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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같은 대공비가 치는 꽃 같지 못한 사고들 (64)화 (64/220)

63화

아직 본격적인 사교 시즌이 아님에도, 수도에서는 크고 작은 파티들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시기는 이르지만 몇 가지의 큰 이슈들로 시즌이 앞당겨진 탓이다.

첫 번째 이유는 세간의 관심을 끈 대공 부부 때문이었다. 지루하고 늘 똑같은 사건들만 일어나는 수도에서 대공 부부의 소식은 커다란 활력과도 같았다.

귀부인들은 앞다투어 파티를 열었다. 암묵적으로 하루에 두 번 이상 파티를 열지 않는 것이 규칙이기에 순번 정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정작 관심의 당사자인 대공 부부는 모든 파티를 거절하고 있었다. 수도에 막 올라와 여독이 풀리지 않았다는 핑계였다.

하필 반강제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황실 파티도 열리지 않고 있어 더더욱 방법이 없었다. 대공 부부의 윗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귀족 가문도 없으니 강제로 불러낼 수도 없었던 탓이다. 자고로 계급이 깡패인 법이다.

두 번째는 황후의 행보 때문이었다. 제 세력을 드러낸 그녀 때문에 귀족들은 정보가 간절했다.

가장 많은 정보가 오가는 곳은 언제나 사교 파티인 법. 황후의 언니, 살라만 부인의 장례식장을 계기로 귀족들의 발걸음이 바빠졌다.

다행히 겨울도 끝나가 움직이기에 한층 수월해진 것도 하나의 요인이었다.

그러다 보니 뜻하지 않게 늘 입던 봄 드레스나 노출이 심한 여름 드레스가 아닌 새로운 스타일의 드레스가 대거 등장했다.

언제나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귀부인이나 영애들에게는 반길 만한 소식이었다.

그래서 수도는 뜻하지 않게 활기를 띠고 있었다.

“참 신기한 일이네요.”

밖은 겨울이건만 연회 홀 안은 북적이는 여러 사람의 열기로 후끈거렸다. 도톰하게 걸친 숄 때문에 땀이 나는지 한 부인이 부채를 살랑거리며 입을 열었다.

“분명 대공비께서는 마호세르디 저택 밖으로 한 걸음도 나간 적이 없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대공 전하를 만났을까요.”

이곳에 ‘대공비 전하’라고 불러야 한다며 존칭을 수정해 주는 이는 없었다. 입을 연 귀부인이 황후의 옆에서 오랜 시녀 생활을 해 왔던 인물이라는 걸 모두 알기 때문이었다.

“그 미색 하나는 유명하다지요. 장례식장에서는 면사포로 가리고 있어 보지 못했지만, 마호세르디 가문의 남자들을 보면 알 만하지 않겠어요?”

“호호, 마호세르디 공작님께서는 여전히 젊을 때처럼 멋지시죠. 예전 일이 새록새록 생각나네요. 단제 경도 젊을 적 마호세르디 공작님에 비하면 말도 꺼내지 못합니다.”

귀부인의 넉살에 사람들 사이에서는 꺄르르,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한 가문의, 그것도 황제 휘하의 수장을 이리 쉽게 품평하는 건 위험한 일임을 모두가 안다.

다만 여기 있는 이들 모두가 한 명의 눈치를 보고 있었고, 그녀의 눈 밖에 난 마호세르디를 농담 삼아 가볍게 조롱하는 것으로 비위를 맞추는 중이었다.

가볍게 입에 올리다 보면 그 명성 또한 가벼워질까 하여.

“그렇다면 대공 전하께서도 대공비의 미모에 반했나 보네요.”

“그런데 뭐, 얼굴이 얼마나 가겠어요? 아마 곧 질리시지 않겠어요?”

“어머나─, 대공 전하께서 이혼이라도 하신다면 한동안 노헤스카에서 휴양을 보내야겠군요.”

“지금 남편과 헤어지시고 대공 전하의 두 번째 부인하시려고요?”

“못 할 건 또 뭔가요? 그리고 굳이 이혼까지? 그냥 즐기는 거죠.”

또 한바탕 웃음이 터져 나오고 서로의 칭찬이 이어졌다.

음담패설은 남자들만 할 줄 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었다. 여자들의 음담패설 또한 그 수위가 위험한 경계선을 넘나들었다.

이들이 체드란을 언급하며 자꾸만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모두 보았기 때문이다. 한낱 전쟁광으로 취급하기에 그의 체격이나 외모가 너무 아깝다는 것을.

그와 한 번쯤 스쳤던 이들의 입을 통해 들었던 소문이 진실임을 이번 장례식장에서 확인하지 않았나.

거기다 대공비에게 온갖 선물 공세와 애정을 퍼붓는다고 소문이 났으니 어떤 여자가 탐내지 않을까.

그 까탈스럽다는 사교계 여자들을 단숨에 사로잡을 만했다.

“그나저나 정말 두 사람은 어떻게 결혼하게 된 걸까요?”

“그러게요. 마호세르디나 노헤스카 모두 군사 경계 지역이니 더더욱 접점이 있기 어려울 텐데요. 공작 영애와 대공 전하라…….”

어떤 이는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게 아니겠냐, 마호세르디 공작이 한 번쯤은 대공 전하를 초대했을지도 모르지 않겠느냐, 이런저런 말이 많았다.

듣다 못해 한마디 하려는 베르에티를 하일모라가 다급히 붙잡았다. 연신 참으라는 눈빛에 베르에티는 결국 입술을 꾹 다물고 고개를 숙였다.

“그것이 궁금하면 한번 확인해 보면 되지 않겠는가.”

따뜻하게 포장된 자애로운 목소리, 황후가 천천히 다가오자 연신 떠들던 이들이 모두 고개 숙이며 점잖은 척을 했다.

“확인이라니, 어떻게 말씀이신가요?”

오랜 시녀였다던 귀부인이 친분을 과시하듯 황후에게 사근사근 말을 걸었다. 황후도 그런 그녀의 태도가 불쾌하지 않은 듯 옅게 웃었다.

“그야 당연히 파티에서 만나 당사자에게 물어보면 되겠지.”

붉은 머리를 하나로 틀어 올리고 하얀 목을 드러낸 황후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하지만 대공 부부는 여독을 풀겠다며 모든 외부 활동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피로를 푸는데 시간이 더 필요하지는 않겠지. 조만간 황실에서 파티가 열릴 걸세.”

깜짝 놀란 이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황실 주최 파티가 열리기엔 이른 시기였다. 애초에 사교 시즌도 예정보다 일찍 열리지 않았나.

하지만 황후의 말이 사실이라면 대공 부부도 피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소문의 대공비 역시 첫 발자국을 찍을 게 분명했다.

모여 있던 이들은 빠르게 시선을 교환하며 들뜬 표정을 감췄다. 누가 봐도 온갖 음험한 사건 사고가 터지리라 예고된 판이다. 어찌 즐겁지 않을까.

벌써 입이 근질거리는지 부채로 입을 가리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데 어떤 파티인지…….”

황실 파티가 잘 열리지 않는 것은 두 가지 문제 때문이었다. 첫째로 황후가 칩거했기 때문이며, 둘째로는 보통 황실과 관련된 일이 아니면 열지 않는 탓이었다.

역대 황후들의 기분대로 파티가 열렸던 경우도 있지만 그래도 명목은 늘 있었다. 황가의 보탬이 된 누군가의 공로를 크게 치하한다는 등의.

“축하할 일이 왜 없는가.”

황후는 아무렇지 않게 붉은 입술을 끌어 올려 미소를 지었다.

“내가 체드란의 결혼을 축하하지 못했지 않은가. 몸이 많이 좋아졌으니 이제라도 축하해 줘야지.”

하일모라는 시선을 황후에게 고정한 채 입가에 미소를 유지했다.

대체 황후는 무슨 생각일까. 황후의 적은 황제가 아니던가. 왜 자꾸 체드란과 나엘라를 걸고넘어지는 것일까.

페트론 황자의 죽음이 체드란과 연관되어 있으므로? 황제의 칼이 마호세르디라 나엘라를 건드려야 타격이 크기 때문에?

하일모라는 입이 바짝바짝 타들어 갔다. 아무리 생각해도 가장 큰 원망은 황제에게 향해야 옳았다.

몇 년 만에 뗀 등장부터 황제의 심기를 가장 크게 건드리는 짓을 해 놓고, 막상 까놓고 보니 황제에게 영 관심 없다는 투였다.

그때 누군가 손등을 톡톡 두드렸다. 옆에 서 있던 베르에티의 신호였다. 주황색 눈동자와 마주한 하일모라는 보이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황후 마마.”

베르에티가 한 걸음 나서며 황후를 부르자 순식간에 모두의 시선이 모였다. 그녀는 하일모라에게 잘 배운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다가갔다.

“제가 노헤스카 저택에 방문하여 동향을 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당돌한 베르에티의 말에 황후는 미소를 유지한 채 고개를 조금 갸웃거렸다.

“노헤스카 저택에?”

“저희 아버지가 아가산 백작과 친분이 있습니다. 아가산 백작은 남부에 동부의 무역품을 납품하고 계시죠.”

당당하게 얘기하는 것 같아도 베르에티는 줄타기 중이었다.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고 입이 바짝바짝 말랐다.

그간 배운 것을 속으로 되뇌었다. 모든 설명을 다 하지 말 것, 정말 똑똑한 이는 낌새만 던지는 법이다.

황후는 뱀 소굴이라 할 수 있는 황가에서 살아남은 이였다. 오히려 많은 말을 하지 않아야 쓸 만한 사람으로 판단할 것이다.

“아가산 백작이라……. 노헤스카와 손을 잡은 중립, 그자 말이구나.”

황후는 베르에티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정확히 알아들었다. 아가산 백작과의 친목을 이용해 노헤스카 저택에 방문할 구실을 만들겠다는 의미를 말이다.

이로 인해 베르에티는 어린 나이에도 정세에 빠르고 능한 이처럼 보일 것이다. 일단 아가산 백작과 노헤스카가 손을 잡은 것을 알고 있고, 그를 이용할 자신감도 내보이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체드란과 대공비가 거절할 수도 있을 텐데.”

“그럴 리가요. 저희 가문은 루부스 후작가입니다. 동쪽 바다를 지키는 가문을 거절하겠다고 할 리 없습니다.”

조금은 어린 영애의 치기처럼 보이게 할 것, 가문을 믿고 나서는 모양처럼 보여도 괜찮다. 베르에티는 나이가 어리니 그 정도쯤은 경고에서 그칠 수 있었다.

이후에 베르에티가 조금 실수해도 그러려니 혀를 차고 넘어갈 수 있는 방패가 될 것이다.

“파티에 불러서 보면 될 것을 굳이 방문해 동향을 살펴볼 필요가 있겠는가?”

“저는 너무나 궁금하지 뭡니까. 아가산 백작이 주최한 파티에 놀러 갔을 적에 슬쩍 보았으나 그리 미모가 뛰어나진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 이리 거창한 소문이 도는지…….”

베르에티는 소문과 다른 말로 주변인들의 궁금증을 확 자극하며 분위기를 만들었다. 나엘라를 직접 만나 본 이가 손에 꼽는다는 것은 분명 이득이었다.

“제가 방문해 보고 황후마마의 다음 티 파티 때 소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내가 그것을 궁금해할 거라고 생각하는가?”

말투는 여전히 다정했지만, 황후의 눈매는 조금 날카로워져 있었다. 겨우 대공 부부의 사생활을 궁금해한다는 것은 황후의 자존심에 용납되는 일이 아니었다.

당연히 이 말실수는 베르에티가 유도한 것이었다. 실수 한두 개쯤 들어가야 그녀가 가벼워 보일 테니.

“절대 아닙니다! 다만…… 황후마마께서 재밌으실 만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었습니다.”

이 말실수가 황후에게 잘 보이고 싶어 그런 것이라고, 베르에티는 간절한 눈빛을 보내고는 고개를 숙였다. 자신감은 있지만, 황후의 눈빛 하나에 겁을 먹은 티를 확 내어 어리다는 인식을 심어 주었다.

그런 베르에티를 보며 황후가 잠시 고민하자 이때를 틈타 하일모라가 나섰다.

“황후 마마, 베르에티 영애는 아직 봉오리 진 꽃이 아니겠습니까.”

평상시 친하게 지내던 하일모라가 대신해 용서를 청했다.

“그렇다고 베르에티 영애의 마음까지 어린 것은 아니니 제가 함께함은 어떨지요?”

아직 어린 베르에티가 노헤스카 대공저에서 실수할 것이 걱정된다면 자신이 보호자로 나서겠다는 말이었다.

하일모라까지 저자세로 나오고 주변 이들도 궁금한 것을 감추지 않으니 황후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축하의 말은 내가 직접 전하고 싶으니 먼저 전하지 마시게.”

자신의 이야기는 하지 말라는 의미였다.

하일모라는 당연하다며 고개를 끄덕이고 미소를 지었다.

황후의 허락은 나엘라의 요구였다. 저택이 안전하지 않으니 명분을 만들어 대놓고 만나는 것이 더 낫다는 이유였다.

물론 이다음부터는 비밀리에 만날 곳을 정해야겠지만, 어쨌든 적어도 한 번은 마음 편히 만나러 갈 수 있다.

곧 조우할 친구 생각에 하일모라는 진심으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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