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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같은 대공비가 치는 꽃 같지 못한 사고들 (130)화 (130/220)

129화

“그것들을 전해드리면 저도 함께 반란군이 될 텐데요?”

“있긴 있으시군요.”

“이런….”

이상한 웃음을 짓는 클루아조를 보며 나엘라는 생각을 정리했다.

원래의 계획은 클루아조와 담판을 지어 증거와 다른 것들을 교환하려 했다. 그가 무엇을 원할지 모르겠으나 황후와 함께 반란군으로 처형되는 것은 바라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아무리 황제의 사람이라도 넘어갈 수 있는 정도가 있는 거다.

물론 중요할 때 타국 사람들을 막으면 정상 참작이 되겠지만 마호세르디와 노헤스카가 끝까지 물고 늘어지면 황제도 막아 주기 힘들 것이다.

다른 수가 있을지도 모르니 뭘 내어 줘야 할지 고민했었는데 나엘라는 생각을 바꾸었다.

“단둘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나엘라의 요청은 하일모라나 지엘라가 없는 곳에서 이야기하자는 거다. 그러려면 일단 감옥에서 나가야 했다.

“유혹이라면 거절하겠습니다. 남편이 있는 분 아닙니까? 남의 것에는 관심이 없어서.”

나엘라는 혐오스럽다는 눈빛을 감추지 않았다.

“거래를 청하는 겁니다. 다른 사람에겐 말하지 못하는 내용이라 그렇습니다.”

“다른 이에겐 말하지 못하는 내용이요?”

“나는 그대가 숨기고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황후가 들으면 분노할, 그런 내용이지요.”

클루아조의 표정이 조금 변했다. 내내 여유롭던 얼굴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군요.”

“빠져나갈 구멍이 있다고 너무 자신하진 말라는 이야기입니다.”

나엘라는 클루아조와 황제와의 관계를 언급했으나 그뿐이었다. 그녀는 단둘이 이야기할 생각은 전혀 없었고, 목적은 오로지 감옥에서 나가는 것이었다.

그는 분명히 열쇠를 들고 있었다. 애초에 그릇을 회수하려면 감옥 열쇠가 있어야 했다.

나엘라는 철창에 살짝 다가가며 미소 지었다.

“당신은 언제든 버려질 수 있음을 잊지 마세요.”

황제는 원래 그런 사람이란 것을 클루아조라고 모를까.

실제로 나엘라가 버려지게 유도할 방법은 없어도 그 안에 황제에 대한 불안과 의심이 깔린 이상 벗어날 순 없었다.

“아주….”

클루아조의 주머니에서 짤랑거리며 열쇠 꾸러미가 나왔다.

“색다른 유혹에 감명받았습니다.”

탁, 자물쇠 구멍에 열쇠가 꽂히고 천천히 돌려졌다. 아무렇지 않은 척 나엘라는 자리에서 일어나 드레스를 탁탁 털었다.

밖으로 나가면 해야 할 일이 쌓여 있었다. 일단은 체드란부터 만나야 했다. 그가 온 것은 예상외였지만 어쨌든 좋은 일이다.

일 잘하는 사람이 왔으니 써먹어야지.

철컹, 자물쇠가 떨어지고 클루아조가 철창문을 열려는 순간 나엘라가 움직였다. 한쪽 발은 침대를 밀며 지탱하고 다른 쪽 발로 철창문을 걷어차 클루아조를 날렸다.

“크윽─!”

기습으로 문과 함께 나가떨어진 클루아조 위로 나엘라가 올라타며 숨겨 뒀던 단검을 빼냈다.

단숨에 그의 오른쪽 어깨를 찌르고는 목에 검날을 붙였다. 오른손잡이 같으니 오른쪽 어깨 근육을 찍었을 뿐, 다른 이유는 없었다.

“혹시 양손잡이신가요?”

“대공비가 암살자란 이야기는 듣지 못했는데요.”

어깨에서 흐른 피가 번지는 데도 여유로운 남자였다.

“자, 천천히 일어나세요.”

다행히 그의 허리에 장검이 묶여 있었다. 나엘라는 단검을 치우는 동시에 그의 장검을 목에 대었다.

“많이 아프겠네요. 천천히 일어나서 감옥 안으로 들어가세요.”

그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발로는 떨어트린 열쇠 꾸러미를 끌어왔다.

어깨를 붙잡고 천천히 몸을 일으킨 그가 나엘라를 힐끔 보고 있었다.

“혹시나 검도 없이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마세요. 제가 못 이긴 상대는 단제 마호세르디와 체드란 노헤스카 대공뿐이니까요.”

“그 둘과는 언제 한번 겨뤄 보고 싶긴 했습니다.”

“못 이길 겁니다. 그 어깨를 하고 검도 없이 제게 덤비지 못하는 것처럼요.”

나엘라는 제가 갇혀 있던 감옥으로 클루아조를 몰아넣었다. 끝까지 검을 겨눈 채 턱짓을 하자 그는 벽 쪽에 가 섰다.

재빠르게 자물쇠를 단단하게 잠근 뒤에야 검을 내려놓고는 하일모라와 지엘라를 풀어주었다

자유의 몸이 된 하일모라는 호들갑을 떨며 철창 안의 클루아조를 바라보았다.

“나 순간 너무 놀랐어.”

사전 논의도 없이 그에게 달려든 나엘라 때문에 두 사람은 숨도 못 쉬고 발만 동동댔던 것이다.

“궁금한 게 있습니다.”

철창 안에 갇힌 클루아조가 비릿하게 웃으며 말을 걸었다.

“감옥 밖에는 죄다 적일 텐데 어쩌시려고 그럽니까?”

“부하라도 데려왔습니까?”

“부하도 있지요.”

“그럼 옆에 같이 갇혀 있게 되겠네요.”

가볍게 입긴 했지만 행동하기에 치마는 불편하기만 했다. 나엘라는 거침없이 드레스 끈들을 풀어내었다. 속에 입고 있던 튜닉과 바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마지막으로 코르셋까지 풀어 버린 나엘라는 신고 있던 단화도 벗어 던졌다.

“그 신발 좋아 보이네요?”

손가락으로 클루아조를 가리킨 나엘라가 까딱거렸다.

“내놔요.”

기사 차림을 한 클루아조는 군화를 신고 있었다.

*

“이게 대체….”

한참이 지나도 올라오지 않는 클루아조를 찾아 내려왔던 소코웨는 그대로 옆 철창에 갇혔다. 반항 아닌 반항을 하다 괘씸죄로 두들겨 맞은 터라 눈에는 멍이 들어 있었다.

“여기, 지혈은 해 둬요.”

나엘라는 근처에 굴러다니던 드레스를 철창 안으로 밀어 넣어주었다.

“아, 찢어서 줄 걸 그랬나.”

잠깐 고민하는 사이, 클루아조가 이로 드레스 자락을 찢어 지혈을 시작했다. 그래도 기사라고 응급 처치를 할 줄 아는 모양이었다.

“소공작도 알겠지만, 사실 그대를 죽여서 묻는 편이 나에겐 좋아요. 그대가 자유로워지면 나에 대한 정보가 너무 많이 전달될 테니까.”

클루아조가 황제의 사람인 걸 알고 있다는 점이나 그녀의 실력 같은 정보들이 가감 없이 전해지겠지.

조금 전까지 클루아조가 앉아 있던 의자에 나엘라가 착석했다. 하일모라와 지엘라는 위로 올려보낸 터라 이곳에는 세 사람뿐이었다.

나엘라의 손가락이 꼬아진 다리 위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아이안 공작은 병세가 짙어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죠? 소공작이 죽으면 둘째가 다음 대 아이안 공작이 되는 건가?”

둘째 공자는 천덕꾸러기 신세라고 알려져 있다. 힘도, 특출난 곳도 없어 가문에서도 오래전부터 외면받았다고 들었다.

하지만 소공작을 제외하면 남은 후계자는 그밖에 없었다.

“자, 그것만 말해 줘요. 증거 어딨어요?”

어차피 저택을 뒤져 볼 계획이긴 하지만 이왕이면 장소를 알고 싶었다. 시간을 단축해야 체드란이 빨리 황도로 돌아갈 터다.

“어딨는지 알려 주면 살려 줄 겁니까?”

“살려 달라면 살려 주고요.”

“멀쩡히요?”

“이미 안 멀쩡한데.”

“솔직히 말하자면 이렇게 당할 줄은 몰랐습니다.”

“나도 이렇게 쉬울 줄은 몰랐어요.”

북부 해상 제독이란 이름값을 경험해 보지도 못할 줄이야. 방심했던 탓이 크겠지만 순순히 당해 준 느낌이 강했다.

“원래 싸움을 못하나 봐요.”

“본인이 잘한다고 생각하진 않습니까?”

“그래도 체드란의 반은 할 줄 알았지.”

체드란이었으면 절대 곱게 갇히진 않았을 거다. 팔 한쪽을 내주는 한이 있더라도 덤벼들었을 것이다.

“몸을 아끼는 편이라.”

“그럼 대화가 쉽겠네요. 증거 어딨어요?”

“알려 주고 싶지 않은데.”

“뒤져서 나오면 열 대.”

“뭡니까. 그 동네 양아치 같은 대사는?”

이 자리에 앉으면 이렇게 되나?

나엘라 역시 기품 없는 대화라 생각했지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감옥에서 기품을 챙기는 것이 더 웃겼다.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고 싶지 않으면 말해요.”

“침실 드레스룸 오른쪽 벽 금고.”

“비밀번호는?”

“비밀입니다. 비밀번호잖아요.”

나엘라는 자리에서 일어나 검을 들었다. 열쇠 꾸러미를 들고 소코웨가 갇혀 있는 철창으로 향했다.

“파르로시 황녀가 그런 말을 하더라고요? 주변을 건드리라고.”

그리 무참한 짓을 알려 준 사람이 누구일지 고민했으나 답이야 뻔했다.

파르로시 황녀와 접촉할 수 있는 자이자 이곳에 나엘라가 있는 걸 아는 사람, 파르로시가 조언을 들을 사람, 사람 괴롭히는 방법을 잘 알고 있을 사람.

“소코웨라고 했나요? 당신이 두 번 다시 검을 들지 못하게 되면 전부 소공작 때문입니다.”

나엘라가 자물쇠에 열쇠를 끼워 맞추자 클루아조가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뱉었다. 본인이 한 말을 그대로 역풍 맞게 생겼으니 이런 아이러니가 있을까.

“0824. 제 생일이니 잘 기억해 뒀다 선물이나 보내 주시지요.”

나엘라는 열쇠를 빼내고는 다시 돌아와 앉았다.

“그곳에 증거가 있다면 내일 아침 풀어 줄게요. 아니라면 내일 아침밥이 마지막 식사겠네요.”

클루아조를 살려 둔다면 여러모로 일이 생길 테지만 나엘라는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었다.

그가 황제에게 나엘라의 대한 정보를 전한다면 오히려 좋았다. 본격적으로 황제의 눈에 띄기로 결정했으니까.

황후를 정리하면 바로 황제에 대한 반격을 이어 갈 예정이어서 더 이상 눈치 볼 이유가 없었다.

뒤를 돌아 나가려는데 누군가 감옥으로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한두 명은 아닌 듯해 나엘라는 검을 다잡고 숨죽이고 있을 때였다.

문이 열리고, 익숙하고 커다란 덩치가 그녀의 눈에 띄었다. 휘두르려던 검을 꽉 쥐는 것으로 간신히 참아 내었다.

“대체 일 안 하고 왜 이렇게 돌아다녀요?”

먼저 한소리를 하려던 체드란은 꾸욱 인내심을 발휘했다. 그러고는 뒤따라 누군가를 끌고 들어오는 이들에게 손짓했다.

“감옥에 넣어둬라.”

클루아조의 호위 기사들까지 철창 안에 가두자 어느새 자리가 꽉 찼다. 감옥을 쭉 둘러본 체드란의 시선이 결국은 나엘라에게로 가 닿았다.

사실 그는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멀지 않은 곳에서 대기 중이었다. 소공작이 찾아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주시하고 있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하일모라와 지엘라가 안에서 빠져나오는 게 아닌가.

급변하는 듯한 상황에 놀라 주변을 정리하고 왔더니 이미 정리가 끝나 있었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애써 눌러 참으며 체드란은 인사를 건넸다.

“이렇게 보게 될 줄은 몰랐군, 아이안 소공작.”

“그렇게 검을 잘 쓰신다고, 칭찬을 듣고 있었습니다.”

“어깨를 다쳤으니 검은 못 맞대겠군.”

“대공 전하까지 여기 계시는 줄은 몰랐습니다. 제 앞마당이 놀이터가 됐네요.”

갇혀 있음에도 호승심이 올라오는지 클루아조가 시비를 걸었으나 체드란은 가볍게 무시했다.

“그런데….”

체드란은 나엘라의 차림이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심지어 드레스 자락인지 알 수 없는 천 조각들은 클루아조가 갇혀 있는 철창 안에 있었다.

“살이 좀 빠졌군. 아닌가, 근육이 빠졌나?”

제 몸을 훑어본 나엘라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런 근육으로는 나를 더 못 이기겠군.”

나엘라의 얼굴이 빠르게 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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