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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같은 대공비가 치는 꽃 같지 못한 사고들 (142)화 (142/220)

141화

체드란은 톨레로 상단의 새로운 은신처를 방문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수도를 빠져나왔다. 그들의 은신처는 모두 수도 밖으로 옮겨졌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참에 감시자는 없는지, 은신처는 안전한지 겸사겸사 확인할 모양으로 주변을 둘러왔더니 시간이 지체되기도 했다.

“오셨습니까.”

수도와 붙어 있는 영지에서도 대도시라고는 할 수 없는 곳에 은신처가 마련되어 있었다.

“준비는?”

안부 인사도 없이 건네는 짧은 말에도 코더 우부라는 당황하지 않았다. 조용히 있는 듯해도 그들은 황후와 접촉하고 천천히 세를 불리며 준비하던 것들이 있었으니 말이다.

“황제의 첩자, 감시자들은 대략적인 규모를 파악했습니다.”

“얼마나 정확한 정보지?”

“오랜 시간 준비했으니 자신 있습니다.”

데테로아와 체드란이 톨레로 상단을 처음 만들 때부터 준비했던 모든 것은 황제에게 대응하기 위한 안배였다.

황제에게 당한 이들을 찾고, 관련된 자료를 모으고, 황제의 수족들을 파악하는 것.

이제는 그것이 빛을 발할 때가 다가오고 있었다.

“아시다시피 황도 외의 지역은 대부분 파악되어 있었습니다. 남은 건 수도뿐이었죠.”

사람들은 톨레로 상단을 이제 막 수도에 진출해 야욕이 있는 집단, 정도로만 알고 있으리라. 그러나 이들은 그저 수도가 가장 위험하기에 마지막으로 진출했을 뿐이었다.

“황후의 일을 처리했었다는 증거는 모두 없앴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황후와 손을 잡았다고 알고 있지만 그것 또한 눈가림을 위한 활동에 불과하다.

“내가 결혼식을 올린 얼마 후에 수도에 있던 감시자들이 움직였다. 알고 있었나?”

“어디로 말입니까?”

체드란은 마호세르디에서 일어났던 일을 간단히 전했다. 시론 후작과 그의 죽음에 관련된 일들을.

“이런…. 그때는 수도 진출 전이라 감시자들의 움직임까진 파악하지 못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몰랐으니 되었다.”

알았다면 조금 달랐을까.

그래 봤자 수도에서 움직였다는 것만 파악했을 뿐 별다른 행동은 할 수 없었을 가능성이 크다. 하필 첩자들이 활동하기 힘든 마호세르디에서 일어난 일이다.

“수도에 있는 범죄 조직들은 얼마나 파악되었나?”

“수도의 암살 집단들은 어느 날의 기점으로 모두 한곳에 모였다고 합니다. 저는 그곳이 황제가 부리는 곳이라 생각 중입니다.”

“그렇겠지. 아마 황후가 이용하던 암살자들이 실패하여 목줄이 잡힌 걸 거다. 황제로서는 수도에 있는 암살자들을 모아 제 손으로 키울 수 있었으니 일거양득이었겠지.”

“그 외에 몇 개의 귀족가가 움직이는 집단을 제외하고는, 흔히 뒷골목을 주름잡는 대부분의 범죄 조직들은 황제의 사람들로 의심됩니다.”

“일을 맡기면 전부 황제의 귀로 들어간다는 이야기군.”

수도는 황제가 장악했으리라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더 파고들 틈이 없었다. 양지는 물론이고 음지까지 꽉 잡아 놔 이때까지 누구든 섣불리 움직이지 못한 것이다.

“중요한 건 황제가 그 모든 정보를 어디에다가 보관해 놨냐는 거지.”

귀족, 음지의 주요 인물들과 관련된 정보, 그들의 약점들을 과연 황제가 어디에 보관했을까.

데테로아가 내전을 일으키기 전 귀족들의 협조를 얻기 위해서는 무조건 그 정보들이 필요했다. 아니면 그 모든 이들이 적이 될 테니까.

“하다못해 군사력이라도 황제보다 압도적이어야 한다. 절대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닐 테니.”

황실 근위대라도 포섭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황제가 변절하기 쉬운 자들을 근위대에 넣어 놨을 리 없다.

여러모로 문제가 많았다. 황실 근위대와 정면으로 전쟁을 벌여 수를 줄이면 데테로아가 황제가 됐을 때 황권이 줄어든다.

그렇다고 황제의 사람들을 그대로 둘 수도 없으니 근위대를 물갈이해야 할 것이다.

“머리 아프군.”

그렇게 오래 준비했어도 황제를 상대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건 그동안 조사한 주요 귀족들의 군사력, 재정 상황, 규모들입니다.”

체드란의 앞에 어마어마한 양의 서류 뭉치가 놓였다.

“확실히 상단으로 위장한 건 도움이 되는군.”

“사피오가 똑똑했죠.”

상단으로 위장해 귀족들과 접촉을 시도하는 건 사피오의 의견이었다. 확실히 정보의 양과 질은 좋아졌지만, 그것을 추려 진짜 정보를 만드는 것도 보통 일은 아니었다.

체드란이 늘 일이 많았던 이유 중 하나였다.

“근위대들에 대한 조사는?”

“아무래도 황제가 직접 관리하는 정보들이다 보니 접근이 어렵습니다.”

“만약에 말이네. 단제 마호세르디 경이 우리 쪽에 협력해 준다면 근위대의 대한 정보 확보를 어디까지 늘릴 수 있으리라 보는가?”

“근위대 단장 말씀입니까? 정보의 질만 따져도 차원이 다르지 않겠습니까. 직접 관리 중이고 오랜 시간 근위대에 속해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그가 직접 정보를 넘겨주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쉬이 황제의 눈을 벗어나기는 어려울 테니.

“나는 곧 대공령으로 내려가야 한다. 이곳에 나엘라 혼자 남게 될 거다.”

코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문제 때문에 무리를 해서라도 황후와의 연결 고리를 끊고 잠적했다. 황후 문제만 처리되면 톨레로는 다시 수도로 돌아가 나엘라를 도울 예정이었다.

“그렇게 되면 아마 단제 경도 움직일 수밖에 없다. 나엘라를 지키기 위해 필사적이 될 테니까.”

그렇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당장 체드란, 자신만 해도 내전을 일으키고 싶은 걸 참고 있다.

“일단 황제의 첩자들을 확실하게 파악해 놔. 모든 수를 실패할 경우 황제를 고립시켜 단숨에 밀고 들어가야 할 테니.”

이건 가장 마지막 방법이었다. 황제에게 가는 모든 정보를 끊고 황실에 쳐들어가는 것은 그야말로 피를 뒤집어쓴 왕관을 감내하는 셈이다.

“나엘라가 문제야.”

“대공비 전하라면 잘 해내실 겁니다.”

“그녀는 계략을 쓰는 타입이 아니네.”

“대공비 전하께서요?”

“함정을 파긴 하지만 화끈하게 부딪히는 타입이지.”

“음,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습니다. 사람을 아끼다 보니 본인이 직접 칼을 드는 스타일이시죠.”

“하지만 황제는 그렇게 상대해서는 안 돼.”

황제는 조금 더 치밀하고 은밀하게 상대해야 했다.

체드란은 그것이 걱정이었다. 조금씩 놓인 덫을 피해 나엘라가 황제를 상대할 수 있을지가.

“그러니 황제처럼 움직이는 건 우리가 해야겠지.”

나엘라는 나엘라의 방식대로 움직일 수 있게 말이다.

비열하고 추악하게 움직이는 것은 우리가, 세상의 영웅처럼 빛나는 것은 나엘라가.

“황제의 첩자들을 하나씩 제거한다. 나엘라가 본격적으로 움직이는 이상 황제 측 정보가 줄어들어야 해.”

그동안 모아 왔던 감시자들의 정보가 있었다.

“첩자들을 제거할 때 그들이 잡힌 약점들을 알아보도록. 말하지 않는다면 죽여라.”

“예. 알겠습니다.”

체드란은 놓인 서류들을 무심히 바라보았다. 대공령으로 떠나야 하는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

저택으로 돌아가던 나엘라는 잠시 말을 멈췄다.

“먼저 돌아가게.”

라르바와 다른 이들이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지만 나엘라는 그대로 말머리를 돌렸다.

“지금 이 시각에 말입니까?”

“부부의 데이트를 방해하지 말게나.”

라르바는 그제야 어두운 거리 한쪽에서 흐릿한 그림자를 보았다. 말에 탄 채로 한 남자가 가만히 대기해 있었다.

“알겠습니다.”

설마 체드란과 함께 있는 나엘라에게 누가 달려들 리가 있을까. 그렇게 간 큰 자는 없으리라 인정한 다른 이들이 다시 말을 재촉했다.

나엘라는 말을 움직여 체드란에게 다가갔다.

“갔던 일은 잘 해결했어요?”

“했지. 왜 항상 나는 바쁜지 모르겠군.”

“설마 나한테 물어보는 건 아니죠? 대체 뭐하고 돌아다니는 거예요?”

체드란은 피식 웃고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가지.”

“어디로요?”

“데이트하러.”

체드란이 움직이는 대로 나엘라도 말머리를 돌렸다. 확실히 저택으로 향하는 방향은 아니기에 정말 데이트인가 고민하던 찰나였다.

“나엘라.”

“네.”

“하나만 약속해 주게.”

“무엇을요?”

“위험한 상황이 닥친다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도망치게.”

가볍게 나온 말의 무게치고는 상당한 것이어서 나엘라는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미리 말하지만, 만약 그대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나는 모든 걸 각오할 거네.”

“무슨 뜻이에요?”

“제국을 불바다로 만드는 일이 있어도 황제에게 복수하다 죽을 거라는 말이네.”

어쩌면 협박과도 같은 말이었다. 나엘라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무수히 많은 이들이 전쟁에 휘말릴 터다.

“책임감 없이 그러지 말아요. 체드란은 지켜야 할 사람들이 많이 있어요.”

“내게는 한 번도 내 것이 없었네. 노헤스카가 처음이었고, 지금 나를 따르는 이들이 처음이었지.”

가장 화려한 곳에서 자랐지만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정을 주지 않으려고 했지만 어쩔 수가 없더군. 나 혼자 강해지기 위해 시작한 전쟁이 나중에는 노헤스카를 위해 이기려 들었네.”

아끼지 않으려고 했던 것들을 아끼게 됐고 지키고 싶어졌다.

“그런데 그런 것들을 그대 하나 때문에 놓을 수 있을 것 같더군.”

한 지역의 영주라고 하기엔 이기적인 데다 책임감조차 없는 말이었다.

“그러니 내가 그런 사람이 되지 않도록 도와주게.”

나와 함께 대공령으로 가자는 말은 할 수 없었다. 꽃을 꺾어 화병에 가둬 두자니 시들 것이 보여서 할 수가 없었다.

“누가….”

나엘라는 한번 심호흡을 하고 다시 말을 이었다.

“누가 데이트 중에 죽음을 얘기해요? 연애 한 번 안 해 본 거 티 내네.”

“다른 이들은 데이트할 때 무슨 이야기를 하던가?”

“뭐…. 사랑 이야기를 하겠죠.”

“나도 내 사랑을 얘기한 것이네. 그대가 없으면 모든 것을 잃을 각오를 하겠다는 말이니까.”

무거운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 말을 돌리는데도 체드란은 넘어가지 않았다. 나엘라는 그에게 약속할 수가 없어 계속 화두를 돌리려 했다.

“아니면 다음 데이트에는 뭘 하자고 얘기하거나.”

“대공령에서 그대가 아끼는 사람들과 아무 걱정 없이 이야기하고 축제를 구경하게. 그곳에 그대가 있다면 나 또한 있을 테니.”

“그것도 아니면 서로 좋아하는 걸 얘기하고 공감대를 만든다거나….”

“그대가 좋아하는 모든 것들이 대공령에 있게 될 걸세. 그 속에 그대도 있길 바라네.”

“체드란….”

두 사람의 말이 멈춘 곳은 넓은 들판 위였다.

이름 없이 작은 들꽃들이 희미한 빛을 내며 잔뜩 피어 있는 곳.

“그대가 꽃을 좋아하니 꽃이 있을 만한 곳들을 찾아다녔지. 언뜻 지나가다 본 곳이었는데 다시 찾으려니 얼마나 힘들던지.”

저 멀리 보이는 도시와 도시 정경과 마주한 들판, 잔뜩 피어 있는 들꽃들.

“그대가 좋아하는 모든 것들을 주겠네. 그러니 약속해 주게.”

“위험한 순간에 도망치는 거요?”

“그대의 소중한 사람들이 약점으로 잡혔어도 말이네.”

“그건….”

지키지 못할 약속 앞에서 나엘라는 입술을 깨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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