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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같은 대공비가 치는 꽃 같지 못한 사고들 (107)화 (107/220)

106화

나엘라와 체드란은 밤새 이야기를 나누었다. 에스토에 대한 감정부터 이들이 짊어져야 하는 것들까지.

그런 이야기들 속에서 나엘라는 체드란에게 집중했다. 아니, 눈을 뗄 수 없었다. 그가 하는 말은 전부 나엘라를 위한 이야기였다. 그 자신의 오랜 기다림이나 복수 같은 것은 들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나엘라는 되레 그를 위한 생각을 했다.

과연 자신의 선택이 맞는 걸까, 잃게 될 모든 것을 감수하는 게 과연 옳은 것일까.

그럴 때마다 체드란은 어찌 알았는지 나엘라를 다독였다.

“난 그대가 그대로서 존재하길 바라네.”

그 한마디가 나엘라를 다시 붙잡고 또 앞으로 나아가게 만들었다. 뒤를 책임지겠다는 체드란을 믿기에 자신은 자신의 방식대로 선택할 수 있었다.

그래서 오랜 고민 끝에 나엘라는 결정을 내렸다. 이번을 마지막으로 에스토를 외면할 것이다. 자신 때문에 다른 이들을 더 힘들게 만들 순 없었다.

“하일모라와 지엘라 부인에게도 얘기해야겠어요. 어쨌든 이번 일의 일행들이고 그들에게 피해를 줄 수는 없으니까요.”

모두 동의하에 움직이겠다는 나엘라의 말에 체드란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각자의 아침 식사 후, 이들은 모두 한 방에 모였다.

“무슨 얘기를 하려고 그래?”

하일모라는 아무렇지 않은 척 물었지만 내심 눈치챈 모양이었다. 그건 지엘라도 마찬가지였는지 말없이 차만 홀짝였다.

“파르로시 황녀에 대해서야.”

나엘라가 본론을 얘기하자 하일모라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음 짓고는 얘기해 보라며 다독였다.

“우리가 파르로시 황녀를 구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건 알아. 그저 내 욕심이라는 것도.”

체드란이 나엘라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손을 타고 전해지는 따뜻한 온기에 나엘라는 더욱 힘을 내었다.

“그런데 그곳에 에스토가 있어. 게다가 최악의 길을 걸으려 하고. 나는 그를 말리고 싶어.”

“응? 뭘 어떻게 했는데?”

다른 이들은 어느 정도 예상한 듯싶었으나 하일모라는 전혀 몰랐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예상이 맞다면 페렌츠에 타국 사람들이 와 있어. 아무래도 황후는 파르로시를 이용해 접점을 만들고 대가로 병력을 조달받기로 한 게 아닐까 싶어.”

“파르로시를 이용한다고?”

조용히 차를 마시던 지엘라가 나엘라를 대신해 하일모라에게 답했다.

“내가 친교를 위해 타국으로 시집갔던 것처럼요.”

하일모라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럼 나엘라는 어제저녁부터 예상하고 있었던 거야?”

그래서 제대로 먹지 못했음을 이제야 깨달았다.

“행동하려면 같이 온 일행들의 동의를 얻어야 옳다고 생각해서 얘기하는 거야. 일이 틀어지는 순간 우리의 나들이도 위험할 수 있으니까.”

나엘라는 실패한 이후도 생각했다.

만약 반란군을 소탕하지 못한다면 더 큰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페렌츠의 바로 옆이 아그노멘이다. 이곳이 반란군 손아귀에 들어간다면 휴양 온 모든 귀족이 인질이 될 테니까.

그런 이유로 더 정확하게, 더 확실하게 계획을 세워야 하기에 밤새 체드란과 논의한 것이다.

우리에겐 시간도, 준비된 군사도 없다.

“페렌츠에 있는 반란군은 어떻게 소탕할 건데?”

나엘라와 체드란의 눈이 마주쳤다.

“제국의 군사들을 이용해야지.”

“제국의 군사?”

“황실 근위대를 빌려 볼 생각이야. 안 된다면 수도방위군이라도.”

황궁에서 이곳까지 반나절, 근위대 출병이 최고의 방안이지만 아마 황제는 황궁을 지키는 근위대를 내어 주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때를 놓치지 않고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수도방위군밖에 없었다.

마호세르디와 노헤스카의 전력을 끌어와 이곳에서 맞붙는다면 시간상으로도 불리한 데다 잃는 것도 많았다.

그러니 손해를 조금이라도 덜 보기 위해선 가장 적은 시간을 소요해 황제의 전력으로 승부를 보는 수밖에 없었다.

“모두 이 일에 동의한다면, 체드란은 지금 바로 황궁으로 향할 거야. 긴급으로 황제에게 독대를 청해 아그노멘 영주에게서 이상한 소리를 들었고, 그 진원지를 파악하기 위해 조사를 진행했으며, 보고되지 않은 사병들이 존재한다고 전할 거야.”

황제의 허락을 얻어 내는 것은 체드란의 몫이었다. 만약 황제와의 대화가 결렬된다면 이들은 또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나엘라는 그 이후의 방법들도 생각해 뒀지만, 그건 나중 일이었다.

“체드란이 지휘권을 가져와야 해. 수도방위군에 황후의 사람이 없을 거란 보장이 없어.”

여러 증거를 포기하고 움직이는 것이니 더욱 확실해야 했다.

그래서 체드란이 황궁으로 가 출정권과 지휘권을 얻어 내는 동안 남은 기사들은 페렌츠를 보다 자세하게 조사하여 병력을 완벽히 확인해 놓기로 했다.

“파르로시 황녀가 그곳에 있다는 확증도 필요해.”

나엘라가 거기까지 이야기하자 지엘라가 손을 들었다.

“파르로시를 구하는 것까진 좋아요. 그런데 다른 것도 따져 봐야 할 거예요.”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거죠?”

“과연 파르로시가 우리 편이 되어 줄 것인지에 대해서요.”

이 부분은 나엘라도 확신이 없었다.

황후와 반란군의 연결고리를 찾지 못한다면 마지막 남은 딱 하나는 파르로시의 존재였다. 왜 파르로시가 페렌츠에 있었는가, 황후의 명으로 간 것이 맞는가, 그것만 파르로시가 증언해준다면 황후의 발목을 붙잡을 수 있다.

물론 황후도 그런 상황에서 빠져나갈 방법을 생각해 뒀겠지만 적어도 그 이후의 움직임은 제약이 있을 것이다. 사람들의 의심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테니까.

그래서 나엘라는 물었다. 다른 이들이 본 파르로시는 어떤 사람인지.

“지엘라 부인께서 보시기에 황녀는 어떻게 행동할 것 같나요? 황후가 자신을 이용했다는 걸 알게 된 상태라면요?”

“일단 페렌츠에 도착했다고 한들 당장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을 테죠. 벌써 움직이진 않았을 테니, 아마 파르로시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면 파르로시는 절대 협력하지 않을 거예요. 꿈에도 모를 테죠. 황후가 자신을 정략 결혼시키려 한다는 걸.”

나엘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베르에티가 증언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그런 위험을 감수하게 강요할 순 없다.

만약 베르에티가 황후의 명으로 움직였다고 증언했는데 황후가 빠져나가 버린다면?

그런 일을 한 적이 없다고 황후가 잡아뗄 경우 입증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할 터. 그럼 베르에티가 위험해진다. 시간이 더 지나면 모든 증거는 사라질 테고.

재판으로 넘어간다 해도 황제가 베르에티의 손을 들어줄지 의문이었다. 그도 확실한 증거 없이는 황후를 건들지 않을 테니까.

지엘라는 반대의 경우도 생각해 말을 이었다.

“만일 파르로시가 황후의 계략을 알았다고 해도 우리의 편이 돼 줄지는 의문이에요. 내가 아는 파르로시는….”

그녀의 얼굴에 비릿한 미소가 달렸다.

“그 모든 것을 원망하겠군요. 구해 줬다고 감사하지 않을 거예요. 되레 나엘라를 더욱 미워할지도 모르겠군요. 황후처럼 제국조차 끝장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될 겁니다.”

지엘라의 눈은 마치 그 모든 것을 감수하고도 움직이겠느냐 묻는 것 같았다.

파르로시도 구하긴 할 테지만 그뿐이다. 그녀는 험한 일을 당하지 않았어도 나엘라를 믿지 않을 것이고 당했어도 그녀에게 고마워하지 않을 것이라고.

그런데도 하겠느냐고,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설상 우리가 잃는 것이 많아진다고 한들, 이대로 황후의 질주를 놔둘 순 없어요. 타국과 협력을 마친 황후가 언제쯤 움직일지도 모르는 일이고요. 가장 중요한 건….”

나엘라는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아 말을 멈췄다. 제일 나은 방법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것을 말로 꺼내는 것은 다른 이야기였다.

“우리는 시간을 벌어야 합니다. 아마 이번 일이 끝나면…… 지엘라 부인은 시집간 가문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겁니다.”

현재 페렌츠에는 타국의 사람이 있다. 북쪽에서 뱃길로 한 시간 거리에 존재하는 요반나 왕국의 사람이.

지엘라가 정략결혼으로 간 왕국이자 살라만 부인이 시집간 곳이며 황후가 손을 잡은 왕국이기도 했다.

페렌츠에 요반나 왕국 사람이 있고, 그자를 위해 파르로시를 보냈다면 낮은 계급의 사람은 아닐 것이다. 페렌츠의 반란군을 소탕하고 요반나의 사람을 현장에서 생포할 경우 요반나와의 외교가 어떻게 흘러갈지 장담할 수 없다.

그런 상황에서 지엘라가 요양을 끝내고 요반나로 돌아간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시간을 벌어야 한다는 건 무슨 소리죠?”

“황후는 요반나와 협력하여 군사를 지원받으려고 했을 테죠. 거기다 북부와 동부의 힘을 얻고 일부 귀족들의 힘을 얻는다면 꽤 많은 병력이 모이게 될 겁니다.”

“그렇다고 한들 상대는 마호세르디와 노헤스카예요.”

“그 둘의 발목을 묶을 수 있다면요? 황후가 상대해야 할 곳이 황제뿐이라면요?”

지엘라와 하일모라의 눈이 커졌다.

나엘라는 이야기에 앞서 이것은 자신의 추론일 뿐이라며 가정한 것을 얘기했다.

“제 생각은 이래요. 황후는 모든 것을 끝장낼 각오를 하고 있습니다. 황제도 원망하는 중이고 그녀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그런 와중에 타국과 손을 잡았다면 다른 곳은 어떨까요? 제스라 왕국과 두칸 말입니다.”

마호세르디와 맞닿아 있는 제스라 왕국, 노헤스카와 맞닿아 있는 두칸. 그 두 곳의 손을 잡는다면 자연스럽게 군사경계인 두 지역을 모두 묶어 놓을 수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손을 잡는다는 거죠?”

“황후는 이 제국이 필요 없을지도 모릅니다. 두 곳의 협력을 얻어 내고 마호세르디와 노헤스카의 발을 묶은 뒤 황실을 칠 수 있다면 형세는 기울겠죠. 우리는 황궁을 점령한 황후의 공격과 적대 국가, 둘의 공격을 감당해야 할 테니까요.”

지엘라와 하일모라는 머리가 아픈지 인상을 찌푸렸다. 추론일 뿐이라고는 하지만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였다.

“그럼 황후를 견제하기 위해서 시간을 벌어야 한다는 건가요?”

“아니요. 지금 반란군을 친다면 황후는 당분간 움직이기 힘들겠죠. 그렇게 벌어 놓은 시간 동안 우리는 제스라 왕국과 두칸을 칩니다.”

이것이 체드란과 나엘라가 오랜 시간 상의한 결과였다.

황후가 제스라 왕국과 두칸을 패로 사용할 예정이라면 미리 그 패를 없애 버리는 것이다. 두 국가를 점령할 생각은 아니지만, 전선은 최대한 두 나라의 안쪽으로 밀어 둬야 했다.

그렇게 보이는 것도 중요하고, 실제로 전쟁을 일으켜야 하는 이유도 있었다.

하지만 더 복잡한 이야기들은 집어넣고 나엘라는 가벼운 이야기들만 전했다.

“제스라와 두칸을 당분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 겁니다. 기습할 거니까요. 그들은 큰 병력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황후와의 거래를 위해 마호세르디와 노헤스카를 공격할 순 없을 겁니다.”

그렇게 황후의 패들을 미리 잘라 낼 필요가 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황제를 걱정하진 않아도 된다는 것 정도? 황제가 자신의 세력들을 먼저 버리진 않을 테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황후는….”

나엘라의 눈이 깊어졌다.

“분명 스스로 최악의 길을 향해 걸어갈 겁니다.”

이제야 황후를 알게 된 지금, 그녀가 행할 마지막 선택이 눈에 훤히 보였다.

그리고 나엘라는 그 점을 파고들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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