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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같은 대공비가 치는 꽃 같지 못한 사고들 (176)화 (176/220)

175화

이제는 마호세르디로 돌아가야 하는 다나한을 마중했다.

결국, 셋이서 식사하진 못했지만 공작이 보내온 선물에 마음이 또 풀어졌다. 냉정하게 한소리 한 것이 못내 미안했을까, 공작이 보낸 것은 늦게 핀 봄꽃들 한 다발이었다.

하긴 이런 선물이니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기엔 창피했을 것이다. 굳이 제니를 불러 선물을 보낸 것도 이해됐다.

꽃다발을 끌어안고 손을 흔드는 나엘라에게 다나한은 연신 한숨을 쉬어 댔다.

“난 아직도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는가 싶다.”

본인이 최선을 다하라고 해 놓고 말이다. 그의 말은 테너에게 센텐인 걸 알고 있다고 밝힐 필요가 있는지를 되묻는 것이었다.

“과연 그가 비밀을 지킬지도 모르겠고.”

“나한테 이상한 경쟁 심리를 갖고 있는 것 같아. 아마 말 안 할 거야.”

“경쟁 심리?”

“나에 대해 알고 있기도 했고, 하일모라가 평상시에 내 칭찬도 했겠지.”

자신이 똑똑하고 우월하다고 생각한다면 그런 경쟁 심리가 있을 법도 했다. 더불어 황제의 관심까지 나엘라에게 쏠려 있었으니 더더욱.

“됐어. 내가 알아서 할게. 전쟁이나 확실히 이겨.”

“걱정하지 마라. 마호세르디 기사들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

“걱정 안 했어. 확실히 이기라는 뜻이야. 어중간하게 봐주지 말고.”

그리 말하자 다나한을 따라왔던 몇몇 기사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들도 모두 나엘라와 아는 사이여서 진작에 인사를 나눴었다.

“이럴 때 나엘라 님이 계셔야 하는데 아쉽습니다!”

“대체 언제 돌아오실 거예요? 당연히 이혼하실 거죠?”

한 명씩 시끄럽게 떠드는 통에 나엘라는 일갈하며 입을 다물게 했다.

“이혼 안 할 거고, 내가 보고 싶으면 그대들이 노헤스카로 오면 돼.”

“에이. 그건 아니죠!”

분명 시끄럽다고 했음에도 기사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야유를 보내왔다. 편한 사람들과 거리낌 없이 대화하고 나니 가슴속에 얹혀 있던 것들이 가벼워진 것 같았다.

“이제 가 볼게. 다음에 보자.”

“노헤스카에서 축제 열 거야. 그때 지엘라 부인이랑 와.”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얼마 안 남았을 거다. 정말 축제를 열 예정이었고, 그곳에 모두가 있기를 바랐다.

“돌아간다!”

다나한의 외침과 함께 마호세르디 기사들이 몸을 돌리곤 말을 박찼다.

점점 멀어지는 그들을 보며 나엘라는 마음을 잡았다.

괜찮을 거고, 괜찮아지고 있다.

자신도 다른 이들도 모두.

*

헤르만이 잔뜩 어두워진 얼굴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모여 있던 다른 이들은 수군거리며 눈치를 보았다.

“대체 무슨 일로 황제 폐하께서 회의에 참관하시겠다고 하는 겁니까?”

“나야 뭘 알겠나. 헤르만 님이 조용히 있으니 우리도 입을 다물 수밖에.”

센텐이 설립된 초반에는 황제가 직접 주관도 하고 참관도 했지만, 시간이 흐르며 회의 내용을 전해받는 쪽으로 바뀌었다.

황제가 자주 참석하는 회의는 누가 보아도 의심 갈 만하니까.

그런데 갑작스럽게 참관이라니, 더군다나 황궁에서 말이다. 황궁 시종들의 입이 무겁다곤 하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요즘 센텐의 만남도 잦아져 불안하던 차가 아닌가.

“황제 폐하 드십니다.”

그리 크지 않은 회의장에 황제가 들어서자 앉아 있던 자들이 모두 일어났다. 늘 곁에 있는 근위대는 문밖에 대기했다.

“앉게.”

황제가 먼저 자리에 앉고 다른 이들이 따라 착석하자 금방 본론이 나왔다.

“체드란이 두칸의 전사들과 만났다고 들었다. 한데 상대가 어떤 인물인지도,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도 모른다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고작 물음을 던졌으나 이것은 질타였다. 다들 차마 대답을 하지 못하자 황제가 말을 이었다.

“이런 일에 대비하고 생각하려 센텐을 만들었는데 말일세.”

황제의 언짢은 기색에도 한 남자가 용기 있게 말했다.

“노헤스카의 보안은 누가 뭐래도 대공비가 만든 것입니다. 그녀를 이용해야 하는 이유임과 동시에 무슨 목적을 가졌는지 모르니 멀리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걸 대체 누가 모르지? 그래서 대공비를 끌어들일 방법을 찾으라 하지 않았던가.”

나엘라는 양날의 검이었다. 그 속내를 모르니 가까이해서는 안 되지만 써먹기에는 누구보다 강한 검.

“두칸이 휴전 협정을 하러 왔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무슨 목적인지는 중요한 게 아니지. 그들의 행동을 우리가 전부 파악할 수 없다는 게 문제다.”

체드란이 두칸과 어떤 협상을 하든 제국에 해가 되진 않는다.

그러나 황제의 심기가 불편해진 것은 그 상황을 모두 제 손안에서 굴릴 수 없었다는 점이다. 자꾸만 제 시야 밖으로 빠져나가려는 인간들이 불편해 제거해야만 속이 시원해지는 그가 아닌가.

그리고 제국에는 해가 되지 않겠지만 과연 황제 자신에게도 해가 되지 않을까?

두칸은 너무 멀고 제국에 영향력을 끼칠 정도는 아니지만, 체드란이 두칸을 이용해 무슨 일을 벌일지는 모른다.

“폐하, 저는 데테로아 황태자와 대공의 사이도 의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상호 이익을 위한 잠시간의 협력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조차 의심하고 또 의심해야 하는 센텐의 특성상 체드란과 데테로아의 사이가 좋다고 결정 내렸음에도 다시 되짚기를 반복했다. 황제의 뜻대로 만들어진 센텐이기에 과거의 것도 쉬이 단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 아들들의 사이가 안 좋은 게 맞다면?”

“그렇다면 체드란 대공이 황좌를 노리는 게 아닌지 의심해야 합니다. 마호세르디와 손을 잡았고 노헤스카를 장악했습니다. 거기에 두칸과 상호불가침 조약이라도 맺는다? 그럼 대공을 말릴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의견이 나올수록 장내 분위기가 연신 심각해졌다. 황제는 잠시 생각에 빠진 듯 말이 없었다.

그때 누군가 조금 전 발언에 힘을 실듯 의견을 말했다.

“만약 대공과 황태자의 사이가 좋더라도 의미가 있는 말입니다. 황태자가 처음부터 대공에게 자리를 양보하려고 했다면요?”

온갖 가설과 의견이 나왔으나 정확한 증거가 없으니 문제였다.

상황마다 달라지던 데테로아와 체드란의 행동은 상대를 계속 헷갈리게 했다. 머리 좋고 의심 많은 센텐이 헷갈릴 정도니까.

아니 오히려 센텐이라서 더 헷갈릴 수밖에 없었다. 온갖 가설을 세우며 작은 것조차 의심하니 내렸던 결론도 초기화가 되었다. 그들의 성향이 결정에 악영향을 끼치기 시작한 것이다.

“흠흠, 황제 폐하. 세레노피 백작 부인과 대공비가 친하지 않습니까? 그것만큼은 의심할 수 없는 사안이지요.”

가만히 숨죽이고 있던 헤르만이 뜬금없이 하일모라를 입에 올렸다. 이때까지 테너가 전해 준 정보에 의하면 하일모라와 나엘라의 사이만큼은 확실한 것이었다.

황제도 이것만큼은 구미가 당기는지 테너를 바라보았다.

“백작, 그대의 부인에게 대공비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겠나?”

그동안 얻었던 정보들도 꽤 여러 개가 있었다. 마호세르디 시절의 나엘라에 대해서도 일부분 알 수 있었고, 수도로 올라와 황후를 상대할 때와 지엘라와 나엘라의 사이에 대해서도 파악이 가능한 수준이었다.

“죄송하지만 폐하, 그리 큰 정보를 얻진 못할 것 같습니다.”

테너는 정말 곤란한 참이었다.

하일모라는 테너를 볼 때마다 조잘조잘 많은 이야기를 떠들긴 했지만 정작 중요한 정보를 내어 준 적은 없었다. 나엘라와 함께 지내며 정보의 중요성을 깨달은 듯했다.

묘하게 말을 돌리는 것도 잘했고, 남편이라도 친구의 사생활을 떠벌리진 않았다. 은근슬쩍 깊게 물어보려고 하면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런 것이 왜 궁금하느냐 묻기도 했다.

“지금 안 된다고 말하는 건가?”

별 의미 없는 황제의 눈빛이었으나 자존심이 상한 테너는 이를 물었다.

테너는 오늘 이 자리가 나엘라 때문에 만들어진 것임을 알았다. 나엘라가 노헤스카를 바꿔 놨기에 황제의 심기가 불편해졌고 센텐은 보안을 뚫지 못했으니까.

“노력해 보겠습니다.”

“결과를 가져오게.”

무거운 분위기와 이어지는 질타.

황제의 등장으로 다들 눈치를 보는 바람에 나머지 회의들도 무분별하게 의견이 튀어나왔다.

하나로 모이지 않는 의견에 황제의 기세는 점점 흉흉해지고 있었다.

*

체드란은 앞에 앉은 전사 둘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두칸의 야만인이라는 생각이야 변하지 않았지만, 이 자들을 어떻게 써먹을 수 있는지를 고민했다.

“저희가 원하는 것은 평화 협정뿐만이 아닙니다. 지금 제국의 분위기가 좋지 못하다는 것 또한 알고 있으니 서로 이익을 위한 거래도 하고 싶습니다.”

두칸의 족장 아들 자반.

본 이름은 훨씬 길고 어려웠지만, 체드란에게 소개한 이름은 자반이었다.

“우리는 두칸에 원하는 것이 없네.”

“전사들을 원하신다면 내어드릴 테고 불가침 조약을 원하신다면 그것 또한 해드리겠습니다.”

“두칸이 원하는 것은?”

“식량과 약간의 물자입니다.”

전사들은 커다란 몸의 절반을 드러내며 각진 얼굴과 야만스러운 기세를 뽐내고 있었다.

지금까지 두칸을 제대로 점령하지 못했던 건 기후적인 요소도 있지만, 그들이 뭉쳐 살지 않는다는 부분도 컸다. 분명 쓸어 버렸다고 생각했으나 자꾸만 어디서 나타나 또 전쟁을 일으키는 행위의 반복이었다.

그러니 이상한 일이었다.

“누가 가르쳐 주던가.”

자반이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무엇을 말입니까?”

“제국 내의 상황과 불가침 조약, 그리고 거래하는 법에 대해서.”

교육도 미흡하고 문명도 그리 발달하지 않은 그들이 체드란을 찾아와 거래를 청하다니.

그러니 이상한 것이다. 이들이 이런 방식을 어찌 알았을까.

“제스라 왕국에서 알려 주었습니다.”

“제스라 왕국?”

한때 두칸과 제스라 왕국 사이에 교류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견이 들리긴 했다. 하나, 실제로 확인하게 될진 몰랐다.

그것도 이리 쉽게 알려 줄지도 몰랐고.

“제스라 왕국의 의도를 좋게 볼 수가 없군.”

“그들은 자신들에게 협조해 준다면 노헤스카 지역을 넘겨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제스라가 어떻게?”

“황후와 손을 잡았다고 들었습니다.”

나엘라의 예상이 들어맞는 순간이었다. 황후는 정말로 제스라와 두칸까지 손을 뻗었고, 제국을 조각낼 준비 중이었던 것이다.

“황후는 죽었다.”

“그 뒤로도 제스라 왕국에서 이런저런 정보를 알려 주었습니다. 노헤스카와 불가침 조약을 맺어 방심시킨 후, 필요한 순간에 뒤를 치라고요.”

“그 얘기를 먼저 드러내는 이유는 무엇인가.”

황후가 죽은 뒤에도 제스라 왕국은 포기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러니 두칸을 꼬셔 노헤스카를 칠 생각을 했을 것이다.

“제스라 왕국이 두칸을 몰라서 할 수 있는 소리입니다.”

“두칸을 몰랐다?”

“노헤스카를 점령하고 나면 두칸의 민족들이 그곳에 모여들 겁니다. 일이 실패로 돌아가면, 모든 민족이 몰살당할 가능성이 크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두칸은 정말 끝입니다.”

두칸의 땅은 제국에 소속되겠으나 쓸모가 없으니 버려진 땅이 될 것이다. 그럼 두칸 땅에 떠도는 유목민들은 식량 문제로 굶어 죽을 터.

그러니 도박보다는 안전을 선택하겠다는 의미였다.

“나는 두칸을 믿지 못한다. 제스라 왕국의 뜻처럼 뒤를 칠 수도 있고.”

“두칸 또한 그대를 믿지 못합니다.”

뒤에 서 있던 마든이 울컥해 나서려 했지만, 론체가 황급히 말렸다.

“서로 믿지 못하는데 협정이 되겠나.”

“그래서 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체드란은 아직 이 일의 의미가 와닿지 않았다.

하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잘 써먹으면 좋을 것들이 굴러 들어온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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