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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같은 대공비가 치는 꽃 같지 못한 사고들 (66)화 (66/220)

65화

“어쨌든 소중하게 잘 간직하겠네.”

체드란이 상자를 닫고 집어넣자 나엘라는 한결 편안한 자세를 취했다.

“내가 선물을 줄 당시, 이리 대단한 반응을 보여 주진 않았던 것 같은데.”

이제 와 새삼 생각이 나 말을 꺼냈다. 자신이 준 목걸이는 딱 한 번 착용한 데다 반응도 유야무야 넘어가지 않았나?

하지만 체드란의 말은 가볍게 무시당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바쁘십니까?”

나엘라가 해명을 하거나 못다 한 감사를 할 거라고는 기대도 하지 않았기에 체드란도 그러려니 넘어갔다.

“조만간 황태자와 알현을 할 것이네.”

“황태자 전하요?”

“황후의 움직임이 예상보다 빠르네.”

“또 무슨 일이 있었나요?”

“어제 열린 파티에서 황실 파티를 열 것이라고 했다는군.”

“명목은요?”

황실 주관 파티는 황실과 관련된 일이거나 큰 명목이 있어야 함을 나엘라도 알고 있었다.

“내 결혼 축하 파티라는군?”

결혼한 지 벌써 반년이 지났는데?

나엘라의 얼굴 위로 어이없음과 황당함이 동시에 떠올랐다.

“점점 황후가 도를 넘는군요. 체드란이 황실 사람입니까? 체드란의 결혼 축하 파티를 왜 황실에서 열어요?”

“아무리 대공이라도 파티는 대공저에서 여는 것이 맞지. 심지어 나는 열지도 않은 축하 파티를, 이제야 황후가 여는 것도 웃기는군.”

나엘라는 또 불편한 상황들이 일어날 것 같은 짙은 예감에 한숨을 내쉬었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네요.”

“황후가 계속해서 우리를 걸고넘어지는 것에도 이유가 있을 테지.”

나엘라의 손가락이 소파 손잡이를 톡톡 두드렸다.

“황후의 처지에서 생각해 보죠. 황후의 가장 큰 원수는 황제겠죠?”

“죽은 페트론 황자를 생각하면 나 또한 원수인 건 마찬가지지.”

“황후가 자식을 많이 아끼는 편인가요.”

“자식을 아낀다라…….”

체드란의 눈동자가 조금 낮아졌다. 황후의 자식인 페트론, 파르로시를 떠올리면 답은 금세 나오지만, 그 답이 새삼 웃겨서 할 말이 없었다.

그녀는 모성애가 조금도 없는 것일까.

“페트론은 황후를 매우 무서워했지. 파르로시도 마찬가지였네.”

“부모를 무서워할 수는 있습니다. 또한 엄히 굴어도 자식을 사랑하는 경우가 많죠.”

“그녀에게 자식은 도구일 뿐이네.”

“한 번에 알아들을 표현이네요.”

나엘라는 문득 장례식장에서 보았던 파르로시 황녀를 떠올렸다.

황후와 파르로시가 보여 줬던 미묘한 분위기.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일반적인 모녀 사이는 아닌 게 분명했다.

“그럼 황후가 체드란에게 가진 원망은 가장 큰 무기를 없애 버린 데에 대한 분노겠군요.”

“마호세르디도 피해 갈 수 없을걸세. 황제를 꺾으려면 그의 손발을 잘라야 할 테고, 그럼 마호세르디 또한 없애야 할 적이나 마찬가지일 테니까.”

“그럼 그녀는 황제, 체드란, 그리고 마호세르디를 없애고 싶어 하겠네요. 황태자 전하는요?”

“그녀의 성격상 거슬리는 것은 모두 없애야 직성이 풀릴 거야. 데테로아는 그녀에게 쓸모없는 패지.”

“그럼 다음 황위는요?”

“데테로아의 손발을 자르고 허수아비로 남겨 둘 생각인지도 모르겠군.”

“음…… 황태자 전하께서는 어떤 생각이시죠?”

“적어도 황후가 자신을 가만두지 않을 거라는 걸 알지. 본인이 살기 위해 황후를 없애야 하는 것도 알고. 황제도 마찬가지네. 자식들에게 한없이 잔인했던 이인데 데테로아에게는 다를 게 있겠는가.”

“무슨 일이 있었나요?”

“데테로아의 어머니, 후궁인 마리나는 황제의 손에 죽었네. 당시 가장 강력한 황태자 후보는 나였고, 내가 황위를 포기한다면 페트론에게 갈 상황이었지. 황궁이 시끄럽지 않기를 바랐는지 후궁 정도는 미리미리 제거해 데테로아가 황위를 넘보지 못하게 만든 것이지.”

“그런데 정작 황태자는 데테로아 님이 되셨군요.”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을 거야. 페트론 황자가 죽고, 나는 후계권을 포기했으니 가장 손쉬운 자식이 황태자가 된 셈이잖나. 행동하는 것이 얼마나 편했겠는가.”

고개를 끄덕인 나엘라는 천천히 생각을 정리했다.

과연 황후가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최종적인 목표가 모두를 죽이고 승리를 쟁취하는 것이라면, 왜 자꾸 체드란과 나를 걸고넘어지는 걸까.

그것도 전면적으로 나서기 시작한 이때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어쩐지 황후가 저를 건드려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대공저의 보안이 매우 좋은 것도 아니니 체드란에 대해서는 알고 있을 것이다.

황후가 유일하게 잘 모르는 이들이라면 마호세르디 정도일까. 그러던 중 마호세르디 사람인 자신이 울타리 밖으로 나왔으니 간을 보고 있는 걸 수도 있었다.

과연 나엘라가 마호세르디를 무너트릴 열쇠가 될지, 또는 무언가를 얻을 수가 될지.

하지만 황후의 손에 무언가 들어 있어야 나를 흔들어 볼 텐데…….

황후가 가지고 있는 패, 그리고 마호세르디에서 나엘라에게 감추고 있는 것. 그것에 뭔가 있었다.

탁, 테이블에 주먹을 살짝 내려친 나엘라는 고민에 빠졌다.

지금이라도 체드란을 닦달해 실토하게 할까, 아니면 기다려서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할까.

가늘어진 눈으로 살짝 놀란 눈을 하는 체드란을 노려보았다.

겨우 테이블 좀 내리쳤다고 놀라기는. 얌전히 말해 줬다면 이렇게까지 고민하진 않았을 텐데.

손끝에 힘을 주며 테이블 윗면의 대리석을 긁듯이 스멀스멀 움직였다. 까드득─ 소리와 함께 표면이 긁히자 체드란의 표정이 급격히 허물어졌다.

“그만.”

겨우 표면을 긁었을 뿐인데 체드란이 조금 과하게 반응을 해 왔다. 손으로 두 눈을 누르고는 고개를 숙이기까지 한다.

이런 것을 선수필승이라고 하던가.

엄청난 행동을 한 것처럼 구니 나엘라가 오히려 더 놀라 버렸다.

“그렇게 화가 난 것은 아닙니다…….”

왜 이런 해명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체드란의 상태가 이상한지라 나엘라는 슬쩍 눈치를 보았다.

“……그런 게 아닐세.”

“그럼요?”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군.”

손을 떼고 나엘라를 바라보는 두 눈동자에는 잠깐 사이에 피로가 가득 들어차 있었다.

“그대는 생활하는 데에는 한없이 둔한 편이라 몰랐겠지만, 이 방 안에는 유리가 없네.”

흔하게 쓰는 유리가 없다고?

나엘라가 깜짝 놀라 주변을 둘러보니 정말로 유리가 없었다. 그 흔한 꽃병조차 전부 도자기였다.

“왜 유리가 없죠?”

“내가 유리 긁는 소리를 싫어하니까.”

정말인가? 나엘라는 기억을 더듬어 체드란이 사용하던 물건을 떠올렸다.

찻잔, 접시, 가구 등 유리로 된 것은 없었다. 그나마도 창문뿐이었다.

“설마, 아버지와 저녁 식사할 때 와인을 먹지 않았던 이유도…… 와인 잔이 유리라섭니까?”

“위스키, 꼬냑, 와인 모두 잔이 유리로 되어 있지.”

“맙소사.”

다른 것도 아니고 왜 유리를 싫어한단 말인가.

“황후의 버릇이네.”

“설마, 유리 긁는 게요?”

“기분이 나쁘면 꼭 유리를 긁지. 그녀가 기분이 나쁘다는 것은 곧 무슨 일이 일어난다는 이야기고.”

“황후가 체드란에게 뭘 했죠?”

“심한 모욕을 주거나 암살자를 보냈지. 그나마 황후에게 덜 미움받았던 데테로아조차 유리는 잘 사용하지 않네. 주위의 시선이 있으니 어쩔 수 없이 와인을 마셔야 할 때만 쓰는 것 같고. 내 앞에서는 쓰지 않지만.”

“대단하네요.”

“페트론과 파르로시에겐 더 대단했지. 둘 다 유리라면 기겁을 했네. 그들에겐 직접적인 체벌이 가해졌으니.”

“체벌이요?”

“주로 채찍질이었네. 한 날은 내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채찍을 들고 파르로시를 때리더군. 파르로시가 그녀 앞에서 내 편을 들었네. 그래서 일부러 보여 주고자 그랬던 것 같긴 한데 끔찍하더군.”

나엘라는 더 할 말이 없어졌다. 동물에게나 쓰는 채찍을 왜 사람에게 쓴단 말인가. 하물며 자식에게.

“사람의 피부는 채찍을 견디지 못할 텐데요.”

“자식조차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 모양이지.”

“대체…….”

체드란이나 다른 이들은 대체 어떻게 버틴 것일까.

당시 체드란은 가장 강력한 황태자 후보였는데 어떻게 안하무인으로 굴었단 말인가.

상황을 방치하는 황제의 탓도 있었을 테고, 제재가 들어오지 않으니 거리낄 것 없는 황후가 더 날뛴 것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가 그런 말을 했군요. 누구나 고난 속에서 그런 선택을 하지 않는다고.”

“황제가 터치하지 않는 것을 공작이 나서서 만류하기도 어려웠을 테지. 황제의 눈 밖에 나면 공작은 또 무언가를 잃어야 할 테니.”

“황제는 그렇게 사람을 길들이는군요. 약점을 잡고 협박을 하고.”

“황제가 그것을 묵인하니 황후를 만류할 사람이 누가 있었겠는가.”

“어쩌면 황제는 그것을 노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녀가 선을 넘길 기다렸다가 가장 큰 것을 빼앗아 가려고요.”

“둘 다 지독한 인간들이지.”

나엘라는 헛웃음이 나왔다. 지독하다는 말로도 표현이 안 되는 사람들이었다.

아니 사람이 맞기는 한 걸까.

체드란이 계승권을 포기하고 노헤스카가 된 것은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 계속 황궁에 있었다면 목숨을 보장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모질고 힘든 곳을 버텨 온 체드란이 새삼스레 대견했다. 저번에도 말했지만, 이번에도 또 말해 주고 싶었다.

“잘 자라 주어서 감사합니다.”

“누가 보면 어머니인 줄 알겠군.”

“이제는 제가 지켜드리겠습니다.”

“쉬운 일이 아닐걸세.”

“체드란도 이때까지 버텼잖아요. 황태자 전하께선 아직 버티고 계시고요.”

“그대의 아버지 또한 그랬다.”

“그러니 저도 할 수 있습니다.”

“버티는 것과 지키는 것은 아주 다르네.”

“저 또한 체드란과 황태자 전하, 아버지와 아주 다릅니다.”

“그대는 할 수 있다는 건가?”

“버티려는 사람과 지키려는 사람은 많이 다릅니다. 늘 하던 것을 조금 크게 할 뿐입니다.”

체드란은 작게 웃었다. 나엘라는 참 한결같다. 처음 지키겠다고 말하던 눈빛과 지금의 눈빛이 같았다.

조금 다른 것이 있다면 그 눈빛을 받는 제 태도가 아닐까.

“그대가 천재이길 바라지 않네.”

보라색 눈이 꽤 놀랐다는 듯 커졌다.

“잘 모르겠지만 나도 꽤 지키는 것을 잘하네. 그대는 대공비로서, 그리고 내 아내로서, 본인의 몫만 해 주면 충분하네.”

주문을 외우듯 나엘라가 천재라 스스로를 말하지 않았으면 했다. 힘들지 않기를 바라고, 모든 이를 지키려고 하지 않기를 바랐다.

그녀가 말하는 ‘천재’라는 단어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알아 버렸으니까.

“이미 천재인 것을 어찌한단 말이죠?”

자신의 마음도 모르고 억울하다는 표정만 짓는 이 여자를 어찌한단 말인가.

작게 한숨을 내쉰 체드란은 처음의 이야기로 돌아갔다.

“아무튼, 황후가 움직인 덕에 우리도 한 번 움직일 명분을 얻었네. 난 그 기회를 데테로아와 만나는 데 사용할 생각이야.”

“같이 가나요?”

“그대는 아직 감춰 두려고. 정치적인 목적일 게 뻔한 만남에 그대까지 나설 순 없지.”

“저는 사교계에서 활동하는 것이 더 편할 테니까요?”

“나중을 위해서도 그게 좋네. 혹시나 내가 없는 상황에서 그대의 이용 가치가 낮다는 생각이 들어야 할 테니까.”

“그래야 제가 안전하니까?”

“그렇지.”

나엘라는 살며시 눈꼬리를 접으며 웃었다. 눈에 띌 생각만 있는 자신으로서는 유감인 이야기였다.

미리 꺼내어 체드란의 걱정을 늘리기보단 조용히 입을 다무는 것을 택했다.

“도련님께 형수 선물 좀 챙겨 달라 얘기해 보세요. 축하 선물은 그쪽에 받아야 할 것 같으니까.”

어차피 손잡는 것을 티 낼 거라면 선물이나 교환하자는 이야기였다.

뜻을 알아듣긴 했지만 참으로 적응 안 되는 호칭들에 체드란은 그저 애매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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