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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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중 쉐프는 서른다섯 살의 한식 전문가로, 출현한 TV 프로그램이 흥행하며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자신의 이름을 내건 식당은 문전성시를 이뤘고 체인점도 빠르게 늘려 나갔다. 아침엔 본점에 들려 레시피대로 조리가 되는지 확인했고 10시엔 부리나케 요리 학원으로 향했다.
물이 들어올 때 노를 젓는 심정으로 서울 한복판에 오픈한 학원은 문전성시를 이뤘다. 덕분에 낮 12시 타임부터 저녁 9시까지 풀타임으로 전부 찼다. 그 학원에 특별한 수강생이 한 명 있었다.
“이거, 죄송합니다. 차가 조금 막혔어요.”
10시 5분이 돼서야 학원에 도착한 철중은 진땀을 뺐다. 5분 늦은 거로 쩔쩔 매는 것과 달리 소파에 앉은 수강생은 무던하게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철중은 저를 쳐다도 보지 않는 수강생을 보며 애써 웃음을 띠었다.
12시부터 시작되는 학원 스케줄을 역행하고 아침 시간을 내놓으라고 말한 남자는 3개월 전부터 이곳에 수강 중이었다. 10명의 수강생과 함께 하는 클래스 규칙도 깨부순 지 오래다. 그는 단독 수강을 원했고 빠르게 실력을 늘길 원했다. 그건 규칙상 어렵다는 말을 했지만 큰 금액을 떡하니 제시하는 남자 때문에 예외적인 상황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제게 배우고 싶다는 열정을 금액으로 환산한 거라고, 그렇게나 배우고 싶다는데 거부할 수 없다며 철중은 자신을 위로했다. 하지만 간혹 남자를 볼 때마다 그 선택을 후회하기도 했다.
남자는 우선 말이 잘 없었다. 하다못해 수강생이라면 누구나 기입하는 인적 사항도 기록하지 않았다. 이름과 나이조차 말하지 않아 출처가 불확실한 데다가 얼굴은 무척 화려한 편이었다. 알 수 있는 거라고는 보이는 게 전부일 뿐. 철중은 어색한 웃음을 거두며 말했다.
“이제 들어갑시다.”
그 말에 남자가 핸드폰에서 느리게 시선을 떼었다.
“오늘은 생선을 잡아야겠는데요.”
그리고 남자는 신비로운 회색 눈동자를 하고 있었다.
“마침 신선한 생선이 어젯밤에 들어왔습니다. 뭐 하고 싶은 요리라도?”
남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일어나 핸드폰을 철중의 면전에 내밀었다. 고등어 무 조림.
“고등어도, 있습니다. 어서 들어가서 준비하시죠.”
시선을 내린 남자가 요리가 이뤄지는 주방으로 걸어갔다. 그 뒤를 따를 때면 철중은 제가 가르치는 선생인지, 수발을 드는 사람인지 헷갈릴 때가 있었다.
한 남자만을 위해 마련된 수업은 그 남자가 하고 싶은 요리로 메뉴가 결정돼 시작되었다. 오늘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자, 고등어는 농어목 고등엇과의 물고기로 찜과 구이로 많이 조리해 먹습니다. 오늘은 그 두 가지를 같이 해보죠. 신선한 고등어를 고르는 법은 크고 살이 단단한지, 그리고 청색 빛을 띠는지 보면 됩니다. 보세요, 이렇게 눌렀을 때 탄력 있게 튀어 오르는 것이 좋은 고등어 입니다.”
“…….”
남자는 도마 위로 놓인 고등어를 깊게 짓눌렀다. 그것이 철중의 눈에는 어떻게 처리할까 견적을 내는 사람 같았다. 남자는 꽤 길고 곧은 손을 가지고 있는데, 저렇게 간혹 살상 무기처럼 보이는 착각을 일으켰다. 철중은 마른침을 삼키며 마저 설명을 이었다.
“오메가 3 지방산이 있어서…….”
“얼마나 몸에 좋은진 됐고.”
“그럼, 이건 생략하고. 손질하겠습니다. 잘 보세요. 우선 찜용 고등어는 꼬리와 지느러미를 자릅니다.”
남자가 본격적으로 손을 뻗어 칼을 꺼내 들었다. 예리한 날을 본 철중은 입을 다물었다. 그를 놀라게 하는 것 중에 저 칼도 포함돼 있는데, 전문가나 쓸 법한 값비싼 브랜드 것을 사용하는 거로도 모자라 늘 요리학원을 올 때마다 한 손에 저 칼집을 들고 왔다. 깔끔하게 잘라 낸 꼬리와 지느러미를 칼끝으로 밀어낸 남자가 철중을 쳐다보았다.
“자른 다음엔?”
“그다음 배를 가르는데……이건 손이 다칠 수 있으니 가위로 하셔도.”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남자가 능숙하게 날을 눕혀 생선의 뱃가죽을 갈랐다. 철중의 표정이 움찔거렸다. 처음 수업을 받을 땐 힘 조절을 잘 하지 못해 가르치는데 꽤나 애를 먹었었다. 칼을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어떤 각도로 해야 하는지 세세하게 알려주니 남자의 실력은 눈에 띄게 성장했다. 이제는 칼로 어떤 재료든 능숙하게 다듬을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데 왜 가르치면 안 될 것을 알려준 기분인지……남자가 반으로 가른 생선을 쫙 벌리자 철중은 긴장했다.
“이게 내장, 입니다. 이걸 깨끗하게 제거하시고 씻어 주세요.”
남자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내장을 칼과 손으로 처리했다. 너무 깔끔한 처리법이라 철중은 할 말이 없었다. 흐르는 물에 헹구자 뽀얀 속살이 드러났다. 남자가 철중을 향해 매서운 눈빛을 번득였다.
“그다음은 머리?”
“……네.”
날카로운 칼이 단번에 고등어의 목을 잘라 냈다. 싱크대로 튕기듯 버려진 머리가 괜스레 측은하게 느껴졌다.
이런 적 없는데, 이상하게 남자의 손에 들린 식재료를 볼 때면 측은함과 공포가 함께 밀려왔다. 남자의 유려한 칼 솜씨 때문인지 그의 손아귀에 잡히는 게 뭐든 희생양으로 보였다. 야채도 예외는 아니었다. 정확히 재단하는 손짓은 형태를 해체하는 것에 유희를 느끼는 것처럼 보였다.
“하하, 네……잘 하셨습니다.”
남자의 외형에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차가운 것도 한몫할 거다. 남자는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듯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었다. 그런 남자가 왼쪽 손에 반지를 끼고 있다는 건 꽤나 의외였다.
“저, 비싼 반지인 거 같은데……빼고 하심이.”
“신경 쓰지 말고 다음이나 말해요.”
“네. 알겠습니다.”
사적인 얘길 하면 단칼에 잘라 낸다. 철중은 마저 레시피를 설명했다. 처음엔 불 조절도 못하고 왜 그래야 하는지 납득도 못하는 것 같더니 이젠 제법 능숙하게 해냈다.
이해하기보단 그냥 외우는 것만 같았다. 재료를 깨끗하게 씻고, 청결함을 유지하는 과정들. 손에 칼을 드는 것만 제외하면 다른 건 전부 정교한 손길로 이뤄졌다. 마치 여자를 다루는 것처럼. 남자는 아마 다른 방식으로 요리를 이해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물에 젖어 있을 때 특히나 남자의 손은 야한 빛을 냈다.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철중은 늘 진동 모드를 유지하는 사람이라 남자를 보았다.
“…….”
남자는 물기에 젖은 제 손을 보더니 철중을 쳐다보았다. 그 눈빛에 철중은 저도 모르게 그의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통화 버튼을 눌러 귓가에 대주는 건 본능이 시킨 일이었다. 남자는 입만 움직거렸다.
“왜요.”
「오늘 2시에 킨슬리 코리아 대표자 선임 건에 대해 임시총회가 열릴 예정이라 회사에 방문하셔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려고 전화드렸습니다. 임원은 전부 참석하셔야 합니다.」
“후보가 몇 명이었지.”
「네 명입니다.」
“알았어요.”
「자택으로 모시러 갈까요?」
“내가 가죠. 끊어요. 지금 바쁜 일 하는 중이라.”
표정을 보니 자못 진지한데, 어투는 묘하게 신경질 적이었다. 이 요리가 방금 하는 전화보다 중요한 걸까. 철중은 남자가 살짝 고개를 떼자 반사적으로 손을 아래로 내렸다.
“바쁘신가 봅니다.”
“…….”
남자가 서늘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철중은 얼른 말을 정정했다.
“요즘 바쁜 일이 많죠. 현대인의 고질병입니다. 여유를 가지고 쉬기도 하고, 그래야 하는데……아, 그때 도시락 싸 가신 건 잘 드렸습니까?”
묘하게 격식을 차린 어조였다. 철중은 제가 왜 이러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번에도 무시당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남자가 의외로 대답을 했다.
“좋아하던데요.”
“……아, 그래요?”
“맛있대요.”
철중은 기쁨을 담아 말했다.
“반찬이 입에 잘 맞아서 다행이네요. 그때 수강생분이 열심히 만드시지 않았나요? 어떤가요, 정성이 통하는 기분을 느끼지 않았나요?”
“내가 만든 줄 모릅니다.”
“네……?”
철중은 알 수 없다는 듯이 눈을 깜빡거렸다.
“아니, 직접 만드셨다고 말 안 하셨어요?”
“네.”
“왜요?”
“입맛 길들여 놓고 말하게요.”
무슨 소리일까. 남자가 젖은 손을 행주에 꼼꼼히 닦았다.
“내가 만들어 준 거 아니면 못 먹게 만든 다음에 말할 겁니다.”
보통은 상대방이 제 요리를 맛있게 먹어 줄 때 만족감을 느끼는데, 남자는 아닌 듯 보였다.
“나 아니면 안 되게끔.”
만족 그 이상의 무언가로 요리를 배우는 거였다.
“아……그렇군요.”
순간 섬뜩한 기분을 느낀 철중은 앞치마로 손을 문질렀다.
“도시락을 챙겨 줄 정도면 무척 소중한 분이시겠습니다.”
남자는 더는 봐주고 싶지 않다는 듯 말했다.
“가르치기나 해요.”
“네. 이제, 뚜껑 열고 손질한 재료 넣으면 됩니다.”
지금 배우는 것도 어떤 한 사람을 묶어 두는데 사용될까? 철중은 등골이 서늘한 의문에 사로잡혔다.
*
학원을 나온 지한은 회사로 향했다. 대표자를 선발하는 과정을 통해 드디어 킨슬리 코리아의 대표자가 결정되었다. 대표는 더스틴이 물색한 남자였고, 지한의 의견도 거기로 쏠렸다. 다음 달에 더스틴은 바쁜 일정을 미뤄 두고 한국에 방문할 예정이었다. 그때 소현도 소개해 줄 거였다.
집에 도착한 지한은 이제 더는 한가로운 시간을 보낼 수 없게 될 예정이었다. 그래도 아침에 출근하고 퇴근 시간까지 불규칙한 소현을 따라갈 순 없을 거다. 그녀가 얼마나 작은 머릿속 안에 과분할 정도로 생각을 넣어 두고 일하는지 지한은 알고 있었다. 그 치열한 머릿속에 제 자리를 넣기 위한 노력이었다.
시트를 빨고, 침실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지한은 노을이 지는 풍경을 보며 술 한잔을 기울였다. 이곳엔 온통 소현의 체취와 흔적이 가득했다. 그래서 앉아 있으면 평온하고 아득해졌다.
“…….”
수시로 소현의 회사에 출몰한 건 일터에 제 냄새를 묻히기 위함이었다. 다른 녀석들이 넘보지 못하도록. 남자가 득실거리는 회사에 다니는 소현을 막을 수 없으니 제가 수시로 드나들며 각인시킬 수밖에 없었다.
워크숍이 있었던 조식 식당에 시간 맞춰 찾아간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제 존재를 인식시키고 소현의 곁에 얼씬도 못 하게 하는 방법이었다.
붉은빛 노을이 창가를 넘어와 지한의 전신을 덮었다. 한 여자에게 스며드는 과정은 어렵지 않게 이뤄지고 있었다. 차례대로 수월하게 넘어갔다.
이제는 소현의 까다로운 입맛까지 만족시켰다. 하면 된다는 걸 지한은 요즘 경험을 통해 느끼는 중이었다. 어머니 죽음 이후로 이렇게 몰두할 수 있는 건 처음이었다. 힘겹게 이겨냈던 시간들이 이젠 더는 생각나지 않는다.
온더록스 잔이 비스듬히 기울었다. 노을빛이 액체 안으로 담겨 영광을 맛보는 기분이었다. 지한은 소현의 연락이 올 때까지 소파에 앉아서 시간을 보내었다.
시끄러운 벨 소리가 울렸다. 지한은 느리게 눈을 떠 액정을 확인했다. 소현이었다.
“쉬는 시간이야?”
이 시간에 올 수가 없는 전화였다. 5시 50분. 소현은 들뜬 목소리로 화답했다.
「아니, 나 지금 퇴근해.」
“…….”
「미팅 이후에 퇴근할 생각이었는데 생각보다 빨리 끝났어.」
잔을 입가에 대었던 지한이 눈살을 찌푸렸다.
“나 술 마셨는데.”
「데리러 오라는 소리 안 했어, 저녁은?」
“아직이지.”
「그럼 가서 같이 먹자. 뭐 먹지……뭐 먹을래?」
“뭐든 먹자.”
「그럴까? 아니면 너 전에 도시락 사온데서 먹자.」
“나중에.”
「대체 어디에 숨겨진 맛집이기에 나한테까지 비밀로 해?」
감추는 것이 불만인지 소현이 툴툴 거렸다.
“다른 거 줄게.”
지한은 알코올을 마시며 능숙하게 다음으로 미뤄 두었다.
「뭘 줄 건데.」
더 안달 났을 때를 기다리느라 속이 뜨거워졌다. 지한은 웃음을 머금고서 속삭였다.
“빨리 와. 나랑 하자.”
외전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