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7. 수도 환영식
56화
“오늘이죠?”
베르에티의 질문에 하일모라가 벌떡 일어나 초조하게 방 안을 돌아다녔다.
바로 오늘이 대공 부부가 수도로 올라오는 날이다. 현재 수도 사람들이 가장 귀 기울이고 있는 소식 중 하나였다.
“지금쯤 도착했겠죠?”
베르에티도 초조한 건 마찬가지인지 안절부절못했다.
화제의 인물들이니만큼 도착했다면 벌써 소문이 퍼졌을 텐데 아직 이야기가 없었다. 은근슬쩍 주변을 살펴보고 소문을 전해 달라 내보낸 심부름꾼도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남부의 끝이니 시간이 걸리는 걸 수도 있죠.”
내용은 침착하지만, 하일모라의 태도는 그렇지 못했다. 나엘라가 오면 전해 줘야 할 이야기가 한가득한데 대놓고 만날 수도 없으니 큰일이었다.
방법이라곤 나엘라의 사람들에게 대신 전해 달라는 수뿐이었다. 그나마 베르에티를 통해 나엘라 사람들의 행방을 전해 받아 다행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더 기다렸을까, 누군가가 다급히 뛰어오는 소리와 함께 방문을 두드렸다.
“하일모라 님……!”
심부름꾼이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방문이 벌컥 열렸다.
“뭐라던가? 도착했다던가?!”
하일모라의 말에 심부름꾼은 잠시 당황해 멈칫했다. 그러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소식을 전했다.
“살라만 후작부인의 부고입니다. 황후 마마와 친분이 있던 귀족들은 모두 참석하라는 명령입니다.”
“뭐……?”
하일모라는 순간적으로 머리가 멍했다. 그녀가 전혀 원하지 않던 소식이었다. 대공 부부가 수도로 올라오는 일로 다들 떠들썩했는데 그것보다 큰 이슈가 터져 버린 것이다.
거기에 더해 장례식에 친분이 있는 이들은 모두 참석하라니. 제 사람들을 제대로 드러내겠다는 말과 다를 게 없었다.
“그리고…….”
심부름꾼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대공 부부께서 도착하셨는데…… 황후 마마께서 참석하라고 하셨답니다.”
“뭐? 대공 전하와 살라만 부인이 무슨 관계가 있다고?!”
“표면적으로 황후 마마께선 대공 전하의 어머니시고, 어머니의 자매분 장례식이니 참석하라는 명입니다.”
명분은 충분했다. 이렇게 되면 피할 길 없이 나엘라도 참석해야 한다.
황후의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니 나엘라에게는 사방이 적인 곳이었다.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맙소사…….”
하일모라는 아찔해지는 기분에 비틀거렸다.
*
수도로 올라가는 날에도 대공저는 시끌벅적했다. 걱정을 늘어놓는 론체나 주접을 떨어 대는 마든은 말할 것도 없었다.
하녀장과 사용인들은 조심스럽게 잘 다녀오라는 말을 전했다. 그래도 나엘라와 꽤 정이 들었나 보다.
기사들은 너도나도 말을 전하려 난리가 났다. 대부분이 잘 다녀오라는 것과 수도에서도 지금처럼 행동하라는 이상한 말이었다.
마든의 감시하에 저택을 지키게 된 사피오는 나엘라를 향해 썩어 가는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마든뿐만 아니라 기사들에게도 24시간 감시당할 줄은 몰랐을 테니 당연한 일이었다.
나엘라의 전속 하녀 중 프리야는 대공저에 남게 되었다. 나엘라는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라 말없이 그녀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그곳에서 어떻게 도망쳤는데 다시 돌아가고 싶겠나.
그렇게 많은 이들의 배웅을 뒤로하고 마차는 출발했다.
점점 멀어지는 대공저를 바라보며 나엘라는 어쩐지 마호세르디랑 비슷하단 느낌을 받았다. 어느새 나엘라에게도 익숙한 곳이 된 모양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중간중간 휴식을 취하기도 했지만, 재촉한 보람이 있었다. 예상보다 꽤 이른 시간에 수도로 진입했다.
나엘라는 마차 창으로 바깥을 천천히 구경했다.
결혼식 때도 봤었지만 한결같이 화려한 곳이었다. 저 화려함 속에 얼마나 많은 독을 품고 있는지 잘 아는 만큼 오래 있고 싶지 않았다.
일만 마무리하면 노헤스카에서 여유롭게 살아야지, 그런 다짐만 되새겼다.
결혼 전에는 검, 기사단, 복수, 그리고 자신의 사람들을 지키는 데 급급했고 결혼 후에는 검만 빠졌다 뿐 나머지는 같았다.
이곳의 일이 마무리되면 조금 더 괜찮아지지 않을까.
“도착했습니다.”
대공 부부의 호위로 부단장인 바체 다롱 경이 따라왔다. 그리고 익숙한 기사들도 많이 올라왔기에 나엘라는 한결 마음이 편했다.
적어도 기사들은 그리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체드란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마차에서 내리자 저택이 눈에 들어왔다. 삭막해 보이던 노헤스카의 대공저보다 확실히 더 화려하고 고풍스러웠다.
하지만 그런 외관이 오히려 노헤스카답지 못하다고 느껴져 나엘라는 자신이 천생 기사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얗게 칠한 외벽과 음각으로 조각된 노헤스카의 설화들, 한눈에도 국경을 지키는 가문임을 드러내는 기사 조각들까지, 수도에서는 어쩔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아마 이 저택의 값이 대공령에 있는 저택보다 더 비쌀 것이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수도의 대공저를 관리하는 집사장 라르바 페소입니다.”
수도의 집사장은 꽤 나이가 있는, 흰머리가 지긋한 중년의 남자였다. 단정함과 부지런함이 몸에 배어 있어 인사하는 자세에 한 치의 어긋남도 없었다.
“오랜만이군.”
체드란을 따라 나엘라도 인사를 전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나엘라 노헤스카입니다.”
“다시 한번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수도에 계시는 동안 불편함이 없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나엘라가 고개를 끄덕이자 라르바가 저택을 안내했다.
“일단은 침실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여독을 푸시지요.”
체드란과 나엘라를 이끈 침실은 마든의 말대로였다. 방문을 열자마자 커다란 응접 테이블과 소파, 다른 한쪽에는 아침 식사용인지 식탁 테이블까지 있었다. 그 응접실을 지나서야 양옆으로 각자의 침실이 자리했다.
“대공 전하께서 오른쪽, 대공비 전하께서 왼쪽을 쓰시면 됩니다. 혹 마음에 안 드시거나 필요한 것이 있으시면 언제든 줄을 당겨 주십시오. 두 분 다 하녀들을 불편해하신다기에 모두 물렸습니다. 그리고 대공비 전하의 전담 하녀들은 바로 옆방으로 조치해 놨습니다.”
마든이 잘 전달해 놓은 것인지 라르바의 일 처리가 나쁘지 않았다. 나엘라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자 곧 라르바가 침실을 나섰다.
나엘라는 자연스럽게 소파에 앉았다. 어차피 지안이나 다른 이들이 곧 침실에 짐을 옮기고 이리저리 정리하느라 바쁘게 돌아다닐 것이 뻔했다. 애초에 이곳에 앉아 있는 게 나았다.
“체드란, 이쪽에 앉으세요.”
체드란은 원래 하녀를 잘 안 쓰기도 했고, 수도에 있는 동안 필요한 것들은 나엘라의 전속 하녀들에게 받기로 했다. 부부의 생활이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도록 조치한 방법이다.
나엘라가 맞은편의 소파를 가리키자 체드란은 왠지 모르게 어색한 발걸음으로 다가가 앉았다.
“흠흠.”
“혹시 제 전속 하녀들이 시중드는 것이 불편하신가요?”
“아니네. 어차피 필요한 것도 별로 없고, 옷 정도는 내가 알아서 갈아입네.”
“뭐 기사 생활이 익숙한 이들은 다 그렇죠. 어차피 하녀들은 계속 제 방에만 있을 겁니다. 체드란과 자주 안 마주칠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 말은 곧 그대와도 자주 안 마주친다는 얘기군.”
“아침 식사를 함께하는 것이 불편하다면 말씀하시고요.”
“별로 그렇진 않네.”
말하는 내내 체드란이 어딘가 불편하고 어색해 보여 나엘라는 의아해졌다.
“혹시 낯가림이 있으십니까?”
“낯가림?”
“익숙한 장소가 아니라 불안하시다거나…….”
“그럴 리가.”
“그럼 뭔가 불편하십니까?”
정말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나엘라 때문에 체드란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각자 침대가 있다지만 어쨌든 한 걸음만 나오면 서로의 방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정말 아무렇지 않단 말인가?
심지어 양쪽 방엔 방문도 없었다. 하녀들이 모두 나간 밤에는 완벽하게 둘만 있게 된다. 둔한 건지 정말 개의치 않은 건지 모르겠다.
“혹시 그대의 눈에 내가 전우로 보이나?”
“네?”
“실언일세.”
나엘라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혹시 체드란이 잘못 먹은 거라도 있는 걸까? 아무래도 보기보다 섬세하고 예민한 모양이라며 대충 생각하고 말았다.
조금 뒤 소란스러운 소리와 함께 지안과 다른 이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건장한 하인들이 나엘라의 짐을 옮기던 그때, 라르바가 급히 들어왔다.
“대공 전하…….”
“무슨 일이지?”
나엘라와 체드란의 시선이 닿자 라르바가 급보를 전했다.
“살라만 후작부인의 부고가 날아왔습니다.”
전령이 전해 준 편지를 건네받은 체드란이 거친 손길로 봉투를 열었다. 빠르게 내용을 읽은 체드란이 ‘하!’ 하는 헛웃음과 함께 편지를 나엘라에게 넘겼다.
냉큼 편지지에 적힌 내용을 훑어 내린 나엘라도 어이가 없다는 듯 미간을 찡그렸다. 그곳에는 살라만 부인의 장례식에 참석하라는 내용이 온갖 미사여구와 함께 적혀 있었다.
그중 제일 웃긴 것은 체드란에게도 외가 사람이니 참석하라는 이야기였다.
기가 찬다고 해야 할까 뻔뻔하다고 해야 할까.
마음에 쏙 드는 욕이 생각나지 않아 나엘라는 그저 조용히 편지를 내려놓았다.
“황후 마마와 살라만 부인은 사이가 좋지 않다고 알고 있는데.”
나엘라의 말에 라르바가 대답했다.
“방금 들은 이야기입니다만, 황후 마마께서 친분이 있는 귀족들은 모두 참석하라고 했답니다. 아마 어떤 목적이 있으심이…….”
라르바야 쉬이 꺼낼 수 없어 말끝을 흐렸지만 목적이야 뻔한 것이 아닌가.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체드란이 피곤하다는 듯 얼굴을 쓸었다.
“환영식 한번 거창하네요.”
어떻게 부고 소식이 딱 오늘 온단 말인가. 그것도 황후와 사이가 안 좋다는 살라만 부인의 부고가.
이미 소식들이 퍼졌을 테니 수도가 뒤숭숭할 것이다. 훨씬 더 많은 시선이 쏠리게 될 테니 장례식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 경우 대공 부부의 평판에 직격타가 될 터.
나엘라는 가만히 편지를 두들겼다.
분명 부고 소식인데 마치 거미 소굴 속 초대장 같았다.
“먼저 기를 죽이고 싶나 보군.”
체드란의 말투는 여전하다는 듯 탄식하는 어조였다. 이런 사람에게 어린 시절부터 당하고 살았을 체드란이 안쓰럽다가도 나엘라는 승부욕에 불타올랐다.
“오늘 만나게 되겠네요.”
나엘라는 사뭇 기대되기도 했다. 황제의 참석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적들을 실물로 보는 것이다.
“정말로 궁금해요.”
아직 사건이 터진 것도 아닌데 본능적으로 황후의 편지에서 기분 나쁜 것들이 느껴지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