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꽃 같은 대공비가 치는 꽃 같지 못한 사고들 (1)화 (1/220)

프롤로그

누군가에게 수도의 사교계란 평생 넘을 수 없는 벽이며 평생을 갈망하고 사는 곳이다.

일원이 되길 바라도 첫발을 내딛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애초에 권력, 계급, 재력까지 모두 평가받았으며 자신들과 같은 부류가 아니라면 말도 섞지 않았다. 그곳에만 간다면 괜찮은 남편, 괜찮은 부인, 괜찮은 애인까지, 뭐 하나 부럽지 않게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만큼 숨을 옥죄는 듯 손가락 하나, 시선 하나까지 연기하며 살아가는 곳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이곳에 속해 있던 이들은 말 한마디 속 시원하게 할 수 없었고 감정표현 한 번 마음껏 할 수 없었다.

소리 없는 전쟁터이자 제국을 흔들 정보들이 가장 많이 오가는 곳, 이곳에서의 행동 하나가 앞으로의 행보를 결정하는 그런 곳이었다.

황실의 권위를 보여 주듯 화려한 샹들리에가 불을 밝히고, 온갖 보석으로 장식된 조각들이 그 빛을 반사해 홀 전체에 흩뿌렸다.

황후가 친히 초대한 악단과 소리를 풍성하게 해 줄 소프라노까지.

이 풍성한 소리로 홀을 채우는 그곳에서, 한 연인이 춤을 추고 있었다. 권력, 계급, 재력은 두말할 것 없고 심지어 군사력까지 모두 갖춘 부부였다.

남자들도, 여자들도 나이를 가리지 않고 은밀히 두 사람을 살폈으나 그들은 개의치 않는 듯싶었다. 마치 넘을 수 없는 벽이라도 있는 것처럼.

“나엘라.”

오늘의 주인공 중 하나인 체드란은 시선들이 느껴짐에도 덤덤히 그녀를 불렀다.

“말해요.”

들떠 있어도 모자라 것만 둘의 음성은 한없이 담담하고 침착했다.

“황제를 알현할 준비는 되었나?”

“무슨 준비요? 마음의 준비 같은 거요?”

나엘라는 평소 무뚝뚝하기만 한 체드란이 새삼스러운 걱정을 하는 것이 웃겼다.

“의심 많고 편협하며 제 자식조차 죽일 정도로 누구보다 잔인하지.”

“그리고 당신의 원수이고요.”

“그대에게 일어난 모든 불행의 시작이기도 하네.”

빙그르르─ 나엘라가 가볍게 한 바퀴를 돌고는 자연스레 체드란의 품에 안겼다. 그녀가 돌 때마다 하늘하늘 퍼지며 흩날리는 드레스에 귀부인들의 탄성이 퍼졌다.

“욕심 많은 늙은이가 그대를 협박할 수도 있다네.”

“언제나 그래 왔듯이 소중한 사람을 인질로 잡고. 그렇죠?”

“그래. 그대를 죽이려 들 테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뒤집어씌우려 하겠지.”

“당신에게 그랬듯이 말이죠?”

두 사람이 잠시 떨어졌다가 다시 만났다. 동시에 주위를 맴돌며 함께 춤을 추던 젊은 커플이 멀어졌다.

“허나 잊지 말게.”

“무엇을요?”

“그대의 뒤에는 언제나 내가 있다는 것을.”

나엘라가 가벼운 웃음을 터트렸다. 너무도 싱그러운 웃음이라 체드란은 두 사람이 무엇을 앞두고 있는지 잊어버릴 것 같았다.

“체드란, 오늘 정말 이상하네요. 체드란이야말로 잊은 거 아니에요?”

“무엇을?”

“내가 체드란도, 체드란의 집인 노헤스카 대공령도, 체드란의 아끼는 사람들도, 모두 지켜 주기로 했잖아요.”

“그랬지. 그대가 나를 지켜 주기로 했지.”

“그러니 걱정 말아요. 당신에게 평온하고 아름다운 일상을 선물할 테니까.”

음악이 끝나고 두 사람이 떨어져 서로에게 인사를 건넸다. 체드란이 손을 내밀자 나엘라가 그 손을 틈 없이 맞잡았다. 그림처럼 아름다운 커플을 향해 많은 이들이 박수를 보냈다.

그 시끄러움을 틈 타 체드란은 작은 진심을 전했다.

“내 아름다운 일상은 그대가 오며 시작되었네.”

나엘라는 그저 환하게 웃으며 소리 소문 없이 시작된 전쟁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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