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지한은 놔줄 마음이 없는지 손을 떼지 않고 남자를 쳐다보고 있었다. 소현이 손으로 지한의 팔을 잡아 끌었다.
“그만해, 빨리 가자.”
“…….”
채근거리는 소현을 보며 지한이 순순히 팔을 내렸다. 족쇄에 풀린 남자는 기울어진 몸을 똑바로 세우며 흐트러진 재킷을 손으로 털었다.
“너 뭐 하는 새끼야? 어디 감히…….”
제가 당한 일을 그냥 넘어갈 순 없는지 한쪽만 빨개진 얼굴로 소리치던 순간이었다. 정면에서 똑바로 마주친 눈동자가 남자의 눈을 날카로이 그었다. 살을 베는 압도감에 남자는 손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시선이 저를 칼로 꼽아 고정시킨 것만 같았다. 남자를 쳐다보던 지한은 걸어가 소현의 턱을 잡고서 입술을 밀어붙였다.
“읏.”
소현의 등이 벽으로 밀착되었다. 남자의 얼굴이 아연실색하여 굳어 버렸다. 저를 주시하는 눈동자가 열기로 들끓었다. 굵직한 형체가 삽입되자 붉은 입술이 힘없이 벌어졌다. 교접하는 둘의 혀가 남자의 시야에서 질척하게 산란했다. 똑바로 보라는 듯 쩔걱거리며 혀가 음란하고 밀도 있게 소현의 입안을 헤집었다. 새하얀 뺨이 홀쭉하게 팼다가 밀도감에 도드라지며 윤곽을 드러냈다. 남자의 목이 새빨개졌다. 여자의 허벅지를 잡는 것처럼 지한이 턱을 잡은 손을 아래로 눌렀다. 부드럽게 벌어지는 입술은 흥분했는지 투명한 액체를 흘리고 있었다.
“하……참.”
남녀의 성교를 관음 하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사과를 받아야겠다는 생각도, 소현에게 질척하게 굴어야겠단 생각도 남자의 머릿속에서 빠르게 휘발했다. 그 모든 걸 잊게 하는 건 지한의 눈빛이었다. 제게서 눈을 떼지 않으며 외설적인 모습으로 제 여자임을 표시하는 남자에게 그 어떤 전의도 불태울 수 없었다.
도망치듯 남자가 몸을 돌려 사라지자 지한의 숨이 거칠어졌다. 눈을 내려 감자 제 목에 휘감은 소현의 두 손이 느껴졌다. 바르작 떠는 어여쁜 떨림을 혀로 녹여 주며 빨아 마셨다.
“으응……음.”
신음이 휘감기며 흘렀다. 소현은 감은 눈꺼풀을 들어 올릴 수 없었다. 주변 공기가 연소하는 것만 같았다. 가슴이 커다란 손으로 맘껏 주물러 주길 원하듯이 꿈틀거렸다. 입고 있는 속옷이 갑갑하게 느껴져 소현은 숨을 할딱거렸다.
“하윽.”
지한의 손이 허리를 스치자 팔딱거리며 척추가 튀었다. 얇은 옷감을 뚫고 들어올 듯 물결을 만들어 내며 헤엄쳤다. 곤두선 솜털이 이리저리 쓸려 따가웠다. 혀가 소현의 목 뒤를 푹푹 찔러 댔다. 소현은 죽어 가는 신음을 토했다. 입술이 잠시 떨어졌다.
“하아…….”
얼굴을 훑는 시선이 마치 소현을 혼내는 것만 같았다.
“이제 집에 가.”
날이 서린 매서운 목소리가 소현의 입술을 스쳤다.
“가서 나랑 자는 거야. 알겠어?”
음침한 그림자 안에 갇힌 채 끈적하게 숨결을 주고받았다. 소현은 흥건한 타액을 삼키며 말했다.
“……으응, 알았으니까, 읏……!”
지한이 손이 엉덩이 뒤로 들어와 움켜쥐었다. 붙어 있던 살점이 뭉개지고 벌어졌다.
“아니면 화장실에서 한 번 하고 갈까.”
소현은 볼이 화끈거리는 행위가 부끄럽지 않았다. 오히려 더 만져 주었으면 하는 기분이었다. 소현의 머릿속이 어지럽게 흐트러졌다. 그래도 화장실 안에서 한다는 건 말도 안 되었다.
“안에 손 넣고 만지고 싶어.”
“하……아.”
입술 앞에서 속삭이는 말들이 흥분감을 일으켜 세웠다. 소현이 고개를 들자 녹아내린 눈매가 흘렀다.
“다 묻었잖아…….”
손을 뻗어 흔적이 새겨진 얼굴을 문질렀다. 난잡하게 묻은 붉은 자국들이 색정적이었다.
“빨아 줘.”
지한은 입을 벌려 손가락을 끝을 혀로 감았다.
“손 말고 혀로.”
소현이 떨리는 시선을 내리며 혀끝으로 입술을 핥았다. 지한은 그 움직임을 따라가며 혀로 건드렸다. 어두운 복도가 하나의 막처럼 둘을 에워쌌다. 다시 이어지는 키스가 농염하게 변질됐다. 소현의 엉덩이를 주물럭거리던 손이 천을 끌어 올렸다. 아래로 침범하려는 손길에 소현은 입술을 다급히 벌렸다.
“잠깐……지한아.”
“…….”
탁한 눈빛은 이미 제어를 잃은 뒤였다. 하지만 희미한 명령을 기다리는 것 같기도 했다.
“집에 가서, 침대…….”
지한은 립스틱으로 엉망이 된 입술을 비틀었다.
“하, 씨발.”
소현의 엉덩이를 헤집던 손이 순식간에 손목을 잡아 왔다. 끌고 가는 손길에 붙잡힌 소현은 머릿속에 자옥했던 환각이 빠르게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두 사람을 쫓았다. 어렴풋이 민준의 얼굴을 본 것 같은데 잘 기억나지 않았다.
단단히 잡은 손이, 제 립스틱 자국에 엉망이 된 모습이 소현의 사고를 집어삼켰다.
*
창문을 통과한 햇살이 찌르는 것만 같았다. 눈을 뜬 소현은 희미한 두통을 느꼈다. 의식이 들자 통증이 전신으로 번져 나갔다. 소현은 앓는 소리를 내며 몸을 꿈틀거렸다. 단단한 팔에 감싸여 있는 터라 벗어나기 어려웠다. 시선을 떨어뜨린 소현의 눈동자가 한 뼘 더 커졌다.
가슴부터 시작해 온몸이 벌레에 뜯긴 것인 양 붉은 자국 투성이였다. 시트에 쓸릴 때마다 따끔거리는 살결이 이해 갈 정도였다. 얼마나 물어 뜯어 놨으면 멀쩡한 곳이 없었다. 손을 짚고서 억지로 몸을 일으킨 소현은 지한의 얼굴을 보고서 숨이 멎었다.
“…….”
쌍둥이처럼 지한의 얼굴도 붉은 자국으로 얼룩져 있었다. 이마와 뺨, 입술에 묻은 건 립스틱이었다. 소현은 제 입술을 문질러 보았다. 옅게 묻어 나오는 색상은 이미 빛을 잃은 뒤였다.
어제 일이 단편적으로 소현의 머릿속을 스쳐갔다. 파티에 가서 지한의 친구들을 만나고, 샴페인을 마셨고. 그리고 지한의 얼굴에……뽀뽀를 했던 것 같기도 한데. 그리고……소현의 눈가가 일그러졌다.
“말도 안 돼. 필름 끊긴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소현은 제 기억력에 문제가 있나 의심할 정도로 지금 이 상황이 낯설었다. 제아무리 술을 마시더라도 집에 도착하면 샤워까지 하고 잠들었던 소현이었다. 어제 기분이 좋았던 건 기억나는데 그 이후로 암전이다. 소현이 충격에 빠져 있는 사이 시트가 파도치듯 일렁였다.
“깼어?”
소현은 굳은 얼굴로 지한을 쳐다보았다. 가라앉은 목소리가 예고했던 대로 올라간 눈꺼풀 안에 담긴 눈동자가 어제의 잔상을 담아 젖어 있었다. 눈부신 햇살이 내려앉은 립스틱 자국이 야한 색을 띠었다. 소현은 마른침을 삼켰다.
“나 어제 집에 어떻게 왔어?”
“…….”
지한은 말없이 소현을 바라보았다. 그 침묵이 소현의 목을 조여 왔다. 쥐어짜듯 말했다.
“……혹시 진상 부렸니?”
기억이 안나니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너무 술을 편하게 마셨나, 통째로 잘려 나간 기억이 두려울 정도였다. 제가 알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뭘 하고 돌아다녔을까. 파티에 참석했던 수많은 인물들을 떠올리자 소현의 얼굴이 파리해졌다.
“나 실수한 거 있어?”
“있지.”
“뭔데, 뜸들이지 말고 말 해.”
제가 무슨 추태라도 부렸을까, 소현은 통증도 잊은 채 지한의 입술에 집중했다. 지한은 그런 소현을 삼킬 것처럼 눈에 넣고 녹였다.
“널 다시 보게 됐지.”
“어떻게 난리를 피웠는지, 어떤 실례를 하고 다녔는지 말해 줘야 나도 수습이라는 걸 하지, 수습 못할 정도야? 나 그 정도로 망가졌어?”
“수습은 네가 다 했어.”
지한의 손이 소현의 다리를 문질렀다. 소현은 따끔거리는 통증에 눈살을 찌푸렸다. 허벅지 안쪽으로 들어간 손가락 사이로 붉은색이 현란하게 피어 있었다.
“어제 내 밑에서 울었지.”
소현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침대 바깥으로 버려져 있는 옷들과 표피만 남은 콘돔이 질펀하게 늘어져 있었다. 죄다 씹어 놓았다는 건 몸을 보면 알았다.
그런데 제가 울었다니, 소현은 이마를 짚고선 지한을 쳐다보았다.
“……좋아서, 울었겠지?”
“아마도.”
애매모호한 대답에 소현은 제 기억을 억지로 갈라내 꺼내 보고 싶었다. 소현의 허벅지를 문지르던 손이 안쪽으로 들어갔다. 소현은 흠칫 떨며 이마를 덮은 손을 내렸다. 지한의 얼굴은 제 허벅지보다 심각했다. 붉은 립스틱이 번져 입술 형체가 제대로 남아 있지 않았다. 물감을 이리저리 덧바른 듯 하지만 그럼에도 섹시한 모습으로 인식 되서 문제였다.
도화지처럼 얼굴을 내어 준 지한은 그것이 훈장이라도 되는 양 아직도 지우지 않았다. 지금도 한가롭게 소현의 허벅지를 만지고 있었다.
“그만 해.”
나긋하게 내려가 있던 지한의 시선이 올라왔다.
“젖었는데 왜.”
흥분이 안 된다는 소리가 아니었다. 소현은 제가 남긴 애정의 결과물을 보며 고개를 돌렸다.
“우선 샤워부터 하자.”
침대로 내려가자 지한이 몸을 반쯤 일으켜 소현을 쳐다보았다. 뒤돌아선 소현은 욕실로 걸어갔다.
“빨리 와. 내가 만든 거니까 내가 지워주게.”
붉어진 귀 끝이 예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