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
노인의 눈동자가 정처 없이 뒤흔들렸다. 무슨 소리냐, 뭔 소리야. 거기에 답하지 않고 딸은 어여쁘게 웃고만 있었다. 갈라진 입술에서 피가 새어 나왔다. 마음껏 그동안 보지 못하고, 해주지 못한 것을 전부 보여주는 것처럼 딸은 노인의 앞에서 웃었다.
―나 아빠 원망 안 하니까요……. 내 아들은…….
미워하지 말라고 속삭이던 그날 밤, 딸은 세상을 떠났다. 미워한 적 없다고 말을 해주었던 노인의 입은 황망하게 다물렸다가 벌어졌다.
“딸 이름이 킨슬리였네.”
“…….”
소현은 떨리는 이를 악물었다. 지금은 가만히 듣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지한이가 열 살 때 일이었어.”
노인은 아직도 그 얼굴을 어제 일처럼 기억했다. 아이에게 트라우마라도 생길까, 병원엔 오지 못하게 막아 두었지만 그날은 아니었다. 딸의 마지막을, 숨이 넘어가기 직전까지 함께 했다. 처음으로 아이를 가까이에서 본 노인은 끝내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하나밖에 없는 손주는 회색 눈이었다. 그래서 마치 눈물을 머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제가 딸을 잃었던 늦은 밤에 아이는 엄마를 잃었다. 사위와 긴 언쟁 끝에 딸은 한국으로 안치할 수 있었다. 한국에 끌려왔을 땐 죽어 가더니, 이젠 가벼워졌다. 저를 등지고 떠났던 딸이었는데 다시 발을 들일 때는 노인의 보호 안에서 이뤄졌다.
그리고 1년에 한 번, 기일에 맞춰 지한과 남자는 한국에 들어왔다. 노인의 참회는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딸은 유언이 아니라 노인을 위한 숙제를 남기고 떠난 거였다. 더는 누구도 미워하지 말라는 듯이.
노인은 손주의 눈동자를 볼 때마다 죄책감과 안타까움으로 지난날들을 후회했다. 1년에 한 달 남짓이 노인에게 허락된 시간이었다. 그거로도 부족해 미국에 종종 들려 지한과 시간을 가졌다. 남자와의 관계도 지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원만하게 유지해야만 했다.
“그때부터 지한이가 많이 달라졌네.”
문제는 지한이었다.
말수가 적어졌고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투명한 눈에 얼마나 큰 슬픔을 가두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정신과에선 가족의 죽음에 의한 트라우마라며 똑같은 말만 늘어놓을 뿐이었다. 주변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정작 지한은 누구의 손길도 원하지 않았다.
저 혼자 한 가지에 몰두하는 시간이 늘어 갔다. 그것은 펜 한 자루가 될 때가 있었고 책 한 권이나 창문틀에 갇힌 풍경, 그리고 소리일 때도 있었다. 그 외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말하지 않아 알지 못 했다. 뭐든 사주고 흥미를 끌어 보려 노력했지만 헛수고였다. 마음의 문을 닫은 것 같으면서도 애초에 연 적도 없는 사람 같았다.
제가 원하면 하고 원하지 않으면 하지 않는다. 지한의 세계는 단순하고 명확했다.
“딸이 그렇게 된 이후부터 지한이가 잠을 잘 못 잤어. 전문가는 그리움이 동반된 죄책감 때문이라고는 하는데……나는 잘 모르겠네.”
너무 단순해서 소현은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말을 하지 않으니 알 수가 있어야지.”
……손만 잡고 잘게.
“수면제는 딸 때문에 나와 사위 둘 다 안 좋은 기억이 있네. 그래도 애가 우선이니 처방받았는데 지한이가 먹지 않았어.”
지한에게 수면은 안식이었다.
“그런데 나는……그 이유를 얼마 전에 알았다네.”
제가 원하지만 유일하게 얻을 수 없는 것. 깨어 있는 시간이 악몽이라 누구보다 잠들고 싶었을 거다. 그래서 필사적이고, 원하고. 간절한 거였다.
“내가 싫어해서라는 걸.”
손만 잡고 잘게.
“…….”
그 한마디가 얼마나 절박하게 한 말인지 소현은 이제야 깨달았다.
그것도 모르고, 소현은 처음 호텔에서 입욕제를 사용하며 말했었다. 피곤할 때 이거 하면 잠도 훨씬 더 잘 와……그 말에 지한이 입욕제를 전부 털어 넣었던 것을 소현은 기억한다. 다 넣으면 깊은 수면에 취할 수 있다는 주문인 것처럼.
“우리 지한이를 잘 좀 부탁하겠네. 괜찮아 보여도 괜찮지 않은 녀석이야.”
제 말 한 마디가 지한에게는 어떻게 들렸을까. 소현은 어지러움에 눈가를 짓눌렀다.
―호텔에서 입욕제를 가져왔는데.
희미하게 입술이 떨려 왔다. 집으로 온 날, 지한은 욕조에 잠겨 있었다.
―아무리 부어도 잠이 안 왔어.
지독한 입욕제 향이 소현의 코끝에 진동했었다. 젖은 회색빛 눈동자 위로 라이터 불꽃이 일었다.
―생각해보니 중요한 게 빠졌더라고.
―뭐가?
―너.
그 말에 소현은 문득 주변 공기가 연소되는 기분을 느꼈었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소현은 지금 숨이 막혔다. 마치 독한 연기가 폐로 들어온 것처럼. 그래서 더는 이곳에 편히 앉아 있을 수 없었다.
―강소현, 네가 없었어.
소현은 차 문을 열고 나갔다.
*
무슨 정신으로 회사에 있었는지 소현은 기억나질 않았다. 정신을 차려 보니 저녁 8시였다. 8시까지 지한에게 회사로 오라고 말했었다. 만나러 가야지. 소현은 뒤늦게 가방을 챙겨 들고 나섰다.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구두 밑이 무거웠다. 정 회장과 만난 건 비밀로 해야만 했다. 그가 왜 지한에게 제 딸과 마찬가지인 성을 붙여 주었는지 알게 되었으니 그럴 생각이다. 그러기 위해서 곧바로 지한에게 달려갈 뻔한 다리를 필사적으로 누르고 또 억누르며 회사에 붙어 있었다. 간신히 견뎌 낸 것을 물거품으로 만들 순 없었다.
평소처럼 하자. 지한이 눈치채지 못 하게.
지한이 제게 말하지 않은 것을 알게 되었으니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다. 지한에게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냐고 이해한다는 식의 발언을 하기엔 소현은 자격이 없었다. 함께한 시간이 고작 며칠 되지 않았다. 정 회장도 지한을 알 수 없다는데, 소현이 그런 위로를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회사를 나서자 차가운 바람이 소현을 에워쌌다. 온종일 눈에 맺힌 열기를 앗아가는 것처럼 시야를 긁는다. 멀리서 희미하게 깜빡이는 불꽃을 본 소현은 끌리듯이 멈추었던 발을 움직였다.
가로등 등불을 태양 삼아 멈춰 있는 차는 주인을 닮아 한가로운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불법 주·정차 구역이었다. 지한은 그런 규율 따윈 하나도 개의치 않았다. 그저 느긋하게 담배를 물고서 소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와?”
깨끗한 모습으로 오래 기다린 사람처럼 말한다. 제 입술을 빨 수는 없으니 몇 개째 태우고 있었을 거다. 소현은 다가가 지한의 손에 들린 담배를 빼앗아 비벼 껐다. 그리고 제 입술을 부딪쳤다. 놀란 듯 경직된 숨이 지한의 입술에서 느껴졌다. 퀴퀴하고 오래 찌든 외로움의 맛도 났다. 소현은 둥그렇게 혀로 원을 그렸다. 지한은 그동안 느긋한 모습으로 태연 하려고 노력했을 거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라도.
입술을 뗀 소현이 지한을 끌어안았다. 아까부터 계속 말하고 싶었는데 하지 못하고 가슴에서만 맴돌아 곤혹스러웠다.
“오늘따라 네가 너무 보고 싶었어.”
너를 보러 회사를 뛰쳐나갈 뻔했다. 소현의 머리 위에서 낮은 웃음이 떨어졌다.
“섹스 하자는 소리를 참신하게 해.”
소현은 단단한 근육에 얼굴을 대고 웃었다. 지한의 사상은 단순하고 법과 규율이 없다. 오래전 저를 지탱해 주던 것이 무너졌듯이. 문득 그 외로움이 지한이 잠들지 못하는 이유였을지도 모르겠다고 소현은 생각했다.
“밥은, 먹었니?”
“너랑 먹으려고 굶었어.”
“먹고 싶은 게 밥이야, 나야? 확실하게 말해.”
지한이 차로 엉덩이를 기대며 안긴 소현을 받아 주었다.
“뭐든. 네가 먹고 싶은데.”
우리의 시작은 원초적인 만남이었다. 소현은 눈웃음 지으며 말했다.
“닌톤사 매각 기사 났더라. 그것 때문에 오늘 회사나 어딜 가도 종일 킨슬리에 대한 얘기뿐이었어.”
“그랬나?”
“모르는 척하기는.”
“몰랐어. 침대 정리하느라 바빴거든.”
소현이 허리를 뒤로 빼며 지한을 올려다보았다. 제가 시킨 일을 해낸 지한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물었다.
“언제가 되어도 좋으니까 너희 부모님을 만나 뵙고 싶은데 괜찮아?”
“시간 내라고 할게.”
왜냐는 질문을 지한은 하지 않는다. 지한과의 대화는 언제나 막힘이 없었다. 음영 진 지한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짙은 선을 이룬 눈매와 입술은, 킨슬리 회장과 닮지 않았다. 지한의 얼굴 중에서 가장 선이 아름다운 부분이었다. 소현은 울렁이는 속을 감추며 물었다.
“너희 어머니는 정말 미인이시겠지?”
지한이 눈 밑을 올리며 웃었다.
“바쁘더라도 나를 데리러 오시는 분이었지.”
소현은 따라 미소 지었다.
“그렇구나.”
저를 데리러 오다가 어머니가 사고를 당했다는 것을 지한은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소현은 그거로 충분했다. 지금 소현이 안심할 수 있는 건 웃는 지한의 얼굴이 그 어느 때보다 눈이 부시다는 점이었다. 노인이 눈물을 가둔 것 같다고 했던 회색빛 눈동자가 소현의 눈에는 여전히 오묘하고 신비로웠다.
“너는 바쁜 나를 데리러 오는 애인이고.”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 이 순간마저도.
“……나 담배 끊으려고.”
소현은 결심하듯 말했다. 건강에 해로운 건 전부 그만둘 생각이다. 운동도 지금보다 더 열심히 할 거고, 아프지도 않을 거다. 지한을 따라잡을 순 없어도 맞추기 위해선 노력할 거였다. 지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갑자기?”
“갑자기 아니야. 너랑 잘 때마다 계속 느끼고 있었어. 어린애랑 만나서 그런지 내 체력이 한참이나 모자라더라고.”
지한은 심각하게 시선을 내렸다.
“살살할게.”
“안 속아. 너랑 오래 그 짓 하려면 이제부터 내 몸은 내가 챙겨야지.”
빛을 밀어내듯 지한의 입술이 날카롭게 치솟았다.
“그 짓이 뭔데.”
우리의 시작은 단순한 욕구에 의해서였다. 소현은 차 문을 열며 말했다.
“뭐겠어?”
하지만 그것이 서로가 서로여야만 하는 절대적 이유가 되었다.
“얼른 타. 배고프다며. 밥이든, 나든 먹어야지. 여유 그만 부리고 운전해.”
소현이 조수석에 올라타는 것을 본 지한은 보닛을 돌아 운전석으로 갔다. 차가운 공기를 한껏 들이마신 지한은 차 문을 열며 낮게 물었다.
“오늘 껄떡댄 남자 회사, 기억하지?”
서로를 끊을 수 없던 이유였다.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