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끊을 수 없는 나쁜 짓 (67)화 (67/86)

67.

뒤에서 빵빵 거리며 클랙슨이 울렸다. 골목으로 진입하던 차가 진로를 방해받아 성질을 부리는 거였다. 소현은 물러서지 않는 지한의 어깨를 손으로 잡았다.

“빨리 비키라는데, 얌전히 운전 해주면 내가 손잡아 줄게.”

지한은 어느 것이 더 제게 이득인지 계산하는 듯 눈동자를 거두지 않았다. 결국 소현의 입술을 대신해 손을 선택한다. 좁은 골목을 빠져나가 도로로 진입하는 잠깐 사이에도 지한에게 붙들린 소현의 손은 질척한 애정 공세에 혹사당했다.

저보다 한참이나 작은 소현의 손을 잡고서 엄지로 문지르기도 하고 손가락 사이사이 끼워 넣기도 했다. 소현은 그 감촉이 좋아 작게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창문 밖으로 펼쳐진 야경까지 합세해 드라이브를 하는 기분을 안겨 주었다.

택시를 타고 갔더라면 가는 내내 지한의 목소리로 지루함을 달랬을 거였다. 그런 점에서 아까 회식 장소를 알려준 건 잘한 일이었다. 소현은 웃으며 지한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아까 전화 그렇게 끊어서 달려온 거야?”

잠옷을 입고 뛰쳐나올 만큼. 지한의 무모한 행동엔 늘 이유가 있었다. 지한은 건조하게 대꾸했다.

“그게 싫으면 전화를 받아.”

“싫다는 게 아니라…….”

말끝을 늘이며 소현이 눈가를 구겼다.

“그러게. 왜 싫지가 않지.”

연애 한지 3개월이 넘어가는데 아직도 싸움 한 번 일어난 적이 없었다. 지루할 틈 또한 없다. 그간 해 왔던 연애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라 소현은 간혹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행복한 순간들이 많았다. 지금처럼 둘이 손만 잡고 있는데도 심장이 뛰거나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피곤함이 느껴지지 않을 때가 그랬다.

무엇보다 지한은 소현에게 이해를 강요하지 않았다. 그래서 소현은 자유롭게 지한을 보고 생각하면 그만이었다.

어둠에 잠긴 내부에선 여전히 질척이는 손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소현은 시선을 내려 한데 엮인 손을 바라보았다.

정 회장은 그녀가 세상을 떠난 뒤 지한이 언제나 한 가지에 몰두해 왔었다고 했다. 빈자리를 지우려는 집중력은 펜 한 자루가 될 때가 있었고 이야기가 담긴 책 한 권이나 창문틀에 갇힌 풍경, 그리고 소리일 때도 있었다.

“안 피곤해?”

소현이 조용히 속삭이자 지한의 눈동자가 옆으로 향했다.

“가서 너랑 한 번 할 정도는 돼.”

웃음을 터트린 소현은 지한이 몰두하는 대상으로서 책임감을 느꼈다. 요즘 지한은 변함없이 잘 자고 있다. 늦게 일어나지도 않고, 소현이 출근할 때마다 함께 일어나 가볍게 아침을 챙겨 먹는다.

그 이후엔 뭘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마 흡수한 닌톤을 킨슬리로 바꾸는데 정신없을 거라고 짐작할 뿐이었다. 말이 매각이지, 실은 인수합병과 별다를 바 없는 전철을 밟고 있었다. 닌톤사에 있던 직원들을 그대로 수용하는 방침으로, 경쟁 업체에선 킨슬리의 한국 입성을 경계하기 위해 벌써부터 수수료를 낮추거나 이벤트를 하며 방어전에 돌입했다.

사방이 공격적인 날을 세운 가운데 지한은 여유로운 일상을 유지했다. 누군가가 돌을 던지더라도 동요되지 않는 평화로운 나날이었다. 아무도 방해할 수 없다는 듯이.

“아. 맞다.”

소현은 불현듯 무언가가 생각난 듯 눈가를 찌푸렸다. 정확한 날짜가 기억나질 않아 기억을 더듬고 있는데 지한이 물었다.

“왜?”

나직한 목소리에 날짜가 선명해졌다. 소현은 떨떠름하게 지한의 손을 고쳐 잡으며 말했다.

“어떡하지.”

“뭐가.”

도로를 달리던 자동차가 주차장으로 진입했다.

“나 다음 주 수요일에 워크숍 가거든.”

끼이익, 부드럽게 내려가던 바퀴가 갑자기 멈추었다. 급작스러운 정지에 소현의 머리가 스프링처럼 튕겨 다시 시트로 안착했다. 놀란 눈으로 지한을 보았지만 서늘한 주차장 조명이 뒤덮인 얼굴을 보니 할 말이 사라졌다. 그래도 피할 수 없는 일이라 소현은 마른침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

“싱가포르, 2박 3일이야.”

그러자 지한의 표정이 여과 없이 일그러졌다.

집으로 돌아온 지한은 담배를 태워 댔다. 소현은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승진까지 한 마당에 불참한다는 건 있을 수 없다.

착잡한 기분으로 샤워를 마친 소현은 물기를 말끔하게 거두었다. 지한에게 이걸 어떻게 납득시켜야 할까 고민하며 문을 열었다. 열심히 돌아가는 공기 청정기가 무색하게 거실 기류가 텁텁했다. 제가 샤워하는 동안 얼마나 피워 댄 건지 알 수 없었다. 소현은 소파로 걸어가 지한의 옆에 앉았다.

“센토사 섬에 있는 J 호텔에서 열릴 예정이야. 숙박도 거기에서 하고. 글로벌 광고 교류 기획 차원이라 3개의 해외 광고 기업들이 참가하는데 세미나도 하고, 프레젠테이션으로 서로 기업 간의 아이디어와 방향성을 공유하는 취지야. 1년에 한 번 있는 건데 이번엔 내가 가게 됐어.”

“…….”

“내 말 듣고 있어?”

“그러고 있어.”

지한은 담배 필터를 입술로 가두며 혹사시키고 있었다. 제 얘기는 어지러운 연기와 뒤섞여 천장으로 흘러가는 것만 같았다. 소현은 한숨을 내쉬며 소파에 기대었다.

“나도 가기 싫어.”

“그것도 알아.”

묵묵히 방관할 줄 알았는데 꼬박꼬박 답은 한다. 이럴 땐 소현은 지한의 머릿속에 들어가 보고 싶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보나 마나 저를 안 가게 할 방도를 모색하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을 거다. 소현이 하루아침에 다리가 부러지지 않는 이상 어쩔 수 없이 가야만 했다. 아니, 부러지더라도 목발 짚고 워크숍에 가서 충성도를 보여줘야 할 판이었다. 그 편이 더 상사들에겐 드라마틱하게 먹힐 거다.

“계속 이러고 있을 거야?”

“…….”

지한은 대답 대신 담배 끝이 불꽃에 비틀어질 때까지 빨아 당겼다. 크게 숨을 내뱉자 혼탁한 연기가 한꺼번에 허공으로 쏟아졌다. 지한은 생각을 마친 듯 재떨이로 담배를 비벼 껐다.

“주는 것만 받아 마셨다고 했지?”

“무슨…….”

거대한 몸집이 비틀어지며 소현에게 밀려왔다. 가까이에서 부딪친 눈동자가 위험한 빛을 냈다.

“확인해 보게.”

“읏.”

입술을 부딪친 지한은 크게 호흡을 내쉬었다. 숨을 들이마시며 느릿하게 소현의 입술을 삼켰다. 말랑말랑한 점막이 함께 딸려 들어가며 치열에 갇혔다. 살짝 눌렀다가 쏟아지는 가느다란 신음을 혀로 가르며 밀어 넣었다. 넓게 벌어진 혀가 소현의 입천장을 훑었다. 등줄기를 타고 내려가는 전율에 소현이 숨을 움츠렸다.

“잠깐……읍.”

급하게 지한의 어깨를 잡은 손가락이 구겨졌다. 크게 혀를 굴리며 벌어진 입을 틈틈이 막았다. 알코올 향이 혈관에 흐르는 감각을 고조시켰다. 소현이 혀를 꿈틀거리자 아래가 지끈거렸다. 지한은 낮게 신음하며 젖은 소현의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감았다. 천천히 목덜미를 쓸어 올리자 소현이 급하게 입술을 비틀었다.

“하, 잠깐.”

바삐 숨을 내쉬는 소현의 입술 옆을 깨물었다. 못 참겠다는 듯 소현이 소리 질렀다.

“잠깐, 너한테서 담배 맛 난다고!”

지한의 눈이 게슴츠레 올라왔다. 소현은 허리를 한껏 뒤로 뺀 채 지한을 노려보았다.

“나 금연 중인 거 너도 알고 있지?”

경이롭게도 석 달 째를 기록하는 중이었다. 담배가 절실할 만큼 일에 진전이 없거나 압박이 가해질 땐 지한과 통화했다. 아무 생각 없이 연락하고 목소리를 듣다 보면 지한의 생각으로 가득 차 담배 생각도 뚝 잘렸다. 그런데 지금처럼 간혹 고비가 찾아오곤 했었다.

“전에도 말했었지만 나한테 담배 찌든 혀 넣지 마.”

지한이 담배를 태우고서 제게 키스할 때가 그랬다. 냄새는 오랜 시간 떼어놓고 살아선지 독한 매연으로 취급되었지만 니코틴을 혀로 삼키는 건 차원이 달랐다.

“내가 같이 금연해 달란 소리는 안 하는 데 이럴 때면…….”

소현은 제 입술 앞에 멈춰 움직이지 않는 지한을 보고선 문득 타이밍이 안 좋았다는 걸 깨달았다. 워크숍 얘길 하고 있었지, 키스로 상황이 넘어가던 순간이었다.

“넣지 마?”

역시나 지한의 미간이 짜증 난 듯 구겨졌다. 소현이 마른침을 삼키자 지한이 뒤로 팔을 뻗어 짚으며 무게를 실어 왔다. 한껏 팽창된 가슴팍과 겹쳐진 소현의 몸이 소파로 기울어졌다. 일자로 눕게 된 소현은 저를 뒤덮은 그림자에 숨을 참았다. 소파를 짚은 손을 더듬은 지한이 무언가를 꽉 움켜쥐었다.

소현의 시선이 움찔거리며 올라갔다. 소파 가죽이 혹사당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손아귀에서 참혹하게 일그러져 구겨진 건 담뱃갑이었다. 지한은 담배를 사선으로 던지고서 소현의 턱을 잡았다.

“사라질 때까지 혀 굴려. 안 필 테니까.”

위에서 눌러 오는 압박감에 소현의 입술이 벌어졌다. 혀가 밀도를 담아 목구멍까지 손쉽게 밀려왔다. 소현의 숨과 혀를 난폭하게 틀어막고 해치웠다. 서로의 타액이 없었더라면 입안이 헐벗겨졌을 거다. 소현은 비음을 흘리며 입술을 한껏 벌렸다. 아기 새처럼 제 입안을 쪽쪽 빨아 당기는 행위를 음미하며 지한이 가운 안으로 손을 넣었다. 몽글몽글한 가슴을 아래부터 밀어 올리며 움켜잡았다. 손 한가득 가둬 두고 주무르자 소현의 혀가 움찔거렸다.

“흐읏!”

호흡과 체온이 급박하게 정상 범위를 벗어나고 있었다. 잘록한 허리선을 손바닥으로 핥는 것처럼 내려간 지한이 배꼽 아래에서 멈추었다. 쑤셔 넣었던 혀를 무를 수밖에 없었다.

“안 입었네.”

탁해진 눈동자를 본 소현은 가운 앞섬이 헤쳐진 채로 달싹거렸다.

“하아……입을 이유가 있어?”

어차피 할 건데……소현은 그 뒷말을 타액에 감추며 열심히 혀를 굴렸다. 지한의 입에서 녹아내린 신음이 흘렀다. 골반을 지나 허벅지로 내려온 손이 소현의 오금 뒤를 파고들었다. 움푹 들어간 살결로 엄지가 짜 맞춘 듯 들어갔다. 위로 밀어 올리자 다리 사이가 열렸다. 지한은 무릎뼈 위로 입을 맞추고선 입술로 곡선을 탔다. 혀가 미끄러지듯 내려갔다. 아득한 향을 뱉으며 젖은 그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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