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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같은 대공비가 치는 꽃 같지 못한 사고들 (134)화 (134/220)

133화

데테로아는 힐끔 상석에 앉은 황제를 살폈다. 그의 표정은 여전히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린 채 재밌다는 기색을 비치고 있었다.

과연 저 표정이 정말 재밌어서 짓는 표정일까.

절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저 앞에 있는 이들의 행동이 그만큼 같잖은 거겠지.

“황후 마마께서 반역이라니요. 말도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황후 마마께 이득이 될 게 전혀 없지 않습니까?”

“하지만 증거가 이리도 명백한데 무슨 소리입니까?”

“증거요? 증거라고 해 봤자 반란군들의 증언밖에 없지 않습니까? 반란군들이 사전에 발각되면 황후 마마의 짓으로 얘기하자고 모의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벌써 며칠째 같은 이야기를 가지고 싸우는 중이었다. 황후의 사람들은 그 정도론 증거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고, 다른 이들은 정확한 판단을 위해 조사해야 된다는 입장이었다.

이 끝나지 않은 논쟁이 지루할 법도 한데 황제는 무슨 생각인지 저지하지 않았다. 결론이 나질 않으니 지루한 논쟁만 계속되었다.

그때 누군가가 회의장을 조심스럽게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황제의 보좌관 중 한 사람인 그는 어지러운 분위기를 틈타 황제에게 무언가를 전했다.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황제가 피식 웃음을 흘리자 회의장도 가라앉기 시작했다. 무슨 일인지 몰라 서로 눈치를 살필 때 황제가 보좌관에게 턱짓했다.

그의 의사를 알아들은 보좌관이 목을 가다듬었다.

“황도 서쪽 감옥에 있던 반란군들이 모두 죽어서 발견되었습니다.”

잠시 조용해졌던 것이 거짓말인 양 다시 떠들썩해지기 시작했다.

“증인들이 죽었다는 말입니까?”

“증인이라니요, 그들은 한낱 반란군입니다. 그나저나 수도방위군이 감시를 어떻게 했길래 죽었단 말입니까?”

“당장 방위군단장을 불러와야 합니다. 또한, 누구의 짓인지 철저히 밝혀내야죠.”

데테로아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판결된 결론 없이 하루 이틀 지나가는 사이 또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런 광경을 즐기기라도 하는 건지 황제는 여전히 아무 말도 없었다. 데테로아라도 정리를 하고 싶었으나 차마 황제가 자리한 곳에서 먼저 나설 수는 없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들의 논쟁을 잠재우고 방법을 논의하는 것뿐.

“일단 다들 진정하시오. 범인들은 증인들이 사라지길 바란 건 확실한 것 같습니다. 그에 따른 대책을 생각해야 하는 게 맞지 않겠습니까.”

혼자 고군분투하는 데테로아가 안쓰러웠는지 내내 가만히 있던 마호세르디 공작이 발언했다.

“증인들을 죽이고자 했다면 범인은 반란군 주동자일 가능성이 큽니다. 또한, 나머지 반란군들도 노릴 가능성이 크지 않겠습니까.”

무게 있는 공작의 발언에 사람들이 목소리를 잠재우고 저들끼리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황궁에 있는 감옥도 경비를 강화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곳은 근위대가 지키는 곳입니다. 아무리 범인이라도 무모하게 그곳을 노리진 않을 겁니다. 그곳이 뚫리면 황궁이 뚫리는 것과 마찬가지 아닙니까?”

“그곳엔 요반나의 왕족도 있습니다. 그가 포로로 잡혀 있는 것과 감옥에서 사망한 것은 외교적으로 매우 다르다는 걸 아시지 않습니까? 경비를 강화해야 합니다.”

한 귀족의 말대로 포로로나마 살아 있는 상황과 감옥에서의 사망한 상태로 외교를 진행하는 것은 사뭇 달랐다. 후자는 황궁의 군력을 신임할 수 없는 상태에서 이뤄지기 때문이었다.

“요반나에 받을 수 있는 합의금이 적어질 겁니다. 더군다나 요반나는 정말 왕족이 반란군에 가담했는지를 의심할 겁니다.”

“물론 두 상황의 대응 방식은 매우 다릅니다. 하지만 요반나는 그럴 처지가 아니지 않습니까?”

“포로가 이미 죽었는데 요반나가 협상을 왜 합니까? 되레 제국 탓을 할 수도 있습니다.”

조금 가라앉혀 놓았던 분위기는 또다시 험악해지기 시작했다.

속으로는 다들 저마다의 이유로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을 것이 뻔했다. 요반나의 왕족이 죽는 것이 이득일지, 살아 있는 것이 이득일지를 말이다.

그때 황제의 입이 열렸다.

“누가 감히 내 탓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의 한마디에 회의장의 분위기가 착 가라앉았지만, 데테로아는 그것조차 역겨웠다. 이때까지 입도 뻥긋하지 않던 황제가 기껏 말을 뱉은 이유는 자신의 위신을 위해서였다.

하루빨리 이 일을 해결하든지 조사를 명하든지, 뭐든 해야 할 것이 아닌가.

클루아조 아이안 소공작에 대한 조사만 명해 놓고 다른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 무슨 생각인지 알 수가 없었다.

“폐하.”

마호세르디 공작이 얼어붙은 분위기 속에서 황제를 불렀다. 자꾸 말만 반복되자 그가 직접 나서기로 한 모양이었다.

“저는 증거가 마땅치 않아도 황후 마마에 대한 조사는 진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흘, 체드란에게 급보가 오고 귀족 회의가 매일 열렸지만 지금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던 공작이었다.

“제 자식이 관련되어 있어서가 아닙니다. 하지만 황후 마마의 결백을 위해서도 조사는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대로는 황후 마마에 대한 의심만 늘어날 뿐입니다.”

공작은 이제껏 당장이라도 일을 치를 것처럼 행동했다. 멋대로 말을 뱉던 귀족들을 조사하게 해 달라 청했고, 당장이라도 영지전을 불사할 것처럼 굴었다.

그런데 요 며칠 동안은 아무런 말도 없었다. 그 모습이 마치 폭풍 전야와 같으니 누구도 그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공작.”

이번엔 모두의 시선이 황제에게로 향했다. 황제의 오른팔과 같은 공작의 발언에는 황제도 확실한 답을 주어야 했다.

“짐은 이번 일을 간과할 생각이 없네.”

“그렇다면 어찌하여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 않으시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기다리는 걸세.”

황제는 여유로운 자세로 의미 모를 말을 뱉었다.

“신이 나이가 들어 한 번에 알아듣지 못함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덫을 놓고 기다리는 걸세. 그것이 덫인지도 모르고 발버둥 치다 절망에 무너지는 모습을 봐야 하지 않겠는가.”

제게 이빨을 보였다면 그 정도는 감당해야 하지 않겠냐는 물음이 들린 것 같았다. 몇 명의 귀족은 그 이야기의 무게를 느꼈는지 몸을 떨곤 팔에 올라온 소름을 문질러 댔다.

“폐하의 의중이 그러하시다면 저 또한 받들겠습니다.”

이것이 어디 황후에 대한 경고뿐일까, 여기서 남몰래 황제에게 칼을 갈고 있는 모든 이에게 보내는 경고였다.

동시에 황후와 황후를 도운 자들, 황후의 편을 들고 있는 자들을 단숨에 입 다물게 만들 수 있는 말이었다.

더는 회의가 진행될 것 같지 않자 데테로아는 소리 없는 한숨을 뱉었다. 의미 없는 귀족 회의를 끝낼 시간이 온 것이다.

오늘 회의를 여기서 마무리하자 의견을 전하려 할 때 밖에 서 있던 시종이 급히 회의장 안으로 들어왔다. 황제 귓가로 고개를 숙인 그는 빠르게 용건을 말했다.

“체드란 노헤스카 대공이 회의장 앞에 도착했습니다.”

단숨에 회의장 분위기가 바뀌었다. 분명 대공은 이 지지부진한 회의의 물꼬를 틀 수 있는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라면 빈손으로 회의장을 방문했을 리가 없었다.

“들어오라.”

황제의 말과 함께 천천히 회의장의 문이 열렸다.

*

“오늘 헤어지면 또 언제 봐?”

눈물이 글썽글썽한 하일모라를 다독이고는 지엘라와도 인사를 건넸다.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는 또 금방 볼 거예요.”

나엘라가 하고 싶었던 말을 지엘라가 대신 건네자, 멋쩍어졌다.

“그럼요. 그러니 하일모라, 너도 얼른 가 봐. 남편이랑 오래 떨어져 있었잖아.”

“어차피 남편은 지금 귀족 회의에 참석했을걸? 대공 전하도 그래서 급히 가셨잖아.”

황궁으로 향하는 체드란은 손에 온갖 증거를 쥐고 출발했다. 아마 지금쯤 회의장이 발칵 뒤집혔을 거다.

황후가 에스토에게 보냈던 서신은 밝힐 시기를 미루기로 했지만 별 영향은 없으리라. 아이안 공작가에서 가져온 증거만 해도 반란군과 황후의 사이를 증명하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정말 괜찮겠어?”

하일모라는 연신 염려하는 얼굴을 감추지 못하며 나엘라에게서 떨어지지 못했다.

“걱정하지 말라니까.”

“대공 전하께선 이제 대공령으로 가셔야 한다며. 너도 같이 가지 뭐하러 수도에 남아 있겠다는 거야.”

수도에서 해야 할 일이 잔뜩 쌓여 있었다. 물 밑에서 톨레로 상단이 계속 황후를 도왔다. 황후는 이번 일을 이상하게 여길 것이 분명했다.

거기다 나중에 조사를 할 때 상단의 이름이 거론될 경우 피해 갈 방법도 모색해야 했고, 톨레로 상단이 앞으로 황후와 척을 질지 말지도 결정해야 했다.

그런 결정을 하려면 필연적으로 톨레로 상단과 만나거나 체드란과 논의해야 했다.

“지금 대공령 사람도 와 있으니까 괜찮아.”

“대공령 사람?”

“사피오라고, 꽤 똑똑한 이야.”

오는 길에 듣기로 톨레로 상단을 여기까지 키운 인물이라 했다. 나엘라는 사피오의 대한 설명을 하며 어쩔 수 없이 톨레로 상단을 알게 된 이유와 사피오를 고용한 이유까지 말해야 했다.

“그런 사람 하나가 추가된다고 안심이 되겠냐고! 내가 너랑 생각 구조가 같은 줄 알아?”

안심하라고 한 말이었는데 하일모라에게는 턱도 없던 모양이었다.

“나는 수도에 있어야 해. 마호세르디와 노헤스카가 전쟁을 시작하겠지만, 아버지도 수도에 계실 거니까 괜찮아.”

“공작님이야 그렇다 치지만 너는 왜 여기 있어야 하냐고.”

“그래야 황제를 상대하지.”

하일모라의 입이 조개처럼 다물렸다. 결국 우리가 상대해야 할 가장 큰 적은 황제였다. 수도에서 일어날 일에 바로 대응하지 못한다면 노헤스카가 전쟁을 벌이는 이유가 없었다.

“전쟁은 갑자기 왜 벌이는 건데….”

하일모라의 목소리가 걱정과 함께 점점 가라앉았다.

“황제를 상대하려면 내전은 필연적이야.”

“그러니 두 가문이 전쟁 중이면 안 되잖아.”

“마호세르디와 노헤스카가 반란을 일으킨 주범이 되어선 안 돼.”

명분 없는 내전을 일으킨다면 결국 반란군과 다를 바 없어진다. 황태자 데테로아 손에 명분이 쥐어져 있어야 했고, 내전이 일어나더라도 주동자는 황태자가 되어야 한다.

그게 서로를 위해 좋은 길이었다.

“두 가문이 내전에 가담한 것이 아니라, 황제가 정말 악독한 인물이라 황태자에게 힘을 실어 준 것으로 비쳐야 해. 그래야 황제가 사라지더라도 제국이 빠르게 안정을 찾을 수 있어.”

그러니 전쟁을 벌이는 것이다.

황후의 패들도 끊어 놓을 겸, 두 가문이 처음부터 내전에 가담할 생각이 없었던 것처럼 보일 겸 해서 말이다.

내전 중 타국이 쳐들어올 것을 염려해 제스라와 두칸을 강하게 눌러 놓는 것도 필요했다. 황제를 처리하는 동안 침략당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황제와의 싸움은 제국에 큰 타격이 될 거야. 어떻게든 빨리 끝내야 해.”

물론 그 전에 황후부터 처리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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