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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같은 대공비가 치는 꽃 같지 못한 사고들 (2)화 (2/220)

Chapter 1. 소문의 공작 영애

1화

대륙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테사 제국. 그곳에는 개국 공신 가문이자 서쪽 국경지대의 황폐한 땅에서 제국을 지키는 마호세르디 공작가가 있다.

그 무엇도 욕심내지 않고 제국을 지키는 가문.

그 문장이 그들을 대표하기에 가장 정확했다. 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늘 황제를 지지해 왔으며, 황가를 지키는 가장 날카로운 검이자 제국의 서쪽을 지키는 가장 단단한 방패였다.

황제파의 수장으로 불리는 마호세르디 공작에게는 세 명의 자식이 있다. 장남은 황실 기사단장으로 황가를 지키는 검이 되었고 차남은 마호세르디 공작령에서 서쪽 국경을 지키며 제국을 지키는 방패가 되었다.

그리고 마호세르디 공작가의 막내딸이자 제국의 유일한 공녀이며 가장 유력한 황태자비 후보로 꼽히던 나엘라 마호세르디가 있다. 죽은 공작부인과 가장 닮아서 공작이 애지중지하지만, 워낙 몸이 약해 저택 밖으로 한 발자국도 안 나간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였다.

그런 나엘라 마호세르디의 갑작스러운 결혼 발표가 제국 전역을 강타했다. 한동안 별다른 소식 없이 잠잠했던 사교계에 대형 스캔들이 터진 셈이다.

결혼의 진위와 얽힌 사정들을 파악하기도 전에 각 가문에 청첩장이 먼저 날아들었다. 그리고 모두 경악했다.

“상대가 누구라고요?! 진짜 그……!”

청첩장을 열어 본 이들의 반응은 대부분은 이런 식이었다.

“말도 안 돼. 마호세르디 공작이 정말로 그런 선택을 했을 리가…….”

그곳에는 나엘라 마호세르디와 전쟁광, 체드란 노헤스카 대공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 누구보다 황제에게 충성한다고 알려진 마호세르디 공작가와 스스로 황실의 일원이길 거부했던 체드란 노헤스카 대공의 결합이라니!

많은 이들이 제정신을 찾기도 전에 가장 화려한 결혼식이 시작되었다.

댕─ 댕─ 댕─

역대 가장 많은 결혼식 하객들이 참석한 이곳에서 귀빈들의 착석을 알리는 신전의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세기의 로맨스인가, 황실의 판도를 바꿀 정치적인 결합인가.

황제파와 귀족파, 그들뿐만 아니라 황실의 일원들까지 날카로운 눈으로 결혼식을 주시했다.

*

촤르륵─

신부 대기실을 환히 비추던 햇빛은 하녀가 친 커튼으로 가려졌다.

“모두 나가 있거라.”

차가운 그 목소리에 신부의 드레스와 화장을 매만지던 이들이 모두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두 번 말하지 않겠다.”

아직 준비해야 할 것이 한참 많음에도 모든 이들이 우르르 빠져나갔다. 명백한 축객령을 들었음에도 전속 하녀인 지안은 오히려 그녀에게 다가갔다.

“나엘라 님.”

“시킨 것은?”

“모두 챙겨 대공령으로 보냈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나엘라는 웨딩드레스를 들어 올려 옥죄어 불편한 발을 탈탈 털었다. 그 과격한 움직임에 휘리릭 날아간 예식용 구두를 지안이 얼른 주워 들었다.

“사람들이 수군거리고 있습니다.”

슬금슬금 의자에 편히 눕던 나엘라는 한쪽 눈썹을 들어 올렸다.

사람들 수군거리는 게 어디 한두 번이었어야지. 새삼스럽지도 않다.

“결혼식을 올리자마자 대공령으로 가는 것이 수상하다고 난리입니다. 마호세르디 공작이 황실에 반기를 든 것이 아니냐, 그래서 병약한 막내딸을 대공령으로 대피시키는 거라며 난리입니다. 그리고 똑바로 앉으세요. 드레스 구겨집니다.”

아침부터, 아니 새벽부터 하녀들에게 시달린 탓에 얼마나 힘든지 아느냐며 토로하고 싶었지만, 나엘라는 꾹 삼켰다. 애초에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성격이 아니기에 그저 인상만 찌푸리며 자세를 바로 했다.

“아버지도 그 정도는 예상하셨겠지.”

그 정도도 생각 못 하고 이렇게 일을 벌였을까.

결혼식을 주관하는 사제의 목소리가 창문 너머로 들려왔다.

수도의 대신전에서 열리는, 황가의 것보다 호화로운 결혼식이었다. 황제파와 귀족파가 모두 참석하여 역대 가장 많은 하객이 몰렸다.

심지어 수도의 제국민이라면 멀리서라도 모두 볼 수 있도록 신전의 모든 문을 개방하기까지 했다. 이를 두고 많은 이들이 황가를 넘보는 첫 발자국이 아니냐며 수군대었다.

정작 나엘라는 수도에 올라온 것도 몇 번 안 되건만, 사람들은 당장이라도 공작가가 수도를 집어삼킬 것처럼 굴었다.

하지만 누가 알까, 이 모든 것들이 아비의 마음에서 비롯됐단 걸. 사랑 없는 결혼을 하게 된 딸이 안쓰러워 결혼식만은 화려하게 치러 준 것뿐이었다.

어차피 마호세르디 공작이 황제에게 쉽게 반기를 들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 나엘라가 대공과 화목한 모습을 보인다면 이 결혼식은 곧 세기의 로맨스로 탈바꿈할 터였다.

“지안.”

“네.”

나엘라는 웨딩드레스를 만지작거렸다. 이날을 위해 마호세르디 공작이 내로라하는 디자이너들과 타국의 디자이너들까지 닦달하여 만들어 낸 드레스였다.

“장갑을 줘.”

흰색 레이스로 된 긴 장갑이 손바닥 가득하던 굳은살을 가리기 시작했다.

병약하여 수도에 올라오지도 못한다는 공작가의 막내딸이 손에 굳은살이 가득하면 쓰나.

“면사포도.”

“화장과 머리 장식이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 정도면 충분해.”

“공작님께서 서운해하실 거예요.”

도대체 왜 이리 유난인지. 괜히 화려하게 결혼식을 치르는 바람에 황제의 의심까지 사게 생겼다. 뻔히 알고 있음에도 더 화려하게, 더 예쁘게를 외치던 공작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집사에게 물어봐.”

“무엇을요?”

“아버지께 갱년기가 온 것은 아닌지. 그러니 저렇게 여성스러워진 걸지도.”

지안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러더니 화장대에 있던 머리 장신구들을 들어 물결치는 흑발 사이사이에 고정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면사포를 쓰면 안 보일 것을.”

“다─ 보입니다. 귀부인들은 오늘 머리에 바른 오일 종류까지 알아보실걸요?”

“설마…….”

“그러니 저희들이 하게 두세요. 머리 장신구 하나하나까지 공작님과 공자님들이 고르신 것들입니다.”

“결혼식이 뭐라고.”

“공작님께선…….”

지안이 무언가를 말하려다 멈칫하고 우물거렸다.

“공작님께선…… 나엘라 님의 행복을 가장 바라십니다.”

“알아.”

“이번 결혼도 그런 이유고요.”

“그것도 알아.”

“드레스와 장신구의 화려함은 어쩔 수 없습니다. 평상시에 나엘라 님이 너무 안 하시니까 이때 아니면 평생 못 보겠다고 생각하셨겠죠.”

“귀찮아.”

“후…… 나엘라 님은 그 일이 있고 유독─.

“그만.”

마호세르디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자수정 같은 눈동자가 지안을 빤히 바라보았다.

“감성적인 건 아버지로 충분해.”

말투가 차갑다고 그 안에 든 것까지 차가운 것은 아니다. 그것을 잘 알기에 지안은 그냥 살며시 웃었다.

“결혼식 때는 원래 감성적이게 되는 거예요. 당사자인 나엘라 님이 가장 감성적이어야 하는데 이것 참.”

더는 잔소리가 듣기 싫은지 보라색 눈동자가 눈꺼풀 사이로 쓱 사라졌다. 그 행동이 앞으로 얌전히 있겠다는 말인 걸 알기에 지안은 잔소리를 멈췄다. 화장대 옆에 줄을 당기자 밖에서 대기하던 하녀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이제는 정말 결혼식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

하녀들이 옷매무시를 가다듬는 와중에도 대공의 눈은 서류를 떠나지 않았다. 그러다 갑자기 사람들이 우르르 빠져나가기에 고개를 들었더니, 그곳엔 대공과 똑같은 금발과 푸른 눈을 가진 황태자가 서 있었다.

황실의 상징과도 같은 백금발과 푸른 눈을 가진 극소수의 인물 중 둘이나 이곳에 있다니. 심지어 그 두 사람이 사이 안 좋기로 유명한 대공과 황태자라면 더더욱 쉽게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모든 이들이 나가고 문이 닫히자 황태자가 대기실 소파에 털썩 앉았다. 그 모습에 대공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리 와서 앉으시지요, 형님.”

“황실의 성은 진작에 버렸는데.”

그런데도 착실히 와서 황태자의 맞은편에 앉는 것이 또 그다웠다.

“결혼식 날까지 서류라니, 어느 여자가 일 중독 남편을 좋아한단 말입니까.”

“안 그래도 팔불출 공작 때문에 황제의 심기가 불편한데 황태자 전하까지 왜 이러는 건지 모르겠군.”

“이건 뭐, 호칭만 존대지 누가 봐도 제가 아랫사람 같습니다.”

“용건만 간단히. 우리 둘이 만난 것을 알면 황제가 가만있지 않을 거다.”

“그 의심 많은 늙은이는 아무것도 못 할 겁니다.”

“황제의 귀는 어디에나 있다.”

“그럼요. 밖에 있는 하녀 중 황제의 사람 하나 없겠습니까? 황제는 그것을 저도 알고 있다고 생각할 겁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대놓고 만나다니, 그 행동이 황제의 의심을 부추기는 행동 같을 테고 그 의도를 또 의심하겠죠.”

“의심에 의심을 더하게 만들겠다?”

“그러니 더더욱 쉬이 못 움직이지 않겠습니까?”

“굳이 트집 잡힐 일을 만들지 말라는 말이었다.”

“결혼 전, 주요 가문에 내리는 황가의 축복은 전통 관례이기도 합니다.”

“황제에게 이미 받았다.”

“제가 그걸 몰랐군요. 실수라고 얘기하면 되겠네요. 아니면 황제와 황태자에게 동시에 축복받은 결혼식은 어떻습니까? 다른 의미로 또 떠들썩하겠네요.”

“떠들썩한 게 필요한가?”

“가십이 오래가면 오래갈수록 좋죠. 오랫동안 늙은이의 눈을 가릴 테니.”

“마음대로 하도록.”

황태자의 짙은 미소에 대공은 또 피곤한 소문이 늘겠거니 하고 말았다. 소문이 늘어난다 한들 진위를 확인해 볼 사람이 몇이나 될까. 전쟁광으로 유명한 노헤스카 대공에게.

“그나저나 공작은 결혼식을 왜 이렇게 화려하게 준비했답니까? 그것 때문에 예민해진 늙은이가 세작인들을 미친 듯이 굴리고 있습니다. 저도 한동안 사려야 할 정도란 말입니다.”

대공의 머릿속에 공작과의 만남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했던 말을 떠올렸다. 뭐라더라…….

“너와 나는 이해하지 못할 거라더군.”

“……설마 공작 영애에 대한 사랑, 뭐 그런 겁니까?”

“아마도.”

“그럼 저희가 평생 이해할 일은 없겠군요. 그렇게 사랑하면서 그런 계약을 왜 했답니까?”

“나도 그게 이해되지 않더군. 의도를 모르겠어.”

“만만한 자가 아니니까요. 우리에게도 이득이 있으니 받아들이긴 했지만……. 아무튼, 그래서 어떻습니까?”

“뭐가?”

“나엘라 마호세르디. 엄청나게 예쁘다던데?”

“검은 머리에 보라색 눈동자. 예법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우아하더군.”

“몸이 매우 약하다고 하던데요?”

“식사 한 번 한 게 다라 모르겠군. 키는 보통보다 큰 편이지만 펑퍼짐한 드레스를 입고 있어서 체격은 제대로 보지 못했다. 아, 눈매나 인상이 차가운 편이더군.”

“잦은 병치레로 성격이 까다롭고 성정이 유하지는 않다고 들었습니다. 근데 결혼 전에 밥 한 번 먹은 게 다란 말입니까?”

“뭔가를 더 해야 하나?”

황태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공작은 대체 왜 이런 남자에게 막내딸을 시집보내는 것일까? 애지중지 아끼는 막내딸이란 소문 자체가 보여 주기 용이었나?

그렇다기엔 황제의 심기를 거스를 정도의 호화로운 결혼식이 조금 걸렸다.

댕─ 댕─ 댕─

창밖으로 결혼식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려오자 두 남자의 눈이 마주쳤다.

“이제 가 봐야겠군요.”

대공의 눈썹이 찡그려졌다.

“정말 왜 왔는지 모르겠군.”

“축복하러 왔다니까요, 형님.”

“그런 변명 말고.”

“변명 같습니까?”

황태자가 평소의 진한 웃음이 아닌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그 교활한 늙은이의 축복 속에 진심 한 톨이라도 있었겠습니까?”

“그래서 축복을 다시 해 주러 왔다 이건가?”

“저는 적어도 이 결혼이 형님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보통 축복은 행복하게 지내라고 말하는 것이 관례다.”

“행복을 바라기엔 저희가 겪은 것이 너무 많지 않습니까?”

황태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황실 예법 표본이라고 할 만큼 정중한 인사를 건넸다. 그 인사가 목만 숙이는 것이 아닌 허리까지 숙이는, 윗사람을 향한 예라는 것이 문제였지만 그 누구도 말 한마디 없었다.

“결혼 축하드립니다.”

“그래.”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결혼식에 참석해야 한다는 집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 보겠습니다. 형님은 바로 대공령으로 가실 테니 반년 뒤에나 뵙겠군요.”

“그렇군. 그동안…….”

“걱정하지 마십시오. 멀쩡히 잘 살아 있을 테니.”

그 말을 끝으로 두 사람의 만남도 끝났다. 다음 만남은 반년 뒤에나 있을 터다.

와아아아─!!

사람들의 함성이 퍼지는 것을 보니 대신관이 입장한 모양이었다. 대공은 답답함에 넥타이를 풀려다 멈칫했다.

여러모로 피곤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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