묻는 것만으로도 끝낼 수 있는 사유가 되는 걸까. 판단은 소현의 몫이었다. 밀어 붙이면 될 거다. 소현이 말하려고 하자 커다란 손이 소현의 팔 안쪽을 잡았다. 소현은 눈을 크게 떴다.

“뭐해?”

“가까이에서 말해 줘.”

“뭐?”

아까 반응조차 안 할 땐 언제고, 지금은 소현을 끌고 와 제 다리 위로 앉혀둔다. 소현의 고개가 패널에 닿아 숙여졌다. 지한을 내려다보긴 했지만 차체가 워낙 낮아 머리카락만 시야에 들어왔다. 안기다시피 몸을 마주하고 있다. 지한은 한쪽 허벅지를 느리게 꿈틀거리며 소현의 허리에 팔을 감았다.

“이것도 키스로 치나?”

순수한 물음이었다.

“……아니.”

소현은 저도 모르게 대답했다. 몸을 맞대고 있을 뿐이니까, 이 정도 행위쯤은 괜찮지 않을까. 서로 옷을 벗은 것도 아니고 사적인 영역에 들어가는 행위는 아닌 것 같았다. 지한은 소현의 목덜미를 탐미하듯 코를 문지르며 호흡했다.

“섹스보다 더 야한데.”

농도 짙은 끈적한 목소리에 소현은 소름이 일었다.

쇄골 근처에서 지한의 입술이 맞닿았다. 블라우스에 가려져 직접적인 접촉은 아니었지만 소현은 그것이 더 자극적으로 느껴졌다. 얇은 천 사이로 느껴지는 숨결의 율동이. 지한은 소현에게 맞춰 들어가듯 골반을 느리게 밀어 올렸다. 순간 소현의 엉덩이가 움츠러들었다. 지한이 사납게 말했다.

“조이지 마.”

참기 어려운지 감은 팔을 조이며 뜨거운 숨을 토해 냈다.

“안 그래도 터질 거 같아.”

엉덩이로 밀착된 형태는 심지가 굳건했다. 소현은 손끝이 새하얗게 질리도록 구기며 지한의 어깨를 잡고만 있었다. 한쪽 뺨으로 결이 좋은 머리카락이 비벼졌다. 지한은 안으로 깊게 들어와 잠긴 것처럼 숨을 내쉬었다. 폭발할 것처럼 근육들이 딱딱하게 부풀어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다시 말해.”

신음하는 것처럼 목소리가 잔뜩 갈라져 있었다. 소현이 침을 삼키자 거기에 맞춰 지한도 목울대를 움직였다. 적나라한 소리가 크게 번져 소현의 가슴을 적셨다.

“사생활은 안 묻기로…….”

“그거 말고.”

지한의 팔이 허리를 아래쪽으로 끌어내렸다.

“이거.”

소현은 숨을 집어삼켰다. 쾅 찧는 것처럼 척추가 전율했다. 맞닿은 곳으로 열기가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독 같은 목소리가 가슴으로 흘러내렸다.

“여전히 난 네게 반응해.”

그 말이 환각처럼 심장을 삼키며 소현의 이성을 어지럽혔다. 흥분하지 않으니, 이제 더는 만날 필요도 없단 얘기가 무효화되는 순간이었다. 지한은 여전히 건실하게 육체적 충동을 느끼고 있었다. 어쩌면 이 신호가 기회일지도 모른다. 소현이 몸을 꿈틀거리자 막는 것처럼 소현의 허벅지로 손이 박혔다. 날카로운 이빨 같았다.

“가만히 있어.”

소현은 대체 뭐가 문제인지 알 수 없었다. 흥분했고, 서로 달아올랐다. 그러니 한 번 하면 된다. 소현이 다시 움직임을 이어가려고 하자 살이 움푹 팰 정도로 잡고 있던 지한의 손가락이 미끄러졌다. 올라가 소현의 등을 어루만졌다. 정말 소현의 안으로 들어온 것도 아니면서 깊이 밀어 넣은 것처럼 떨리는 숨을 짧게 뱉는다.

“확인됐지.”

거기에 소현은 경련하는 눈꺼풀을 내렸다. 제 살결에 탁해진 눈빛과 언어를 문지르는 것 같았다. 그곳으로 열이 발화하듯 피었다. 얼굴을 볼 순 없지만 느낄 수 있었다.

“의심하지 마.”

지한은 지금 참고 있는 거였다. 한 번이 아까워서 그러는 건지, 아니면 대체 무엇 때문인지.

허리에 감겨 있던 손을 풀어낸 지한이 차 문을 열었다. 갑자기 열린 틈으로 들어온 공기가 내부를 환기 시켰다. 지한은 크게 숨을 내쉬며 소현을 올려다보았다.

“내려, 이제.”

소현은 울컥해 말했다.

“너 혼자 즐기다가 필요 없으니까 이제 꺼지라는 거야?”

“못 참겠으니까 가라고. 한계야.”

“하면 되잖아. 대체 왜 참는 건지 이유라도 알자고.”

“사생활 안 묻는다며.”

지한의 눈빛이 소현에게 깊숙이 침투했다. 서로를 탐하는 행위에 잔뜩 열중한 남자처럼 그의 눈은 여전히 초점이 흐릿했다.

“너도 실수했다. 그치?”

소현은 잘근 입술을 씹었다가 웃었다.

“실수는 지금 네가 하고 있는 거지. 얼마나 아끼고 아끼다가 하려고 그래? 마지막 날에 한다고? 그때 가서도 지금처럼 즐거울 거 같지.”

아닐 거다. 소현은 확신할 수 있었다. 그때 가서 소현은 이 관계에 흥미가 떨어지다 못해 탈력을 진하게 느끼고 있을 거였다. 이미 성민이 즐겁고 아름다웠던 것으로 소현에게 상처를 냈고, 그 흉터 때문인지 더는 열정적일 수 없었다.

“내가 하기 싫어졌어.”

이미 내 가치는 그로 인해 더럽혀지고 엉망이 되었다. 다시 꽃을 피워야겠다는 생각보다 지금은 울타리를 넘어 발에 짓밟혀 버린 제 영역이 소현에겐 더 크게 다가왔다. 남몰래 가꿔 오던 꽃밭을 잃은 상실감이 조금 전 지한의 거부로 인해 더욱 망가진 것만 같았다.

미련 없이 떠나는 것처럼 소현은 두 다리를 바닥에 내려 두었다.

“간다.”

소현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어갔다. 쾅, 등 뒤에서 문이 닫히는 소리가 거칠게 들려왔다. 소현이 엘리베이터 앞에 서자 뒤에서 따라붙은 그림자가 느껴졌다. 소현은 엘리베이터 문에 비친 지한을 노려보았다.

“웬만하면 다른 엘리베이터 타고 가. 너랑 같이 탈 생각 없어.”

“그렇게 나랑 하고 싶어?”

“아니. 하기 싫어.”

지한은 깊이 숨을 내쉬었다. 도착한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소현이 올라타고 닫힘 버튼을 누르려고 하기도 전에 지한이 올라탔다. 소현은 제가 내릴까 하다가 쓸데없는 행위에 기력을 소모하고 싶지 않았다. 시선을 내리깔고 없는 사람으로 취급하는 것이 더 편했다.

로비 버튼을 누르자 지한이 아무런 모션도 취하지 않는다. 방으로 올라가는 층수 버튼을 누르지 않는다. 로비에 도착하자 지한이 따라왔다. 소현은 질린다는 듯이 지한을 쳐다보았다.

“거기 세우고 따라오지 말라고.”

“배웅은 가야지.”

아직도 섹스에 취한 것만 같은 눈을 하고 있으면서. 소현은 입술을 깨물며 밖으로 향했다.

대기 중이던 벨보이에게 택시를 불러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기도 전에 승객을 태운 차가 로비에 멈춰 섰다. 소현은 기다렸다는 듯이 열린 문으로 올라탔다. 지한이 문을 닫아 주려고 손을 올리자 그보다 먼저 문이 닫혔다. 소현이 창문 너머로 지한을 응시하다가 기사에게 뭐라고 속삭였다.

목적지를 입력받은 차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하아.”

지한은 인내를 새기는 것처럼 숨을 흘리며 팔을 거뒀다.

횟수를 쓸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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