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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같은 대공비가 치는 꽃 같지 못한 사고들 (164)화 (164/220)

163화

황실은 누가 톡 건들면 터질 것 같은 분위기였다. 데테로아 황태자와 파르로시 황녀의 싸움이 원인이었다.

“저는 사과를 하고 싶었을 뿐이에요.”

“그 사과, 받을 생각이 없는데.”

대외적으로 무난한 관계를 유지하던 둘은 정원에서 일어난 말다툼을 시작으로 사사건건 부딪치기 시작했다.

하필 요즘 들어 귀족 회의와 요반나 사신단 환영 파티로 사람들이 황실을 자주 오가는 바람에 소문은 금방 퍼졌다.

지진 부진한 협상으로 사신단 환영 파티가 늦어진 판에, 타국 사신단이 와 있는 상황에서 황족 간에 기 싸움이 벌어졌으니 말이 안 나올 수 없었다.

“어머, 황태자 전하께서 그런 분이 아니신데 무슨 일일까요?”

“그나저나 아직 황제 폐하께선 아무 말씀도 없으시죠? 파르로시 황녀님과 황태자 전하의 사이가 점점 더 나빠지시는데…….”

“전에는 이 정돈 아니었던 것 같은데 이상하네요.”

“둘 사이가 좋은 것도 이상하긴 하죠. 이미 돌아가신 폐후께서 황태자 전하를 좀…….”

“뭐, 황녀님께서 인제 와서 사과하는 것도 웃기긴 하네요.”

“저는 오히려 지금이라도 사과하는 걸 보니 황녀님이 많이 변하셨구나 싶은걸요. 전하께서도 한 번만 받아 주시지.”

호사가들과 귀족 영애들, 귀부인들은 모임이 있을 때마다 누가 옳은지 그른지에 대해 논했다.

의견은 분분했다. 데테로아의 편을 드는 사람도, 파르로시의 편을 드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모든 이들이 공통으로 말하는 것은 한 가지였다.

“황제 폐하께서 과연 누구의 편을 드실까요?”

“아마 파르로시 황녀님이겠죠? 폐후 사건 당시 황녀님을 위해 하신 것만 보아도 알 만하잖아요.”

“하지만 황태자 전하는 유일한 후계자인걸요. 폐하께서 힘을 실어 주셔야죠.”

황제가 죽으면 당연히 데테로아가 황좌를 물려받을 터였다.

아직까진 그런 적 없었더라도 앞으론 데테로아에게 대외적인 문제가 생길 경우 황제는 당연히 그를 지지해야 했다. 어지간히 밉지 않은 이상.

“그래도 아직은 폐하께서 중재할 정도로 문제가 생긴 적은 없죠?”

“그러게요. 불안하긴 한데 아직은…….”

그러나 바로 몇 시간 후, 발보다 말이 빠른 이들에게서 어떤 소문이 퍼졌다.

요반나 사신단과의 협상이 끝나자마자 미뤄졌던 환영 파티가 열릴 예정인데, 파티 주관을 누가 할 것인가로 파르로시와 데테로아가 크게 다퉜다는 것이다.

그 자리에서 파르로시가 데테로아의 돌아가신 친어머니를 입에 올렸단다. 그 때문에 무척 노한 데테로아가 파르로시를 그녀의 궁에서 한 걸음도 나오지 못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황태자 전하께서 그렇게까지 하셨다고요? 그럼 황녀님은 파티에 못 나오는 건가요?”

“파티도 나오지 말라 하셨다네요. 전하의 권한이 그 정도였나요?”

“저는 황제 폐하께서 어떻게 나오실지가 더 걱정이에요.”

모든 이들이 황제의 선택에 주목하고 있었다.

과연 황제는 데테로아와 파르로시 중 누구의 손을 들어줄 것인가.

*

“왜 그런 일을 벌였느냐.”

오랜만에 아버지와 함께한 식사이거늘. 소화에 좋지 않은 주제가 나오자 나엘라는 식기를 내려놓았다.

“혼자 있는 제가 걱정돼서 오신 거 아니었어요?”

“그런 목적으로 오고 싶었다.”

“황제에게 데테로아 황태자는 말 잘 듣는 아들이죠. 늘 눈 밖에 벗어날까 숨죽여 살고요.”

“그러니까 하는 말이다. 왜 그 자리를 흔들려 하느냐.”

“황제가 파르로시 황녀의 편을 든다면 황태자의 권위가 흔들릴 테고, 황태자에게 손을 들어주면 황녀를 내치는 것이 되죠.”

그래서 얻는 이득은 황제의 심기를 건드는 것 외에도 몇 가지가 있었다.

만약 데테로아에게 손을 들어주면 그의 위치가 확고해지며 따르는 귀족이 많아질 것이다. 반대로 파르로시의 편을 들 경우 황제와 데테로아 사이의 불화설이 생기게 된다.

“불화설? 황제와 데테로아 황태자의 사이가 나쁘다는 걸 알려서 뭐 하려고?”

“황제의 진짜 성격은 소수만 알고 대부분 모르는 사실이죠. 대외적으로 냉정하긴 하나 성군인 척하는 황제가 지금까지 데테로아를 제대로 밀어준 적이 없다는 걸 이상하게 여긴 사람이 분명 있었을 거예요.”

그 생각에 확신을 주어 황제의 이미지를 흔들 생각이다. 사실 황제가 제 자리를 탐낼까 봐 데테로아를 견제하고 있던 것이 아닌지, 의심이 퍼지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체드란이 황실에서 쫓기듯 나온 이유가 대부분 황후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잖아요. 페트론 황자를 잃은 폐후를 감당하지 못해서 후계권을 포기하고 나왔다고요.”

심지어 황제가 암살자를 보냈다는 건 아주 극소수의 사람만 알고 있는 얘기였다.

황제가 손을 쓴 것이다. 황후를 감당하지 못해 아들을 어쩔 수 없이 내보낸 아비처럼.

“황제의 이미지를 망치는 것도 나쁘지 않죠.”

“네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면?”

“센텐의 대응 방식을 면밀히 확인한 셈이 되죠. 일단 아버지는 중립을 유지해 주세요. 체드란에게는 파르로시의 편을 들어 서신을 보내라고 해 뒀어요.”

파르로시와 체드란의 사이는 알음알음 퍼져 있으니 그가 황녀의 편을 들어도 그리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학대당하며 살던 여동생을 감싸는 체드란, 나쁘지 않았다.

“황태자와 원래 사이가 좋지 않다 알려져 있으니, 공동의 적이 처리된 지금 다시 사이가 틀어져도 이상하지 않잖아요.”

이전의 둘 사이를 기억하던 사람들은 체드란이 데테로아를 탓하기 위해 파르로시의 편을 들었다고도 생각할 거다.

“어쨌든 부탁 좀 드려요. 아, 그리고 이 서신은 빠른 시일 내에 단제 오라버니께 전해 주세요.”

나엘라가 서신 하나를 건네자 공작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건 또 무엇이냐.”

“근위대에 있는 첩자 정보?”

“첩자?”

“숨어 있던 폐후의 첩자요. 파르로시 황녀가 알려 줬어요.”

폐후가 궁에서 도망치기 전, 황실 감옥에 있던 반란 가담자들을 죽이려 심어 둔 첩자였다.

“그나마 제 손안에 있던 근위대가 흔들리니 머리 좀 아플 거예요. 의심병이 심해지는 건 아닌지 걱정이네요.”

서신을 집어 든 공작은 이마를 짚고는 한숨을 가라앉혔다. 얌전히 있을 거라 생각은 안 했지만 연달아 대형 사건을 터트릴 줄은 몰랐다.

“꼭 이렇게 해야겠느냐.”

“네. 노헤스카에서 불꽃놀이를 해야 하거든요.”

“무슨 소린지 원. 일단 전해는 주마.”

품에 서신을 넣은 공작은 무언가를 결심한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내가 너에게 이런 말까지 안 하려 했다.”

“음… 안 듣고 싶은데…….”

“오늘은 내가 잔소리 좀 해야겠구나.”

공작이 보기에 나엘라는 불에 뛰어드는 나방과 다를 것이 없었다. 누가 보아도 큰일이 예견된 일임에도 나엘라는 물러섬이 없었다.

아무리 결혼한 자식이라지만 이번엔 혼을 내야겠다는 생각에 공작도 마음 단단히 먹었다.

앞으로 다가올 일장 연설을 눈치챈 나엘라는 빠져나가기 위해 눈을 도록도록 굴렸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

“하아…….”

눈앞에 있는 두 통의 서신을 보며 단제는 지끈대는 머리를 짚었다. 왜 자신의 주변에는 이리 기 센 여인들이 많은지 모를 일이었다.

두 서신은 각각 다른 여인에게서 온 선물 아닌 선물이었다. 하나는 아버지에게 받은 나엘라의 서신이었고, 하나는 집으로 와서 얘기 좀 하자는 마리즈의 독촉장이었다.

첩자의 정보가 적힌 서신을 무시하자니, 이미 내부에 있음을 아는 첩자를 그냥 두고 볼 순 없었다.

하나, 첩자를 잡자니 문제는 정보의 출처였다. 황제에게 대체 뭐라고 보고한단 말인가.

마리즈의 서신은 그것대로 문제였다. 마리즈를 만나자니 무슨 얘기를 들을까 겁이 나고, 안 만나자니 평생 집에 안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거기다 마리즈에겐 매일같이 서신이 오고 있어서 더욱 문제였다. 이것이야말로 진퇴양난이었다.

“후우…… 근위대를 전부 소집해라.”

“예?”

갑작스러운 명령에 단제의 부관은 영문 모를 얼굴을 했다. 황제의 명령과 훈련, 황실 대소사가 아닌 이상 근위대 소집은 거의 없는 일이었다.

한데 바로 아침에 이미 한 번 소집한 근위대를 또 소집하라니?

하지만 그 명령을 거역할 수도 없었기에 부관은 움직였다. 얼마 후 훈련하는 연무장에 부관들부터 말단 신임 기사까지 근위대원이 모두 모였다. 

그들을 둘러보던 단제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황실 근위대의 존재 목적은 모두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황실을 위해 제국 곳곳에서 선발된 가장 강한 이들로 이루어진 근위대. 그들은 황실에 충성하며 최후의 최후까지 수호하는 이들이었다.

“근위대는 황실의 수호자로서, 누구보다 감시와 평가받는 삶을 산다. 그래서 나는 그대들에게 좋은 상관이고자 했다.”

실제로도 단제는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는 기사이자 좋은 상관이었다. 다른 이들이 쉴 수 있도록 나서서 근무를 서기도 하는 등 능력으로나 배려로나 귀감을 보였다.

“그대들이 나를 믿길 바랐고 나는 그대들을 믿었다. 하지만 오늘에서야 그런 생각이 드는군.”

단제의 손짓에 그의 옆에 서 있던 기사들이 도열해 있던 근위대 사이를 파고들었다. 찾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얼굴을 확인해 가며 거침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내가 제대로 그대들을 이끌지 못했기에 이런 일이 생긴 것은 아닌가, 하고 말이야.”

곧이어 잡혀 나온 두 명의 기사가 단제의 앞에 꿇어 앉혀졌다. 무슨 일인지 예감한 건지, 그들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해 있었다.

근위대 기사 중에는 명문가 출신도 상당히 많다. 끌려 나온 둘 중 한 사람도 명문가 출신이었다.

“다른 마음을 품은 첩자는 재판까지 갈 것 없이 근위대 특별법에 따라 사형을 처한다. 그 외 다른 근위대들은 오늘부터 대대적인 감사가 시작될 것이다.”

근위대에게만 적용되는 특별법으로 첩자 짓을 한 기사는 근위대 단장 권한으로 바로 사형이 가능했다. 현 황제가 즉위하며 법이 워낙 강해졌기에 지금껏 변절한 자는 없었다.

그런 이들을 첩자로 만들었으니 폐후의 수완이 좋았다고 해야 할지, 이들이 운이 나빴다고 해야 할지.

“오해십니다! 저는 오로지 황제 폐하에 대한 충심으로 살아왔습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이 어떤 주장을 하든 상관없었다. 즉결 처형에 들어가기 전, 당연히 심문할 것이고 나엘라가 보내 준 자료와 대조도 해 볼 것이다.

그때가 되면 어떤 말을 할지는 모르겠으나 단제는 거리낌이 없었다.

“끌고 가라.”

두 기사가 다른 이들의 손에 끌려 나가며 무어라 외쳐 댔지만, 단제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오로지 앞에 대기 중인 근위대만 바라보았다.

만약, 언젠가 이들을 데리고 진짜 반란을 상대해야 할 때가 오면 자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 반란이 제 가족과 관련이 있다면? 

황제보다는 오랜 시간 함께 했던 이들이 걱정돼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해산.”

단제는 묵묵히 제자리로 돌아가는 근위대를 바라보며 쓰디쓴 한숨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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