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끊을 수 없는 나쁜 짓 (85)화 (85/86)

85.

제 남자인 정지한도 좋지만 아빠인 정지한은 소현의 가슴을 간질간질하게 만들었다. 저렇게 큰 체구를 지닌 남자가 자그마한 아이를 대하는 것도 그랬고, 그 얼굴이 둘 다 너무 닮아 넋 놓고 구경하고 말았다.

운전석에 올라탄 지한을 보며 소현이 시트에 머리를 기댔다.

“나도 안전벨트 해줄래?”

상체를 기울인 지한이 소현을 안다시피 몸을 겹쳤다. 벨트를 잡고 뒤로 뺄 줄 알았는데 귓바퀴로 촉촉한 혀끝이 느릿하게 굴렀다. 좁은 구멍 안으로 혀가 밀려왔다. 마치 오늘 아침부터 제 안에 넣고 싶었는데 못한 걸 해소하는 것처럼. 찌걱, 야릇한 소리가 안으로 밀려오자 소현의 목 뒤가 저릿해졌다. 그때 뒤에서 커다란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아빠! 빨리 가요!”

지한은 혀를 거칠게 박아넣던 행위를 멈추며 숨을 흘렸다.

“목청은.”

소현의 관자놀이로 입을 맞춘 지한이 벨트 줄을 힘껏 당겨 채우고선 핸들을 잡았다.

눅눅한 귀를 방치한 채 소현은 화장하며 입으로는 유준과 대화했다. 요즘 야근이 잦아 이 시간이 아니면 유준과 얘기할 시간이 나질 않았다.

어느새 회사에 도착한 소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유준아, 엄마 회사 다녀올게요. 오늘도 아빠 말 잘 듣고, 유치원 잘 다녀와야 해요?”

“네…….”

유준은 아쉬운 듯 웅얼거렸다. 소현은 힘껏 뒷좌석으로 몸을 숙여 유준의 이마에 뽀뽀를 해주었다. 시무룩하던 얼굴이 금세 꽃처럼 방긋거렸다.

“유준아, 엄마 잘 다녀오세요. 돈 벌어오세요, 해줘야죠.”

“엄마 잘 다녀와야 해요.”

이 목소리에 하루를 버틸 체력을 얻는다. 소현은 참지 못해 머리에 또 입을 맞춰주고선 조수석으로 돌아왔다. 얌전히 기다리던 지한이 한마디 했다.

“나는?”

소현은 웃음을 흘리며 입술에 진하게 온기를 맞대었다. 또 그새를 참지 못해 혀가 틈을 비집고 들어온다. 소현은 제 안으로 들어온 지한을 달콤하게 혀로 쓸었다. 그만 떼려는데, 소현의 얼굴을 잡은 지한이 크게 혀를 휘저었다. 볼록 튀어나온 뺨을 엄지로 문질러준 지한이 몸을 물렸다.

“하여간, 틈만 났다 하면.”

“수고해.”

“너도 고생해. 유준아. 엄마 가요.”

손을 팔랑팔랑 흔든 소현이 차 문을 닫고 회사로 걸어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지한의 눈동자가 엄숙해졌다.

팀장 직함까지 목에 건 소현은 예전보다 더욱 농염해지고 강했다. 업무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가볍게 씹어먹으며 즐길 수 있는 수준이 되었고, 목표를 위해 팀원을 통솔하는 리더십은 찍소리 못할 만큼 압도적이었다. 예전에는 여유를 가장해 미소지었다면 지금은 소현에게 여유롭지 않은 상황 같은 건 존재하지 않게 했다.

원숙해진 소현은 지한의 구미를 한껏 당기곤 했다. 저런 여자가 침대에서만큼은 아직도 제게 매달리며 어쩔 줄 몰라 했기에.

“아빠.”

“이제 가.”

지한은 아쉽게 눈을 떼며 핸들을 움직였다. 이대로 유준을 8시 40분까지 유치원으로 데려다주는 것이 지한의 아침 스케줄이었다. 유준은 다리를 퉁퉁거리며 물었다.

“아빠. 왜 엄마는 유준이 입에 뽀뽀 안 해줘요?”

창틀에 팔꿈치를 기댄 지한의 고개가 삐딱해졌다.

“엄마 입엔 세균이 득실거리니까.”

“아빠는 하잖아요.”

“아빠 입에도 세균이 많으니까. 누가 이기는지 해보는 거지.”

유준은 입술을 부루퉁하게 내밀었다.

“유준이 입에도 세균 많은데.”

“그럼 치과 가야겠네.”

“아니……안 돼…….”

지한은 눈썹을 까딱이며 도로를 주시했다. 기저귀를 갈아주고, 분유를 먹이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언제 저렇게 자라서 질문을 하는지 신기했다.

“유준이 입에 세균 없어요. 근데, 유준이가 엄마 입속에 있는 세균은 다 없애줄 수 있단 말이에요.”

“아직은 안 돼. 세균 없애는 건 나중에 더 커서 다른 여자한테 해. 결혼할 여자한테.”

“유준이는 엄마랑 결혼할 건데요?”

지한의 눈동자가 빠르게 백미러를 보았다.

“엄마는 나랑 먼저 해서 안 되는데.”

“그래도 유준이는 지금보다 더 잘생겨질 건데. 엄마도 유준이 좋아한다고 했어요.”

지한의 입에서 어이없는 웃음이 샜다. 다른 남자였더라면 하찮고 가소로웠을 텐데 제 아들이라 그런지 묘하게 이해가 간다. 소현이 같은 여자와 한집에서 살고 매일 보는데 결혼하고 싶은 건 당연했다.

“유준이가 더 자라면 엄마한테 결혼하자고 할 거예요.”

“…….”

“엄마는 그럼 유준이랑 결혼…….”

아는데, 계속하니까 신경에 거슬린다. 지한은 미간을 문지르며 음량 버튼을 눌렀다. 스피커로 어린아이들의 우상이나 다름없는 만화 ‘띵똥이’의 주제곡이 흘러나왔다.

한창 꿈같은 얘기를 웅얼거리던 유준은 입술을 떨다가 이내 저를 휘젓는 신나는 전주곡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

“우리의 친구 띵똥이……! 언제 어디서나 띵똥띵똥! 힘차게 달려요!”

그 노랫소리를 한 귀로 들으며 지한은 도로를 내달렸다.

유치원에 도착한 지한은 노래를 껐다. 도돌이표처럼 반복된 노래를 따라불렀던 유준의 정신도 그제야 돌아왔다. 신기했다. 어느새 유치원 앞에 도착해 있었다. 유준은 제 몸에 채워진 안전벨트를 푼 지한을 쳐다보았다.

“아빠.”

“왜.”

“유준이 엄마랑 결혼할 거예요. 알겠죠?”

지한은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유준을 차에서 내려주고 검지를 세워 내밀었다. 유준은 저보다 한참이나 큰 지한을 올려다보며 손을 꼭 움켜잡고 씩씩하게 걸어갔다. 유치원 선생님이 유준을 해맑게 맞이했다.

“유준아. 안녕?”

“선생님 안녕하세요.”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유준을 선생님은 사르륵 녹는 미소로 반겨주었다. 녹아내린 눈동자가 지한에게로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아버님 안녕하세요. 오늘도 유준이 데리고 오셨네요.”

출근하면서 유준과 대화하려는 소현 때문에 이뤄지는 등원이었다. 그걸 일일이 설명할 필요는 없는 터라 지한은 고개를 까닥였다.

“잘 부탁드려요.”

“네, 유준아. 아빠한테 인사해야죠?”

“아빠. 잘 다녀오겠습니다.”

지한은 유준의 동그란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선 차로 향했다. 그 모습을 보는 선생님의 입가엔 아직도 미소가 둥실 떠올라 있었다. 유준은 입술을 삐죽거리며 눈동자를 굴렸다. 입구를 서성이던 다른 선생님들도 죄다 지한을 쳐다보고 있었다. 유준은 선생님의 옷자락을 잡아끌었다.

“선생님, 유준이가 더 잘생겼죠?”

“으응?”

“아빠보다 유준이가 더 잘생겼죠?”

선생님은 애정이 담뿍 묻은 웃음을 터트렸다.

“그럼요. 유준이가 백 배 더 멋지고 씩씩한걸요?”

“맞아요. 그러니까, 유준이는 얼른 자라서 엄마랑 결혼해야 돼요.”

선생님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결혼이요?”

유준은 주춤거렸다. 선생님이 무릎을 반으로 접어 시선을 맞추자 용기를 낸 유준이 선생님의 귓가에 대고 작게 소곤거렸다.

“선생님, 이건 비밀인데요.”

“네.”

유준이 더 작은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우리 아빠가 엄마를 매일 조금씩 잡아먹는 거 같아요.”

*

추적추적, 여름비가 내렸다. 아침에는 화창했던 날씨가 무색할 정도로 쏟아지는 터라 지한은 유준의 하원을 가면서 통화를 이어나갔다.

“이번 글로벌 프로젝트는 잘 될 겁니다.”

글로벌 프로젝트는 지한의 머리에서 나온 거였다. 킨슬리 본사 건물을 스크린 삼아 기간 성으로 식량 부족, 환경 오염 문제를 노출시킨 뒤 세계적인 문제를 킨슬리가 함께 지원하며 극복해나가겠다는 인식을 사람들에게 심어주는 취지였다.

외국 기업인 킨슬리는 국내 상륙 이후 알박기에 성공했지만 사람들의 머릿속에 갑자기 들이닥친 거대 자본이라는 오명을 지우기 위해 끊임없이 선행을 이어나가는 중이었다. 핸들을 틀며 지한이 무심하게 대꾸했다.

“강 팀장이 맡았는데 걱정을 왜 합니까.”

제 아내라서가 아니라 소현처럼 일을 기막히게 해내는 사람을 본 적 없었다. 그랬기에 이번 프로젝트는 현진 기획과 협업으로 이뤄졌다.

“진행 사항하고 시안은 내가 며칠 전에 직접 확인했어요. 군침 날 정도로 잘 빠졌던데요.”

「하하, 한집에 사니 그런 이점이 있군요. 알겠습니다, 내일 발표 기대한다고 전해주세요.」

“그래요.”

목 뒤를 문지른 지한은 조수석에 놓인 우산을 들고 차에서 내렸다. 잘 가꿔진 정원을 거닐자 유준은 보이질 않고 선생님 혼자 나와 지한을 맞이했다.

“유준이 아버님 잠시만 안쪽에서 얘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지한은 긴 우산대를 사선으로 털었다.

“그러죠.”

젖은 우산을 벽 한쪽에 세워둔 지한은 유치원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상담실에 도착한 지한은 마실 것을 권유하는 선생님을 빤히 쳐다보았다.

“커피 한잔 어떠세요? 아니면 향이 좋은 국화차가 있는데…….”

“그보다 무슨 말을 할지가 궁금한데요.”

“아, 그럼 얘기를 먼저 나눌까요?”

선생님은 미소를 머금은 채 의자에 앉았다.

“유준이가 영어와 중국어가 너무 뛰어나요. 원어민 선생님과 대화도 무척 잘하고요.”

“…….”

뚫어지게 응시하는 시선에 선생님은 괜스레 목이 바싹 말랐다. 보통의 부모라면 아이 칭찬에 웃음이라도 짓기 마련인데, 지한은 건조했다. 마치 아이가 잘하지 못해도 문제 될 것 없다는 듯이. 선생님은 오늘 아침 얘기를 떠올리며 말했다.

“유준이 나이 때쯤이면 대화도 어느 정도 되고, 혼자 할 일을 직접 하면서 창의력과 상상력이 함께 성장할 시기거든요.”

“그렇군요.”

“네, 실은 오늘 아침에 유준이가 아버님이 엄마를 조금씩 잡아먹는다고 얘기했어요.”

그 말에 지한은 픽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재미있는 상상이네요.”

“그……재미있기만 하면 안 되시고, 왜 그런 표현을 하게 되었는지 아버님께서 알 필요가 있을 거 같아요.”

“뭐라고 하는데요.”

지한은 옆 의자로 팔을 걸치며 물었다.

“평소 침실에 유준이가 들어가지 못하게 하시나요?”

“부부 영역이니까요. 밤을 제외하고는 들어오게 하는데요.”

“그게 유준이 눈에는 아버님이 문을 닫아두고, 어머님과 단둘이 계시니까 자기가 모르는 시간이 생기는 거거든요. 그리고 아침마다 어머니 목에……이상한 자국들이 계속 늘어난다고 해요.”

지한은 눈썹을 부드럽게 찌푸렸다.

“관찰력이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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