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개들의 목줄을 손에 쥐고-84화 (84/120)

84화.

Chapter 12. 폐태자 알렉산더

레온하르트는 방금 자신이 들은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

그러나 차마 다시 물어볼 용기가 없어서 놀란 얼굴로 황제만 바라보았다.

황제는 침통한, 아니 자못 우울해 보이기까지 한 표정으로 다시 말했다.

“알렉산더를 황태자위에서 폐하려 한다고 했다.”

“폐, 폐하. 그것은…….”

레온하르트는 뭐라 말을 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황제의 결정에 자신이 말을 얹는 게 마땅한가?

아니, 마땅치 않다.

그 태도가 지금껏 레온하르트의 목숨 줄이 붙어 있을 수 있는 이유였다.

황제는 그런 레온하르트의 표정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황제라고 이런 결정을 쉽게 내린 것은 아니다.

알렉산더는 알브레히트가 가장 사랑하는 아들이다.

유일한 아들로 정했고, 그렇게 키웠다. 자신에게 되뇌기도 했다. 마치 자신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는 것처럼.

그러나, 사실은 아니었다.

‘알렉산더가 유일한 선택지면 모를까. 지금 상황은…… 너무 안 좋아.’

태평성대라면 알렉산더도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황제가 될지도 모른다.

자신의 재위 기간만 생각해도 그렇다.

그렇지만 지금은 다르다.

‘너무 불안해.’

알브레히트는 요즘 불안함에 제대로 잠도 들지 못했다.

제국 내에서 마물이 발견되고 있다.

한두 번이 아니다.

제국의 전 지역에서, 특별한 이유 없이, 몇 년 간 지속적으로. 마물은 계속해서 나타났다.

물론 큰 규모는 아닌 데다가 전제 조건이 필요하긴 했다. 마을 단위를 제물로 삼는 수준의 큰 희생이 있은 후에야 마물이 나타났으니까.

마을 단위의 제국민이 목숨을 잃으면 주변에서 모를 수가 없다.

덕분에 레온하르트가 소문을 빠르게 수집하여 마물을 소탕했고 이를 토대로 이교도의 거점들을 파악할 수 있던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오랜 기간 황제로 제국을 통치해 왔던 알브레히트는 피부로 느꼈다.

‘전염병이, 풍토병이 이렇게 자주 발생한다고?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이건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다.

누군가가, 아마도 사교도가 의도적으로 마을을 몰살시키고 마물을 소환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조건을 충족하면 마물이 나타난다는 것.

이 얼마나 두려운 현실인가?

제국 내에서 안전한 곳은 없다는 뜻이다.

더군다나 가장 문제인 건.

‘결계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거야.’

알브레히트는 마물이 나왔다는 말을 들은 이후로 계속해서 결계를 고치려 몇 년 간 붙잡고 늘어지며 애를 썼다.

그러나 고칠 수 없었다.

애초에 결계가 망가진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마물 출현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았을 때는 괜찮다.

하지만 어제부로 모든 게 달라졌다.

아르센 광장의 마물 사태.

세 마리의 중상위급 마물이 나타나서 제국민을 학살했는데 이것이 어떻게 우연인가?

잘 짜인 각본을 보는 기분이었다.

‘이런 혼란한 시국에 알렉산더가 황제를? 절대 불가능해.’

사실 마지막까지 고민하긴 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알렉산더도 황제위에 오르고 나면 그에 걸맞은 위엄을 보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러나.

‘마물이 다 죽을 때까지 현장에 도착하지도 못하다니. 아예 숙부의 총사령관이라는 직함을 알마예르 소후작에게 주는 게 낫지 않을까요?’

‘자기보다 한참 어린애한테 푹 빠져서는. 아무리 여자 만나는 게 처음이라지만 과한 거 아닙니까? 정신 똑바로 차려요.’

문밖에서 들려온 대화로 알브레히트가 결론을 내렸다. 지금 이 상황에서 레온하르트에게 화를 내는 이유가, 여자 때문이라니.

와르르, 마지막 남은 기대감이 모래성처럼 무너졌다.

황제는 사람을 가장 사랑하면 안 된다. 제국 그 자체를 가장 사랑해야 한다.

그게 바로 알렉산더가 평생토록 배워 온 제왕학이었다.

‘……알렉. 네가 나를 황제로 살게 하는구나.’

알브레히트는 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얼굴을 내려놓고, 황제로서 최선의 선택을 하기로 결정했다.

“레온.”

“예, 폐하.”

레온하르트가 어쩔 줄 모르는 얼굴을 숨기며 공손히 답했다.

‘네가 황후에게서 태어났더라면.’

알브레히트는 황후에게 언제나 미안했다.

황후는 남편의 혼외자를 알고 있었고, 마음이 약한 그녀는 제대로 화도 내지 못한 채 시름시름 앓았다.

‘그 아이는 내 자식이 아니오.’

‘당신이 그렇게 믿는다 해서 사실이 바뀌는 건 아니에요.’

‘선황께서 돌아가셨으니 아는 사람은 우리 둘뿐이오. 본인도 모르는 사실이 의미가 있소?’

‘그럼 의미가 없나요? 내가 이렇게 괴로운데?’

‘……혹여 그 아이가 황제가 되더라도 내 아들이 아닌, 선황의 아들인 채 즉위할 것이오.’

‘……잔인한 사람. 난 알렉산더보다 그 아이. 아니, 레온하르트가 더 가여워요.’

알브레히트는 황후 생전에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황후와 약속했다.

레온하르트에게 황제위를 주더라도, 자신의 자식으로 인정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나는 레온을 내 아들이라고 여긴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레온하르트는 명백한 실수의 결과물이었다.

너무 가까이에 있던 여자였고, 자신은 너무 어렸다. 넘쳐나는 혈기를 주체하지 못했다.

선황의 정부와 놀아나다니.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 수치스러워서 얼굴을 들지 못했고, 선황에게 말하지도 못했다.

선황은 알브레히트를 불러다가 잠시 그의 얼굴을 들여다 본 후.

‘내 아들로 삼겠다.’

한 마디 한 게 전부였다.

알브레히트는 레온하르트를 제 자식으로 여기지 않았다.

실제로 이복형제들을 암살할 때 레온하르트도 처리해 버리려 했지만 선황의 간곡한 부탁에 참았을 뿐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행위는 철저하게 황제로서의 선택이다.

아버지의 선택이 아니다.

“레온, 고개를 들거라.”

레온하르트가 고개를 들어 알브레히트의 얼굴을 보았다.

알브레히트는 눈을 감아 버리고 싶은 충동을 참아 내며 레온하르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제 보니 나와 닮았구나.’

인정하기 싫지만 사실이었다.

“……시종장.”

“네.”

시종장이 알현실의 뒷문을 열자 문 안에서 발라고프 백작이 나왔다.

“알마예르 소후작, 발라고프 백작을 증인으로 세운다.”

알브레히트가 떨리는 목소리로 선언했다.

“차기 황제는 레온하르트다. 제국법에 맞게 절차를 따르겠지만, 근시일 내로 알렉산더의 황태자위는 폐할 것이며 레온하르트가 황태자위에 오를 것이다.”

“폐, 폐하.”

당황한 레온하르트를 무시한 채 알브레히트가 자신의 손에 얼굴을 묻었다.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황제는 10년은 족히 늙어 보였다.

“레온. 이렇게 갑작스럽게 말해서 미안하구나. 그러나, 알렉산더가……. 이렇게 격에 맞지 않을 줄은 몰랐다. 나의 과오다.”

레온하르트의 금빛 눈이 세차게 떨렸다. 그러나 짧은 시간 동안, 레온하르트는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알렉산더의 황태자위를 폐하며 가장 괴로운 사람은 폐하시겠지.’

그렇게 생각한 뒤, 그는 자조적으로 생각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황제의 뜻을 짐작하며 황명을 거스르는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니.

레온하르트는 자신이 자유 의지가 없는 목줄에 묶인 개처럼 느껴졌다.

목줄에 묶인 개가 주인에게 고개를 늘어트렸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다음 날, 조간신문의 헤드라인이 온 제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황태자 알렉산더의 몰락! 자이거 대공, 작은 태양의 관을 쓰다!>

신문이 발간된 시간은, 황제가 알렉산더에게 황태자위를 폐한다고 말하기도 전이었다.

*

“호외요, 호외!”

“황태자 알렉산더의 몰락! 우리 신문은 다른 관점에서 바라봤습니다!”

“우리 신문도 봐 주세요!”

알렉산더 본인조차 알지 못했던 사실을 밝힌 신문사는 딱 한 곳이었다.

그래서 다른 신문사들은 부랴부랴 옮겨 적기 식의 기사라도 내었다. 신문사 사장이 아는 귀족이며 궁인에게 연락을 하고 가장 귀한 인맥을 동원해 봐도 알렉산더의 황태자위를 폐하는 일을 아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기사를 낸 곳은 신생 신문사였지만 공신력은 있었다.

애초에 신생인 이유도 황제를 돌려 까는 기사를 쓰는 것이 못마땅했던 알브레히트가 압박하여 폐간시켰기 때문이었다. 신문사는 이후 다른 이름을 달고 황실에 우호적인 기사를 내었기에, 아는 사람들은 이 신문사가 황실의 관리를 받는 곳임을 알고 있었다.

그런 신문사에서 알렉산더가 폐태자가 되었다는 기사를 냈다?

소스가 확실하다는 뜻이다.

하루를 집에서 푹 쉬고 부대로 출근한 율리아나는 기사를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알렉산더가…… 폐위?’

자신이 회귀하고 난 뒤부터 소소하게 미래가 바뀌었다는 것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정말 사소하게 바뀐 사실들은 마치 고요한 호수에 떨어진 돌처럼 아주 멀리까지 파문을 일으켰다.

이제는 더 이상 소소하다고 말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더 안 좋은 쪽으로 바뀐 걸까? 어쩌면 이게 맞는 방향인 걸까?’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너무 많이 바뀌어 버린 현재는 이미 알고 있던 미래의 지식으로 판단할 수가 없어졌다.

그저 멍하니 기사를 보고 있는데, 똑똑.

노크에 대답하기도 전에 문부터 벌컥 열렸다. 화들짝 놀란 율리아나가 문을 열고 들어온 무례한 사람을 바라보았다.

“당신은…….”

“율리아나 소위. 함께 신전으로 가주시죠.”

율리아나를 사칭범으로 몰았던 남자, 티모테오 사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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