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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같은 대공비가 치는 꽃 같지 못한 사고들 (146)화 (146/220)

145화

파르로시는 황궁으로 돌아갔다.

납치됐던 황녀가 돌아왔으니 당연히 궁은 난리가 났고 함께 돌아갔던 에스토는 일단 감옥에 갇혔다. 아직 정확한 진위가 드러나지 않았으니 구금이 옳았다.

어떻게 된 거냐는 다른 이들의 물음에 파르로시는 황후가 행한 납치와 그동안의 학대들을 간단히 전했다. 황후가 죽었다는 사실까지 밝히자 그녀가 지내던 은신처에 황실 근위대가 들이닥쳤고 샅샅이 수사했다.

여러 소식으로 황궁은 난리가 났지만, 귀족들에게 가장 논란이 됐던 건 그동안의 지속적인 학대였다. 황후는 이미 죽은 사람이니 관심도 옮겨진 것이다.

온갖 소란으로 향후 어떻게 될 것이냐는 논란이 있었지만 재판은 예상대로 진행됐다.

황후가 죽었어도 확인해야 할 사항이 많았다. 황녀의 증언이 맞는지, 황후와 함께했다는 시녀들의 처벌도 정해야 했으며 함께 있던 에스토의 죄도 물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나엘라는 라르바에게 따로 얘기를 남겼다. 파르로시가 재판에서 어떻게 증언할 것인지, 앞으로 어떻게 여론을 만들어야 하는지를 황제에게 전해 달라 얘기했다.

라르바가 어떻게 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얼마 후 답이 돌아왔다.

“황제 폐하의 전언이십니다. 재판이 끝나고 비밀리에 입궁하시랍니다.”

드디어 황제와의 만남이 허락되었다. 뭐가 됐든 나엘라의 처리가 마음에 든 것이다.

“알겠네. 나가 보게.”

라르바가 나가고 하녀들은 빨리 움직여야 한다며 그녀를 재촉했다. 바로 오늘이 공개 재판이 열리는 날이었다.

아무래도 재판 주제가 만만치 않다 보니 화려한 옷은 금물이었다. 꾸민 듯 안 꾸민 듯 단정한 모습을 보여야 하니 다른 것들로 승부를 봐야 한다며 하녀들이 극성이었다.

“오늘은 다른 때보다 훨씬 단아하게 갈 겁니다. 당장 얼굴 마사지부터 받으시지요.”

목욕하면서도 향유를 들이붓고 난리가 났는데 또 마사지라니.

나엘라는 도망가고 싶은 기분을 느끼며 그녀들에게 끌려 나갔다. 아마 체드란도 같은 신세이리라.

*

나엘라는 연보라색의 단정한 드레스 위로 어두운 재킷을 어깨에 걸치고 긴 목걸이를 착용했다. 머리카락은 한쪽으로 가지런히 모은 채 체드란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재판장으로 향했다.

체드란은 그나마 다행히 황실 정복만 입으면 되어서 큰 고민은 없었다. 머리를 하나로 넘긴 그는 오늘따라 냉정함이 돋보였다.

“혹시 오늘 긴장돼요?”

유독 얼굴이 굳어 있기에 긴장을 풀라며 한 말이었다.

하지만 체드란은 한쪽 눈썹을 올리며 이상한 눈빛을 했다.

“재판에 긴장되는 건 죄인들뿐이지.”

“무슨 소리예요. 억울한 일이 있으면 혹시나 잘못될까 긴장되는 건 누구나 똑같다고요.”

“재판 좀 다녔나 보군.”

“저의 재판장님은 언제나 아버지셨죠. 하지만 제가 재판장을 맨날 이겼습니다.”

“비리투성이가 마호세르디군.”

“제가 실세니까요.”

원래 모든 재판은 실세에게 유리한 법이라며 농담을 주고받던 그들은 어깨에 힘을 푼 채 재판장 안으로 들어갔다. 매번 입장과 동시에 시선을 모으는 부부였으나 오늘은 날이 날인지라 저마다 떠들기 바빴다.

“그럼 황녀님은 어떻게 되는 걸까요?”

“아무래도 그냥 넘어가지 않겠어요?”

“하지만 대공비 전하의 납치가 황후 마마와 관련되어 있으면 황녀님도….”

“에이, 황녀님도 황후 마마에게 납치된 거라면서요?”

재판에 참석한 귀족들은 사안의 경중을 두고 다들 갈피를 잡지 못했다.

아무래도 이번 재판에서 다뤄질 것들이 파르로시 하나가 아니었다. 반란, 황녀 납치, 대공비와 지엘라, 하일모라의 납치가 다뤄질 예정이었다. 그동안 쌓였던 황후의 죄들이 드러날 것이다.

더불어 아이안 공작가의 클루아조 소공작조차 엮여 있으니 유력 가문들은 거의 엮여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나엘라도 새삼 궁금했다.

과연 황제는 어떤 판결을 내릴까.

특히 자신의 사람인 클루아조와 에스토도 어떻게 할지 궁금했다. 에스토의 경우엔 스스로 빠져나갈 길을 만들어 두었지만, 황제의 선에서 무죄 처리될 수도 있었다.

진행자는 시종장으로 정해졌다. 관련 귀족들을 제외한 높은 지위의 귀족이 진행을 맡아야 옳지만 어쩔 수 없었다.

사안이 보통 큰 것이 아닌 데다 귀족들 대부분이 어느 쪽이든 연줄이 있었기에 중립을 지킬 수 없어 적합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나마 가문도 튼튼하고 어느 파벌에도 속하지 않은 시종장이 맡게 되었다.

“황제 폐하 드십니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황제가 자리에 앉을 때까지 대기했다. 자리에 착석한 황제가 손짓을 하자 귀족들은 일제히 자리에 착석했다.

공개 재판인 터라 재판장의 문도 개방되어 있어 제국민들도 이곳을 주목했다. 긴장된 분위기에 너도 나도 침을 꼴깍 삼켰다.

“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 우선 죄인들을 들라 하여라!”

재판장 한쪽에서 대기하던 죄인들이 포박되어 줄줄이 끌려 나왔다. 처음에는 반란과 관련된 귀족들이었다.

시종장이 종이 뭉치를 들고 와 입을 열었다.

“이 죄인들은 모두가 황후의 명을 받고 반란을 준비했다 진술했습니다. 해당 진술이 모두 일관되고 과정 또한 틀린 말을 하는 자가 없는 것으로 보아 반란 여부에 대한 것은 의의가 없으실 겁니다.”

주동자는 하나같이 황후를 지목하며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다, 크게 가담하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죄를 실토하며 동조했던 자가 어떤 짓을 했는지 서로 고발했기에 의미가 없었다.

“더 볼 것도 없군.”

황제는 짐짓 짜증이 난다는 듯 바로 처분을 내렸다.

“가문의 재산을 모두 몰수하고 가주와 후계권이 있는 모든 자의 사형을 명한다.”

사안이 반란이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처분이었다. 죄인들은 끌려 나가면서도 왕왕 소리를 질러 댔지만, 황제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모든 이가 사라지고 재판장이 조용해지자 시종장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다음으로는 파르로시 황녀님의 재판이 있겠습니다.”

시종장의 말에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퍼진 소문에 의하면 파르로시는 피해자일 텐데 결국 재판을 하는 까닭이 이해되지 않은 탓이다.

곧이어 파르로시가 재판장으로 들어왔다. 다른 이들처럼 포박된 모습은 아니었지만, 그녀는 수수한 옷을 입고는 죄인석에 섰다.

“파르로시 황녀님께서는 반란군 은신처에서 지내셨기 때문에 반란에 가담한 것은 아닌지, 황후의 일을 얼마큼 알고 있었는지 확인하는 재판입니다!”

시종장은 파르로시가 반란군 은신처에서 발견되었다는 것과 그곳에서 지낸 기간에 대해 말했다. 더불어 납치되었다고 알려진 일의 진실과 돌아온 날짜, 그사이 생긴 공백 기간에 무엇을 했는지에 대해 증언하라고 부탁했다.

모두의 시선이 모이자 파르로시는 입을 열었다.

“저는… 반란군 은신처에 있었던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머니, 아니 황후 마마의 계략으로 이용당한 겁니다.”

파르로시는 많은 사람 앞에서 천천히, 하나하나 은신처에서 겪은 일들을 말했다. 또한 자라며 황후에게 어떤 학대를 당했는지, 어떤 취급을 당했는지도 밝혔다.

“황후 마마에게 저는 도구일 뿐이었습니다. 저를 이용해 요반나와 협력을 공고히 다지려 했으며 제게 채찍질을 해도 상관없다고 전했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단 한 번도 딸인 적이 없었습니다.”

암암리에 소문으로 들은 것과 파르로시의 입에서 직접 듣는 증언은 파장이 달랐다. 사람들의 경악만큼이나 재판장에 고요함이 내려앉았다.

그때 파르로시의 기이한 행동이 이어졌다. 그녀가 갑자기 드레스의 끈을 풀기 시작한 것이다. 뒤로 묶인 끈만 풀면 벗겨지는 드레스라 파르로시는 앞섬을 잡은 채 등을 훤히 노출했다.

“제 등의 오랜 흉터들이 증거입니다. 이런 흉터는 등뿐만 아니라 엉덩이, 다리에도 무수히 많습니다.”

제국의 가장 귀한 피, 황실 사람에게 그만한 흉터는 보통 심각한 사안이 아니었다. 심지어 피해자인 황녀는 그 흉터들의 범인이 모두 황후라 말하고 있었다.

누가 감히 황녀에게 채찍을 휘두를 수 있겠는가. 또 그리했다 한들 황후가 모를 리가 있겠는가.

사람들은 이런 참담한 사태가 일어날 때까지 아무도 몰랐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수군댔다. 그들의 시선이 점점 황제에게로 향하자 파르로시가 입을 열었다.

“폐하, 저는 폐하께서 황후 마마에게 협박을 당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제 목숨을 가지고 아무런 행동도 하지 말라며 종용했지요.”

경악을 넘어 충격적인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다. 감히 황제를 협박하다니, 그것도 제 자식의 목숨을 가지고 말이다.

“제가 황후마마에게 납치를 당했을 때도 제 목숨이 위험할까 아무것도 못 하셨지요. 하지만 이제는 제 억울함을 풀어주시옵소서.”

황녀의 말을 믿는 귀족들은 몸을 들썩거렸고, 지켜보던 제국민들 사이에서는 심한 욕설이 터져 나왔다. 희대의 악녀란 평과 함께 황후가 혹 진짜 악마가 아니냐는 말들까지 나왔다.

물론 황제의 성격을 아는 몇몇 귀족들은 증언이 가짜라는 걸 눈치챘으나 이 자리에서 반박할 수 없어 침묵을 지켰다.

재판장 밖에서 터진 욕설이 안에까지 흘러들어 와 웅성거림이 커졌다. 온갖 소란과 경악이 재판장을 휘몰아쳤다.

“조용! 모두 조용히 하십시오!”

소란이 점차 가라앉을 때쯤 스치는 시선 사이로 나엘라와 황제의 눈이 마주쳤다. 나엘라는 고개를 살짝 숙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아마 황제는 모를 것이다. 파르로시와 나엘라의 거래에 대해서.

파르로시가 황제에게 유리한 증언을 해야 그녀가 산다. 나엘라는 그녀가 살아 있기를 바랐고 이게 최선의 결과라는 걸 알고 있었다.

황제는 지금쯤 만족스러운 기분일까.

나엘라는 알 수 없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그의 눈을 피했다는 점이었다. 그 작은 발걸음은 후에 큰 이득이 될 것이다. 나엘라는 우선 만족하기로 했다.

“판결하지.”

황제의 말에 모든 사람이 집중했다.

“나는 황제이기 전에 한 아이의 아비로서 이 모든 사태에 책임이 있음을 통감한다. 그러니 파르로시에게 죄를 물으려면 내 죄 또한 물어야 할 것이다.”

그 말은 곧 무죄 선언과 같았다.

곧이어 시종장이 온갖 말로 꾸미고 둘러 무죄라 읊었다.

“파르로시 황녀님께서는 아직 몸이 낫지 않으신 것으로 압니다. 황궁으로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몇몇 이들이 파르로시의 뺨에 있는 거즈에 관해 물었지만 시종장은 납치 도중 험한 꼴을 당하며 생긴 상처로 일관했다.

“다음은 아이안 소공작의 재판입니다. 죄인은 들라 하여라!”

지금부터가 나엘라가 가장 기다리던 재판이었다.

황제는 과연 클루아조를 어떻게 할 것인가.

기사들에 둘러싸인 그가 죄수석을 향해 걸어오기 시작했다. 언제부터 조사를 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조금 초췌해진 모습이었다.

하지만 당당한 눈빛만큼은 여전했다.

“아이안 소공작은 나엘라 노헤스카 대공비, 지엘라 황녀님, 하일모라 세레노피 백작부인의 납치 사건에 가담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또한, 황후를 도와 반란군에 가담하고 요반나 사람들을 밀입국시켰다는 증언이 확보되었습니다.”

시종장의 입에서 어떻게 증거를 확보했는지 어떤 증거와 증언이 있는지 이야기가 이어졌다.

다들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귀족들의 관심은 전부 이 판결로 쏠려 있었다.

이번 일로 아이안 공작가가 반란군으로 판명되면 제국에는 공석이 생긴다. 아무리 공작가라 한들 반란에 가담한 가문을 유지하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북부를 관리할 가문이 새로 필요해지리라는 생각에, 그 자리를 누가 어떻게 차지할지에 대해 모두 숨을 죽였다.

그때 클루아조의 입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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